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윤 대통령이 중급의 개각을 단행했다. 이어질 개각을 감안하면 각료의 과반이 집권 일년 반 만에 교체되는 것이다. 인사 청문회 과정 등을 감안하면 각료들은 장관 재임 기간이 1년 반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워낙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정치권이나 국민들도 이 사실에 의문을 품거나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지경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괴이한 현상이다. 특히 정권이 자주 붕괴하는 일부 의원 내각제의 경우가 아니면 장관이 우리처럼 임시직인 나라는 없다.
개각의 이유도 총선이다. 총선에 나갈 여권의 후보들을 배출하기 위함이다. 이들이 이 짧은 기간에 국정을 장악하고, 국가적 개혁 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고 나라를 한 단계 더 전진시켰을 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안배, 여성 배려, 젊은 장관 발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장관 자리는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사람들의 보은의 자리이거나 여당의 국회의원 후보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우리의 헌정 체제의 건강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이는 정부가 국정 과제의 해결 능력이 결핍된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의미한다. 장관이 국정 파악을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할 때, 국민과 의회를 설득하고, 이해집단의 저항을 넘어야 하는 개혁과제에 손을 댈 수 없게 된다. 장관들이 정치적 소모품이라면 결국 대통령이 어려운 국정과제에 대한 확실한 장악력이 있거나 대통령실의 참모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는 87체제 이후에 그런 국정 장악력을 갖는 대통령을 보아오지 못했다. 장관들이 자리를 비우면 대통령실의 참모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따라서 대통령실의 참모들마저 장기적 관점에서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치적 출세의 길로 빠르게 이동한다. 우리 정당이나 국회가 이런 기능을 대신하거나 보완하기는 커녕 개혁의 저항 세력이고, 포퓰리즘에 의한 규제 양산의 본산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 어디에도 어려운 국정과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주체가 실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은 자주 바뀌는 권력과 무관하게 관료들이 운영하는 나라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일본의 개혁 능력 상실의 한 원인으로 우리가 이미 그런 나라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가 지금 윤 정부가 말로만 내거는 교육, 노동, 연금 개혁 등 지난한 과제에 어떠한 청사진이나 진전도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고 민주화 이후의 정권들이 이점에서는 대동소이 하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구조의 근본적 결함이 잦은 내각의 정치적 개편이 시사한다.
행정부에서 지명도를 얻고 국회의원이 되는 일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의회의 역할의 왜곡이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의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위해 삼권분립의 헌법을 만들었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성은’을 입고 국회의원들이 되었을 때 그들이 행정부의 시녀가 될지, 행정부의 감시와 견제의 의회 본업의 기능에 충실할지는 너무도 자명한 이야기가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헌법의 구조대로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사법부가 권력 남용을 철저하게 처벌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회의원이 각료를 겸하거나 의회와 각료의 자리를 수시로 오가는 지금의 관행은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준 대통령제도와는 합치하지 않는 의원 내각제에서나 있는 일이다. 의원 내각제는 다당제 하의 연합정권으로 대부분 다른 정당들이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데 우리는 대통령제를 하면서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만드는데 공천권과 각료와 비서관들의 자리를 국회의원 만드는데 사용하여 의회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구조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고 있다.
이번 개각에서 또 하나 주목할 일은 대통령이 현재의 한국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점이다. 윤 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율에는 부진한 경제 상황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 집을 마련했던 청년들이 치솟는 대출 이자를 견디지 못해 일년 사이에 12만호의 집을 팔아야 하는 지경이다. 자영업자와 영세업자들이 빚을 못 갚고 대출의 부실화가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60-70년대 수출 진행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윤정부의 경제 정책의 브레인 역할은 이번에 경제 관리로 평생을 일해온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최상묵 경제수석이다. 이미 인수위에서도 그는 경제분야의 정책을 사실상 주도했고, 대통령실의 경제 수석으로 경제 정책을 주도해 왔고 이번에 경제 부총리가 되어 있다. 이 사실은 윤 대통령은 지금의 경제 운영에 대해 큰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중국 특수가 끝나고 미중 갈등과 기후 변화를 내세운 보호무역주의의 급등 등 구조 변화에 대응해서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인가에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관료들의 관치경제를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미이다.
잘못된 일을 반복하면 관행이 되고 그것은 제도화한다. 각료의 임기와 역할에 대한 정치적 왜곡이 제왕적 대통령제와 국정 과제에 무능한 권력을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근본 문제에 이의를 달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 있다.
P.S. 이글은 뉴스스필릿의 칼럼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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