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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테슬라 이사회가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는 꽤나 흥미로운, 아니 어쩌면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일론 머스크에게 수십조 원짜리 보상 패키지를 안겨주기 위해, 이사회는 이제 테슬라가 단순한 전기차 회사가 아니라 "AI, 로보틱스 및 관련 서비스의 리더로 변모하고 있다"고 주장했죠. 그리고 이 치열한 AI 인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머스크의 리더십은 필수적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아주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머스크가 이끄는 또 다른 회사, 그의 개인 AI 벤처인 xAI가 똑같은 전쟁터에서, 똑같은 인재와 자본, 그리고 똑같은 자원을 놓고 테슬라와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말이죠. 그리고 얼마전 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에서 이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기도 했죠.
이건 단순한 문어발 경영의 문제가 아닙니다. 테슬라 주주들의 이익과 직결된 이해 상충 문제이자, 머스크 AI 제국을 뒤흔드는 모순일 수 있습니다. 과연 머스크의 진짜 AI 야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요? 테슬라는 정말 그 비전의 중심일까요? 아니면 그저 xAI라는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자금줄에 불과한 걸까요?
테슬라의 변신
테슬라의 공식적인 미션은 여전히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특히 머스크와 이사회의 메시지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이제 그들은 테슬라를 'AI와 로보틱스 회사'로 리브랜딩하고 있죠.
이런 변화는 왜 필요했을까요? 한때 미국 전기차 시장의 75%를 장악했던 테슬라의 점유율은 2025년 1분기 43.5%까지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전기차만으로는 예전 같은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기 어려워진 겁니다. 새로운 성장 스토리가 절실해진 거죠.
그 새로운 스토리가 바로 FSD(완전자율주행), 옵티머스(휴머노이드 로봇), 그리고 도조(자체 개발 슈퍼컴퓨터)라는 세 개의 기둥입니다. 머스크는 옵티머스 로봇 덕분에 테슬라의 기업가치가 무려 30조 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주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AI Day'나 '자율주행 투자자의 날' 같은 행사를 여는 것도, 시장의 관심을 자동차 생산량에서 AI와 소프트웨어의 무한한 잠재력으로 돌리려는 의도죠.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 FSD는 여전히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레벨 2'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규제 당국의 조사는 계속되고 있으며, 치명적인 사고와 관련된 소송 리스크도 상당합니다.
- 옵티머스는 2025년까지 5,000대를 생산하겠다던 목표는 어림도 없었고, 기술적 난관과 리더십 교체 문제로 양산은 2026년 초로 미뤄졌습니다. 아직 이 로봇을 어디에 어떻게 써서 돈을 벌겠다는 확실한 계획도 없죠.
- 도조는? 엔비디아 GPU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테슬라의 AI 학습 클러스터는 여전히 자체 칩보다 엔비디아 H100 GPU를 2배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테슬라의 AI 비전은 아직 '실체'보다는 '기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AI 내러티브'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라는 불편한 현실 속에서 테슬라의 높은 기업가치를 방어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xAI의 등장
테슬라가 '우리는 AI 회사'라고 외치는 동안 머스크는 2023년에 xAI라는 순수 AI 회사를 따로 차렸죠. 그리고 xAI의 성장 속도는 그야말로 경이롭죠.(일론머스크 그록(Grok)의 핵심은 성능이 아닌 발전속도)
xAI의 미션은 테슬라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주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한다"는, 거의 철학에 가까운 목표를 내걸었죠. 이는 FSD나 옵티머스 같은 특정 제품 개발을 넘어, 오픈AI나 구글 딥마인드처럼 범용인공지능(AGI)을 만들겠다는 야망을 드러냅니다.
- 기술: 주력 모델인 그록(Grok)은 X(구 트위터)의 실시간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학습한다는 다른 AI 모델은 가질 수 없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와 영상 생성 능력까지 빠르게 확장하고 있죠
- 하드웨어: 테슬라가 도조라는 맞춤형 슈퍼컴퓨터를 몇 년째 개발하는 동안, xAI는 엔비디아 GPU를 대량으로 사들여 콜로서스(Colossus)라는 거대 슈퍼컴퓨터를 단기간에 구축하는 물량 공세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미 20만 개의 GPU를 운영 중이고, 목표는 100만 개라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가시나요?
