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는 대한민국 산업혁명에 도움이 되었나?

일제의 한국 근대화와 해방 후의 산업 혁명의 성과의 상관관계

2023.09.06 | 조회 2.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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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대한민국 이야기

글로벌 경제와 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변혁을 이야기합니다.

일본의 강점기를 통해 조선에 현대적 문물이 들어오고, 일본의 국가 제도가 도입되고, 교육과 사회 인프라 투자가 일어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믿을 만한 경제 통계도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아래 통계들은 일제 강점기를 기점으로 전에 없는 경제성장이 촉발되었다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당 국민소득과 평균 수명이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했고 국민의 교육 연한도 증가하여 인적 자원도 개발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차별적 대우에 의해 일본과 조선인간의 격차는 크지만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대만과 한국 모두 1913-38년 많은 사회 변혁과 함께 국민소득이 빠르게 증가했다. (The Economic Implications of Japanese Colonial Policy in Korea, Alexander Dergay, 2020).

일부 민족사관의 학자들은 이 사실을 부정하거나 일제가 아니더라도 조선이 근대화의 길을 갔을 것이라는 증거도 희박한 "자본주의 맹아론"을 주장하며 정신승리를 시도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런 주장을 하는 학자는 드물다. 문명은 물과 같아서 길만 열리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따라서 제국주의 시대에 당시의 강대국이 지배한 곳으로 지식과 제도가 흘러 들어간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일제 강점기는 노예제도의 중세인 조선과 근대 국가 대한민국을 가르는 분기점이었다. 프랑스의 절대왕정이 붕괴되고 근대국가가 되는 혁명은 1789년의 대혁명과 이어진 1830년 7월혁명, 1848년 2월 혁명까지 약 60년의 피의 혁명을 거쳐서 앙시앵 레짐을 무너뜨린 후 공화정, 제정, 군주정을 오가며 완성한 것을 비교하면 36년만에 조선의 앙시앵 레짐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의 근대국가로 전환된 것은 사실 짧은 사이의 극적인 전환으로 볼 수 있다.  

그림 1: 국민소득과 평균 수
그림 1: 국민소득과 평균 수

 

평균 교육 연한
평균 교육 연한

일제 강점기가 한국과 대만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의 관심은 독립 이후 한국과 대만의 산업화의 성공에 일제 강점기의 일본에 의한 투자가 큰 영향을 미쳤냐는 것이다.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까지 국제적인 주류 역사학자들은 독립 이후의 한국과 대만의 눈부신 경제 개발의 성공 신화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여왔다.  해방 이후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를 받은 두 나라가 다른 전후 독립국가에 비해 기적적인 산업화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Lipton Matthews, Was Japanese Colonialism the Engine of Later Prosperity for Korea and Taiwan? Probably Not, 2023).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당연히 일제 강점기에 사회 기반 시설 (도로, 철도, 농지의수로)과 근대적 의료와 교육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많은 제도, 특히 법치와 관료주의가 도입되었고, 일본의 기술 또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민지 또는 점령지의 정책이 이후 대만과 한국의 경제 성공의 주요 원인인가를 판단하려면 위에서 말한 당시의 인적 자원과 사회 기반 시설들의 투자가 서구의 다른 제국주의의 식민지들과 달랐는 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런던 대학의 경제학자 Anne Booth가 이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의 논문은 "일본 식민지가 정말 도움이 되었는가?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경제 성과" (Did It Really Help to be a Japanese Colony?: East Asian Economic Performance in Historical Perspective, 2005)라는 논문이다. 

결론은 "아니다"이다.

식민 시절 초기의 한국과 대만의 경제 개발은 일견 '경제개발 국가' (a developmental state)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이것이 지속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있다.  대만의 중국계 국민의 평균 신장의 성장과 기타 후생 지표들은 30년대에 들어가면서 정체되었다.  조선의 일인당 칼로리 섭취량도 증가를 조기에 멈추고,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은 20년대와 30년대에 하락하였다.  인프라 투자도 일본 기업에 대해 영세한 조선이나 대만 기업보다는 일본 기업들에게 대부분 혜택이 돌아갔고 투자의 목적도 산업이 아니라 군사적, 지정학적 목적 하에 이루어졌다는 등의 사실이 초기의 경제성과가 경제 개발에 성공하는 나라들처럼 지속하지 않았다는 점이 일본의 영향을 과도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첫번째 반론이다. 

