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나의 2010년대] 준비물 (3)

2022.10.10 | 조회 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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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저물

덩어리들이 쓰고, 춤추고, 새겨지는 곳

 

[나의 2010년대] 준비물 (3)

2010

 

안녕하세요 &name&님, 오랜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를 기다리셨나요? 그랬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주에는 갑자기 휴재 공지를 떡 하니 내놓고 달아나 버렸죠. 죄송합니다. 😅 그 때 변명으로 둘러 댄 대학원 서류는 아직 다 못썼지만, 잘하려는 부담을 내려놓았더니 여유가 생겼습니다. (야호!) 그러니 오늘은 이런 글을 쓰는 일탈을 한 번 부려보겠습니다. (새벽에 갈겨쓴 글이라 무슨 말인지 알기 힘들다는 건 함정!)

 

 

모든것이 무너지고 있었지 / 천천히 기울어가는 하루 또 일년 / 쏟아지는 햇살에 말라버린 풀 처럼 / 더디 타버린 마음

브로콜리너마저 - 2020

 

2020년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쓰고 부른 것처럼, 저도 2010년대를 규정할 수 있을까요? 애초 이 <나의 2010년대>라는 시리즈가 그것을 하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것이지만, 저의 아주 편파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을 이야기하기 전에, 2010년대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좀 생각해보려 합니다. 저라는 사람이 왜 바로 그렇게 느껴야만 했는지를 설명하는 그 시대에 대한 더 넓은 관계와 기본적인 정서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2000년대를 생각할 때면 늘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같은 소설을 떠올리곤 해요. 도시 중산층 가정의 아픔과 일상 같은 이미지로요. 그 모습을 제가 살던 지방 중소도시에 투영하고 싶은 욕망이기도 할 테고, 실제로 주변 지역에 비해서는 도시화된 지역에 살던 저의 협소한 시대인식이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 2010년대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명확한 이미지를 선뜻 골라내기가 힘듭니다. 그만큼 하나의 단일한 흐름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과 고민을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2010의 정서를 적어보라고 한다면 '징후'라는 말로 표현하겠습니다. 수많은 위기와 몰락에도 계속되는 세계를 보며, 이대로 지속되어도 괜찮은 거야? 정말? 아무렇지 않게 세상은 다시 돌아가는 거야?라는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만든 시간들이라는 의미에서요. 그러나 그 '아무렇지 않음'에 수많은 징후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기에 찝찝한, 그런 시간들입니다. 온화하고 평화로운 기억이 많지만, 그만큼 그것이 지속되는 것이 어딘가 의심스러운, 불안한 따뜻함의 시기입니다. 

 

#1 학원가의 불빛과 라디오 

2010년, 중학교에 입학한 14살의 저는 수많은 학원을 다니는 데에 이미 지쳐있던 학생이었습니다.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학원에 가고, 특목고 입시를 위해 정해진 커리큘럼을 반복하는 입시 교육의 관성이 저의 2010년대 초입을 장식한 것이죠.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학원은 많이 그만두게 됐지만, 그런 피로와 불안은 뭇 수험생들이 그러했듯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때 저는 라디오를 많이 들었어요. 수험생들 사연이 많았던 걸 떠올려보면, 학생들이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라디오를 꽤 많이들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잠에 들지 않은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푸른밤이나 심심타파 같은 밤 10시, 자정의 심야 프로그램들을 듣던 순간들은, 일상에 지친 존재들이 느슨하게 연결되는 기분을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조차 제가 처한 입시 제도의 고통을 충분히 완화해주진 못했습니다. 강제된 늦은 시간까지의 자율학습과, 명문대학교를 향한 여정은 너무나 익숙해서 공기처럼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2 디지털 문화 : 싸이월드에서 블로그로

2010년대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디지털 문화가 급변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싸이월드를 열심히 하던 초등학생은, 이제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하루종일 붙잡고 있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이내 그것도 싫증이 나서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리곤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저는, 또 우리는 온라인에서 작고 소중한 자기만의 방을, 또 친구들을 만나는 사랑방을 원했던 것 같아요. 그 공간이 바뀔 때마다 나를 표현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다소 달라졌습니다. 미니홈피에서 피드로, 일촌평에서 좋아요로.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고자 했고, 그 어느 때보다 연결에 피로해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3 대중문화 : TV의 시대가 저물고 

