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혹시 자전거를 타는 분이시면 스트라바(Strava)라는 앱은 한번쯤 써보셨을겁니다. 비록 한국에선 철수소식이 들리지만...
2009년 마크 게이니(Mark Gainey)와 마이클 호바스(Michael Horvath)가 창업한 이 회사는 처음에는 하드코어 자전거 라이더들, 소위 '쫄쫄이 입은 중년 아저씨들(MAML)'을 집중 공략하며 시작했죠. 그리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자전거에서 달리기로, 이제는 거의 모든 운동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운동인들의 소셜 네트워크로 자리매김했으니까요. 스웨덴어로 '노력하다(strive)'라는 뜻의 이름처럼, 전 세계 운동인들이 서로 경쟁하고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플랫폼이 된 겁니다.
그리고 이 스트라바가 최근 의미심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순한 소셜 기능을 넘어, AI 기반의 개인 맞춤형 훈련 기능을 대폭 강화하며 '종합 트레이닝 및 퍼포먼스 허브'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거죠. 지난주 인수 보도가 나온 AI 코칭 앱 '런나(Runna)'와 '더 브레이크어웨이(The Breakaway)'가 바로 그 신호탄입니다.
먼저 스트라바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스트라바의 성공 비결을 꼽으라면 단연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와 방대한 '데이터'입니다.
스트라바의 핵심 경쟁력은 뭐니 뭐니 해도 끈끈하게 연결된 전 세계 사용자 커뮤니티인데요, 특정 구간(세그먼트) 기록 경쟁, 순위표(리더보드), 챌린지, 클럽, 그리고 서로의 활동에 '쿠도스(Kudos, 좋아요와 비슷)'를 날리며 격려하는 문화는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계속 머무르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죠. 다른 사람이 열심히 운동하는 걸 보면 나도 자극받아 더 운동하게 되고, 그 결과를 다시 공유하며 소통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실제로 스트라바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이 혼자 할 때보다 더 오래, 더 멀리 운동한다는 데이터를 공개하기도 했죠. 이미 70억 건이 넘는 활동 기록과 매주 400만 장 이상의 사진이 공유되는 이 거대한 '소셜 운동장'은,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가기 어려운 강력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트라바는 이 모든 사용자들이 기록한 방대한 양의 GPS 정보, 운동 성과 데이터(속도, 파워, 심박수 등), 소셜 활동 데이터 등을 보유하고 있죠.
이 데이터는 개인 맞춤형 경로 추천, 구간 기록 분석, AI 기반 운동량 분석 등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는 데 활용될 뿐만 아니라, '스트라바 메트로(Strava Metro)'처럼 도시 계획가나 교통 담당 부서에 익명화된 데이터를 제공하여 자전거 및 보행자 인프라 개선에 기여하는 B2B 사업 모델로도 이어집니다. 즉,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데이터는 더 정교해지고, 플랫폼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일종의 '데이터 해자'를 구축한 셈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건 스트라바의 브랜드 파워죠.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트라바는 이미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공개 API를 통해 수많은 서드파티 앱과 기기들이 스트라바와 연동되면서, 더욱 풍부하고 강력한 피트니스 생태계를 만들어왔죠. (물론 최근 API 정책 변경과 관련해 일부 개발자들과의 마찰도 있었지만, CEO 마이크 마틴(Mike Martin)은 사용자 보호와 플랫폼 건전성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하며 오픈 API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스트라바는 강력한 커뮤니티와 데이터, 그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피트니스 앱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걸까요?
앞서 언급했듯 스트라바의 최근 가장 큰 변화는 AI 기반 개인 맞춤형 트레이닝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런나(Runna)와 더 브레이크어웨이(The Breakaway) 인수입니다. 이 두 회사는 각각 달리기와 사이클링 분야에서 AI 코칭 기술을 인정받은 유망 스타트업이죠.
- 런나(Runna): 5km 초보 러너부터 풀코스 마라토너까지, 모든 수준의 달리기 애호가를 위한 AI 기반 맞춤형 훈련 계획을 제공. 사용자의 진행 상황과 목표에 맞춰 훈련 강도와 내용을 조절 가능
- 더 브레이크어웨이(The Breakaway): 사이클리스트를 위한 AI 코칭 앱으로, 특히 파워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12가지 '파워 스킬'로 나누고, 개인 기록 추적 및 맞춤형 훈련을 제공. 심박변이도(HRV) 같은 생체 데이터까지 통합하여 더 종합적인 코칭을 지향
스트라바 CEO 마이클 마틴은 "사용자들이 스트라바에서 경로를 짜고, 런나로 훈련하고, 그 결과를 다시 스트라바에 공유하는 이 과정을 더 매끄럽게 만들고 싶다"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즉, 단순한 운동 기록과 소셜 기능을 넘어, 사용자 개개인의 목표 달성을 돕는 '개인 코치' 역할까지 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
이 인수합병은 스트라바의 유료 구독 서비스(연간 약 80달러) 가치를 대폭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명확해보이죠. 기존의 기본 기능만으로는 유료 전환을 망설였던 사용자들에게 "이 정도 기능이면 돈 낼 만하지!"라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거죠. 실제로 스트라바는 2020년부터 더 많은 핵심 기능들을 유료 구독 모델로 전환해왔습니다.
결국 스트라바는 운동 기록, 소셜 네트워킹, 그리고 이제 AI 코칭까지 아우르는 '피트니스 슈퍼앱'으로 진화하려는 겁니다. 연간 반복 매출(ARR) 5억 달러 달성이라는 목표를 향한 강력한 승부수인 셈이죠. 슈퍼앱 지겹긴 합니다. 하지만 다들 추진하는건 이유가 있는거죠
전 세계를 움직임으로 연결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활동적이 되도록 만들겠다
스트라바 CEO 마이크 마틴
피트니스 앱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가깝고, 전문적인 트레이닝 기능을 제공하는 앱들과 가민 같은 하드웨어 기반 생태계와의 경쟁도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스트라바가 AI 코칭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결국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스트라바는 2020년부터 수익을 내고 있고, 최근 22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추가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습니다. ARR 5억 달러 목표 달성도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평가죠.
사실 시장에서는 꾸준히 IPO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스트라바는 "지금은 성장에 집중할 때"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IPO를 위해서는 인수합병 시너지를 확실히 증명하고, 지속적인 유료 구독자 증가와 수익성 개선을 시장에 보여줘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스트라바 IPO 소식을 듣게 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