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의 섬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외딴 산속에 와 있다.
생필품이 대부분이라 금방 줄어 들겠거니 했던 짐은 시간을 거치며 조금씩 더 늘어났고 관광지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벗어난 이 산속까지 이고 지고 오느라 캐리어 한쪽 바퀴는 박살나기 일보직전이다. 부디 돌아갈때까지 잘 버텨줬으면..
섬에서의 생활이 느리고 여유롭게 흐를거라 상상한 것과는 아예 정반대로 매일매일 먹고 만들고 사람을 만나느라 본의아니게 기록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회고해보는 지금과 같은 시간도 없었다. 여기 산속은 나 뿐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른 컨테이너에 H상이 거주하여 완전한 혼자는 아니지만, 모든 멤버가 매일 있는 것도 아닌 분위기에 우연히 흘러들어오는 사람조차 없을 이곳이 오히려 더 '섬'으로써 있기에 적합한 장소인 것 같다.
바다와 섬은 바람을 동반한다. 또 그 바람이 여러 사람을 내게로 데려다주었다. 이 부분에대해 곱씹고 기록하려면 시간이 더 지나, 회상을 거쳐 더 많은 시간동안 분류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은 막 정착한 이 산속에 재빨리 적응해야 한다.
안그래도 S상과 N상의 도움으로 이런저런 외지에서의 생활 루틴을 터득하여 산에 정착한 첫날 버스를 타고 번화가로 내려가 마트와 편의점 여러곳을 전전하며 내게 가장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앞으로도 조금씩 또 이렇게 내 짐을 늘려가야 할것이다. 이곳에서 버스는 하행선 기준 1시간에 1대씩 있다(아마 상행은 더 자주있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페리시간에 비하면 어렵지 않으나 그럼에도 장소 명칭대로 산중이라 조금 긴장을 하고 대중교통 시간을 지켜야한다.
아침으로 버터와 꿀을 올린 토스트, 계란 후라이, 비엔나 소세지 2개와 커피를 마셨다. 최근에 생긴 습관이다. 이상하리만치 새벽에 눈이 떠지고, 아침부터 정신이 맑아 아침밥을 먹지 않을수가 없었다. 마트에서 먼저 확보한 것도 아침 식재료였다. 점심으로는 간계밥에 볶은 김치를 올려 먹었다. 일본의 김치와 간장 맛은 아무래도 좀 약해서(부드럽달까 달다고나 할까) 간을 더 하게 된다. 그래도 이래저래 점심까지 챙겨먹었다. 낡은 팬은 제 기능을 다하여 계란후라이가 사정없이 뜯어진다. 그럼에도 왠지 안심이 된다. 평소에 다들 요리를 안하는 것인지(주방 상태를 보면 알 수 있긴 하지만) 외국인 정착 1.5일차 이것저것 사서 요리하는 게 신기한가보다. "뭐 해먹는거야?"라는 식의 대화를 꽤나 오래한다.
어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내 안의 쇼맨쉽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건진 모르겠다. 어떤 프로그램을 할건지, 전시를 할건지 여러번 내게 물었는데 그것이 원인인걸수도 있다. 부담으로 여길 생각은 없다. 부담이 있다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내가 간청하여 초래한 결과이기 때문.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는 유쿠리(천천히) 인 것 같은 얼굴로 대하고 있다. 잊지말자. 편하게 그러나 거리를 두고..
사실 별로 하고싶은 것도 없고 애초에 일본에 오는 것,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재료를 사서 또 한번의 수습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계속 잠이 온다. 안심돼서일까 아니면 번아웃인걸까(좋은 의미의?)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걸까.. 스스로에 대한 그 무엇도 늘 분명히 알 수 없다. 긴장을 너무 풀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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