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10. 헤세의 정원에서 【몬타뇰라, 헤르만헤세, 정원】

당신과 떠나는 상상의 여행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2023.06.23 | 조회 1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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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자정 무렵 여행하기> 최픽션 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오면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곤 합니다. 돌아보면 올해도 위기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끝나지 않는 팬데믹의 시대. 희망과 절망을 반복해야 했던 어두운 날들. 더 큰 문제는 해가 바뀐다 해도 이 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우릴 더 힘들게 합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 중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위기를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죠. 우리보다 먼저 아팠고, 우리보다 먼저 터널을 통과한 이들. 예를 들면 헤르만 헤세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말이에요.

헤르만 헤세. 그의 별명을 들으면 놀랄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가 살았던 시기, 그는 ‘위기의 작가’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해요. 위기의 작가라… 헤르만 헤세를 말끔한 정장과 반듯한 자세의 사진으로 기억하시는 분들에게는 분명 의아한 별명일 거예요. 하지만 그의 삶은 거의 대부분 혼란과 위기로 점철된 시간이었는데요. 오늘은 그런 헤세의 삶을 보듬어준 한 장소로 여행을 가보려 합니다. 그곳이라면 우리도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21년. 이 위기의 시기를 넘어 다음 해로 건너갈 힌트를 말이에요.

그럼 같이 자정의 여행을 떠나보시죠.

 


헤르만 헤세는 생각보다 반항아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단체 생활?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아이였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했죠. 헤세가 그런 성향을 보인 것은 그의 아버지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어요. 헤세의 아버지는 개신교의 선교사였는데요. 그래서인지 헤세는 어린 시절부터 반듯한 규율에 의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문제는 헤세가 데미안만큼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점이에요. 얼마만큼 자유로운 영혼이었는지는 그가 남긴 이 말을 보면 알 수 있겠죠.

나는 아무리 옳고 좋은 취지의 것이라 할지라도 규율이라고 하는 것에는 무조건 반항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렇게 서로 맞지 않은 성향의 집에서 자라난 헤세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인을 꿈꿨다고 합니다. 위에서 남긴 말과 비슷한 반항의 투로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기도 했죠. 그래서였을까요? 헤세는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기숙학교를 도망쳐 나오기도 하고, 아버지가 그를 가두면 가둘수록 더 큰 반항으로 삶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헤세를 견디다 못해 슈테텐에 있는 정신 요양소에 보내기도 했을 정도였죠.

헤세는 그런 부모에게 권총을 달라고 편지에 쓰면서도, 다른 편지에서는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다며 양가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폭풍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던 시기였던 셈이죠.

이런 위기의 시기는 청년이 되어서도 이어졌습니다. 헤세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며 돈을 벌기 위해 시계공장의 견습공으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이 당시 헤세가 있던 지역이 유명한 시계 제조 지역이었다고 하네요) 물론 그 괴팍한 성격을 누구에게 주고 온 것은 아니었기에 규율이 넘치는 공장 생활에 제대로 적응할리 없었죠.

다행인 것은 그래도 헤세의 첫 작품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26살의 나이에 우리가 잘 아는 <페터 카멘친트>라는 첫 소설을 출간하는데요. 이 작품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헤세는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성공은 헤세로 하여금 더는 방황하지 않을 수 있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했는데요. 헤세가 미소를 짓기 시작하자 그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친구를 비롯해서 심지어 부모님까지)이 그의 곁에 돌아와 주었습니다. 아주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죠.

“그때까지 나에 대해 아예 포기하고 있던 가족이나 친구들도 이제 내게 상냥한 미소를 보내주었다.”

말하자면 헤세의 1차 위기는 이렇게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위기의 작가’라는 별명을 가질 순 없었겠죠. 안정적인 시간은 잠시, 그의 삶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는데요. 바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었습니다. 헤세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왜 이 말도 안 되는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지, 조국 독일이 왜 그것의 선봉에 서고 있는지, 그리고 믿었던 독일의 지식인들은 왜 한결같이 이 전쟁을 찬양하고 나서는지… 헤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봐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긴 하죠.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당시 독일의 지식인 사회에서 이 전쟁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대세였다고 해요. 그래서 헤세를 비롯해 토마스 만 같은 반전 주의자들은 되려 소수자가 되어 탄압을 당했죠.

