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호 뉴스레터의 글쓴이 이름과 국가명은 인터뷰이interviewee의 요청으로 가명을 사용합니다. 독자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ː 이영희의 신앙 이야기
질문하는 사람, 저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내가 누구인지,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살아야 합니까?"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꽃상여가 죽은 이가 살던 집을 떠나 무덤을 향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사람은 결국에는 죽는다는 것, 단지 죽음의 시간만 다를뿐이라는 것을 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누구인지,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사는 것 보다는 조금 일찍 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질문하는 사람, 저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ː 어느 날, 시편 127편
고등학교 2학년 때 외세에 의해 왜곡된 한국인 정체성과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 제 삶의 목적을 왜곡된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 찾기로 정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민중운동에 참여했는데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제 삶의 목적을 민중운동으로 정하고 대학에 들어갔고, 민중운동에 참여했는데, 이것도 아니었습니다. 삶의 의미와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가 무엇인지 계속 찾았습니다.
어느 날 시편 127편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삶의 의미와 진리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저는 성서를 통해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성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싶어서 다른 이들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제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후부터 지금까지 성서가 무엇을 말하는지 스스로 찾고 이웃에게 묻고 실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ː 귀납적 성경 읽기와 김근주읽기
저는 이슬람 문화권에 살고 있습니다. 현지 청년학생들과 함께 쿠란과 성서를 귀납적으로 읽고 싶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선이해를 내려놓고 읽는 귀납적 읽기입니다. 귀납적 경전읽기를 준비하면서 저는 성서 중 몇 권의 책을 선택해서 귀납적 경전읽기를 준비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를 읽으면서 『오늘을 위한 레위기』(IVP, 2021) 의 저자 김근주 목사님을 알게 됐습니다. 『오늘을 위한 레위기』를 재미있게 읽은 후 김근주 목사님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습니다. 때마침 ‘김근주읽기’ 모임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자들이 쓴 소감들을 읽으며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ː 1세기, 4세기, 그리고 21세기
저는 현재 이슬람의 A국에 삽니다. A국의 기독교 상황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이 지역과 관계된 ‘두 가지 사건과 한 가지 도전’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사건은 1세기에 흩어진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이곳에서 함께 이룬 교회입니다. 그들은 이웃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두번째 사건은 4세기에 교회와 제국의 결혼입니다. 예수의 길을 걷던 교회가 제국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한 가지 도전은, “21세기 현지 교회가 제국의 길을 버리고 예수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입니다. A국가의 기독교 상황은 4세기에 있었던 교회와 제국의 만남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주류종교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교를 선택하는 용기가"
ː 제국의 종교 VS 종의 종교
이제 A국가의 기독교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땅에는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주류 민족보다는 소수 민족 안에 신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소수자가 다수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 현상은 이곳에도 있습니다. 이곳은 법적으로는 종교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 선택으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실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주류 종교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교를 선택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용기가 ‘제국의 종교’에서 ‘종의 종교’를 선택하는 용기에까지 이어지기를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ː 대화와 나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19-20절)
저는 대학생 때 기독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마태복음 28장이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마태복음 22장을 읽으면서 마28장을 다르게 읽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마28장을 내가 주체가 되어 다른 이를 바꾸려는 것으로 읽었다면, 마22장은 조건 없이 이웃의 친구가 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성서는 무엇을 말하는가를 묻고 찾던 저는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4-40절)
그래서 제가 주체가 되어 다른 이를 바꾸려는 시도를 내려놓고 이웃과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웃과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을 위한 실천으로 저는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대화(사마리아 여인과 대화, 요4장) 둘째는 나눔(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나눔, 눅10장)입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36-37절)
ː 영웅 서사시와 종의 이야기
제가 현지로 이동할 때 현지인을 가르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이동했습니다. 현지어를 배우며 현지인과 문화 안에 있는 귀한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인과 저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제가 발견한 현지인과 문화의 귀한 것 중 하나는 현지 민족의 구비문학입니다. 구비문학이 현지 민족 안에 지금도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현지 종족마다 다양한 영웅 서사시가 있습니다. 현지인들은 영웅 서사시를 가지고 있고 저는 종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현지 민족의 영웅 서사시와 신화를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을 참고해서 읽습니다. 영웅 서사시와 신화 그리고 현실 삶에 나타나는 폭력을 제가 가지고 있는 종의 이야기와 평화와 함께 현지인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함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무너진 건물을 치유할 수 있는 빵, 때로는 마음을 무너뜨려"
ː 왜 저 사람에게만 가득 채워줍니까?
