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역학
입자 및 입자 집단을 다루는 현대 물리학의 기초 이론. 입자가 가지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측정에서의 불확정 관계 따위를 설명한다. 1925년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이 통합된 이론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람은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양자 역학은 그만큼 어려운 데도 사람들이 늘 관심있어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한계를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석학들이 논의 끝에 극복해내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우리는 과학자가 아니니 수학적, 과학적 이해를 포기하고 역사의 흐름만 파악해보도록 하죠. 그것만으로도 양자역학의 개념들을 얉게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Fig.1 증기기관, 이젠 분자 단위로 설명 가능! - 볼츠만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열이 어떻게 일로 바뀌는지, 그 효율은 어떻게 되는 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이를 연구한 것이 열역학입니다. 그와 동시에 19세기 말 모든 물질은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자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열역학에 원자론을 대입해 온도와 압력, 부피 같은 거시적 물리량을 분자들의 운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기체는 수많은 분자로 구성되므로 모든 분자의 움직임을 분석할 수는 없었는데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과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이 열현상을 수많은 입자의 통계적 운동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정립했습니다. 특히 볼츠만은 엔트로피를 계산할 때 기체의 총 에너지가 일련의 작은 구역으로 세분된다고 가정했습니다. 에너지를 작은 구간들로 나눈 뒤 각 범위에 속하는 분자의 개수와 가능한 배열의 수를 계산했습니다.
특히 볼츠만은 분자들이 배치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가장 많은 상태가 가장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엔트로피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즉, 엔트로피란 단순히 ‘무질서함’이 아니라, 분자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배열될 수 있는가와 관련된 개념이었습니다.
Fig.2 빛나는 쇳물은 몇도일까? - 막스 플랑크

볼츠만의 해석에 의하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증가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을 뿐이었습니다.즉, 열역학 제2법칙조차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라 통계적인 경향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런 해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역시 볼츠만의 통계적 해석에 회의적이었고, 열현상을 보다 엄밀한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뜨겁게 달궈진 쇠가 온도에 따라 붉은색, 주황색, 흰색으로 변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구스타프 키르히호프Gustav Kirchhoff 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이상적인 물체인 흑체Black Body 를 가정했습니다. 그리고 흑체가 방출하는 복사의 세기는 온도와 빛의 파장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죠.

문제는 기존 물리학으로는 실제 흑체 스펙트럼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짧은 파장 영역에서는 이론값이 무한대로 발산하는 이른바 ‘자외선 파탄’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플랑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가정을 도입합니다.
플랑크는 흑체가 작은 진동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산을 맞추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잘게 끊어진 작은 단위로만 주고받을 수 있다고 가정해야 했습니다. 즉, 에너지는 마치 계단처럼 불연속적인 값만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플랑크는 이 에너지 덩어리를 양자Quantum 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가설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플랑크 자신은 이 개념을 자연의 근본 원리라기보다는 계산을 맞추기 위한 수학적 장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Fig.3 빛도 양자야 - 아인슈타인

플랑크가 유도했던 복사 공식은 실험 결과와 매우 정확히 일치했지만 논리 자체에는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고전물리학이 요구하는 대로 에너지가 연속적이라고 가정하면서도, 계산 결과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양자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본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은 플랑크의 공식이 성립하려면 빛 자체가 작은 에너지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훗날 이것은 ‘광자Photon’라는 개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가설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광전효과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광전효과는 금속 표면에 빛을 비추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당시 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쉽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고전물리학에서는 빛을 파동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죠.
빛이 단순한 파동이라면 빛을 더 강하게 비출수록 전자가 더 큰 에너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빛을 아무리 강하게 비춰도 전자가 더 빠르게 튀어나오지는 않았고, 대신 튀어나오는 전자의 개수만 많아졌습니다. 반대로 빛의 세기는 그대로 둔 채 진동수만 높이면 그제서야 전자의 에너지가 증가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현상을 빛의 에너지가 물결처럼 연속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에너지를 가진 작은 입자 단위로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빛은 진동수에 비례하는 에너지를 가진 작은 입자들의 흐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이 중요하게 본 것은 플랑크의 식 E=hv 자체였습니다. 플랑크는 이 식을 단지 진동자와 에너지 사이의 계산식 정도로 생각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빛 자체의 성질을 설명한다고 본 것이죠. 다시 말해, 빛은 특정 진동수에 따라 정해진 에너지를 가진 양자 형태로 존재한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양자 개념은 더 이상 흑체복사만을 설명하기 위한 계산 도구가 아니라, 자연 전체를 설명하는 새로운 물리학의 출발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 역시 에너지 양자화가 빛에만 해당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자연 전반에 적용되는 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1907년에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고체의 열용량 문제까지 설명하려 시도했고, 양자론은 점차 현대 물리학 전체를 바꾸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Fig.4 원자도 양자야 - 닐스 보어
양자 개념은 곧 빛을 넘어 원자 자체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원자 내부의 움직임 역시 불연속적인 규칙을 따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죠.

