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에 가장 위험한 말이 있습니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
이 글은 꽤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겁니다.
듣기 좋은 소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부터 배려 같은 건 빼고 말할 겁니다. 안 그러면 이 얘기의 무게가 전달이 안 되니까요.
여기서 화가 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 분들은 대부분 20살 이후로 한 번도 자기 머릿속을 뜯어본 적 없는 사람들입니다. 매일 같은 생각, 같은 루틴, 같은 불만을 반복하면서 "나는 괜찮아"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
이 글은 그런 분들한테 쓰는 게 아닙니다.
뭔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이상하게 공허하고, 방향이 없는 것 같고, "이게 맞나?" 하는 감각이 계속 드는 사람.
당신한테 쓰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0대를 망치는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한번 둘러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23살쯤에 멈춥니다. 졸업하고, 취업하고, 월급 받고, 주말에 쉬고. 뭐 하고 사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그냥 살고 있지."
근데 그 "그냥"이 30년 동안 반복된다는 걸 모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걸 "절망"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절망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절망이 아니라, 자기가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절망. 매일 출근하고, 밥 먹고, 영상 보고, 자고.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근데 안에서는 천천히 썩고 있습니다.
자기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로.
이게 제일 무섭습니다. 고통이 없으니까 바꿀 이유도 없거든요.
20대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직 체력이 있고, 아직 시간이 있고,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까 — "나중에 하면 되지"가 진짜처럼 느껴집니다.
근데 그 "나중"은 절대 안 옵니다.
매일 "나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10년 뒤에도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20대는 인생의 본 게임이 아닙니다.
튜토리얼입니다.
그리고 이 구간에서 세팅해야 하는 건 스펙이 아닙니다. 취업 준비가 아닙니다.
세팅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이 세팅이 잘못되면, 어떤 좋은 기회가 와도 망칩니다. 어떤 좋은 사람을 만나도 관계가 무너집니다. 어떤 좋은 직장에 가도 결국 공허해집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의 중심에 "나"가 있는데, 그 "나"가 설계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면 뭘 세팅해야 하는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당신의 생각이 진짜 당신의 생각인지 의심하세요.
지금 당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의 90%는 당신 게 아닙니다.
부모가 심어놓은 것. 학교가 주입한 것. SNS가 복제한 것.
"좋은 대학 가야 해."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야."
"돈보다 행복이 중요해."
이걸 "내 가치관"이라고 믿고 있지만, 한 번이라도 직접 검증해본 적 있으신가요?
소크라테스가 평생 한 일이 이겁니다. 아테네 시민들한테 딱 하나만 물었습니다.
"너 그거 왜 믿어?"
아무도 대답을 못 했습니다. 전부 "원래 그런 거 아니야?"라고만 했습니다.
250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옳다고 믿는 것 — 이것들이 진짜 당신 겁니까? 아니면 누군가가 당신 머릿속에 넣어놓은 겁니까?
이걸 구분하지 못하면 평생 남의 인생을 사는 겁니다.
겉으로는 내 선택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의식적인 결정을 내린 적이 없는 것.
20대에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공부가 아닙니다. 취업이 아닙니다.
머릿속을 청소하는 겁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당신이 "당연하다"고 믿는 모든 것을 하나씩 적어보세요. 그리고 각각에 대해 물어보세요.
"이건 내가 직접 경험해서 아는 건가, 아니면 누가 말해줘서 아는 건가?"
이걸 진지하게 하면, 당신 믿음의 80%가 빌려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 순간이 진짜 시작입니다.
당신의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두 번째. 불편함을 시스템으로 만드세요.
사람들이 성장을 멈추는 진짜 이유는 하나입니다.
편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걸 시도하면 에너지가 들고, 에너지가 들면 생존에 불리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변화하려고 할 때마다 온갖 핑계를 만들어냅니다.
"내일 해도 되잖아."
"이게 맞는 길인지 모르겠어."
"좀 더 준비하고 시작하자."
전부 뇌가 당신을 현재 상태에 묶어두려고 만든 환상입니다.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이 정확히 이겁니다. 극복해야 할 적은 바깥에 없습니다. 안에 있습니다. 어제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을 잡아끌고 있는 겁니다.
근데 매번 의지력으로 이기려고 하면 반드시 집니다.
의지력은 자원입니다. 쓰면 닳습니다. 하루에 내릴 수 있는 어려운 결정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불편함을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자동으로 불편한 일을 하게 만드는 구조. 글을 쓰든, 영상을 만들든, 모르는 걸 공부하든. "오늘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순간 뇌가 이깁니다. 고민할 여지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저는 요즘 매일 9시쯤에 일어나서 글을 씁니다. 좋든 싫든.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오늘 쓸까?"라는 질문 자체가 없습니다. 3개월 넘게 이렇게 해오니까, 이제는 안 쓰는 게 더 불편합니다.
이게 시스템입니다.
20대에 이걸 하나라도 만들어놓으면 30대에는 그걸 기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안 만들어놓으면 30대에도 매일 "내일부터 해야지"를 반복하게 됩니다
.
세 번째. "나는 누구인가"를 피하지 마세요.
이게 20대에서 가장 중요한 세팅인데, 거의 아무도 안 합니다.
왜냐면 무섭거든요.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파고들면, 대부분의 경우 "모르겠다"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모르겠다"가 너무 불안해서 바로 덮어버립니다. 대신 취업 준비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남들이 하는 걸 따라합니다.
안 불안하니까. 방향은 모르지만 뭔가 움직이고 있으니까.
근데 방향 없는 움직임은 움직임이 아닙니다.
소음입니다.
하이데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로 살고 있다고. 자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래 그렇게 사니까"라는 이유로 살고 있다고.
취업하는 것도 "원래 하는 거니까."
결혼하는 것도 "할 때가 됐으니까."
집 사는 것도 "사야 하니까."
단 한 번도 묻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로 이걸 원하는가?"
이 질문을 20대에 하지 않으면, 40대에 하게 됩니다. 그때는 "중년의 위기"라고 부릅니다. 위기가 아닙니다. 20대에 했어야 할 질문을 20년 동안 미룬 대가입니다.
이 부분을 쓰면서 좀 먹먹해졌습니다.
저도 이 질문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답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내가 뭘 원하는지"가 아니라 "뭘 원하지 않는지"만 알았습니다.
근데 계속 만들고, 계속 쓰고,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보였습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어려운 걸 쉽게 바꿔주는 것.누군가의 세계관을 한 줄로 뒤집는 것.그리고 그걸 통해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나누게 만드는 것.
그게 저였습니다.
이건 한번에 안 옵니다. 근데 질문을 피하면 영원히 안 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매일 물어보세요. 답이 안 나와도 괜찮습니다. 그 질문을 안고 사는 것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하지 않는 일이니까요.
20대는 튜토리얼입니다.
여기서 세팅해야 할 건 스펙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생각을 의심하고.
불편함을 시스템으로 만들고.
"나는 누구인가"를 피하지 마세요.
이 세 가지를 세팅한 사람은 30대에 어떤 게임이 와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안 한 사람은 평생 튜토리얼에서 마을만 서성거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분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길 바랍니다.
다음에는 "고민과 사고의 차이"에 대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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