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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휴머노이드가 인건비를 0에 수렴시키고 재화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일하지 않아도 누구나 풍족한 '보편적 고소득' 시대가 온다는 것이 일론 머스크의 주장입니다.
2.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흔히들 말하는 "로봇세"를 걷어 소득을 보장해주면 될 테고요.
3. 슬프지만, 인류 역사는 이러한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4. 산업혁명기 영국, 고도성장기 미국에서조차 노동 생산성이 50%씩 오르는 동안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10% 남짓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5. 수백만 노예라는 공짜 노동력을 손에 넣었던 로마 시대조차도, 노예와의 경쟁에서 밀린 자영농에게 주어진 건 최소한의 폭동 방지용 곡물 배급 뿐이었습니다.
6. 물론,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강한 노조와 투표권이 있지 않냐"고 할 수 있습니다.
7. 하지만 노조와 투표권이 힘을 발휘하는 건, 체제가 노동자를 필요로 할 때 뿐이었습니다.
8. 휴머노이드가 공장을 돌리고 AI가 사무실을 돌리는 세상에서, 인간이 파업해도 멈추는 건 없습니다.
9. 국가 역시 세수의 원천이 근로소득세에서 법인세로 넘어간 세상에서, 국가가 눈치 볼 대상은 국민이 아닙니다.
10. 남는 건 체제 붕괴를 막을 '최소한의 생계 보장'뿐입니다.
11. 오히려 빈부격차는 심화될겁니다. 빵은 공장을 지으면 늘릴 수 있지만, 강남 아파트와 명문대 정원은 늘릴 수 없습니다.
12. 공산품이 흔해질수록 사람들은 흔해질 수 없는 것에 몰려들고, 근로소득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 지위재를 살 수 있는 건 휴머노이드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뿐일 겁니다.
13. "그래도 물건값은 싸지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소득이 사라진 세상에서 물가 하락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겁니다.
14. 기업들이 원가가 내린다고 가격을 내리는 "선의"를 베푼다는 보장도 없고요.
15. 결국 휴머노이드는 인류 전체의 부를 폭발적으로 키울 겁니다.
16. 하지만 부는 스스로 분배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렛대 삼아 우리 몫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보편적 고소득"이라는 아름다운 허상
일론 머스크가 그리는 휴머노이드 시대의 청사진은 명쾌합니다.
재화의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휴머노이드가 0에 수렴시키고, 채굴과 제련까지 로봇이 담당하면서 원자재 비용도 낮아지면, 재화의 가격은 계속해서 떨어진다는 것인데요.
그렇게 되면 일을 하지 않고도 누구나 풍족하게 소비할 수 있는 사회, 이른바 "보편적 고소득 (Universal High Income)"을 누릴 수 있는 풍요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 일론 머스크의 주장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휴머노이드가 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는 있겠으나, 흔히들 말하는 "로봇세"를 기업들로부터 거둬서 실직자들에게 재분배하면 되지 않겠냐는 겁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러한 미래는 허상일 뿐, 결코 오지 않을 수 있다고 역사는 말합니다.
역사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번째 사례는 산업혁명기의 영국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생산성 혁명이 일어났던 시기죠.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공장이 세워지면서, 1780년부터 1840년까지 영국의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은 약 46% 증가했는데요.
같은 기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고작 12%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동일한 임금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경제사학자 로버트 앨런은 이 시기를 "엥겔스의 멈춤 (Engels' Pause)"이라고 불렀습니다. 생산성과 임금이 반세기 넘게 따로 놀았던 시기라는 겁니다.
공장주들의 이윤율이 치솟는 동안,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을 일하고도 빈민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두번째 사례는 1970년대 이후의 미국입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의 노동 생산성은 60% 넘게 성장했지만, 일반 노동자의 시간당 보상은 17% 남짓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전후 30년간 나란히 움직이던 생산성과 임금 그래프가, 1970년대를 기점으로 가위처럼 벌어지기 시작한 것인데요.
그 벌어진 틈만큼의 부는 노동자가 아닌 자본과 최상위 소득 계층에게 흘러갔습니다.
컴퓨터가 등장하고, 인터넷이 등장하고, 미국 경제가 몇 배로 커지는 동안에도 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세번째 사례는 로마입니다.

로마는 정복 전쟁을 통해 지중해의 부를 빨아들였고, 수백만 명의 노예라는 "공짜 노동력"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노동이 대체된 휴머노이드 시대와 구조적으로 가장 유사한 사례일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노예 노동으로 운영되는 대농장, 라티푼디움을 소유한 소수 귀족들의 부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났습니다.
반면 노예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난 자영농들은 땅을 잃고 로마 시내로 흘러들어 도시 빈민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고소득"이 아니라, 폭동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곡물 배급"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빵은 다음 직업을 찾을 때까지 굶어죽지는 말라는 뜻에서의 끼니 떼우기용 식량이었을 뿐, "공짜 빵 = 풍요의 시대"로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3가지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인류 역사 사례들이 하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부는 스스로 분배되지 않는다.
분배 메커니즘 없이는 부가 아래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의 증가가 분배 메커니즘을 자동으로 만들어주지도 않습니다.
