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문학
우주의 구조, 천체의 생성과 진화, 천체의 역학적 운동, 거리ㆍ광도ㆍ표면 온도ㆍ질량ㆍ나이 등 천체의 기본 물리량 따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성학, 천문, 천체학-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Fig.1 하늘은 완벽하고 영원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밤하늘을 맨눈으로만 바라보던 시대, 지구의 지형이 수없이 바뀌는 동안 별과 달, 태양은 수천 년을 관찰해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당시 인류는 자연스럽게 하늘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는 우주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처음으로 정립했습니다. 그는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달 아래의 세계와 달 위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른 법칙이 지배한다고 보았습니다. 지상의 세계는 흙, 물, 불, 공기라는 네 원소로 이루어져 변하고 썩는 불완전한 공간인 반면, 달 너머의 천상은 다섯 번째 원소인 에테르로 이루어진 완전하고 영원불변한 공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천체들은 이 에테르로 이루어진 수정 천구에 고정되어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두 가지 전제가 이 우주관의 핵심이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 그리고 하늘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이후 프톨레마이오스에게 계승되었고, 중세 기독교 신학과 결합하면서 약 2,000년간 서양 사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Fig.2 우주의 중심은 지구다 - 프톨레마이오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의 철학적 틀을 세웠다면, 그 틀 위에 정밀한 수학을 입힌 것은 2세기 그리스의 천문학자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ios 였습니다. 그는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바빌론과 헬레니즘 시대의 천문 관측 데이터를 종합해 『알마게스트』를 집필했습니다. 지구를 중심에 놓고 행성들이 원운동을 한다는 가정 위에서, 실제 관측값과 계산값이 맞지 않을 때마다 주전원이라는 작은 원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오차를 줄였습니다. 복잡하긴 했지만 행성의 위치와 움직임을 수백 년 앞까지 예측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달력을 만들고 항해를 하고 농사를 짓는 데 실제로 쓸 수 있었습니다.
이 체계는 지구가 중심에 있고 그 너머에 천국이 있다는 중세 기독교 신학의 우주관과도 맞아떨어졌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이 우주관을 신학적 권위와 결합시켜 공식 우주론으로 굳혔고, 이를 의심하는 것은 곧 신을 의심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천문 관측 기술이 발전할수록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예측값과 실제 하늘 사이의 오차가 커졌습니다. 이를 맞추기 위해 주전원을 계속 추가하다 보니 그 수가 80여 개에 달하게 되었죠. 사람들은 보다 단순하고 설명력 있는 우주 체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Fig.3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다 - 코페르니쿠스 · 갈릴레이

그 전환의 시작은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였습니다. 그는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공전한다는 태양중심설을 제시했습니다. 지구중심설로는 복잡한 주전원 없이는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 예를 들어 수성과 금성이 늘 태양 근처에서만 보이는 이유나 각 행성의 공전 주기 순서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 순서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훨씬 단순하게 설명해냈습니다. 이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의 반발을 우려해 생전에 쉽게 이 생각을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죽음을 앞두고서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고, 그마저도 출판 직전 편집자 오시안더Andreas Osiander 가 코페르니쿠스 몰래 익명 서문을 삽입해 태양중심설이 실제 우주의 구조가 아니라 계산을 위한 수학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그의 책은 이후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갈릴레이는 1609년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의 소식을 접하고 직접 렌즈를 연마해 망원경을 개량했습니다. 그는 배율이 대물렌즈와 접안렌즈의 초점거리 비율로 결정된다는 원리를 이해하고 설계를 최적화해, 당시 네덜란드 망원경의 3~4배율을 훌쩍 넘는 최대 30배율의 망원경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 금성의 위상 변화 등을 관측하며 태양중심설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특히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의 존재는 지구 외부의 중심을 도는 천체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지구가 만물의 중심이라는 기존 인식에 결정타를 날렸죠. 그는 1610년 관측 결과를 정리해 『별들의 전령Sidereus Nuncius』을 출간했는데, 이는 교회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와 1633년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구중심설을 부정하라는 강요를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Fig.4 관측이 중요하다 - 티코 브라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태양중심설은 현재 우리가 아는 태양계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우주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겼지만, 행성은 여전히 수정 천구에 고정된 채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로 기존 관측 기록을 바탕으로 우주 체계를 재구성했을 뿐, 새로운 관측을 통해 이를 검증하지는 못했죠.
