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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에 운동앱 스트라바(Strava)에 대해 한번 다뤘었죠. 스트라바의 IPO 소식을 언제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글을 끝마쳤었습니다.
그리고 반년만에 스트라바가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이후 닷컴 버블 붕괴와 함께 조용히 내실을 다져온 이 피트니스 소셜 네트워크의 상장 소식은 시장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죠.
스트라바의 이번 IPO는 단순히 또 하나의 테크 기업 상장일까요? 아니면 성장 지상주의 시대가 끝난 지금, 커뮤니티 기반의 구독 모델이 과연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까요?

기술이 아닌 관계
한번 다뤘었지만 스트라바의 본질적 경쟁력에 대해 한번 다시 훑어보죠.
스트라바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이 서비스를 단순한 운동 기록 앱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스트라바의 진짜 힘은 기술이 아닌 1억 5천만 명이 넘는 사용자들로 이루어진 끈끈한 글로벌 커뮤니티(한국에선 사실상 철수했지만)에서 나오죠.
플랫폼의 모든 기능은 이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GPS로 활동을 기록하고 공유하면, 친구들이 쿠도스(Kudos)를 눌러주며 사회적 인정과 지지를 보내는 구조죠. 특정 구간의 순위를 매기는 세그먼트 기능은 이용자들 사이에 건전한 경쟁심을 유발하며 끊임없이 앱을 다시 찾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스트라바에 없으면 운동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플랫폼은 사용자들의 운동 생활을 기록하는 공식적인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겁니다.
이러한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는 스트라바가 의도적으로 유지해 온 자산 경량화 모델 덕분에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스트라바는 가민, 애플, 와후 같은 하드웨어 제조사들과 직접 경쟁하는 대신, 400개가 넘는 거의 모든 기기와 연동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남는 길을 택했죠. 하드웨어 판매량에 따라 실적이 요동쳤던 펠로톤(Peloton)과 같은 기업들과는 다르게 훨씬 더 안정적이고 확장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 셈입니다.
낮은 유료 전환율
스트라바의 사용자 기반은 그 규모와 충성도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여전히 전 세계 185개국에서 매달 약 200만 명의 신규 사용자가 유입되고 있고,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5,000만 명에 달하죠.
이러한 성장은 Z세대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순풍을 타고 있습니다. 술자리 대신 러닝 클럽에서 만나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트렌드는 스트라바의 비즈니스 모델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죠.
하지만 이 눈부신 사용자 성장 이면에는 스트라바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존재합니다. 바로 낮은 유료 전환율이죠. 전체 등록 사용자의 약 2%만이 유료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장한다면 투자자들이 가장 집요하게 파고들 위험 요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대로는 스트라바의 가장 큰 성장 기회이기도 합니다. 1억 5천만 명이라는 거대한 무료 사용자 풀에서 전환율을 단 1%포인트만 끌어올려도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스트라바의 미래는 이 전환율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수합병을 위한 실탄?
바로 이 전환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트라바는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CEO 마이크 마틴(Mike Martin)은 유료 구독을 촉진할 수 있는 기능 추가에 사활을 걸고 있죠.
이미 몇가지 성과들이 확인되고 있는데요
- 런나(Runna) & 더 브레이크어웨이(The Breakaway): 연초에 스트라바 소식을 전하면서 다뤘던 인수 건들이죠. 2025년 4, 5월에 연달아 인수한 이 두 회사는 각각 달리기와 사이클링을 위한 AI 기반 개인 맞춤형 훈련 계획을 제공합니다. 스트라바에 가장 부족했던 기능이자, 가장 열성적인 사용자들이 기꺼이 돈을 낼 만한 핵심 기능

- 팻맵(Fatmap) & 리커버 애슬레틱스(Recover Athletics): 3D 지도 기술과 부상 방지/회복 콘텐츠를 제공하는 이 회사들의 인수를 통해, 스트라바는 '운동 전(계획) → 운동 중(기록) → 운동 후(회복)’에 이르는 선수의 전체 사이클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진화를 도모 중
결국 스트라바에게 이번 IPO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 인수합병 전략을 가속화하기 위한 실탄을 확보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CEO 스스로도 “더 크고 많은 인수를 위해 상장은 자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명확히 밝혔죠. 팬데믹 이후 피트니스 테크 스타트업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인수 대상 기업들의 몸값이 낮아진 지금이 스트라바에게는 시장을 통합할 절호의 기회인 겁니다.
2021년과는 다른 시장
스트라바가 문을 두드리는 2025년의 IPO 시장은 2021년의 거품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입니다.
제가 몇번씩 반복하는 이야기입니다만, 2021년 시장이 성장이라는 단어 하나에 열광하며 묻지마 투자를 했다면, 지금의 투자자들은 훨씬 더 냉정하고 까다로워졌죠. 멀티플은 2021년 평균 17배에서 현재 4배 수준으로 급락했습니다. 대신,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과 수익성을 갖춘 우량 자산에 대한 선호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우량 자산으로의 쏠림 현상은 스트라바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합니다. 한편으로는 2021년과 같은 폭발적인 밸류에이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죠. 2025년 5월, 22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을 기준으로, 시장에서는 20~30억 달러 수준의 상장 가치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트라바가 가진 성숙함, 상당한 매출 규모, 그리고 4년 연속 EBITDA 흑자를 기록했다는 점이 오히려 지금 시장에서는 강력한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현금만 태우던 과거의 유니콘들과 달리 스스로 돈을 벌며 성장하는 진짜라는 점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시험대
스트라바의 상장은 구독 경제의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시험지가 될 겁니다. 스트라바는 투기적 상품이라기 보단, 강력한 브랜드와 실제 작동하는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명확한 과제를 안고 있는 성숙한 기업이죠.
스트라바에 대한 투자는 결국 플랫폼 시대의 커뮤니티 네트워크 효과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믿음에 기반할겁니다(매수매도에 대한 추천은 아닙니다). 상장 이후 스트라바 경영진은 분기 실적을 압박하는 월스트리트의 요구와 상업화에 저항하는 충성스러운 커뮤니티의 가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할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지나친 수익화 압박이 플랫폼 품질 저하를 초래해 가장 소중한 자산인 커뮤니티를 스스로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스트라바는 피트니스, 소셜 네트워킹, 그리고 웰니스 경제의 교차점에서 시대를 정의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간 한국에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죠.
(다만, 이런 계속되는 IPO 소식은 시장의 흥분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카나리아일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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