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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부산으로 향했고 4년 만에 입관실에 들어가본 날. 지난 금요일이었다. 부산역에 내리니 출연자가 우리를 맞이한다. 장례지도사 형제 중 동생이다. 그와 그의 형을 취재하러 부산에 왔다.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셔본다. 바닷바람 냄새가 날까. 나는 부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다.
서울 아니라 하면 촬영 잘 안 해주시던데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동생이 묻는다. 순간 나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서울에서의 취재라면 간편한데. 아이템을 포기하지 않고 굳이 굳이 ktx를 타는 이유. 지겨운 내근 생활에 모처럼의 이동이 좋아서일까. 그것보단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여기, 이곳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멀다고 놓아두기엔 귀한 것일까봐. 부산에 간다고 했을 때 누군가 가는 거 맞아? 라고 물었고. 나는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고 했었다. 형제의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게 형제의 이야기를 풀 열쇠가 될 질문들을 들고.
국밥을 먹는다. 밥 안 말고 먹는 사람 생전 처음 봤어요. 동생이 말한다. 나는 그 '생전 처음 봤음'을 '처음 봐서' 더 신기해 한다. 그렇게 혀를 데어가며 밥을 먹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빈소 세팅 장면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차편을 일찍 끊어두었는데 혹시 시간이 모자라진 않을까. 염려가 되는 마음.
마음이 분주하지만 묻어두고. 질문을 차례차례 건네기 시작한다. 그러면 오늘도. 역시나. 나의 준비된 질문지는 큰 소용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조용히 열쇠를 돌렸을 뿐이고. 그렇게 내가 하나의 움직임을 건넸을 때 우수수 쏟아지는 것들이 있다.
저희 어머니랑 저희 형은요. 언젠가부터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작별인사를 해요.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사람 일은 모른다는 걸 아니까요. 지도 없이 흘러가는 취재에 몸을 맡긴다. 그런 직업병처럼 생겨버린 장례지도사만의 것이 또 있나요. 수첩에는 없는 질문이 나 또한 궁금해지고.
입관실로 들어간다. 온전히 집중하던 나는 질문을 끝마치고 새삼 놀란다. 그러니까 여기는 지나온 4년의 시작점과 같은 공간. 가족 구성원의 죽음으로 나 역시 오래 방황했었고. 그 상실의 시간으로 난 지금의 어떠한 무엇으로 형성돼왔고. 입관실에서의 마지막 인사. 이제는 잘 되짚지 않는 그때 내 인사가 떠오른다. 생각한다. 이 일을 하니 입관실이라는 공간에도 다시 들어와보는구나.
왜 두 분이 함께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전화로 들었을 때 답을 이미 해주셨지만. 사실 그 이유만으로는... 저는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내 손으로 마지막 날에 직접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 그건 두 분께 어떤 의미인 건가요. 저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로 느껴져서요. 그리고 하나 하나 이야기의 문이 열릴 때 실감한다. 부산에 온 이유를.
가짜 관이지만 운구 장면을 재현해본다. 리무진에 관을 넣고 형제는 인사한다. 유골함을 꼭 안은 외삼촌과 영정사진을 엉거주춤 붙잡은 나를 기억해본다. 지하여서 그럴까, 겨울이어서일까, 장례식장은 원래 추운 걸까.
다시 서울행. 부산역에서 고등어빵을 판다. 10년 전에 왔을 땐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빠가 고등어를 좋아하는 게 생각나 뭐라도 사가야겠다 싶어. 하나 사본다. 기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에어팟을 꽂고 뭐라도 들어본다. 귀에 흘러나오는 음성은 이렇게 말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만으로 다소 명쾌해진다고. 그러다가 잠자코. 오랜 시간 인터뷰를 해온 누군가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인터뷰로 인터뷰어도 배우는 게 참 많지 않나요. 저는 참 내향적인데 이상하게 인터뷰로 사람 만나는 건 좋더라고요. 인터뷰는 여행 같아요. 맞다.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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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다정함의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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