반면 16세기 후반,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 는 무엇보다 정밀한 관측을 중시했습니다. 그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2세의 지원을 받아 벤 섬에 대규모 천문대를 세우고, 수십 년 동안 누구보다 정밀한 관측 데이터를 직접 축적했습니다.
1572년 그는 밤하늘에서 신성(新星)의 폭발을 관측했습니다. 이는 하늘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구 이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건이었죠. 1577년에는 혜성이 대기 중의 현상이 아니라 달보다 먼 곳을 지나가는 천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브라헤는 혜성의 시차*를 측정한 결과, 만약 혜성이 대기 현상이라면 나타나야 할 큰 시차가 거의 관측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더욱이 혜성은 수정 천구가 있어야 할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했습니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수정 천구 개념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브라헤는 태양중심설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정밀하게 관측해도 별의 연주 시차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구가 자전한다면 포탄이나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에서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이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증거로 해석했고, 결국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태양과 달은 지구를 돌며, 다른 행성들은 태양을 공전하는 절충안인 티코 체계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브라헤가 축적한 방대한 관측 데이터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왕의 죽음 이후 덴마크에서의 지원을 잃은 브라헤는 프라하로 이주해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후원을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조수로 들어온 요하네스 케플러에게 자신의 관측 데이터를 남겼습니다.
*시차 : 시차는 관측자의 위치가 바뀔 때 천체의 위치가 배경에 대해 달라 보이는 정도를 말합니다. 가까운 물체일수록 시차가 크게 나타나고 먼 물체일수록 작게 나타납니다.
Fig.5 행성은 원이 아닌 타원 궤도로 돈다 - 케플러
브라헤가 세상을 떠난 후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는 신성로마제국 황실 수학자로 임명되었고, 브라헤가 남긴 방대한 관측 자료를 분석해 화성 궤도를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케플러는 기존 천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화성이 원궤도를 따라 돈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8년간의 계산 끝에 내린 결론은 원궤도의 포기였습니다. 원궤도로는 브라헤의 관측값과 8분각(약 0.13도)의 오차가 끝내 사라지지 않았거든요.

케플러는 문제의 핵심이 기존의 모든 천문학자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완벽한 원운동'이라는 가정 자체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타원 공식을 적용해 다시 계산하자 브라헤의 관측값과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그는 1609년 『새로운 천문학』에서 두 가지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모든 행성은 타원 궤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태양은 그 타원의 한 초점에 위치한다는 것, 그리고 행성과 태양을 잇는 선이 같은 시간 동안 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항상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1619년 『우주의 조화』에서는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이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세 번째 법칙을 추가했습니다. 이 세 가지 법칙은 천문학을 정성적 설명에서 정량적 계산의 시대로 끌어올린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Fig.6 “왜 그렇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답 - 뉴턴
케플러가 행성이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17세기 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이 내리게 되죠. 뉴턴은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과 달이 지구를 도는 운동이 본질적으로 같은 힘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뉴턴은 관성, 힘과 가속도의 관계,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세 가지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을 결합해, 케플러의 행성운동 법칙이 왜 성립하는지를 수학적으로 도출해냈습니다.
하지만 뉴턴의 이론은 유럽 대륙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와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같은 당대의 거장들은 뉴턴의 수학적 성취는 인정하면서도, 만유인력 개념 자체는 거부했습니다. 두 물체가 아무런 매개 없이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것이 철학적으로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태양 주위를 채운 물질의 흐름이 행성을 공전시킨다는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이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흐름을 바꾼 것은 볼테르Voltaire 였습니다. 그는 샤틀레 부인Emilie du Chatelet 과 함께 1738년 『뉴턴 철학의 요소』를 출간해 뉴턴의 이론을 일반 대중의 언어로 풀어냈고, 이는 대륙 유럽에서 뉴턴 물리학이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 는 『천체 역학』을 통해 뉴턴 역학을 집대성하고 확장해, 행성 운동을 수학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설명했습니다.
