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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들던 때에 허은실의 시를 읽었고 나는 최승자의 <사랑하는 손>을 떠올렸다
스윙바이, 허은실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다른 차원에서 뻗어나온 하나의 손
그것은 아득한 악수
아주 오래 알던 사람의 손처럼
어쩐지 안심이 되고
은하와 은하의 작은 돌기가
잠깐 닿았다
그것은 다른 우주의 내가
이곳의 나와 잠시 교차하며 닿은 순간
당신이 훔친 기억
어떤 탐사선은
어두운 행성에서의 몇 분을 위해
아홉 번의 봄을 막막히 달려왔다
우주에 흩어질 노래를 싣고
그네를 밀어주는 손처럼
당신의 중력이 나를 끌어
나는 더 멀리로 떠난다
내가 훔친 당신의 것으로
단 한 번 스치기 위해
혼자서 수천 광년 달려온
저녁 별의 허기에
누군가의 기도에 반짝인다
그리고 이제
희도록 퍼붓는 빗속에
발을 내딛는 사람아
먼 곳에서 어느 먼 시간으로
잠시 서글픈 곁이 되려고
불안한 저녁을 달래기 위해 아무 페이지를 열었을 때. 시는 왜 나에게 도착했는가.⠀
열 손가락이 서로 걸리고 우리는 교차한다. 나는 거기에 서있다. 희도록 퍼붓는 빗속에 발을 내딛는 사람이었으므로.⠀허기진 저녁, 무엇으로 허기졌는가 알지 못할 때. 두 손을 펼쳐보면 은하의 작은 돌기들이 당신이 낸 상처들로부터 태어나 있다.⠀
왜 곁은 서글픈가. 왜 곁은 서글프며 잠시 머무르는 곁인가. 왜 평화는 가여운가. 왜 사랑은 존재의 쓸쓸함을 동반하는가.⠀
더 이상 그 무엇도 묻지 않는 우리의 사랑은 난폭함과 아름다움이 접합한 이 세계를 닮아있다. (24.03.14)
때때로 많이 살기 싫은 2월과 3월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옮기고 방향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열차에 탑승한다. 몇 개의 역을 지나쳤는지 세어보지 않지만 내릴 때가 되었음을 안다. 나의 육체가 그걸 알아차리는 게 매일의 출근이고 고통의 9호선이고 모두의 질서 있는 오전이다.
나를 내버려 두어도 죽지는 못할 거라는, 안일한 기대를 배반하고 싶을 때가 있다. 슬픔의 시절이 누군가에겐 무용담으로 변질되고 생존의 문제가 농담거리로 전락할 때.
솔직히 이곳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살기를 지속한다. 삶이 숭고하다거나 이대로 떠나면 아쉬워서가 아니라 한번만 더 이 세계에 속아주고 싶어서다. 인간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출렁댈 때 그래도 살길 잘했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나이가 들면 성격이 둥글둥글해진다는 말을 조금씩 깨닫는다. 지친 사람은 입을 열기도 버겁다. 한때 너무나 확고한 옳음의 기준을 붙들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각자의 절실함으로 언성을 높이고 있다는 걸 알기에 구태여 인사를 걸고 싶지 않다. 그냥 그가 살아온 과정이 그를 만들었고 나와 그는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이면 새롭고도 늘 같은 소식이 쏟아지고 나는 헤드라인조차 읽고 싶지 않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유행곡처럼 떼어내고 싶은 밤양갱 같은 끈적한 관계들. 던져버리고 싶은 의무들. 그렇게 지겹게 나이 들어가도, 여전히 젊은 날의 날선 신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의 총명한 눈을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발견하길 바란다.
더 이상 어린 날처럼 핏대를 세우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 안의 원풍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길 바란다. 더 밝아지거나 더 나아지거나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 회의가 공포보다 낫다는 쪽일 뿐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말은 무책임하고 무계획적인 게 아니었다. 삶이 체득한 노선과 원리대로 나는 조금씩 발을 움직인다.
인류애 박살이니 인류애 상승이니 농담처럼 내뱉는다. 그러나 우리가 참 별로인 모습으로 몸을 붙일 때 나는 조금 덜 별로여진 군중의 모습을 발견한다.
살과 살 사이 작은 틈도 없는 그 광경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누구도 누구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
떠나간 당신을 위한 거리 하나, 비석 하나 만들지 못한 내가 돌아보니 습관처럼 당신을 떠올린다는 것.
그냥 그러면서 살아간다. 나는 이 세계가 견딜 수 없이 촌스럽고, 그래서 밉고, 싫고, 그런데 때때로 우리가 덜 별로여질 때, 그때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여전히 살고 있다. (24.03.05)
나는 한동안 코로나에 걸렸었고, 때마침 타인에게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바랄 수가 없었다.
