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담을 수 있는 것

[보는 습관] 제1호

2022.09.22 | 조회 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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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저물

덩어리들이 쓰고, 춤추고, 새겨지는 곳

 

[보는 습관] 제1호

사진이 담을 수 있는 것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은 <보는 습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진 에세이를 쓰겠다고 호언장담 해두었지만, 세상에 이미 넘치는 사진이 있는데 내가 더 얹어서 무얼하나 하는 생각도 계속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프롤로그처럼 '사진이 담을 수 있는 것'이 무얼까 고민하며 예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좀 돌아보려 해요. 

 

사진을 찍을 때 고민을 하는 편이라고, 그게 나만의 특징이라고 당당히 말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망설임 뒤에 결국 셔터를 누르게 되는 이유는 결국 예뻐서, 멋있어 보여서, 담고 싶어서 같은 짧은 인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인상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벼리고 체화하는 것이 결국 중요하겠지만요...) 오늘도 가을 하늘이 너무 예뻐서 바로 휴대폰을 꺼내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가 대개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렇게 좋은 기억과 시간을 바로 남기고 싶어하는 데에 있겠죠. 

하지만 막상 사진을 '습관'으로, 혹은 '취미'로 두자마자 사진이 좀 지루해집니다. 평소에는 좋은 순간이 오면 사진을 찍었다면, 이제는 거꾸로 사진을 찍는 게 곧 좋아야 하잖아요. 하지만 막상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쭈뼛거리며 뭘 찍어야 하는지 헤매기 십상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몇 컷 찍고 정신없이 집에 돌아와 모니터 앞에 서면, 이렇게 뻔한 사진을 왜 찍었나,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도 있고요. 

내가 사진을 찍었던 그 수많은 상황에는 '나에게 의미있던 순간'이라는 강력한 내러티브가 있지만, 그런 상황이 매번 우리에게 찾아오는 건 아니죠. 결국 사진이 재밌으려면, 사진으로 세상을 보고 담을 수 있는 다양한 방식과 의미에 길이 들어야 하는 거 같아요.

'좋은 사진'이 있는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답을 내리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보는 습관'인 만큼, 나의 '보는' 방식을 바꿔주고, 찍히는 대상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지난 사진들을 돌아보며 무엇이 바로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지 찬찬히 살펴보려 합니다. 그 방식들이 곧 사진이 보게 하는 가능성들일테니까요. 

 

1. 낯설게 하기

교차로 (2021)
교차로 (2021)

너무나 익숙했던 일상을 생경하게 보게 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면, 사진을 찍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되죠. 혹은 특정한 각도, 시간대를 담아서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지루한 공간이었던 교차로는, 낯설게 본 이후에는 조금은 더 스산하고 더 역동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2. 다른 시선

반영 (2021)
반영 (2021)

평소에 보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새로운 인상을 줍니다. 옆에서, 뒤에서, 아래서, 혹은 초점을 달리해서 말입니다. 특히 무언가 비치는 장면을 찍을 때면 예상치 못한 풍경이 바로 이 안에도 있다는 걸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멍때리며 앉아있던 책상 앞의 나도, 책상에 비친 창문 너머의 공간의 의미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3. 주목하기 

한라봉 (2021)
한라봉 (2021)

카메라의 좋은 점은 화각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상을 주목하도록 확대해서 찍으면, 다른 주변 배경과 함께 보았을 때와는 다른 감각을 줍니다. 좀 과장하면, 멀리 뻗은 길 위에 나와 대상 만이 놓여있단 착각을 주기도 하고요. 덕분에 책상에 굴러다니는 한라봉이 조금 더 당당하고 유쾌하게 보였달까요 🤣

 

4. 함께 보기

박물관 (2021)
박물관 (2021)

특정 대상을 다른 대상과 함께 - 배경으로 하거나, 병렬하는 등 - 보는 다양한 조합을 통해, 대상을 새롭게 볼 수도 있습니다. 깔끔하고 위풍당당한 아파트들과 임금투쟁 플랜카드가 걸린 광장, 그리고 평온하게 양산이 꽂혀있는 거치대가 주는 대비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의미짓게 합니다.

 

5. 가리기

신호등 (2021)
신호등 (2021)

주목하기와 비슷하지만, 가려진다는 것은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하거나, 이제 비로소 보이는 것에 더 집중하게 합니다. 신호등은 하루 종일 누구와 무엇을 대면하고 있을지, 혹은 가려진 신호등 밖의 세상은 다시 또 어떤 것인지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6. 추론하기 

만물상사 (2021)
만물상사 (2021)

사진 속에 위치한 텍스트나 사물들에 모종의 의미를 투사하고 추론할 수도 있습니다. 만물상사라는 간판과, 굳게 닫힌 문 앞에 놓여있는 수레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삶과 그 이후에 대해 상상하게 합니다. 

