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11. 톨킨과 루이스 【옥스퍼드대학, 톨킨, 루이스】

당신과 떠나는 상상의 여행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2023.06.24 | 조회 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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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픽션이 인쇄하는 【픽션.문화.예술】 이야기

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 무렵 여행하기> 최픽션 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저에게 그리 특별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산타를 의심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산타의 존재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저희 집이 너무 건조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하지만 산타가 없는 집이라 해도 꼭 그날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에요. 그날은 정말 마음껏 만화를 볼 수 있었고, 웬만한 부탁이나 약간의 실수 정도는 없는 셈 치고 넘어갈 수도 있었죠. (그래서 실수를 고백할 일이 있다면 이날만을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며 크리스마스를 기대하지 않던 제가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것은 영화 <반지의 제왕>때문이었습니다. 대놓고 3부작이라고 예고를 한, 그것도 매년 한 편씩 발표하겠다고 말한 작품이었죠. 저는 이 작품의 첫 편인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를 보고 정말이지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이 한 살쯤 바로 먹어도 좋으니 내년 크리스마스가 찾아오길 손꼽아 기다렸죠. 그런 이유로 <반지의 제왕>이 개봉한 3번의 크리스마스는 저에게 그 어떤 크리스마스보다 기다려지던 날이었습니다.

<반지의 제왕>3부작이 끝난 이후에는 이후에는 <해리 포터>시리즈와 마블의 시리즈가 그 자리를 대신했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그것 역시 저는 매해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인생의 대부분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살았던 것 같기도 하네요.

아직 크리스마스는 오지도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가뜩이나 암울한 2021년의 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도 일찍 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여행지는 저에게 크리스마스를 기대되는 날로 만들어준 <반지의 제왕>그 탄생이 있었던 장소로 가볼까 하는데요. (영화를 좋아하신 분이라면 <반지의 제왕>촬영지 뉴질랜드 같은 곳을 떠올렸겠지만… 죄송합니다.) 우리는 오늘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차를 돌려볼까 합니다.

 


크리스마스에 대학이라… 해리 포터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방학을 맞아 기숙사를 빠져나오는데, 상당히 시대를 역행하는 여행길 같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걱정하진 마세요. 대학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니니까요. 아, 잠시 한 교수님의 방을 찾기는 할 거예요. <반지의 제왕>의 아버지 J.R.R. 톨킨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에요.

톨킨은 유명한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반지의 제왕>에 나온 요정 어를 비롯한 새로운 언어는 톨킨이 직접 창조한 언어죠. 그런데 이 언어들은 단순히 작품에 쓰이는 정도의 퀄리티가 아니었다고 해요. 지금도 그 언어를 연구할 정도로 가치 있는 언어 체계라고 하는데요. 이것만 봐도 톨킨이 얼마나 언어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톨킨이었기에 커리어의 시작도 영국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옥스퍼드에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앵글로색슨어 담당 석좌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쳤는데요. 그가 한창 활동을 하던 중에 언어학과와 라이벌 학과였던 문학과에 새로운 교수가 들어오게 됩니다. 학과가 전통의 라이벌이다 보니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불꽃이 튀었습니다.

두 사람은 ‘영문과 교수 다과회’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발표를 즐겼던 톨킨은 이곳에서 영문과의 발전 방향과 개선해야 할 점을 세세히 전했습니다. 그런 톨킨의 모습을 문학과의 새 교수는 마뜩잖게 바라봤죠.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요.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한두 대만 날려 주면 될 뿐.

당대의 지식인 톨킨을 한두 대 때려주고 싶었던 사람.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이제 그의 이름을 한 번 들여다볼까 하는데요. 그는 바로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였습니다. 누구냐고요? 이렇게 말하면 더 편하겠네요. C. S. 루이스. 맞아요.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너무나 놀라운 만남이죠. 현대 판타지의 양 축을 담당하는 두 작품.

<반지의 제왕>시리즈와 <나니아 연대기>시리즈의 작가가 한 대학에 재직했다니…

그것도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다니…

정말 세상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더 알 수 없는 점은 이렇게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두 사람은 그야말로 번개의 속도로 친해졌다는 점이에요. 친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언어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비슷했고, 이야기를 만들고 책을 읽는 것을 사랑하는 것도 서로 지지 않을 정도였죠. 또한 북구의 신화에 빠져있었다는 점도 닮았었습니다. 이 정도로 친해진 이유를 끝마친다면 크리스마스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가장 중요했던 이유를 지금 바로 소개해 드릴까 해요.

톨킨과 루이스가 친해진 결정적인 계기.

그것은 바로 두 사람 모두 지나칠 정도의 맥주 애호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매일 톨킨의 교수실과 펍을 드나들며 맥주를 마시고 인상 깊은 책을 이야기하고 서로가 만든 언어를 공유했습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날들이었고, 우정이 깊이가 진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죠.