2010년대 초 많은 공론은 여전히 TV를 타고 흘렀습니다.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한 다양한 경쟁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을 굳건히 담당하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화채널과 게임채널, 음악채널을 즐겨봤고, 그만큼 케이블 채널의 종류는 다양해져있었습니다. 인디음악이 소수의 매니아나 홍대 공연장 뿐 아니라 매체로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저와 같은 지방의 한 학생도 그것을 접하고 좋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은 SNS의 팽창, 유튜브와 같은 영상 중심 플랫폼의 발달을 겪었습니다. 지금처럼은 아니더라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취향으로 자신의 세계와 연결되었습니다. 더 다양해지고, 더 즐거워진 시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시대. 하지만 그것조차 어느 순간 새롭지 않게 느껴지고, 끝없이 새로움을 찾아 팽창해 가야하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4 정치의 역동성 : 나꼼수에서 페미니즘 리부트까지 

2010년대 초, 한국 정치에는 '나꼼수'라는 정치 프로그램이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논객들이, 온라인을 통해 해적 방송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팟캐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중학생이었던 저에게는 그것이 '진보'이자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창이었습니다. 오전에 일찍 일어나야만 들을 수 있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가졌던 거리감과는 다르게 나꼼수는 유쾌하기만 했습니다.

그 유쾌함이 '징후'로서 읽히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하지 않았습니다. 2014년부터의 촛불과 2015년부터의 페미니즘 리부트는 한국의 정치를 또 한 번 바꾸어냈습니다. 동시에 기존의 나꼼수식 관점이 가지는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들에게는 현실 정치에 대한 음모론이나 정치공학적 접근 외에 별다른 대안적 언어가 크게 없었다는 것, 남성중심적 권력을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 등을요. 하지만 대부분의 제도 정치가 나꼼수가 열어둔 한국 정치의 스펙트럼을 얼마나 벗어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5 거대 담론의 상실

여기저기서 거대 담론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읽었던 진중권의 <현대 미학 강의>와 <미학 오디세이>는 '포스트모던'한 - 지금와서 보면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리우는 대부분이 왜곡된 비판을 받고 있는 듯 하지만 어쨌거나 - 철학을 열심히 알려주었습니다. 대학에 와서 들은 강의들 중 많은 것 역시 거대 담론의 시대가 가고 분석과 실용의 시대가 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일들은 거대해보이는 것 투성이였습니다. 경제 위기가 오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고, 국가적 재난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거리로 모이는 모든 일들이 저에게는 너무나 큰 일들이었으니까요.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거대 담론이 있지만, 냉소와 자조의 대상이 되기 더 쉬워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6 말하지 않은 것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2014년 4월 16일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를 빼놓고 2010년대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은 말을 아끼겠습니다.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리하여 2010은 교육제도와 입시의 피로, 연결되는 디지털 문화, TV에서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다양한 대중문화, 나꼼수적 주류 정치와 거리의 역동성, 공격받는 거대 담론, 그리고 2014년 4월 16일이었습니다. 저에게만 해당되는 일인 것도 있고, 별로 정확한 분석이 아닌 것도 물론 있지만 말입니다. 애초에 오늘 언급한 키워드들이 2010의 전부는 아니고, 정합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2010년대의 저를 돌아보았을 때, 저는 그 시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복원해보려했다고 생각해주세요. 

2010에 존재했던 각각의 사태와 사건들은 다시 읽힐 수 있고, 또 읽혀야 하는 징후로 여전히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그 날들은 왜 그러했고,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그것을 깊게 읽어내지 못해서, 위기가 도래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작금의 '위기'론들은 사실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2010년의 그 시절에 우리는 위기를 만들어가는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준비물은 모두 마무리 됐습니다. 특히 오늘은 다소 두서 없었지만, 오늘 뿌린 이야기들을 이후에 차차 거둬들일 수 있게 하겠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시리즈가 시작하는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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