헤세는 그런 반전 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선봉에 있는 작가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발표하며서 반전 활동을 했죠. 문제는 그런 헤세의 활동은 그에게 ‘매국노’, ‘배신자’같은 새로운 별명을 선사했다는 점입니다. 헤세는 그렇게 잠깐의 안정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고향에서 쫓겨나듯 스위스로 떠나야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을 겪게 되고, 뒤이어 부인 마리아는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고, 셋째 아들 마르틴은 뇌막염 진단을 받는 등… 작은 성공 하나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위기가 겹쳐서 그를 습격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더는 내게 진정한 기쁨을 주지 못했다.”

 


헤세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죠.

이 위기로 무너진 헤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거기에 잠식되어 있었다면 우리가 아는 그의 대표작들을 우리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헤세는 어린 시절 거대한 위기를 넘어온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이번에도 그저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곳이 위기의 늪지역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 그 사실을 말입니다.

헤세는 이를 위해 칼 구스타프 융(맞아요.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에요)에게 찾아가 정신상담을 받게 되는데요. 융은 자신의 제자인 베른하르트 랑 박사를 통해 헤세와 꿈 치료를 시작하게 되죠.

아무튼 헤세는 랑 박사와의 꿈 치료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도 여전히 찾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망명의 생활이 덧없이 길어지고, 독일에서의 악명도 지워질 가능성은 요원해 보였습니다. 그런 헤세였기에 그에게는 새로운 안식처가 필요했는데요. 그곳은 바로 스위스 몬타뇰라였습니다.

아름다운 마을이 질릴 정도로 펼쳐진 스위스니까… 스위스의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몬타뇰라를 소개하는 것이 민망할 지경인데요. 그래도 몬타뇰라는 그런 마을 중에서도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목가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그런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곳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헤르만 헤세 덕분이죠. 헤세는 스위스에서 독일로 가지 못하게 되자, 이곳 몬타뇰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곳에서만 무려 43년을 살았으니 그의 고향과 진배없는 장소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그런 이유로 헤세의 박물관은 그의 고향 독일 칼브에도 있고, 이곳 스위스 몬타뇰라에도 있어요. 몬타뇰라는 헤세가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관련된 물건들은 이곳의 헤세 박물관에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헤세를 마음의 위기로부터 구해준 장소입니다. 그곳은 헤세의 말로 먼저 소개해 드리는 게 좋겠네요.

“눈이 뻑뻑하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간다. 글쓰기에서 도망칠 수 있는 나의 안식처로 노동을 가장한 휴식 상상의 실타래가 한없이 풀리는 명상 영혼이 자란다 즐거움이 자란다.”

맞습니다. 헤세의 영혼을 위기에서 구해준 장소. 그곳은 바로 몬타뇰라의 정원이었습니다. 헤세는 소설가이자 시인, 화가의 자아를 가진 이었고, 또 하나의 중요한 자아는 ‘정원사’의 자아 였습니다. 헤세는 자신에게 닥친 마음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가 선택한 것은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이 아닌,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실질적인 것. 바로 땅이었죠. 헤세는 솔직 하디 솔직한 땅과 식물을 기르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그가 정원사가 된 이후에는 어떤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땅과 꽃, 그리고 수많은 식물들을 보며 그는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2021년 12월의 어느 날. 헤세의 정원으로 상상의 여행을 온 이유를 눈치채셨을까요? 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이 위기의 시기를 헤세의 방법으로 극복해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모두에게 정원을 가꾸자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우리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취미이자 노동인 활동을 찾아보는 것이죠. 그게 게임이든, 드라마든 독서든, 피아노든. 뭐든 상관은 없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헤세의 말처럼 내 영혼이 자라는 활동, 내 즐거움이 자라는 활동. 그것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죠.

그 활동을 가만히 즐기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편안해질 거예요. 그리고 과거의 위기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즐거움을 먼저 생각하게 되겠죠. 그리고 그런 하루가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지금의 위기는 아주 먼 과거. 옛날이야기책의 페이지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오늘 하루의 위기를 견디느라 고생하신 여러분.

수고 많으셨고요. 다음 자정의 여행길에서 다시 만나도록 해요.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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