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 연필 찾기

001.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체하는 건

2024.09.25 | 조회 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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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어둠-을-뚫고-나가는-힘=은? 여기 있어요.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체하는 건 

 

둥글게 깎은 빛 좋은 복숭아 하나를 잘근 베어 문다.

잇사이로 터져 나오는 과즙. 베어 물 때마다 입안 가득 미지근한 상쾌함이 돈다

푸른 동맥을 따라 과즙이 흘러내린다.

이렇게 비릿한 슬픔은 누구의 아픔일까

자꾸만 미끄러지는 복숭아를 바로 잡으려 나는 애를 쓰고 한 손에는 새로 산 시집이 들려 있다.

 

완벽한 사랑을 꿈꿨대요.

완벽한 꿈을 꿈꾸었대요.

 

페이지가 물들거나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며 시를 읽지만 시집은 자꾸만 고꾸라지고 나는 그것을 고쳐 잡으려다 결국 페이지를 넘기는 손과 복숭아를 들고 있던 손이 교차하고 만다.

1. 시공간이 뒤틀려도 지금보다 더 못 할 거야.

2.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지 모를 때는 나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자꾸만 빠져나가려는 너를 놓고 싶지가 않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실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반복되는 따뜻하지만 실패하고만 이야기 끝에서 나는 이불을 걷어낸다. 

갑자기 불어오는 한기에 나는 또다시 시간이 사라지길 비는 사람.

물든 시집과 급속도로 갈변한 복숭아와 식도를 타고 내려간 과육과는 관련 없는 사람.

 

 

떨어진 복숭아 조각을 주우면서 너를 실패한 건 아마도 엉거주춤한 자세 때문일 거라고 우직하게 서 있는 벽시계 앞에서 생각한다.

나는 시계를 한 번 흘겨 보고

흥건한 머리칼에 등허리가 젖는다.

 

있잖아. 너를 만나려고 내 몸은 늘 깨끗했어. 부끄러운 자세로 너를 안고 싶어서 밤새 상상했어. 

 

이불은 정갈함을 잊은 지 오래다.

이제부터 뭘 해야 좋을지 잊은 지 오래다.

위액으로 뒤엉킨 복숭아 조각들이 켜켜히 얹힌 지 오래다.

불균열의 균형,

나는 그것들을 쓸어 내리려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보지만 정렬은 맞아 들지 않고 어째서인지 복숭아를 먹고 나면 반드시 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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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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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유채의 프로필 이미지

    진유채

    0
    3 months 전

    너무 조 아 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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