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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딩스푼스, 이번엔 미로

2026.09.14 | 조회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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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제가 벤딩스푼스(Bending Spoons)가 다음에 뭘 살지 후보를 추려본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높은 밸류를 받았고, 그 뒤 새 자금 조달이 없고, 매출은 억 단위인데 성장이 느린 회사. 조건에 맞는 이름을 쭉 뽑았는데 맨 위가 미로(Miro)였죠.

그리도 딜이 한 달 만에 성사됐습니다. 정확하게 맞췄죠

첨부 이미지

벤딩스푼스가 9월 10일 미로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업가치 13억 5,500만 달러인데, 미로가 들고 있는 순현금 4억 3,500만 달러를 더하면 지분 가치로 17억 9,000만 달러입니다. 전액 현금 거래이고 4분기 마감 예정입니다.

미로는 쉽게 말해 온라인 화이트보드 회사입니다. 팀원들이 한 화면에 붙어서 도표 그리고 포스트잇 붙이고 기획하는 도구죠. 원격 근무가 폭발하던 2020~2021년에 같이 커졌습니다.

지금 규모는 작지 않습니다. 연간 반복 매출 약 6억 달러에 그 중 90% 가까이가 기업 고객에서 나옵니다. 유료 사용자 400만 명, 조직 25만 곳, 전체 사용자 1억 명이 넘습니다. 연 10만 달러 이상 쓰는 고객만 750곳입니다.

첨부 이미지

175억에서 17억으로

그런데 이 회사가 2022년 1월에 받았던 밸류가 얼마였을까요? 175억 달러입니다.

아이코닉 그로스(ICONIQ Growth)가 이끈 4억 달러 시리즈 C였고 액셀, 아틀라시안, 드래고니어, GIC, 세일즈포스 벤처스, TCV가 함께 들어갔습니다. 창업 이후 총 조달액은 4억 7,600만 달러입니다.

175억에서 17억 9,000만이면 90% 하락입니다. 4년 만이죠.

매출 대비로 보면 기업가치 기준 2.3배입니다. 6억 달러 매출에 13억 5,500만 달러. 25만 개 조직 업무에 박혀 있는 소프트웨어 가격치고는 참담한 배수입니다.

여기서 지난주에 마감된 에어테이블(Airtable) 딜과 비교해보면 뭔가 보입니다.

에어테이블은 기업가치 12억 8,500만 달러, 지분 가치 22억 5,00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ARR은 4억 8,000만 달러였습니다. 그때 벤딩스푼스는 그 매출이 전년 대비 20% 성장 중이라고 이야기 했죠.

하지만 이번 미로 뉴스에는 그 이야기가 없습니다.

루카 페라리(Luca Ferrari) CEO가 미로 ARR 6억 달러와 기업 고객 90%는 언급했는데 성장률은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자랑할 만했으면 적었겠죠. 안 적었다는 건 에어테이블보다 느리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에어테이블 딜에는 조건이 하나 더 붙어 있었습니다. 일부 주주가 지식재산 일부를 떼어내 자기들이 만들던 에이전트 제품을 들고 나갈 수 있게 한 조항이었죠. 매각가가 회사 전부에 매겨진 게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미로에도 그런 게 있을까요? 없습니다. 이번 딜에서 눈에 띄는 조건은 하나뿐인데, 그것도 벤딩스푼스 쪽에 유리합니다. 미로 주주 일부가 매각 대금 중 2억 9,500만 달러를 벤딩스푼스 신주에 다시 넣기로 했거든요.

우선주

이 가격이 주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멘로 벤처스 파트너 디디 다스(Deedy Das)가 X에 적어놨습니다.

17억 9,000만 달러면 우선주 청산 우선권은 넘긴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은 원금을 회수한다는 뜻이죠. 대신 후기 라운드 수익률은 무너집니다. 2022년에 175억 밸류로 들어간 돈이 원금만 건지는 셈이니까요.

더 아픈 건 직원들입니다. 2021년 이후 합류해서 스톡옵션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행사가가 지금 가격보다 높습니다. 물에 잠긴 거죠.

그러니까 이 딜은 투자자에게 원금 반환, 직원에게 종잇조각, 벤딩스푼스에게 매출 6억 달러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 먹어치우는 벤딩스푼스

벤딩스푼스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을까요?

9월 4일에 에어테이블 인수를 마감했고 9월 10일에 미로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엿새 동안 26억 4,000만 달러어치죠.

7월 1일 나스닥 상장에서 주당 29달러로 16억 8,000만 달러를 조달했는데, 그 돈이 어디 쓰일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셈입니다.

페라리가 상장 서류에서 인수 대상 후보 1,000곳 이상을 식별했다고 밝힌 게 두 달 전입니다. 이들의 연매출 합계가 4,000억 달러 가까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속도를 보면 그 명단이 이미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번 딜이 확인해준 건 시장 가격입니다. 억 단위 소프트웨어 매출을 매출의 2배에서 4배면 살 수 있다는 것.

이 가격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쪽에 가깝습니다. 6억 달러 매출에 기업 고객 비중 90%인 회사가 2.3배라는 건 SaaS 배수가 역사적 평균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넘어섭니다.

그런데 시장이 말하고 있으니 들어야죠.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유니콘이 된 회사들에게 벤딩스푼스는 오래 기다리던 출구입니다. 다만 그들이 바라던 가격은 아니죠.

지난달 명단에서 미로가 빠졌으니 남은 이름은 에어콜, 포스트맨, 클릭업, 웹플로우, 컬처 앰프, 프론트, 소트스팟, 타입폼입니다. 연간 수십억 달러짜리 딜을 몇 건씩 소화할 수 있는 회사가 되었으니 이 중 어디가 다음일지 궁금해지는데요. 명단에 없던 이름이 나온다면 그것도 재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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