당시 물리학자들은 원자의 구조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톰슨J. J. Thomson 은 양전하가 퍼져 있는 공간 안에 전자들이 박혀 있는 형태의 원자 모형을 제안했고, 이후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는 원자의 질량 대부분이 중심의 작은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자들이 그 주변을 행성처럼 공전한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태양계형 원자 모형’이 바로 이것이죠.
하지만 러더퍼드의 모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맥스웰의 전자기론에 따르면 전하를 띤 입자가 움직이면 전자기파를 방출하며 에너지를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원자핵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 역시 계속 에너지를 잃어야 했죠. 결국 전자는 원자핵으로 추락해 원자 자체가 붕괴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원자는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닐스 보어Niels Bohr 는 바로 이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전자가 아무 궤도로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안정 궤도만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높은 에너지 궤도에서 낮은 에너지 궤도로 이동할 때만 빛의 형태로 에너지가 방출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전자는 아무 에너지 상태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에너지 준위만 허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어는 이 아이디어를 원자 스펙트럼으로 검증하려 했습니다.

원자 스펙트럼이란 원자가 특정한 파장의 빛만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현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1752년 토머스 멜빌Thomas Melvill 이 다양한 염salt 을 태워보다가 물질마다 고유한 불꽃색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불꽃이 내뿜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자 빨주노초파남보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이 아닌 분절된 선만 보였죠. 이후 키르히호프Gustav Robert Kirchhoff 가 원소마다 선 스펙트럼의 위치와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다만 원소들의 스펙트럼이 선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선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죠.

1885년 스위스의 수학자 요한 야코프 발머Johann Jakob Balmer 는 수소 스펙트럼선이 수학적 규칙을 따른 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보어는 이것이 전자의 에너지 상태가 연속적인 값이 아니라 특정한 값만 가질 수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습니다. 실제로 보어의 이론은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설명해냈고, 이는 원자 내부에서도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초기 양자론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수소처럼 단순한 원자는 설명할 수 있었지만, 헬륨처럼 전자가 두 개만 되어도 이론이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나트륨이나 희토류 원소에 자기장을 걸면 하나의 스펙트럼선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데, 보어의 이론으로는 이런 현상까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고전역학 위에 양자 규칙만 덧붙이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원자 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할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Fig.5 전자가 원자핵 주변에 있는 이유 - 드 브로이

보어의 원자 모형은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성공적으로 설명했지만, 왜 특정 궤도만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한 인물이 바로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 였습니다.

드 브로이는 빛이 파동이면서도 입자처럼 행동한다면, 반대로 전자 같은 입자도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질량을 가진 입자 역시 고유한 파장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전자는 단순한 점입자가 아니라 공간에 퍼져 있는 파동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죠. 드 브로이는 이를 물질파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전자를 하나의 입자처럼 관측하는 이유는, 그 물질파가 특정 위치에 모여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보어의 ‘안정된 궤도’ 역시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전자 파동이 처음 상태와 정확히 이어져야만 안정된 상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기의 현이 특정 길이에서만 안정적으로 진동할 수 있는 것처럼, 전자 역시 특정한 궤도에서만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죠. 보어의 양자 궤도가 드 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을 통해 비로소 물리적 의미를 얻게 된 셈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원자 내부의 양자 규칙을 훨씬 자연스럽게 설명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전자가 한 안정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그리고 왜 특정한 순간에 빛을 방출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고전역학이 모든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하려 했다면, 양자론은 이제 ‘무엇이 반드시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리학은 점점 결정론의 세계를 떠나 확률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Fig.6 전자는 어디에 있는가? - 슈뢰딩거, 막스 보른