"노조와 투표권이 있잖아요?"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산업혁명기 영국에서도, 노동자들의 임금은 1840년 이후 결국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실질임금은 생산성을 따라잡으며 상승 곡선을 그렸는데요.
그 전환점에 있었던 것이 바로 노동조합의 등장과 노동자 참정권의 확대였습니다.
단결이 금지됐던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뭉치기 시작했고, 선거법 개정으로 정치적 발언권을 얻으면서, 비로소 커진 파이에서 자기 몫을 협상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겁니다.
분배 메커니즘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임금이 올랐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우리에게는 이미 노조와 투표권이 있다. 그러니 휴머노이드 시대가 오면 분배 메커니즘은 필연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결정적인 전제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노조와 투표권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국가와 기업이 노동자를 "필요로 할 때"뿐이라는 겁니다.
19세기 노동자들의 파업이 무서웠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노동자들이 팔짱을 끼면 공장이 멈추고, 기계가 서고, 자본가의 이윤이 증발했기 때문입니다.
국가 입장에서도 노동자는 세금을 내는 납세자이자, 전쟁이 나면 총을 드는 병력이었고요.
노동자에게는 "체제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협상 카드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휴머노이드가 공장을 돌리고, AI가 사무실을 돌리는 시대를 상상해보겠습니다.
인간이 파업을 하면, 무엇이 멈출까요?
대량 실업이 현실화되고 나면, 노동자들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카드를 잃습니다.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노동자의 단결은, 자본에게 더이상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셈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굳이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이익을 걷어서, 일하지 않는 국민들에게 "높은 소득"을 뿌려줄 이유가 있을까요?
세수의 원천이 노동자의 근로소득세에서 기업의 법인세로 완전히 넘어간 세상에서, 국가가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요?
물론 그렇다고 국가가 국민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폭동이나 체제 붕괴 같은 극단적 사태는 막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수준"의 분배입니다.
로마가 도시 빈민들에게 곡물을 배급했던, 딱 그만큼 말입니다.
투표권과 노조가 보장하는 것은 "체제 안정에 필요한 최소선"이지, "보편적 고소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늘어난 부는 지위재로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휴머노이드가 만들어낸 그 막대한 부는 어디로 갈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휴머노이드라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에게 더 쏠리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될 겁니다.
그리고 이 격차는 단순히 통장 잔고의 차이로 끝나지 않는데요.
영국의 경제학자 프레드 허쉬 (Fred Hirsch)는 1976년 자신의 저작 <성장의 사회적 한계>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남겼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커질수록, 사람들의 지출과 경쟁은 절대량을 늘릴 수 없는 재화로 이동한다는 겁니다. 입지, 지위, 상대적 서열 같은 것들 말입니다.
허쉬는 이를 "지위재 (Positional Goods)"라고 불렀습니다.

빵은 공장을 더 지으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남의 아파트"는 늘릴 수 없습니다. "명문대 정원"도, "한강이 보이는 조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재화의 가치는 애초에 희소성과 상대적 위치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휴머노이드 시대가 와도, 아니 휴머노이드 시대가 올수록 이 구조는 더 극단화됩니다.
공산품이 흔해질수록 사람들은 흔해질 수 없는 것에 몰려들 것이고, 좋은 교육과 좋은 주거 같은 지위재의 가격은 더 가파르게 상승할 겁니다.
그리고 그 경쟁의 승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노동의 기회마저 사라진다면, 부의 사다리조차 끊어질 겁니다.
근로소득이 사라진 세상에서 지위재를 매입할 수 있는 것은,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뿐입니다.
풍요가 커질수록,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도 물건값은 싸지잖아요?"
마지막으로 남은 반론이 하나 있습니다.
"지위재야 그렇다 치고, 일론 머스크 이야기처럼 나머지 일반 재화들은 어쨌든 싸지는 것 아니냐. 밥값과 옷값이 떨어지면 서민들의 삶도 나아지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요.
첫째로, 이 논리는 임금이 현재 수준에서 유지된다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합니다.
재화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져도, 소득이 0이 되면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후퇴합니다.
월급이 0이 됐는데 밥값이 싸졌다고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물가 하락"이라는 축복은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것이니까요.
둘째로, 원가 하락이 정말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까요?
기업들의 가격 책정 행태를 돌아보면, 원가가 오를 때 가격은 로켓처럼 빠르게 오릅니다.
하지만, 원자재 값이 올랐다며 가격을 올린 식품 기업들이, 원자재 값이 내렸다고 가격을 되돌린 적이 있었나요?
휴머노이드로 인건비가 0에 수렴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선의에서" 그 절감분을 소비자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해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결국 재화가 저렴해지는 풍요조차 기업들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시나리오라는 겁니다.
부는 스스로 분배되지 않는다
정리하겠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이야기처럼, 휴머노이드는 분명 인류 전체의 부를 폭발적으로 키울 겁니다.
하지만 커진 부가 어떻게 나뉠지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줬습니다. 부는 스스로 분배되지 않으며, 분배 메커니즘은 노동자가 체제에 필요할 때만 작동했다는 것을요.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렛대 삼아 우리의 몫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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