그런 이유로 오늘 여행의 시작을 옥스퍼드 대학, 톨킨의 사무실에서 해보았던 것인데요. 사실 대학 내에서, 그것도 업무시간에 맥주를 마시는 것은 아무리 크리스마스라도 민망한 일이잖아요. 톨킨과 루이스도 그것을 모르진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두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 인근의 한 펍을 찾아갑니다. <독수리와 아이(The Eagles and Child)>라는 특이한 이름의 펍으로 말이죠. 지금도 옥스퍼드 옆에 당당히 자리 잡은 이 펍을 아지트 삼아 두 사람은 밤새 맥주를 마시며 문학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기에 톨킨과 루이스의 지적 동반자들이 추가되면서 모임은 점점 커졌는데요 두 사람은 이 모임의 이름을 ‘잉클리스’라 부르기로 했죠.

어떤 문학이나 지식이 태동하는 순간을 보면 꼭 이런 장소와 모임이 있었습니다. 블룸즈버리 그룹이 그랬고, 호반 시인들의 모임이 그랬죠. 한국에서는 1900년대 초, 시인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다방도 훌륭히 그 역할을 해냈습니다.(언젠가 자정 무렵 제비다방으로 여행을 가는 날도 있을 것 같네요)

‘독수리와 아이’펍과 그곳에서 모임을 가진 ‘잉클리스’ 역시 그런 좋은 예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이 아니었다면 톨킨과 루이스의 수많은 판타지 명작은 탄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에요.

(그랬다면 저의 크리스마스도 상당히 건조해졌겠죠)

사실 톨킨은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방앗간 집 덩치 큰 아이에게 허구한 날 도망 다니기도 했죠. (이때의 기억 때문에 <반지의 제왕>속 오크 중에는 얼굴을 하얗게 칠한 괴물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그런 성격 때문에 어떤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세상에 내보이려 하질 않았습니다.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였죠.

 


<호빗>을 통해 이미 판타지 문학계의 스타가 된 톨킨은 후속작으로 <호빗>보다 훨씬 볼륨이 큰 대작, <반지의 제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워낙에 방대한 작품이었기에 작품을 완성하는데 위기가 끝없이 발생했죠. 이때 톨킨에게 용기를 준 것이 바로 루이스였습니다. 그는 톨킨이 무언가 잘못을 지적받으면 소심해 지거나 혹은 작품을 모두 갈아엎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날카로운 평론 대신, 용기를 줄 응원을 전했죠. 정말 칭찬의 칭찬을 거듭한 그들의 응원 덕에 톨킨은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톨킨은 세계관 구축에만 6년의 시간을 쏟은 끝에 1949년 <반지의 제왕>을 완성할 수 있었죠. 작품이 나오자마자 루이스는 추천사를 써주는 것은 물론이고 저명한 문예지에 서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추천사에 서평까지 써주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루이스는 개의치 않았죠.

왜냐하면 그는 작품을 쓰는 톨킨을 가장 가까운 곁에서 지켜봤고, 그가 이런 말을 한 것도 기억했으니까요.

출판이 두렵습니다.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비판을 들을 준비만 하고 있어요.

이렇게 대작을 써내고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친구를 위해서 루이스는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은 그런 루이스의 격려와 톨킨의 능력이 빚어낸 결과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결과를 받아들이며 두 사람은 역시나 <독수리와 아이>펍에 들려 ‘잉클리스’멤버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작품 속 이야기, 언어와 신화, 그리고 음유시인의 시를 노래했겠죠. 땅속 어느 곳에 사는 유쾌한 종족, 호빗들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오늘은 톨킨과 루이스, 판타지 작품과 맥주잔이 오가는 곳으로 미리 크리스마스 여행을 다녀와봤습니다. 2021년 겨울은 여전히 허락되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일찍이 모든 것이 허락되던 크리스마스에서 이렇게 제한 많은 크리스마스를 보내다 보니… 저절로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과 크리스마스는 성실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속 프로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런 프로도의 걸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뚜벅뚜벅 성실히 모르도르 산을 오르던 호빗의 걸음 말이에요. 물론 이 성실한 걸음을 위해서는 반드시 용기를 주는 친구가 필요하기도 할 거예요. (톨킨이라면 루이스가 프로도라면 샘이 그랬듯이 말이죠) 저는 당신의 곁에 그런 친구가 한 명쯤 반드시 있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에게 당신도 그런 존재일 테고요. 그러니 곁에 있는 그들과 함께 용기와 술잔을 나누며 올겨울의 시간도 뚜벅뚜벅 걸어가 보죠.

저는 그 걸음의 끝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줄 상상의 자정 여행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다시 함께 여행 갈 그날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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