보어와 드 브로이의 이론은 원자 내부에 양자 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설명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전자가 실제로 무엇인지, 원자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는 이 문제를 파동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드 브로이가 제안한 물질파 개념을 수학적으로 확장해, 전자의 운동을 설명하는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슈뢰딩거 방정식입니다.
슈뢰딩거의 이론에서 전자는 더 이상 원자핵 주변을 도는 작은 공이 아니었습니다. 전자는 공간 전체에 퍼져 있는 하나의 파동 상태로 표현되었고, 이것을 파동함수 ψ라고 불렀습니다. 이 방정식을 이용하면 원자 안에서 전자가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동함수가 원자 안에서 허용되는 조건에 맞는 안정된 형태를 가질 때만 전자는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원자 내부는 더 이상 작은 행성들이 도는 태양계가 아니었습니다.
슈뢰딩거는 이 파동함수가 실제 물리적 실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자가 입자처럼 보이는 이유도 파동이 만들어내는 효과일 뿐이며, 파동이 더 근본적인 실재라고 본 것이죠. 하지만 곧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광전효과나 양자도약 같은 불연속적인 현상은 연속적인 파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막스 보른Max Born 이었습니다. 보른은 파동함수 자체를 실제 물질로 보기보다, 전자를 발견할 확률을 계산하는 도구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파동함수를 제곱한 값이 특정 위치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파동함수는 전자가 어디에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가를 나타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해석은 양자역학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충분한 정보를 알 수만 있다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확률은 단지 정보가 부족할 때 쓰는 도구였죠.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달랐습니다. 전자의 위치와 운동은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숨겨진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자연 자체가 확률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물리학은 “왜 반드시 그런 결과가 나오는가”를 설명하는 학문이 아니라, “어떤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를 계산하는 학문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Fig.7 전자를 정확히 볼 수 있을까? - 하이젠베르크 vs 닐스 보어
보른의 확률 해석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토대를 완성했지만 새로운 질문을 남겼습니다. 전자의 위치를 확률로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몰라서인지, 아니면 자연 자체가 그렇게 작동하는 것인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는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사고실험을 제안했습니다. 전자를 보려면 빛을 쏘아야 합니다. 그런데 파장이 짧은 빛일수록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에너지가 강한 광자가 전자를 세게 튕겨내 운동량이 크게 흔들립니다. 반대로 에너지가 약한 빛을 쓰면 전자를 거의 건드리지 않아 운동량은 잘 보존되지만, 이번엔 해상도가 낮아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게 됩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것이 단순한 측정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을 곱한 값은 언제나 일정한 한계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하지만 닐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측정 과정에서 광자가 전자를 교란하기 때문에 불확정성이 생긴다고 설명했지만, 보어는 문제의 핵심이 빛의 파동성 자체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파동은 본질적으로 공간에 퍼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정밀한 현미경을 사용하더라도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완벽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의 지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직관이 통하지 않는 세계를 다루는 이론인데, 왜 파동이나 입자 같은 고전적인 개념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이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고, 결국 불확정성 원리 자체는 옳지만, 그것이 왜 성립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보어의 해석이 더 근본적이라는 방향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보어를 상보성이라는 개념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떤 실험에서는 전자가 입자처럼 보이고, 다른 실험에서는 파동처럼 보이지만, 두 성질이 동시에 완전히 드러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보어는 입자성과 파동성이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전자를 완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위치와 운동량 역시 이런 상보적 관계에 놓여 있었고, 하나가 선명해질수록 다른 하나는 반드시 흐려졌습니다.
이 원리는 물리학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초기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그 초기 조건 자체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관측 장비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자연이 본래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Fig.8 양자역학은 완전한가? - 아인슈타인 vs 보어
양자역학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보어의 상보성 원리, 보른의 확률 해석이 하나의 체계로 묶이며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 체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문제 삼은 것은 '파동함수의 붕괴'였습니다. 슬릿을 통과한 입자가 스크린의 A 지점에서 관측되는 순간, 다른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사라집니다. 공간 전체에 퍼져 있던 확률이 한 점으로 순식간에 수축하는 것이죠.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정보도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는데, 파동함수의 붕괴는 그 한계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고실험 1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는 이 논쟁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매일 아침 사고실험을 하나씩 들고 나와 불확정성 원리의 허점을 공략했고, 보어는 매번 저녁까지 반박을 준비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공격 중 하나는 이중슬릿 실험을 변형한 것이었습니다. 슬릿이 뚫린 첫 번째 스크린을 수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면, 입자가 스크린에 전달하는 반동을 측정해 입자가 어느 방향으로 굴절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입자가 두 번째 슬릿 중 어느 쪽을 통과했는지도 알 수 있게 되고, 동시에 마지막 스크린에 나타나는 간섭무늬도 관측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상보성 원리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죠.
보어의 반박은 간결했습니다. 스크린의 반동을 측정하려면 그 위치를 정확히 읽어야 하고, 그러려면 빛을 쏘아야 합니다. 그런데 빛을 이루는 광자가 스크린에 부딪히는 순간 스크린의 운동량이 흔들립니다. 위치를 정확히 알수록 운동량이 불확실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스크린의 위치가 불확실해지면 입자의 위상이 뒤틀리고, 결국 마지막 스크린에서 간섭무늬가 사라집니다. 입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알아내려는 순간, 파동적 특성은 스스로 지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사고실험 2