꿈에서 <연애남매>에 출연했다. 거기서 나는 계속 재미 없는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 유가족인 게 나의 주요 주제인데 그걸 썩 즐거워할 이는 없을 것 같다 뭐 그런 말들. 제작진 앞에서 그렇게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었고 목이 아파서 잠을 깼다.⠀
어제 코로나에 걸린 걸 알아서 그랬고, 코로나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나 그이 생각을 한 건 어제도 그제도 다를 게 없었고, 그러다가 그 프로를 잠깐 본 것이고, 그래서 그냥 지난 날의 요소들이 조합되어 그런 꿈을 꾼 것이다.⠀
평생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외로워보였다. 활동, 운동, ‘내 이야기’로 목소리를 내는 그런 일들은 사실 가장 진심이고 절실한 그 주체의 의도와 다르게 가장 바깥으로부터 외면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실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가끔씩 이곳에 유가족으로서의 이야기를 쓰고 할아버지 사진을 올려왔다. 순전히 나의 애도와 회복을 위해서였지만 때론 눈치를 봤다. 쟤는 또 저러네, 라고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런 내 걱정을 뭉개는 사실은 ‘다들 별 관심 없다는 거’다. 그 무관심은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왜 투병과 투쟁은 늘 고독해야 하는가, 되묻게 된다.⠀
내 감기가 남의 중병보다 큰 게 인간이니까. 나도 내 이야기만큼 중한 게 없고 타인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또 들어주고 그렇게 품앗이를 하며 살아간다.⠀영원할 것 같던 인연들이 정리되고, 또 새롭게 구성되고, 그런 현재를 바라본다. 나의 현재가 그리 즐겁지 못해서, 거기에 걸핏하면 피로하고 아파서, 긍정의 것을 타인에게 들려줄 위치가 못 되고 있다. 일방적인 하소연이 되지 않도록 기민하게 조절하며 징징거림의 선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게 품앗이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어떤 이들은 품앗이조차 원치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MBTI 네 글자로 다 담지 못하는 나만큼이나 복잡하고 나와 다른 타인들. 그들과 나의 다름을 나는 전부 커버할 수 없고, 그래서 ‘잘 맞는다’하는 사람 찾기 어렵고 찾아봤자 한쪽이 견디거나 아름답게 서로를 배려 중이거나. 다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단절된 결과들을 보며 나는 요즘 충분히 외롭다.⠀
누굴 탓할 건 없다. 나 역시 너무나 까다로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귀를 열고, 당신들의 이야기 앞에 응답할 자세를 취하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밤 나의 이야기를 당신들이 들어주면 좋겠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고, 그래서 꽤 많이 아프고, 그 사실과 육체의 고통이 다시 지난 2021년 겨울을 상기시킬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래서 내가 덤덤히 외롭고 아픈 하루를 지나고 있지 않냐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그 모든 미루어 짐작함에 능한 타인을 바라고, 그건 세상 앞에 너무도 이기적이고 어린 기대다.⠀
나를 경영하는 일에 다시 미숙해진 것 같다. 혼자 견디려 하지만 그 방식에의 강박도 파멸하는 길 같다. 내가 사랑하는 시인 최승자는 평생 고독만을 노래했는데, 그녀는 그렇게 평생 뼈 아프게 고독했고 그 고독이 노래가 되어서였나 그 노래들은 사랑받았다. 나는 그녀의 고독을 사랑하는 줄 알았으나 그녀의 노래를 사랑한 것이었고, 그렇게 다시 깨닫는다. 뉴스에 흘러나오는 타지의 비극과 전쟁에도 점차 무뎌지는데 나의 이야기가 지루한 타령이, 아니 지루할 것도 없이 지나쳐 가는 이름 모를 타령이 되는 일이 무슨 대수인가.⠀
세상과의 공명을 바래왔지만, 아직도 그럴 수 있다고 믿지만, 한낮과 한밤의 고독조차 견디지 못하는 나는 지금 많이 약해진 것인가. 좋은 사람이 내 옆에 많다는 믿음을 다시 가지고 싶다. 나도 노력할 테니. 이건 당신들에게 전하는, 그렇다, 또 나의 이야기네. (24.03.11)
그렇지만요, 나의 기쁜 소식을 축하해주는 많은 이들을 보며 다시금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세상은 잿빛이 아니라 초록이라 믿고 싶고, 잔인함보다 아름다움이 극소량 더 앞서는 그런 곳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홀로가 아닌 당신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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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다정함의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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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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