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는 대상이 존재하는 현장에서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상상을 해보죠.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관중이 된 그들의 속삭임이 들립니다. “와~ 정말 잘 그린다~” 정작 그림을 그리는 본인은 못 들은 척, 주위의 반응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무심히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저만 그런 상상을 하나요?
그런데, 이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에는 “사소한” 문제점들이 존재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저의 그림 실력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그림을 누군가가 곁눈질로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창피하다는 것이죠. 그러면 로망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네. 얼굴에 철판을 두르는 것입니다.
라이브 드로잉의 매력
이 글의 제목으로 겁도 없이 “라이브 드로잉”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고인이 된 “김정기”님이 라이브 드로잉의 대가였죠. 그분의 라이브 드로잉은 정말 신의 경지였습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체험을 해보니 그림 실력뿐만 아니라 그 외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 김정기 작가님이 더 위대하게 느껴지더군요.
역설적이게도 그림 실력 외의 다른 것들이 개입을 하게 됨으로써 라이브 드로잉은 그림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재미를 가져다줍니다.
위의 그림은 카페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풍경들 중 하나를 그린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는 얼굴이 보이는 사람이 면접을 보는 입사 지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들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사실은 그가 구인을 하려는 회사 대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충의 정황은, 스타트업 대표가 개발자를 영입하는 자리로 보이더군요. 제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을 장면입니다. 회사 대표가 면접에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자신을 어필하는데 힘을 쏟는 장면에서, 개발자 구인난을 겪고 있는 현재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브 드로잉"은 세상을 그리는 행위이기에 세상이 보입니다. 그림은 관찰입니다. 세상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죠. (옛날 사람인 저로서는 면접을 이른 아침 카페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했습니다. )
라이브 드로잉의 매력은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세상을 향해 내 감각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대놓고 대상인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힐끔거리는 시선사이로 그들의 행동과 소리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저의 그림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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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부시
구독하고 갑니다.
그림 한장의 대화
감사합니다. 대화하듯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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