아인슈타인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3년 후 제6차 솔베이 회의에서 그는 더 정교한 사고실험을 들고 나왔습니다. 내부에 시계가 달린 상자를 상상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시계는 셔터와 연결되어 있어, 정확한 시간에 구멍을 열었다가 닫으며 광자 하나를 방출합니다. 방출 전후의 상자 무게를 재면 빠져나간 광자의 에너지를 알 수 있고, 셔터가 열려 있던 시간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에너지와 시간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한 셈이었습니다. 에너지와 시간 사이에도 불확정성 관계가 성립한다면, 이 실험은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반박했습니다. 상자의 무게를 재려면 상자를 저울에 매달아야 하고, 광자가 빠져나가면 상자는 가벼워지며 조금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장 안에서 높이가 달라지면 시간의 흐름도 달라집니다. 상자가 움직이는 순간, 내부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 자체가 불확실해지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정확히 측정할수록 시간의 불확실성은 커졌고,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수록 에너지의 불확실성 역시 커졌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완전히 납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이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자의 위치가 관측하기 전까지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달은 우리가 보지 않을 때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전자도 마찬가지여야 했습니다. 양자역학이 확률만을 말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숨겨진 정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아인슈타인은 믿었습니다.
사고실험 3

이 믿음은 훗날 동료 포돌스키Boris Podolsky, 로젠Nathan Rosen 과 함께 하나의 논문으로 완성됩니다. 이른바 EPR 역설이었습니다. 두 입자가 한 점에서 만난 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이 두 입자는 처음부터 같은 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한쪽을 측정하는 순간 다른 쪽의 상태도 함께 정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코펜하겐 해석대로라면 한쪽을 관측하는 순간 다른 쪽의 파동함수도 동시에 붕괴되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상대성이론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파동함수의 붕괴란 실재하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숨겨진 정보가 있다는 증거일 뿐이라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결론이었습니다.
보어는 이 주장도 반박했습니다. 두 입자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양자계로 묶여 있으며, 그 상관관계는 공간을 가로질러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보어의 반박은 명쾌하지 않았고, 논쟁은 결론 없이 이어졌습니다.
Fig.9 아인슈타인이 틀렸다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은 결론 없이 끝났고, 1955년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질문은 남아 있었습니다. 전자의 상태는 관측 전까지 정말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숨겨진 정보가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후자를 믿었습니다. 겉으로는 확률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숨겨진 원인이 존재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것을 숨겨진 변수 이론이라고 합니다. 양자역학이 확률만을 말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론이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자연이 본래 확률적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이었죠.
문제는 숨겨진 변수가 있든 없든 결과가 동일하기 때문에 어떻게 실험으로 이 둘을 구분할 지가 문제였습니다. 1964년 존 벨John B. Bell 은 만약 숨겨진 변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두 입자의 측정 결과 사이의 상관관계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벨 부등식입니다. 숨겨진 변수 이론이 옳다면 이 부등식은 반드시 성립해야 합니다. 반대로 양자역학의 설명이 옳다면, 이 부등식이 깨지는 상황이 존재해야 했습니다.