두번째는 일본이 대만과 조선반도에서 이룬 투자 성과가 다른 동남아시아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에 비해 절대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만의 식민 초기 경제성장은 대부분 농산물 가공업의 투자에 의존한 것인 반면  조선의 제조업 발전은 인상적이였지만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력의 비중은 인도네시아가 더 높았다.  일본의 관료주의가 더 진보적이었다는 Atul Kohli의 주장에 대해 Booth는 20세기 첫 10년의 모든 식민지 경영 국가들은 재정과 세금의 효과적 관리를 위해 모두 효율적인 정부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1910년대 조선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급하게 증가했지만 1929년이 되면 조선의 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이 지배했던 필리핀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와 차이가 없었다.   일제에 의해 30년대 말에 한국과 대만에 도로와 철도를 건설하여 대부분의 동남 아시아에 비해 우월적 교통망을 갖추었지만 이 또한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자바에 비해 우월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 지배하의 말라야 (지금의 말레이시아 지역) 또한 우수한 교통망과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과 대만의 수로 역시 유럽 열강이 지배하에 있던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도 같은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졌었다.  인구학적으로도 일본의 식민 지배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와 큰 차이가 없었다. 대만의 영아 사망율은 영국 지배하의 말라야(Malaya) 보다 낮았다. 

말라야의 학교에 등록한 사람들이 말레이 인들보다는 인도와 중국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교육 투자도 영국 식민지 말라야가 조선과 대만 보다 높았다. 조선과 대만이 초등학교 중심의 교육이었던 반면 필리핀은 40년대 초에 4만명 이상이 중등 교육을 받았다.  대만과 조선에 학교가 설립되었지만 고등교육에는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1944년내 이르러 조선의 14% 미만의 국민이 초등교육을 받았지만 그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2%도 되지 않았다.  반면에 미국은 필리핀에서 중고등학교 교육 투자에 훨씬 열성적이었다.  인프라 투자도 네덜란드가 자바에 한 투자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교육 투자에 관대했던 미국은 필리핀인들을 공무원 등 고위직에 과감하게 고용하였다.

Booth의 결론은 일본의 식민지 투자와 성과는 유럽 열강의 그것에 비해 우월했던 것이 아니라 유사하거나  더 낮았다는 것이다.   결국 독립 이후의 대만과 한국의 눈부신 성과가 일본의 식민 투자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인과관계가 희박한 주장이라는 것을 당시 식민지 간의 비교를 통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론은 이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 대한민국 국민의 성과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로 알게 해준 좋은 논문을 소개 드렸다. 

P.S 오늘의 명언
게으름은 시간은 느리게 흐르게 하지만, 세월은 빠르게 지나게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시간을  늦게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하지만  세월은 길게 (많은 것을 성취하게) 만든다.

Idleness makes hours pass slowly and years swiftly. Activity makes the hours short and the years long. -  Cesarean Pav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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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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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차

    0
    about 1 year 전

    여러가지 관련 수치로는 논문의 주장함이 옳을지는 모르나....한일합방이라는 사건 없이 조선왕조 가 2023년까지 존속되었다면 과연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ㄴ 답글 (1)
  • 자유

    0
    about 1 year 전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일제가 들어와서 법치가 바로(비교적) 서고 사유재산재도가 인정되는 사회 - 즉, 근대화가 된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유교의 조선 감옥이 남녀가 같이 투옥되고 너무 불결해서 일본인들이 놀라서 급하게 개혁한 것 중 하나라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일제강점기' 라는 표현은 북조선이 우리나라 역사를 일제강점기와 그 후 미제강점기로 나누고 있는 것을 종북 역사학자들이 가져와서 쓴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 쓰던 대로 일제시대라고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말라야 대비 대만 영아 사망율이 낮은 것은 차이가 없는 게 아니라 대만이 더 좋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지요. 앞으로도 좋은 공부 많이 시켜주세요. 늘 고맙습니다.

    ㄴ 답글 (1)
  • 더조은놈

    0
    about 1 year 전

    교수님 안녕하세요 잘 읽어보았습니다. 시간을 내어 다시 정독하겠습니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소원합니다...

    ㄴ 답글
  • 카이로스

    0
    about 1 year 전

    조선이 망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건국될 수 있었다'는게 제 생각인데, 이 글이 도움이 되네요~

    ㄴ 답글
  • 그대안의 산

    0
    about 1 year 전

    논문 소개 감사합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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