 

7. 분위기 

공사 (2021)
공사 (2021)

특정한 분위기를 암시하고 포착할 때 의미가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흐린 허공의 하늘에 뻗쳐있는 공사장의 모습은, 맑은 날의 그것과는 의미하는 바가 달랐을 것입니다. 

 

8. 패턴

타일_패턴 (2021)
타일_패턴 (2021)

작은 공간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 도움을 줄 때가 있습니다. 눈여겨본 적 없을 때는 보이지 않던 패턴들이, 가까이 가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타일들의 다양한 출처도, 그것들이 여기 섞이게 된 이유도, 이것들이 암시하는 내 삶의 다른 부분들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9. 추상

전봇대 (2021)
전봇대 (2021)

다른 무엇보다 특정한 요소들을 - 형태나 색 등 - 추상화하면 평소와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대상의 다른 면을 보게 되는 신선함이 될 수도 있고, 그 추상된 요소를 다른 의미에 유비할 수도 있습니다.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전봇대 속에서 일상의 지난함과 관계성을 읽을 수 있을지도요.

 

10. 포착하기 

분수 (2022)
분수 (2022)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물론 '어떤' 순간인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수는 너무 흔한 피사체일지도 모르지만요.

 

11. 만나기

고양이, 잔디 (2022)
고양이, 잔디 (2022)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듯이, 완전히 새로운 대상을 만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을 줍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운도 좋아야 하고, 많이 움직여야 하죠. 만남에서의 의미는 대상과 나의 관계 속에 예측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무튼 설레는 일입니다. 

 

12. 조망하기

학교 (2022)
학교 (2022)

전체를 보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시선을 줍니다. 이는 나와 내가 있던 공간의 지형도를 그리고 위치를 파악하게 합니다. (물론 지도 그리기나 '객관화'는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뿐 아니라 옆에서, 아래서 보는 시선도 모두 포함해야하는 것이지만요) 정신없이 거닐던 캠퍼스를 멍하니 내려다보다 보면 앞으로 가야할 길이 좀 덜 부담스럽게 느껴질지도요. 

 

13. 빛

빛 (2022)
빛 (2022)

사실 사진에서, 또 보는 것에서 빛 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빛은 시간을, 각도를, 계절과 공간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빛이 오는 곳과, 그것이 비추는 곳을 두는 방식에 따라 의미도 달라질 것입니다. 늦은 오후 비추는 한줄기 빛은 익숙한 학교 복도를 평소와는 다른 고즈넉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덕분에 잊고 있었던 학교에서의 따뜻한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할 것입니다.

 

14. 구도

정원 (2021)
정원 (2021)

사진의 구도를 고려한다는 것은 시선 안의 다양한 요소들의 관계와 선을 재배치한다는 것입니다. 그 배치 속에 요소들은 나름의 힘과 의미를 얻게 되겠지요. 정원에 떨어져 있던 호스와 상추는 이제 정원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묘하게 그어져 있는 경계는 자연 속의 인공물과 만들어진 자연 사이의 모호한 구분같다는, 막무가내의 해석을 적용해볼 수도 있겠네요.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허무하셨을 수도 있을텐데요. 또 모든 사진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어색해지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찍었던 부족하고 협소한 목록들에서 예시를 들다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사진을 찍을 때마다 계획적으로, 분석적으로 사고하며 찍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겠죠. 직접 행위하고, 감각하면서 거꾸로 미리 정해둔 범위를 벗어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니까요.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나 순서가 어찌되었든 사진이 '보는' 행위, - 물론 분절된 의미에서의 '시각'으로 대상을 타자화 하는 것이 아니라 - 나와 연결된 대상들에게 내 다양한 경험과 감각의 방향을 설정하는, 하나의 수행 방식이자 관계맺기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사진을 찍다 보면, 때로는 생각하고, 때로는 그 생각을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반영되는 자연스러운 감각으로 체화하면서, 더 좋은 사진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 호부터는 제가 바로 이러한 생각들 안에서, 어떤 사진을 찍었고 그 안에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 써보겠습니다. 오늘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했고, 또 많은 사진들을 써버려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앞서지만🥲 열심히 고민하고 찍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는 습관 : 망설이면서 담는 사진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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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잉

    0
    about 2 year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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