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사물

[보는 습관] 제3호

2022.10.06 | 조회 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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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저물

덩어리들이 쓰고, 춤추고, 새겨지는 곳

 

%name&님 안녕하세요, 다행히 오늘은 다시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가볍게 몇 가지 사진을 들이밀며 우리의 보는 습관을 점검해보려 합니다. ☺️

 

가만히 놓여있는 사물이 말을 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정도가 애매할 때도 있지만, 이건 정말 누가봐도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라고 느껴질 때도 있죠. 과연 어떨 때 그러할까요? 

장수의자 (2022)
장수의자 (2022)

 

'장수의자'라는 텍스트가 있으니 이미 '말'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약간 반칙인 예시입니다만 그래도 이 사진을 먼저 볼게요. 썩 그리 의자처럼 생기지 않았지만, 본인이 장수의자라고 주장하며,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쨍한 도색을 자랑하고 있는 저 사물은 우리에게 무언가 선명한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흔한 전봇대에 붙어있는 이 '장수의자'의 생경함은 이 의자에 앉아 쉬어가는 일이 꼭 필요한 누군가와, 그런 존재를 생각하며 의자를 만든 누군가, 그리고 과연 생각처럼 많은 이들이 의자를 사용할지, 생색내기용은 아닌지, '장수'에 있어 더 중요한 건 다른 게 아닌지 하는 복잡한 심정으로 의자를 바라보는 또다른 누군가의 시선들이 교차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케 합니다. 그에 대한 답을 내리는 방식은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는 그 생경함에서 출발해 이미 사물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사물은 가만히 있는데, 왜 우리는 대답하지 못해 안달인 것일까요? 그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은, 그 사물을 둘러싼 '관계'가 언제나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누가 의자를 만들었는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누가 사용하는지 등등 의자를 둘러싼 관계망이 앞서 서술했던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이죠. 

 

손소독제 (2022)
손소독제 (2022)

 

그런데 정말 그렇기만 할까요? 사물을 '둘러싼' 관계 때문에 우리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응답하려는 걸까요? '사물' 본인이 가진 특징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없을까요? 

위 사진에 걸려있는 손소독제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탔을 것이고, 그러다가 유행의 심각성을 덜 느끼는 요즘은 찾는 이가 별로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아내는 것, 손소독제를 교체하는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을 지시하는 관리자와 구청, 구청의 방역 대책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가능하죠. 이것은 장수의자 때 했던 것처럼, 손소독제를 둘러싼 관계망을 떠올린 것입니다.

하지만 손소독제의 그 알싸한 알코올향이 그 모든 관계 속에 배어있지는 않은가요? 제대로 닦이지 않으면 먼지를 엉겨붙게 해버리는 점성은요? 물론 이 특징이 고정적이고 영원이 변하지 않는 것도,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특징이 담고있는 다양한 '소독약'의 감각과 '오염'의 감각은, 앞서 언급한 다른 관계망들과 만나면서, 이 시대의 '소독'과 '오염'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롭게 규정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사물과 완전히 분리된 '주변' 관계만이 중요한 것도, 그 관계와 분리된 사물의 '고유한' 특징 만이 중요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 사물을 '포함한' 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주는지에 따라, 우리는 사물이 '말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생수 (2022)
생수 (2022)

 

테레비와 음료 (2022)
테레비와 음료 (2022)

 

잔디깎이 (2022)
잔디깎이 (2022)

 

그래서 구독자님께 묻고 싶습니다. 구독자님의 눈 앞에 놓인 사물들은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를요. 그러나 실은, 그 사물이 구독자님의 눈과, 혹은 구독자님이라는 존재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되면, 또 조금은 다른 의미를 보여주는 것일지 모릅니다.

물론 그 의미들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바뀌는 것이 아니고, 이미 관여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의 무게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관계에 한 발을 딛게 되는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바라보기'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대상을 재단하는 활동이 아니라, 그 관계를 찬찬히 살펴보고, 내가 몸 뉘일 자리를 잘 마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몸을 어떻게 뉘이는지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은 달라지겠지만요. 

 

오늘의 보는 습관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급하게 끝나버린 것 같다면, 사실입니다. 아직 저는 대학원 원서를 제출하지 못했거든요 😁 그치만 부담없이 쓰기로 약속한 에세이니까 봐주시면 안 될까요? 😥

위에 예제처럼(?) 주어진 사진을 보고 드는 생각을 알려주셔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혹은 여러분의 일상에서 마주한 사물들을 촬영하고 고민해보셔도 재밌을 거 같네요. 아무쪼록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주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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