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글월지

세계 디자인의 새로운 이단아가 된 마을의 수호신

나무 장승에서 금속 아크릴 조형물까지, 전통 토템이 도시와 글로벌 공간에서 다시 숨 쉬는 법

2025.08.14 | 조회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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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멜무지로 글월지

한국의 헤리티지(heritage) 깊고, 넓고, 쉽게 전해드립니다.

 

"마을 입구에서 뉴욕 갤러리까지"

안녕하세요, 글월지를 읽어주시는 여러분.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걸었던 마을 어귀,
그곳에는 언제나 묵직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존재가 있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태어나 사람의 얼굴을 닮은 장승.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묘하게 든든했던,
그 이중적인 감정을 기억하시나요?

장승을 그저 평범한 나무 조각상으로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승은 마을의 경계를 지키고, 액운을 막아주며, 때로는 소원을 들어주는 수호신이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장승은 민속촌의 전시물이 되거나,
아니면 아예 우리 일상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도 시골 마을 어귀에는, 장승들이 우두커니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골 마을 어귀에는, 장승들이 우두커니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뉴욕의 1stDibs 갤러리에서는 Lee Sisan 작가의 손으로 빚어진
현대적 금속 토템이 컬렉터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고,
서울 인사동에서는 LED 조명을 품은 붓 모양 장승이 전통 문화의 거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의 목조각 장인 김종흥은 전통 장승의 '무서움'을 '편안함'으로 바꾸어
전 세계 공원에 한국의 이야기를 심고 있죠.

Lee Sisan 작가의 '장승'을 모티브로 한 작품. 현재 약 9500$에 거래중이다.
Lee Sisan 작가의 '장승'을 모티브로 한 작품. 현재 약 9500$에 거래중이다.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그 기저에는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지킴'의 가치, '경계'의 의미,
그리고 '얼굴 있는 신'에 대한 원초적 갈망이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더욱 절실해진 이 감정들이,
오늘날 창작자들의 손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에멜무지로는 마을 입구에서 시작된 장승이 어떻게 뉴욕의 갤러리까지 여행하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보려 합니다.
전통 장승의 상징적 의미부터,
현대 작가들의 창의적 해석,
그리고 젊은 세대가 장승에서 발견한 새로운 매력까지.

단순히 '옛것이 새롭게 변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어떤 원형적 감정이,
시대를 뛰어넘어 어떻게 예술가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마을의 수호신에서 글로벌 아트까지,
장승이 그려낸 놀라운 궤적을 함께 따라가실까요?


에멜무지로 탐구 – 장승: 나무 토템에서 디자인 오브제로

마을 공동체의 수호자, 그 시작

장승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이 태어난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악령을 막고 수호의 역할을 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보루였습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마을 사람들의 안전과 풍요를 책임지는 든든한 지킴이였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장승의 모습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안동 하회마을의 목조각 장인 김종흥의 작업입니다.
그는 전통을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전통 장승의 '무서움'을 줄이고 '편안함'을 전하는 조형으로 변주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내외 공원과 전시 공간에 설치되어 전통 문화를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작업중인 김종흥 장인의 모습
작업중인 김종흥 장인의 모습

소재의 혁명: 나무에서 금속, 빛으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재의 다양화입니다.
전통적인 나무와 돌을 넘어,
현대의 장승들은 완전히 새로운 물질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금속 조각의 선구자들

최충웅 작가의 '전설' 연작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는 전국의 목장승과 돌장승을 바탕으로,
스티로폼과 청동을 통해 장승의 이미지를 추상 조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작업 방식은 전통의 흔적과 자연스러운 질감을
현대적 재료로 재현한 혁신적 시도로 주목받았습니다.

최충웅 작가의 작업물
최충웅 작가의 작업물

더 나아가 Lee Sisan 작가는 손으로 조각한 검은 스틸 토템을 통해
장승의 원형적 힘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뉴욕 1stDibs 갤러리에서 소개된 그의 작품은 전통 장승의 수직성과 위엄을 유지하면서도,
미니멀한 현대 조각의 언어로 재해석되어 글로벌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새롭게 재해석된 장승의 현대적 모습
새롭게 재해석된 장승의 현대적 모습

빛과 기술의 융합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인사동에 설치된 붓 형상 장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통적 장승의 개념을 '붓' 형상에 담아,
인사동의 새로운 상징이 되도록 기획된 이 공공 조각은 붓 표면의 상감 기법,
얼굴이 보이도록 구성된 형태,
그리고 LED 조명까지 더해져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완전히 새로운 설치물로 탄생했습니다.

