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Le Festin

9.05-9.12

2025.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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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X독일

매주 수요일, 독일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영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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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Festin "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은 9월 초에 다녀온 프랑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번 뉴스레터 제목은 Le Festin으로 정해봤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공원에 누워 영화 라따뚜이를 봤는데, 그 애니메이션의 메인 테마곡입니다. 

 

이번 레터는 이 노래를 배경으로 읽어주시길!

영화를 본 뒤, 프랑스에서 내내 이 노래를 들었거든요.

저는 스텔라장의 커버 버전을 특히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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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scrap of this week'는 1️⃣ 루브르 박물관 , 2️⃣ 포엠 포켓, 3️⃣엉뚱하고 완벽했던 파리 마지막 날 4️⃣ 안시에서 느낀 프랑스의 여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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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를 마지막으로 세계 4대 박물관을 모두 다녀왔습니다. 루브르도 인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걱정했지만, 오픈 직후 시간대였기 때문에 크게 붐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모나리자 앞의 인파는 많았지만요. 모나리자는 역시 그냥 그랬고, 오히려 같은 방에 있었던 파올로 베로네제의 〈Jupiter Hurling Thunderbolts at the Vices〉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5.6Mx3.3M의 대형 회화인데, 제우스가 악덕을 번개로 물리치는 모습을 그렸다고 해요. 그런데 슬프게도 이 그림은 모나리자를 보러 온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쳐둔 바리케이트 때문에 정면으로 온전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림이 너무 크고, 빛 반사가 심했고요. 과거에는 다른 방에 전시되어 있었다는데, 운이 나빴습니다. 저는 그리스 조각들을 좋아하는데, 대영 박물관의 그리스 조각들은 보존 상태가 나빠 루브르의 니케와 비너스를 제법 기대했어요. 그리고 확실히 상태가 좋았습니다. 더 기대한 작품은 비너스였지만, 실제로 좋았던 건 니케였습니다. 맞은 편 로비 계단에서 마주보며 관망할 수 있어서 였던 것 같아요. 니케 조각상과 박물관 기둥, 천장, 니케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좋았습니다. 사모트라의 니케 조각상은 얼굴과 팔이 없는 형태인데, 그래서 오히려 더 승리를 상징하는 날개 그 자체 같아 보였습니다. 여기에 붙어있었을 온전한 얼굴이 상상 조차 되지 않는 어떤 완전한 신화적 이미지 같았거든요. 지금까지 본 조각상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루브르의 북샵에서는 파리 팝업북을 샀습니다. 에펠탑부터 몽마르뜨 언덕, 퐁피두 센터 등 파리의 랜드마크를 퀄리티 좋게 구현한 팝업북을 발견해서 아주 기뻤어요. 기념으로 에펠탑 앞에서 팝업북과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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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엠 포켓