이후 물리학자들은 실험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핵심은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입자를 동시에 측정하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존 클라우저John Francis Clauser 가 첫 실험을 시도했고, 1982년 프랑스의 알랭 아스페Alain Aspect 가 결정적인 실험을 완성했습니다. 두 광자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려 보낸 뒤, 각각의 편광을 측정했습니다. 측정 방향은 광자가 날아가는 도중에 무작위로 바꾸었습니다. 한쪽 광자가 다른 쪽에 어떤 신호도 보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는 벨 부등식이 깨졌습니다. 두 입자의 측정 결과가 숨겨진 변수 이론이 허용하는 한계를 넘어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적어도 아인슈타인이 기대했던 형태의 ‘국소적 숨겨진 변수’는 자연에서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 얽힘입니다. 두 입자가 한 번 같은 양자 상태에 놓이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측정 결과는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나타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빛보다 빠른 신호 전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 입자는 처음부터 하나의 양자 상태로 묶여 있었고, 측정 결과 역시 독립적인 두 입자처럼 행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스페의 실험 이후에도 더 엄밀한 조건에서 반복된 실험들이 같은 결론을 내놓았고, 2022년에는 이 연구에 기여한 클라우저와 아스페, 그리고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 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Fig.10 양자역학이 무엇을 말하는 건가
양자 얽힘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그리고 측정 이전의 양자 상태는 무엇이었던 것일까요? 코펜하겐 해석은 이 질문 자체가 의미없다고 말합니다. 측정 전의 상태를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죠. 물리학은 관측 가능한 것만 다룬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물리학자가 이 답에 만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57년, 프린스턴의 대학원생이었던 휴 에버렛 3세Hugh Everett III 는 새로운 해석을 제안했습니다.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순간, 전자가 A에 있는 세계와 B에 있는 세계가 동시에 실현되며 우주 자체가 갈라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관측자도 함께 갈라지기 때문에, 각각의 세계에 있는 관측자는 자신이 하나의 결과만을 본 것처럼 경험합니다. 이것이 다세계 해석입니다.
에버렛의 아이디어는 처음에 거의 무시당했습니다. 지도교수였던 존 휠러John Wheeler 조차 보어의 반응이 두려워 이 논문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면서 다세계 해석은 파동함수 붕괴를 별도로 가정하지 않고도 양자역학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컴퓨터와 우주론 분야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었습니다.

1952년 데이비드 봄David Bohm 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봄의 해석에서 입자는 실제로 특정한 위치에 존재합니다. 다만 입자의 움직임은 공간 전체에 퍼져 있는 파동함수가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물결 위를 떠다니는 나뭇잎의 경로가 물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말이죠. 사실 이 아이디어는 드 브로이가 1920년대에 제안했다가 스스로 포기했던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이것을 파일럿파 이론 또는 드 브로이-봄 해석이라고 합니다. 이 해석에서는 측정 이전에도 입자의 위치가 확정되어 있으므로 아인슈타인이 원했던 결정론적 세계관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입자들조차 하나의 파동함수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입자의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입자의 상태도 함께 정해지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떤 정보도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는 상대성이론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드 브로이-봄 해석이 정말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지는 지금까지도 논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코펜하겐 해석, 다세계 해석, 드 브로이-봄 해석 외에도 관계적 해석, 일관된 역사 해석, 양자 베이즈주의 등 수십 가지의 해석이 제안되었습니다. 양자역학은 완벽하게 작동했지만, 그것이 현실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물리학자들 사이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Fig.11 모든 힘은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 리처드 파인만
해석 논쟁과는 별개로, 양자역학은 실제 자연을 설명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이론이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원자와 전자뿐 아니라,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까지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려 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은 빛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이론인 양자전기역학(QED)을 만들어냈습니다. 핵심 아이디어는 두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광자를 교환하는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자 두 개가 서로 밀어내는 것은 그들 사이에서 광자가 오가기 때문이며, 전자가 빛을 흡수하는 것은 광자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상 광자(γ)를 하나 주고받으며 반발한다. QED는 이처럼 모든 전자기 상호작용을 광자 교환으로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파인만은 입자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경로를 더해 확률을 계산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입자는 하나의 경로만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경로를 동시에 지나간다고 가정하고 그 기여를 모두 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를 경로적분이라 부르죠.
QED의 성공으로 물리학자들은 전자기력뿐 아니라 다른 힘들 역시 입자의 교환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1960~70년대에 걸쳐 이 시도는 하나씩 결실을 맺었습니다. 약한 핵력은 W 보손과 Z 보손이라는 입자가 전달하는 힘으로, 강한 핵력은 글루온이 전달하는 힘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은 것이 표준모형입니다. 표준모형은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들과, 그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하나의 이론으로 묶어 설명한 체계입니다.
하지만 표준모형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네 가지 힘 중 중력은 여전히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설명되는 중력은 아직 양자역학의 언어로 기술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늘날 관측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 물질은 우주 전체의 약 5%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구조를 상당 부분 이해하게 되었지만, 정작 우주의 대부분은 아직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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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훈. (2019).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삼성 디스플레이 뉴스룸. URL: https://news.samsungdisplay.com/21153
- 조송현. (2017). 세기의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 (라운드 2)‘상자 안의 시계’ 사고실험. 인저리타임. URL: https://injurytime.kr/View.aspx?No=3077611
* 본 글은 일부 자료 정리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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