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리는 모두 새로 태어난 별

에필로그

2025.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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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X독일

매주 수요일, 독일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영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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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새로 태어난 별 "

 

 

안녕 여러분, 오늘은 드디어 에필로그 입니다. 아주 달콤한 끝 이지요!

 

저는 이탈리아 여행을 끝으로 독일에 조금 더 체류하다가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독일의 가장 큰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를 다녀오고, 레터를 통해 알게 된 버비님과 영국 정원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한 행정 처리를 끝내고, 독일 집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고로 한국에서 쓰는 에필로그 입니다. 

 

레터가 마지막 화를 맞는다는 게, 아쉬움 보다는 후련함이 큽니다. 뉴스레터 스크랩이 제법 고된 일이었거든요. 매번 스크랩만 안했어도 레터를 이렇게 지각하지는 않았을텐데… 했답니다. 특히, 지나가버린 여행이었던 런던과 파리 뉴스레터를 작업할 때는 하기 싫은 마음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습니다. 제 안에서 이미 끝난 이야기를 끄집어내 종이 위에 펼쳐 내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힘들었지만, 스크랩을 하기로 결정한 것, 뉴스레터를 연재하기로 한 것에는 후회가 없어요. 유럽 곳곳에서 모은 지류들과 고른 사진, 어떤 스티커를 어디에 배치할지 고민했던 시간, 손글씨로 채워낸 결과물을 사랑하거든요.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회고 방식이었습니다.

 

 

독일로 떠나기 전까지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유럽에 대한 마음도 크지 않았어요. 반짝이는 동경이나 뚜렷한 목표 없이 준비했거든요. 그래서 준비하는 내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어요.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의 단 한 가지 목표가 뭐야?” 어학, 외국인 친구 사귀기, 여행, 갭이어… 모든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당히 모든 걸 취하려고 하면 늘 모두 실패하더라고요. 그래서 명확한 단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길을 떠나고 싶었어요. 그 어떤 미지에서도 굳건할 수 있는 등불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출국날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신 독일 생활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어요. 작은 달성 목표들에게라도 기대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비웃듯,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괴테가 저를 사로 잡습니다. 마인강에 누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 걸로 시작한 독일 생활은,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기행을 마저 읽으며 마무리 했습니다. 괴테에 심취해 있는 시간이었어요. 

 

독일 대학에서 저에게 배정한 ‘영문학도’ 라는 칭호도 참 고무적이었습니다. The Gothic 수업을 들으며,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가장 많은 고전을 읽고 질문을 던졌던 반 년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시기를 저는 문학 기행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기억에 남는 책이에요. 시인 릴케가 고뇌하는 젊은 시인과 주고 받은 시를 엮은 책입니다.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펼쳤던 책인데, 어쩐지 독일에서는 내내 안 읽히다 한국에 돌아와서 마저 읽었습니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 스위스에서 보낸 편지, 파리에서 쓴 마지막 문구… 편지를 읽는데, 과거의 저는 그려낼 수 없었던 이미지와 도시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것 만으로도 독일에서의 시간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크게 보자면 저의 독일 생활은 갭이어를 위한 선택이었어요. 졸업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독일에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건지 깊이 고민하고 결정해오려고 했어요. 정확히 뭘 하고 싶은건지, 어디서 살고 싶은 건지… 실제로 낯선 세계에 던져지니 저를 더 많이 알게 됐고요. 해외 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이제는 다음 스텝이 기대가 됩니다. 

 

 

보내주신 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겠죠. 덕분에 끝까지 작업할 수 있었어요. 정말입니다. 스크랩을 하다 힘들 때면 늘 답장함을 열었습니다. 아침에 답장함을 열었을 때 편지가 와 있으면 그 날은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편지를 통해 두 번, 세 번씩 편지를 주고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꼭 친구 같아요. 

 

그리고 응원의 마음이 꽤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독일에 있는 동안 감사하게도 주변으로부터, 그리고 인스타와 레터를 통해 얼굴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도 좋은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감정형(F) 인간이 아닌지라 그런 건 불필요하다고 여겨왔는데, 위로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응원은 좋아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 보내주시는 답장을 여러 번 읽었어요.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지만, 편지를 통해 잠깐이나마 서로를 온전히 생각하고 궁금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별 거 없는 단조로운 일상에 작은 즐거움이라고 표현해 주시는 분도 종종 있었고, 저처럼 기록을 시작하고 싶은데 여러 이유로 망설이는 분들도 있었어요. 

 

별 거 없는 하루를 보낸다고 하셨지만 그 안에는 다채로움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별의 죽음(초신성 폭발)의 잔해가 우주로 퍼져 나가 우리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와 물질은 별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대요. 그러니 우리는 모두 새로 태어난 별인 거죠. 어떻게 별의 이야기에 다채로움이 없겠어요? 

H님께 쓴 편지 중

 

H 님의 편지에 쓴 답장에서 가져온 건데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라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모두 새로 태어난 별이고, 별의 이야기가 어떻게 빛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힘들 때 마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뭐든 괜찮아지곤 해요. 우리 모두 자기 안의 반짝임을 발견하며 살아가요. 

 

 

제 반 년 간의 편지는 여기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늘 미완성과 습작의 정원에서 거닐었는지라, 완결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각이 홀가분하고 뿌듯합니다. 

 

물론 완전한 끝은 아니에요. 언젠가 레터를 모아 종이책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찍은 사진들을 모아 엽서도 만들고 싶고, 스크랩 실물과 유럽에서 수집한 이야기가 있는 물건들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도 꾸며보고 싶어요. 스크랩과 에세이, 주고 받은 편지들을 어떻게 잘 엮어 하나의 책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고민 해봐야겠지만…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겠습니다.

 

영상으로는 여전히 이야기를 만들 예정이니, 그때까지는 저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인스타에서 봐요. 

 

이제 진짜로 안녕! 정말 고마웠어요 . 

 

p.s. 

주고 받았던 편지들, 레터에 다 싣지 못한 편지들을 모아 작은 페이지를 만들었어요. 반 년 간 주고 받은 마음이 차곡 차곡 쌓인 곳이니 한 번씩 들러주세요.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페이지로 넘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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