뉴턴 역학의 예측력이 실제로 입증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바탕으로 1682년에 관측한 혜성이 1758년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고, 혜성은 정확히 그 해에 돌아왔습니다. 이로써 뉴턴의 이론은 미래의 천체 운동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Fig.7 태양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 허셜 · 르베리에

뉴턴 역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천문학자들의 시선은 태양계 너머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성과는 1781년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 이 망원경으로 발견한 천왕성이었습니다. 갈릴레이 이후 수세기 만에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면서, 태양계는 인류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어서 행성들의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대략 일정한 비율로 늘어난다는 티티우스-보데의 법칙Titius-Bode law 이 예측한대로 화성과 목성 사이의 빈 궤도에 1801년 세레스Ceres, 1802년 팔라스Pallas 가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하나의 행성이 아니라 수많은 천체가 모여 있는 소행성대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은 해왕성 이후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천왕성을 관측하던 천문학자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천왕성의 실제 궤도가 뉴턴 역학으로 계산한 궤도와 미묘하게 어긋났던 것입니다. 1845년 프랑스의 수학자 위르뱅 르베리에Urbain Le Verrier 와 영국의 존 쿠치 애덤스John Couch Adams 는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천왕성 너머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 중력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르베리에가 계산한 예측 위치를 건네받은 베를린 천문대의 요한 갈레Johann Galle 는 편지를 받은 바로 그날 밤 망원경을 돌렸고, 예측 지점에서 불과 1도 떨어진 곳에서 해왕성을 발견했습니다. 천왕성이 우연한 발견이었다면, 해왕성은 수학이 새로운 행성의 존재를 먼저 예측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뉴턴 역학이 단순히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Fig.8 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 분광학의 탄생
한편 천문학자들의 관심은 태양계를 넘어 별 자체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허셜은 하늘을 600개 방향으로 나눠 별의 분포를 조사했고, 에드먼드 핼리는 고정된 별도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별은 무엇이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1584년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무한한 우주와 세계들에 대하여』에서 "별은 멀리 떨어진 태양이며, 각각의 별이 행성계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이단으로 몰려 브루노는 화형당했습니다.
그러나 1686년 베르나르 르 보비에 드 퐁트넬Bernard le Bovier de Fontenelle 이 『세계들의 다원성에 대한 대화』를 출판하면서 다중 세계에 대한 논의는 유럽 지식 사회의 주류 담론이 되었고, 18세기 초에는 "별은 곧 태양이다"라는 생각이 천체 천문학의 기본 전제로 자리 잡게 됩니다.
별이 태양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자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저 별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질문의 열쇠는 빛이었습니다.

1814년 독일의 광학자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Joseph von Fraunhofer 는 태양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던 중 스펙트럼 위에 수백 개의 검은 선이 나타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훗날 이 선은 특정 원소가 빛을 흡수하며 남기는 흔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원소마다 나타나는 위치가 달랐기 때문에, 천체에서 오는 빛만 분석해도 어떤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의 안젤로 세키Angelo Secchi 는 별빛의 스펙트럼 패턴에 따라 별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1868년에는 프랑스의 쥘 장센Jules Janssen 이 개기일식 도중 태양 대기에서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소의 스펙트럼 선을 발견했습니다. 이 원소는 이후 그리스어로 태양을 뜻하는 '헬리오스Helios'에서 따와 헬륨이라 명명되었습니다.
Fig.9 별을 해독하다 - 하버드 컴퓨터

1840년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 가 달을 촬영한 이후 천체 사진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사진 건판은 인간의 눈과 달리 수 시간 동안 빛을 모을 수 있었고, 천문학자들이 다룰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분류하고 분석하기 위해 하버드 천문대 소장 에드워드 피커링Edward Pickering은 여성 연구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이들은 훗날 '하버드 컴퓨터'라 불리며 수만 장의 사진 건판을 현미경으로 분석하며 별의 밝기와 스펙트럼을 기록했습니다.