이번 파리 일정은 친구와 함께 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아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딱 한 곳만 계획에 넣어뒀어요. 그게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였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 영어책 서점은 1차 대전 이후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의 피난처였고, 도서 검열을 피해 책을 내는 출판사 역할도 한 곳입니다. 유명한 서점답게 대기줄이 조금 있었습니다. 다양한 영어책이 빼곡한 1층과 조용히 앉아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2층으로 구성된 서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노을이 지기 전 에펠탑으로 향해야 해서 오래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머무를 시간이 있었다면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여기 온 김에 뭔가를 사가고 싶어서 둘러보던 차에 poem pocket을 발견했어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직원이 직접 타자기로 쳐서 필사한 영미 시를 랜덤하게 읽을 수 있는 패키지였어요. 그리고 포엠 포켓을 열어보는 순간 예이츠의 시와 마주쳤습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제 편지의 단골 손님인 제프리가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엘리엇의 시를, 제프리는 예이츠의 시를 끼고 살았거든요. 사실 이 포켓은 '열어보지 마시오' 문구가 있었는데, 열어보고 문구를 봐서 황급히 다시 닫아 원상복구 해뒀습니다. 그런데 저는 3개의 랜덤한 시 중 하나는 예이츠의 시가 있는 걸 제프리에게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직원 분께 "랜덤 시인 걸 알지만, 선물하고 싶어서 그런데... 혹시 예이츠의 시가 있는 걸 살 수 있을까요?" 하니 골라주셨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산 포엠 포켓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까지 있었어요. (이 또한 제프리가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이걸 운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재미있는 소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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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엉뚱하고 완벽했던 파리 마지막 날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 엉뚱하지만 좋았습니다. 어쩌다보니 친구 M과 파리에서 보기로 했는데, 한국이 사장님이 운영하고 제이팝이 흘러 나오는 카페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M은 언어교환으로 만났다가, 제가 다니는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오게 돼 친해진 한국어 전공 일본인입니다. ) 1년 만에 보는 M과 처음 뵙는 M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오랜만에 일본어로 이야기 하려니 역시 잘 안됐습니다. M이 열심히 한국어 단어를 일본어로 변환해주며 힘내줬습니다. 조만간 일본에 놀러가기로 하며 M과 헤어진 뒤에는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꽤 걸어 도착한 카페에는 아보카도 샌드위치는 다 팔린 상태였어요. 하지만 아쉬운대로 시킨 참치 엔초비 샌드위치가 아주 맛있어서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야외 좌석에서 샌드위치와 따뜻한 차를 곁들이며 제프리와 이제 언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념품을 사러 가는 길에 발견한 중고 LP샵. 초록색 LP 커버와 아이리쉬 뮤직홀이라는 단어가 저를 홀린듯 잡아세웠기 때문입니다. 포엠 포켓 만으로는 선물이 모자라다고 느끼던 참이었는데, 제프리를 위한 선물을 파리에서 모두 발견하다니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혹시나 아일랜드 음악이 아닐 수도 있으니 지피티와 더블 체크 한 뒤 구매했는데, 딱 맞는 선물을 고른 것 같아 들떴습니다. 그리고 기념품샵에서 수집하는 와펜도 무사히 사고, 뛰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안시 가는 기차를 타야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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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시에서 느낀 프랑스의 여유 

프랑스의 알프스 마을인 안시는 프랑스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어하는 도시 1위 라고 합니다. 알프스 산맥과 큰 호수를 끼고 있는 이 도시에서 프랑스인들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정이 많았던 파리와 달리 안시에서는 별 거 하지 않았는데, 호수를 따라 걷고, 숙소에서 쉬다가 고양이와 놀고, 호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시 호수에서 수영을 하거나 썬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초가을 날씨라 저는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파리에서 개선문 전망대에서 노을을 기다리며 바람을 잔뜩 맞았더니 감기에 걸렸거든요. 그리고 지난 8월 독일에서의 호수 수영에서 얻는 교훈에 따르면, 호수 수영은 바다 수영보다 훨씬 춥기 때문에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걸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안시에서 그 날이 왔습니다. 호수가 너무 커서 자전거 라이딩을 해도 몇 시간씩 걸리는 안시 호수는 걸어서는 절대 다 둘러볼 만한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세시간 정도 걸었던 것 같은데, 1/10도 다 못 둘러 봤습니다. 그래도 낚시하는 프랑스 아저씨,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들, 풀밭에 누워 쉬는 사람들을 제 속도대로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좋았습니다. 안시에서는 숙소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포근하고 집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거실과 젠틀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있는 훌륭한 곳이었습니다. 다만 새벽부터 일어난 고양이가 물을 달라고 사람을 괴롭히며 깨우는 일이 벌어지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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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조)' 언니에게 쓴 편지입니다. 파리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보낸 이제 언니는 제 신입생 시절 학보사 편집장 선배였고, 지금은 독서모임 멤버입니다. 

