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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경력직, 더 적은 신입

2025.08.20 | 조회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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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ded by Zero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실리콘밸리는 젊음과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차고에서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고, 컴퓨터 공학 학위는 수억 원대 연봉으로 가는 골든 티켓처럼 여겨졌죠. 하지만 젊은 기회의 땅의 문이 바로 청년들 앞에서 굳게 닫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용시장 변화 이야기가 지겨우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폭이 이제 데이터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추적 관찰할 수 밖에 없기도합니다.

최근 테크 업계의 채용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경력직, 특히 시니어급 인력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 정작 업계의 미래가 되어야 할 신입 및 주니어급 채용은 그야말로 붕괴 수준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경기가 안 좋아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죠. 고금리 시대, AI, 그리고 실리콘밸리 깊숙이 자리 잡은 엘리트주의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어쩌면 돌이키기 힘든 구조적인 대전환일지도 모릅니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변화

말로만 떠도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SignalFire의 고용분석 리포트ㄹ에 따르면 2023년과 2024년 사이, 테크 기업들의 인력 구성을 분석한 데이터를 보면 이 경험의 '양극화' 현상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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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력직은 귀한 몸: 빅테크 기업에서 5~10년 차 경력직 채용은 무려 34%나 급증했습니다. 2~5년 차 역시 27% 늘었죠. 스타트업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경력직 채용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 주니어는 찬밥: 반면, 빅테크에서 1년 차 이하 직원의 수는 25%나 급감했습니다. 스타트업에서도 11% 줄었죠. 2019년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빅테크의 신입사원 채용은 반 토막, 스타트업은 30% 이상 쪼그라들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침체가 아니라, 아예 신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보입니다

심지어 신입(Entry-Level)이라는 단어의 의미마저 변질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같은 테크 허브에서는 신입 채용 공고의 80% 이상이 최소 2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한다고 하니,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는 그야말로 '경력 같은 신입'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셈이죠.

이런 현상이 왜 가능해졌을까요? 사실 AI 이전에 먼저 2022년부터 이어진 대규모 감원 사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구글, 아마존, 메타 등에서 쏟아져 나온 수십만 명의 경력직들이 채용 시장에 풀리면서, 기업들은 굳이 검증되지 않은 신입을 뽑아 가르칠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이미 업계에서 훈련받고 검증된 인력을 골라 뽑을 수 있는, 완벽한 고용주 우위 시장이 열린 거죠.

왜 경력직만

기업들이 주니어 채용을 외면하고 시니어에게만 올인하는 데에는 몇 가지 그럴싸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로 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엑싯이 막히면서, VC들의 돈줄이 말랐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기업들은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몇 달간의 교육과 멘토링이 필요한 주니어는 불확실한 장기 투자로 여겨집니다. 당장 투입되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시니어는 즉시 전력감이자 검증된 투자죠.

공교롭게도, 이 경제적 압박은 생성형 AI의 부상과 정확히 시기를 같이합니다. AI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과거 주니어 개발자들이 담당했던 단순 코딩, 디버깅, 데이터 입력, 기초 리서치 같은 반복적인 업무들을 자동화하고 있습니다. UC 버클리에서는 "AI가 더 싸고 빠른데, 왜 굳이 학부 졸업생을 고용해야 하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AI가 주니어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주니어를 뽑아 키우는 것의 투자 대비 효과(ROI)가 급격하게 떨어진 겁니다.

특히 스타트업에게 시니어 중심의 린(lean)한 팀은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매우 매력적인 시그널입니다. 주주 명부를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고, 소수의 핵심 인재에게 더 많은 지분을 몰아주며 동기를 부여하기 쉽기 때문이죠. 이것은 단순한 인사 전략을 넘어, 투자 유치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일종의 재무 전략이기도 합니다.

기술 엘리트주의의 민낯

이러한 경제적, 기술적 요인들 밑바탕에는, 실리콘밸리에 깊숙이 뿌리내린 문화적, 철학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위대한 너드 이론(Great Nerd Theory of History)'이죠.

19세기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사관(Great Man Theory)'이 "역사는 소수의 위대한 영웅들이 만들어간다"고 주장했다면, 21세기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너드 이론'은 "기술의 역사는 소수의 천재적인 너드(Nerd)들이 써 내려간다"고 믿습니다. 뉴턴, 테슬라, 튜링에서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로 이어지는 천재의 계보가 바로 그것이죠.

이러한 세계관은 창업자 숭배 문화와 결합하여, "성공은 평범한 다수가 아닌, 비범한 소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강화합니다. 벤처캐피탈이 수많은 회사에 투자하지만 결국 극소수의 '대박'으로 돈을 버는 경제 구조가 이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죠.

결국 AI 시대의 이상적인 조직은, 소수의 똑똑한 '위인'들이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해 과거 수백, 수천 명이 하던 일을 해내고, 나머지 '평범한 대중'은 필요 없게 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주니어 채용을 줄이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효율을 제거하고 더 높은 차원의 혁신으로 나아가기 위한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으로 포장되는 거죠.

인재 부채

하지만 단기적인 효율성과 재무적 이점에만 집중하는 이 시니어 올인 전략은, 장기적으로는 테크 산업 전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인재 부채를 쌓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해고된 경력직들로 버틸 수 있겠지만, 5년,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 주니어를 뽑지 않으면, 내일의 시니어는 어디서 나타날까요? 어쩌면 업계는 지금 스스로의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이익을 취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주니어와 중간급이 없는 조직은 허리가 부실한 조직입니다. 소수의 시니어들에게 모든 부담이 집중되고, 지식과 경험이 아래로 전수되지 못하면서 조직 전체의 회복탄력성이 약해지죠. 또한 후배를 가르치는 과정은 시니어 자신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기회인데, 이 멘토십 문화가 사라지면서 리더십 개발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시니어들만 모인 조직은 지적 단일문화에 빠지기 쉽습니다. 새로운 관점,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사라지고, 익숙한 방식만 고수하다가 결국 시장의 변화에 뒤처지게 될 위험이 크죠.

어쩌면 당장은 위협에서 벗어나있는 시니어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변화인거죠.

역발상은 가능할까

현재 테크 노동 시장은 효율적인 비효율입니다. 검증된 경력의 가치는 고평가되고, 잠재력 있는 주니어의 가치는 극도로 저평가되어 있죠. 이 지점에서 똑똑한 기업들에게는 노동 차익거래의 기회가 열릴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모두 비싼 돈을 주고 시니어 영입 전쟁을 벌일 때, 오히려 저평가된 주니어 인재에 투자하고, 그들을 충성도 높은 시니어로 키워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높은 ROI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역발상적 접근이죠. 단순히 자선 활동이 아니라, 낮은 채용 비용, 그리고 더 건강하고 혁신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 베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테크 기업들이 바보가 아니죠. 현재의 이 흐름이 기업 입장에서 최대 효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겁니다. 주니어를 뽑는다고 이들이 높은 장기 근속률을 보장할까요? 아닐겁니다. 그 정도 수준에서는 AI가 더 장기근속직원에 가까울 수 있는거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 산업이 지금의 근시안적인 채용 전략을 계속 고수한다면 머지않아 스스로 만든 인재 부족이라는 덫은 뒤늦은 계산서로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물론 단일 기업 단에서는 별 문제가 안될 수 있겠죠. 하지만 산업 전체적으로는, 장기적으로는 우려가 됩니다. 그렇기에 이런 인재 차익거래의 기회를 먼저 알아보고 행동하는 기업이 또 다른 성공사례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지만 의미없는 우려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때가 되면 시장은 답을 찾아가겠죠. 늘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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