그중 애니 점프 캐넌Annie Jump Cannon 은 별의 표면 온도에 따라 O-B-A-F-G-K-M으로 이어지는 하버드 분광 분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 분류 체계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죠.
헨리에타 스완 레빗Henrietta Swan Leavitt 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 변화 주기와 실제 밝기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밝기가 일정한 주기로 변하는 별인데, 주기가 길수록 실제 밝기가 더 컸습니다. 따라서 깜빡이는 속도만 측정하면 별의 실제 밝기를 알 수 있었고, 이를 지구에서 보이는 밝기와 비교해 거리까지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레빗은 우주의 거리를 재는 기준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실리아 페인-가포슈킨Cecilia Payne-Gaposchkin 은 별의 스펙트럼과 헤르츠스프룽-러셀(H-R) 도표를 분석해 별이 대부분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H-R 도표는 별의 밝기와 색(표면 온도)을 비교해 별의 종류와 진화 단계를 나타낸 그래프로, 페인은 이를 이용해 별의 화학적 조성을 추론했습니다. 당시 학계는 별도 지구처럼 무거운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결론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고 현대 천체물리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Fig.10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인가 - 허블
한편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밖에도 또 다른 세계가 있는 지에 대한 논의를 벌였습니다. 할로 새플리Harlow Shapley 는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이며, 밤하늘에서 관측되는 나선 모양의 성운들은 우리 은하 내부에 있는 천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히버 커티스Heber Curtis 는 그 성운들이 우리 은하 바깥에 존재하는 별개의 은하, 즉 '섬우주'라고 맞섰습니다. 커티스는 안드로메다에서 관측되는 신성의 수가 우리 은하 전체보다 많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우리 은하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면 그 안에 든 신성이 전체보다 많을 수는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은 에드윈 허블Edwin Hubble 이었습니다. 1923년 허블은 당시 세계 최대였던 윌슨산 천문대의 100인치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성운을 촬영하다가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했습니다. 레빗이 발견한 주기-광도 관계를 적용하자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가 약 90만 광년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시 알려진 우리 은하의 지름인 10만 광년을 훨씬 넘는 거리였습니다. 안드로메다는 우리 은하 안의 성운이 아니라, 그것과 동등한 규모의 별개 은하였습니다. 우리 은하 밖에도 독립적인 은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허블은 1929년 수십 개의 은하 스펙트럼을 분석하다가 대부분의 은하에서 빛의 파장이 붉은쪽으로 치우치는 현상, 즉 적색편이를 발견했습니다. 적색편이란 천체가 우리에게서 멀어질 때 그 빛의 파장이 길어지며 붉게 보이는 현상으로, 구급차가 멀어질 때 소리가 낮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더 나아가 허블은 은하가 멀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즉,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린 지 약 400년 만에, 우리 은하마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Fig.11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아인슈타인 · 펜지어스 · 윌슨
허블이 우주 팽창을 발견하기 15년 전, 그 팽창을 수학적으로 예측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입니다. 그는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며 중력을 뉴턴처럼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현상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곧 여러 관측을 통해 검증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성은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돌지만, 그 타원이 조금씩 회전하는 특이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뉴턴 역학으로는 이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냈습니다. 이어 1919년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개기일식 동안 태양 근처를 지나는 별빛의 위치를 관측했습니다. 6개월 전 촬영한 밤하늘 사진과 비교한 결과, 별빛은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만큼 정확히 휘어져 있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관측으로 검증되며 큰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원래 방정식은 한 가지 불편한 결론을 담고 있었습니다. 우주는 영원히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없으며, 팽창하거나 수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정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방정식에 우주상수를 추가해 이를 억지로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1929년 에드윈 허블Edwin Hubble 이 실제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 결과를 발표하자, 아인슈타인은 훗날 우주상수를 추가한 일을 "내 생애 최대의 실수"라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가 팽창하는 우주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1948년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 허먼 본디Hermann Bondi, 토머스 골드Thomas Gold 는 '정상우주론Steady State Theory'을 제안했습니다. 