 

영원,너의 생활을 늘 눈으로 좇다가 이렇게 답장은 처음 남겨봐. 종강했다기에! 지구 반대편일지라도 종강은 축하 받을 만한 일이니까 (아니다, 어쩌면 그곳에서의 종강은 아쉬운 것일지도).
새해 다짐으로 헤맨 만큼 내 땅이라 했던 너의 말을 기억해. 어때, 많이 헤맸어? 내가 아는 영원은 헤매고 있을 때도 마치 길을 아는 사람처럼 걸어 다닐 것 같아. 메모를 적고 사진을 찍으며 천연덕스럽게. 독일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시간이 사치스럽고 행복했다는 너의 말에 내 마음까지 충만히 차오른다! 내게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파리무새 재등장) 돌아보면 그 시간은 놀랍게도 한철이었지만, 내게 영원히 새겨진 나이테라는 걸 알아.
네가 없는 사이 나에게 업데이트된 근황이 꽤 많은데, 출판사에 합격했다가 입사 포기 메일을 적을 때는 내가 만들 책을 기대한다던 너의 말이 자꾸 맴돌았어 (어때, 궁금하지? 여기까지만 전할래. 독서모임 복귀할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거야).
서서히 괴롭지 않게 소설 쓰기를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는 너의 이야기도 무척 궁금하다. 사랑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돈을 버는 일 사이에서 나는 지금도 갈팡질팡하고 있어.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책에서 아주 달아난 우리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왕왕 있는데, 그럴 때면 몇 권의 책을 더 읽는 것 같아서 좋더라. 다들 지금 아주 혼란의 장이야. 영원은 돌아와서 어떤 챕터를 우리에게 펴 보여줄지 기대된다.
몸 건강히 마음 상쾌히 지내다 돌아와! (추신, 네가 떠난 독서모임에서는 누구도 모임 정리를 적고 있지 않다, 놀랍진 않지?)

이제
이제 언니에게. 파리를 떠나기 세 시간 전, 동네 카페에 앉아 언니에게 답장을 쓰고 있어. 11구에 숙소를 잡았는데, 관광지랑 거리가 좀 있는 곳이라 동네 주민들의 일상과 한적함을 느낄 수 있었어. 조깅을 하는 모습, 눈 마주치면 인사하는 분위기, 손에 빵 봉투를 들고 걷는 사람들... 이런 모습들을 보니 언니가 파리에서 보냈을 날들이 그려지는 듯 하면서도 또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보다 더 모르겠기도 해. 한 가지 확실한 건 파리는 참 다채로운 도시라 언니가 여기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거야. 언니랑 참 잘 어울려. 나는 꽤 많이 헤맸어. 어느 날은 정말 타국에서 막차를 놓쳐 모르는 사람 집에서 자기도 했고, 어떤 여행에서는 왜 이곳에 왔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서울로부터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서울이 나랑 가장 맞는 도시라는 걸 인정하기로 한 날도 있었어. 하지만 동시에 꽤 명확해졌어. 그 전에는 영원히 졸업을 미루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걸 좀 알 것 같아. 우리가 마담 보바리를 읽었을 때, 우리 모두가 낭만과 현실 중 낭만을 골랐잖아. (그럼에도 현실을 살아가야 할 때가 많아 슬퍼했지만) 언니가 편지에서 사랑과 능력, 돈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다는 게 정말 남 일 같지 않다. 나도 지금 좋아하는 것과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연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거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아! 남은 이야기는 독서 모임에서 잔뜩 떠들어야지. 어서 빨리 보고싶다. 잘 지냐고 있기를! 파리에서, 영원이.

 

다음 화는 에필로그로 찾아뵐 예정입니다. 

 

그러므로 답장은 이 번 달까지만 받겠습니다.

그 이후에 쓴 편지는 답장을 드릴 수 없거든요. 

 

편지 답장은 마지막 편지에 실릴 예정이니, 마지막을 함께 장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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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고 떠오른 소소한 일상, 추천하고 싶은 무언가, 혹은 그냥 저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좋습니다. 편지란 거창한 게 아니니까요. 저는 그걸 읽고, 기쁘게 다시 답장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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