빵과 평화,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양식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빵이 한 곳에 많이 쌓여 있거나 더 많은 빵을 소유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합니다. 이곳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봅니다. 저는 구호 단체의 활동을 돕기 위해 얼마전 재난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마을에 들어서자 주민 중 한 분이 저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집에는 계속 화물차가 들어가 물건들을 내려놓습니다. 물건들이 창고에 가득합니다. 우리도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하나도 주지 않고 저 사람에게만 가득 채워줍니까?”
지진이 땅과 건물을 갈라놓고 무너뜨렸습니다. 무너진 건물을 치유할 수 있는 빵이 때로는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을 봅니다. 정의가 없는 빵은 때로는 공동체의 관계와 마음을 나누고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얼마의 빵이 내게 필요한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이 빵이 내게 필요한가를 저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 빵과 평화로도 나타나는가? 아버지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구하고, 우리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고, 되갚아 줄 수 없는 이와 함께 나누는 우리 빵과 평화. 다시 살아남은 우리가 다시 살아남을 위한 다시 살아남인가? ” (‘구약으로 읽는 부활 신앙’ 5월 27일 13일차 소감 중에서)
ː 낯선 이방 땅에서의 삶을 추천합니다
낯선 이방 땅에서의 삶, 저는 이 경험을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이방 땅에서의 삶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최소 1-2년의 경험은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묻고 찾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아래와 같은 말을 한 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가 또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기대하는 마음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우리는 땅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기도 후 눈을 떠 보니 그들은 땅을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다.(Jomo Kenyatta)”
ː 책빵, 책도 빵이다
한국을 떠나서 살다 보니 한국어와 한국어 문장이 많이 어색해졌습니다. 제 친구가 저에게 외한국인이라고 말합니다.
저의 책 읽기 중 하나는 ‘변방에서 책 읽기’입니다. 중심에서 우리 이야기만 읽지 않고 변방에서, 경계선에서 다른 이들의 다양한 관점을 읽는 것입니다. 중심에서는 변방의 찬 바람을 느끼기가 쉽지 않지요. 보이지 않기도 하고요. 변방은 지은이이기도 하고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책빵, 책도 빵이다’ 입니다. 이것은 공동체 책 읽기입니다.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고 자기 안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김근주읽기처럼 공동체로 읽고 공동체로 나누고 공동체로 실험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함께 사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체드 마이어스의 마가복음 주석 『강한 자 결박하기』(대장간, 2022)는 저를 변방에서 책 읽기로 초대한 책 중 하나입니다.
ː 정답과 교범이 없는 김근주읽기
대학생 때 처음 성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공부 책이 ‘빈 칸 메우기’였습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나 책도 많았습니다. 저에게 김근주읽기의 특징은 메워야 할 빈 칸이 없고 정답지나 교범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읽기와 한 사람의 반응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그려져 가는, 한 사람이 소중한 공동체 읽기입니다.
ː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방
카톡방에서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관점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앞에서 인도자로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 제가 듣기 보다는 말을 많이 했지요. 잘 듣지 못했습니다. 카톡방에서는 한 분 한 분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이들의 생각이 저에게는 기대와 질문이었습니다.
"목사님, 계속 책을 써주세요!"
ː 김근주읽기에 제안해요
책을 읽은 후 ‘저자와 만남’ 시간이 좋습니다. 저자와 만남 이후에 ‘함께 읽는 이들의 만남’ 시간도 만드시면 어떨까요? 탈고된 책은 이제 독자의 몫이기에, 독자가 어떻게 읽고 반응하는지 함께 나누는 시간도 기대가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카톡방에 글을 남기지만 책을 읽고, 저자와 만남 시간도 가진 이후에, 원하는 분들이 줌으로 모여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ː 김근주 목사님, 계속 책을 써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이 모임을 만들어 주시고 섬겨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김근주읽기가 저에게는 계속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활력소 역할을 해 줍니다.
저는 김근주읽기에 계속 참여하고 싶습니다. 김근주 목사님께서 계속 책을 쓰시기를 부탁도 드립니다. 계속 참여하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는 김근주읽기를 통해 김근주 읽기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함께 읽는 이들을 통해 더 넓은 지평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강미경
멀리 계시지만 가까이에 있는 친구같은 분 이영희님! 낯선 이방 땅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공동체를 만나시는 영희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대화와 나눔"으로 살아가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습니다. 지진의 상흔이 담긴 사진을 보니 마음이 참 아프네요 ㅠ 올려주신 책은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겠습니다. 따뜻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뉴스레터에 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니시는 발걸음마다 안전하시고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