- 자금: xAI는 불과 1년여 만에 세쿼이아 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 등 최고의 VC들로부터 12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끌어모았고, 기업가치는 240억 달러에서 최대 2,000억 달러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2025년에만 130억 달러를 태워야 하는 '돈 먹는 하마'이기도 하죠
이처럼 xAI는 규모, 비전, 자금 조달 능력 모든 면에서 테슬라의 AI 부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머스크의 AI 본진처럼 보입니다. 머스크 본인도 "테슬라의 실세계 AI와 xAI의 LLM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두 회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죠.
테슬라의 자원이 xAI로 흐르고 있다
문제는 이 두 회사가 단순히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테슬라의 자원이 xAI로 흘러 들어가는, 심각한 이해 상충 관계에 있다는 점입니다.
- 인재: 테슬라의 이사회는 "머스크가 있어야 AI 인재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머스크는 한편으로는 테슬라 AI 엔지니어들의 연봉을 올려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xAI로 오라며 더 적극적으로 인재들을 빼내 갔습니다. 실제로 테슬라의 핵심 머신러닝 과학자들이 xAI로 이직했고, 이는 주주 소송으로까지 이어졌죠
- GPU: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024년 6월에 터졌습니다. 머스크가 개인적으로 엔비디아에 지시하여, 원래 테슬라로 배송될 예정이었던 H100 GPU 12,000개 이상을 X와 xAI로 돌렸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AI 개발에 필수적인, 그것도 품귀 현상을 빚고 있던 핵심 자원을 상장사인 테슬라 대신 자신의 개인 회사에 먼저 챙겨준 거죠
이건 실수나 우연이 아닙니다. 상장사 CEO로서 테슬라 주주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머스크가, 자신의 개인 회사 이익을 위해 테슬라의 자원을 명백히 유용한 행위입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뻔뻔한 이해 상충"이라며 SEC의 조사를 촉구한 것도 당연한 일이죠. 테슬라 이사회는 이런 명백한 배임 행위를 알면서도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합병? 자금수혈?
이 불편한 동거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머스크는 최근 "테슬라와 xAI의 합병은 지지하지 않지만, 테슬라 주주들이 xAI에 투자하는 방안에 대해 투표에 부치는 것은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한마요약하면 "테슬라 돈으로 xAI에 투자하자"는 거죠.
물론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는 있습니다. xAI의 그록을 테슬라 차량에 탑재하고, 테슬라의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xAI 모델 학습에 활용하는 그림은 꽤나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흑자를 내는 상장사인 테슬라가, 매년 130억 달러를 태우는 비상장 스타트업 xAI에 막대한 자금을 수혈해주는 꼴이 됩니다. 이는 과거 머스크가 자신의 사촌이 운영하던 솔라시티(SolarCity)를 테슬라에 인수시켜 구제 금융을 해줬다는 비판을 받았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죠.
그리고 사실 하드웨어 제조와 운영 효율성이 핵심인 테슬라와, 소프트웨어와 이론 연구 중심인 xAI의 기업 문화는 완전히 다릅니다. 억지 통합은 오히려 두 회사 모두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머스크라는 구심점이 있기때문에 이건 큰 문제는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면서 무엇보다 이 구조는 머스크 개인에게 가장 유리합니다. 그는 테슬라 주주들의 돈으로 자신의 개인 회사 xAI를 키우면서, 정작 xAI에 대한 자신의 지분과 통제력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테슬라 주주는..
자,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죠. "머스크의 AI는 테슬라인가, xAI인가?" Divided by Zero에서 바라보는 답은 "둘 다, 하지만 진짜 야망은 xAI에 있다"입니다. 테슬라는 '현실 세계의 AI'를, xAI는 'AGI를 꿈꾸는 생성 AI'를 맡고 있죠.
문제는 이 두 개의 거대한 야망이 서로 충돌하며 테슬라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모호한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아 보이긴합니다.
테슬라 이사회와 주주들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머스크의 이해 상충 행위에 제동을 걸고 두 회사 간의 관계를 투명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재정립해야 합니다. 만약 xAI에 대한 투표가 정말 진행된다면, 주주들은 단순히 'AI 시너지'라는 말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이것이 테슬라를 머스크의 개인 제국을 위한 은행으로 전락시키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테슬라는 AI와 로보틱스라는 위대한 비전을 실현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비전을 실현할 또 다른 회사를 위해 묵묵히 돈만 대주는 처지가 될 수도 있고. 소송전이 이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머스크는 답을 찾겠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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