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의 환상과 오늘의 한국]

청년들의 한국 어떻게 달라야 하나?

2024.02.10 | 조회 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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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대한민국 이야기

글로벌 경제와 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변혁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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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추억 돌아보기가 7년 전의 제 글을 보여주었는데 지금 시점에도 시사한 바가 있어서 뉴스레터 글로 복사를 했습니다.

당시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의 환상이라는 글을 올렸더니 한 페친께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무조건적인 복지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노인빈곤, 저출산, 공무원준비생들의 시대에 기본적인 생활 안전망 구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학생은 대학 잘 못 가면 큰일나고, 대학생은 취업 잘 못 하면 큰일나고, 직장인들은 진급 못하면 큰일나고, 여러 분야에서 자기 개발과 성취를 통해서 다양한 가치를 만드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러 위험 신호들과 기본 의식주의 박탈감 때문에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경쟁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뒤쫓는 것이 아닌 새롭게 가치창출을 하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가 추구하는 것에 몰입해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1 기본적인 생활 안전망 구축은 무차별 복지와 다른가?

우선 무차별 복지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생활 안전망 구축은 어떻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기본적인 것인지 어떻게 정의할까요?

우리 아버지 세대는 세끼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 때 우리 사회에서는 끼니가 사회(국가)가 보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비가 아니고 사치 소비였다는 것이지요. 저희가 클 때는 형제 때로는 부모까지 반지하 단칸 방에서 잤습니다. "인간적인" 최소한의 공간과 햇볕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도시화된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교통, 통신도 생필품입니다. 교육, 의료, 주거 어느 것 하나 우리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결국 기본적이라고 하지만 곧바로 사회에서는 중산층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기본적"이라고 주장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안전망은 전면적 복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내가 추구하는 것에 몰입해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주는 복지

개인이 "추구하는 것에 몰입한다"는 이유만으로 왜 그 개인의 "기본적(?)" 경제 생활을 지원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 술이나 마약의 즐거움을 추구한다고 하면 이를 사회가 지지해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림이 되든 음악이 되는 사람들의 사회적 수요가 없다면 결국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표현하기 그렇지만 자위 행위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이 힘들게 번 돈으로 지지해줄 사회적 이유는 그리 합당하지 못합니다. 다른 말로 놀고 먹고 살게 해달라는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시장은 필요 것은 더 발전하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도태시켜서 사회의 발전을 추동하는 역할을 합니다. 개인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사회가 지지하면 도태되어야 할 불량품을 계속 생산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훌륭한 제품도 제값을 받기 힘들게 됩니다. 이것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잘하는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하는 동기를 죽이게 됩니다.

#3 "학생은 대학 잘 못가면 큰일나고, 대학생은 취업 못하면 큰일나고, 직장인은 진급 못하면 큰일나고..."

무슨 큰 일이 날까요? 대한민국에는 모두 명문 대학 나온 사람만 행복하고 출세하나요? 취업 잘 못하면 다시 전업하면 안 될까요? 진급 못하면 체면을 상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왜 자신의 선택을 모두 사회의 집단적 가치관에 가져다 맞추어야 할까요? 명문대학 나오고도 잘 못사는 사람도 많고 대학 중퇴하고도 크게 성공한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사회의 큰 병폐 중에 하나는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큰일 안 나고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지금은 진급 일부러 늦추려는 사람도 많고 진급 안되어도 사표 안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과거에는 진급 못하면 다른데 일자리가 있었고 은퇴하고 몇 년 안에 죽으니까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고 사회가 변하면 개인들도 영악하게 적응합니다.

#4 여러 분야에서 자기 개발과 성취를 통해서 다양한 가치를 만드는 일본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나요? 혹시 일본의 삶의 만족도가 우리와 진배없이 OECD 국가 중에서 바닥권인 것은 알고 계신 지요? 삶의 의미를 잊고 숨만 쉬고 있는 초식 동물이란 이야기나 과로에 의한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신 지요?

저는 젊은 시절에 일본에 자주 출장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동경에 출퇴근 시간에 전철을 타면 그것은 승객이 아니라 짐짝입니다.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남의 나라는 천국을 만들고 우리나라는 지옥이라는 판단을 합니다. 일본이 우리와 다른 점은 많이 있습니다. 서양문물은 탄력적으로 받아들이되 종교나 생활 습관은 일본적인 것을 지켜왔고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높고 시장이 크다 보니 다양한 틈새 시장이 있습니다.

우리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더 고급의 다양한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술을 보세요. 소주나, 막걸리나 맥주나 제가 어렸을 때는 모두 한 두가지의 제품 중에서 소비했습니다. 닭 요리를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다양한 소비가 생겨나고 있나요? 그렇게 다양한 소비가 시작되면 다양성 있는 시장이 생기고 그런 수요를 충족하는 분은 개성 있는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일본과 달라 보이는 것은 경제 개발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시대의 수많은 북방민족의 침입, 일제 식민지나 6.25와 같은 역사적 단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회와 경제의 토대가 뿌리째 뽑힌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6.25 이후에 모든 것이 Reset되어 새로 시작하는 신생 국가입니다. 그러니 쌓아 올린 전통이 적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통적인 다양한 것들이 오천년 역사라고 말하지만 남들보다 적어 보이겠지요.

#5. 우리사회는 다양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가?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속하는 내부의 변화를 잘 읽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갈구하는 연예인의 직업은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만해도 "딴따라"의 직업으로 천한 직업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운동 선수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하는 선택이었고, 요즘 방송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세프들은 "주방장"으로 선망의 대상이 아닌 직업이었을 뿐입니다.

저는 매일 대기업의 기계적인 삶이 싫어서 팽개치고 나와서 의미 있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창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벤처창업으로 밤낮을 잊은 청년들을 만나서 흥분합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원적으로 진화하고 있고 평생 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을 선택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다른 사회와 달리 획일적이라고 하는 것은 저변에 흐르는 큰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해외 출장이나 휴가 중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1년간 배낭 여행 중이라는 젊은이들을 보고 부러워합니다. 그런 여유와 탐색이 우리나라가 이미 다원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희 세대는 "생존 지향"으로 살았지 "가치 지향"으로 살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성세대의 노력 덕분에 젊은 세대는 이제 가치지향으로 살 수 있습니다. 회사를 몇 달 때려치워도 굶어 죽지 않고 해외 여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변화에 더딥니다. 그러니까 공기업가라, 대기업 가라, 공무원 되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직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평생의 직업, 전문성인데도 말입니다.

인생의 자기 책임과 선택을 인정하는 사람이 자유인입니다. 사회가 무엇을 보장해 주길 바라는 것은 좋게 말해서 걸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노예의 길입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걸인이나 노예의 길이 아닌 자유인으로 살기를 희망합니다. 그게 니체가 말한 차라투스트라입니다. 자기 실존에 대한 자부심 있는 인식과 추구. 그런 자유인이 많아야 시민 사회가 됩니다.

우리는 떼로 몰려 다니며 다수의 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군중의 사회이지 시민 사회는 아니라는 것이 제가 촛불을 보고 느끼는 오늘의 모습입니다.

이병태의 자유주의 대한민국/경제지식네트워크(FEN)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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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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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치보이

    0
    3 months 전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오래전에 펜앤드마이크에서 설명해주신 이병태 교수가 말하는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의 환상 동영상이 펜앤 개편으로 없어져서 참 슬픕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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