인사동에서 만날 수 있는 '7m 높이의 붓' 조형물
인사동에서 만날 수 있는 '7m 높이의 붓' 조형물

공간의 확장: 마을에서 도시로, 갤러리로

도시 공간의 새로운 수호자

서울 도봉에 설치된 공성순의 'TOTEM' 조형물은 장승이 어떻게 현대 도시 공간에 적응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입니다.
이 작품은 장승의 상징성과 형태를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재해석하여
환경 속에서 정신적 풍요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과거 마을 입구를 지키던 장승이 이제 도시민들의 일상 공간을 보듬는
새로운 수호자가 된 것입니다.

도봉구에 설치된 조형물의 모습
도봉구에 설치된 조형물의 모습

기억과 소리를 담은 실험적 설치

연동문화발전소의 '작은 장승' 설치 작업은 더욱 실험적인 접근을 보여줍니다.
스피커처럼 생긴 금속 구조 위에 오래된 나무 장승을 얹은 이 조형물은
'사라진 목소리의 잔향'을 형상화한 작업으로,
장승에 투영된 기억과 현재의 소리 없는 대화를 담아냅니다.
이는 장승이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시간과 기억을 매개하는 문화적 장치로 진화했음을 보여줍니다.

첨부 이미지

글로벌 무대에서의 한국적 조형 언어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현대적 장승들이 단순히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김종흥 장인의 현대적 장승들은 해외 공원과 전시 공간에 설치되어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고,
Lee Sisan의 금속 토템은 뉴욕 갤러리를 통해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는 장승이 가진 보편적 힘을 증명합니다.
'경계를 지키고 연결하는' 장승의 본질적 가치는 문화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토템폴과는 다른,
동양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서 장승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입니다.

조형 언어로서의 미래

오늘날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에서 문화를 전달하는 조형 언어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나무 토템에서 시작된 이 긴 여행은 이제 금속과 빛,
소리와 기억을 아우르는 다층적 문화 매체로 발전했습니다.

앞으로 장승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을까요?
VR과 AR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공간에서도 장승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메타버스 속 한국 문화 공간의 입구에서,
혹은 글로벌 브랜드의 아시아 전략에서 장승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승이 가진 본질적 가치,
즉 '경계를 지키고 연결하는' 힘입니다.
물리적 마을에서 디지털 커뮤니티로,
지역의 수호신에서 글로벌 문화의 매개자로.
장승은 여전히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그 모습이 시대에 맞게 계속 진화할 뿐입니다.


요즘의 발견 (Contemporary Finds)

1. 제품: 스튜디오 피아즈의 '지승 트레이'

전통 지승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옻칠 트레이가 화제입니다.
종이를 꼬아 만든 지승 기법에 옻칠을 더해 완성한 이 작품은
전통 공예의 정수를 담으면서도 현대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세련미를 자랑합니다.
형태는 미니멀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장인의 손길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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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간: 연동문화발전소 '기억의 정원'

옛 연탄공장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연동문화발전소에서 새롭게 조성된 '기억의 정원'.
이곳에는 앞서 소개한 '작은 장승'을 비롯해 산업유산과
전통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설치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첨부 이미지

장인의 한마디 (A Word from the Artisan)

"장승은 무서운 얼굴로 악귀를 쫓는다고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싶습니다. 전통의 형태는 지키되, 그 안에 담는 마음은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승이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사람들이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문화의 전승이 아닐까요?"

김종흥 목조각 장인 (안동 하회마을)

연결의 고리 (Connecting Links)

📚 깊이 읽기

🏛️ 방문할 만한 곳

  • 하회마을 장승공원 (안동) 김종흥 장인의 작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
  • 인사동 문화의 거리 붓 형상 장승과 함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거리 산책

🌐 온라인 플랫폼


글월의 마무리

장승의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시작된 이 작은 나무 조각상은 이제 전 세계 갤러리와 공원,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승이 보여주는 '변화 속의 불변'입니다.
소재가 바뀌고 형태가 달라져도,
그 안에 담긴 '지키고 연결하는'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창조적 계승이 아닐까요?

언제나 경계 없이, 시간을 이어 문화를 잇는 이야기와 함께,

에멜무지로 글월지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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