우주가 팽창하더라도 새로운 물질이 계속 생성되기 때문에 우주는 언제나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는 이론이었습니다. 특히 호일은 라디오 방송에서 팽창우주론을 비꼬며 "우주가 처음에 '빅뱅(Big Bang)'으로 시작됐다는 말이냐"고 말했는데, 이 표현이 오늘날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두 이론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뜻밖의 발견이었습니다. 1964년 벨 연구소의 아노 펜지어스Arno Penzias 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은 위성 통신용 안테나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잡음을 없애려 했습니다. 안테나를 청소하고 둥지를 튼 비둘기까지 쫓아냈지만 잡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것이 장비 문제가 아니라 하늘 모든 방향에서 동일하게 들어오는 실제 신호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신호는 곧 우주 초기의 뜨거운 빛이 식어 남은 흔적, 즉 우주배경복사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빅뱅 우주론이 예측했던 결정적인 증거였죠. 이후 1980년 앨런 구스Alan Guth 는 빅뱅 직후 우주가 순간적으로 급팽창했다는 인플레이션 이론을 제안했고, 1992년 COBE 위성은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요동을 처음으로 관측해 초기 우주가 어떻게 오늘날의 은하와 별로 성장했는지를 설명할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Fig.12 우주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 루빈 · 펄머터
빅뱅 이론이 정설이 된 이후에도 천문학은 또 다른 문제와 마주했습니다. 관측 결과가 기존 물리학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1970년대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Vera Rubin 은 나선 은하 안의 별들이 회전하는 속도를 측정하다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 따르면 은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별의 공전 속도는 느려져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관측에서는 바깥쪽 별들도 안쪽 별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려면 눈에 보이는 별과 가스만으로는 질량이 부족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은하를 둘러싸고 있지만 빛을 내지 않아 직접 관측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고, 이를 암흑물질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또 하나의 예상 밖 결과가 나왔습니다. Ia형 초신성은 폭발할 때의 실제 밝기가 거의 일정해 우주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별입니다. 솔 펄머터Saul Perlmutter, 브라이언 슈밋Brian Schmidt, 애덤 리스Adam Riess 연구팀은 이 Ia형 초신성을 이용해 먼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는 중력 때문에 우주의 팽창이 점점 느려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관측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우주의 팽창은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공간 자체를 밀어내는 정체불명의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보았고, 이를 암흑에너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오늘날의 관측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와 분자는 우주의 약 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약 27%는 암흑물질, 약 68%는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류는 우주의 크기와 나이, 탄생 과정을 밝혀냈지만, 정작 우주의 대부분은 아직도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Fig.13 천문학의 현재

2015년 9월 14일, 미국 루이지애나와 워싱턴주에 설치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가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중력파를 처음으로 직접 검출했습니다. 이제 우주를 빛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의 흔들림을 통해서도 관측할 수 있게 된 것이죠.

2019년에는 인류가 처음으로 블랙홀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사건지평선망원경(EHT, Event Horizon Telescope) 팀은 6개 대륙의 전파망원경 8개를 하나로 연결해 사실상 지구 전체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고,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진 M87 은하 중심부에 있는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하는 초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를 포착했습니다.

2022년부터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 JWST)은 지금까지 가장 먼 은하들을 발견하며 빅뱅 이후 수억 년밖에 지나지 않은 초기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이 관측을 통해 은하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Reference.
- 김명호. (2020).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이데아
- 장신운. (2016). 천문학의 역사. 한올
- 하이노 팔케, 외르크 뢰머. (2023).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에코리브르
- Professor Malcolm Longair CBE FRS. (2022). A brief history of astronomy, astrophysics and cosmology 1945-2000. the royal society. URL : https://royalsociety.org/blog/2022/06/brief-history-of-astronomy-astrophysics-and-cosmology-1945-2000/
* 본 글은 일부 자료 정리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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