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으로부터 1호

온 바다가 당신의 스튜디오

2023.11.20 | 조회 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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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예은으로부터

비행하며 세상을 마음껏 음미하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영감을 글로 기록하고 내용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2023-11-20

구독자에게

예은으로부터 1호

바르셀로나의 첫번째 이야기를 보냅니다.

바르셀로네타의 아침 _ photo by Y
바르셀로네타의 아침 _ photo by Y

 

[ 아침 6시 50분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길게 늘어진 산책로가 있습니다.]

[그 앞의 조각상에서 만나요.] 

 

알겠어요. 곧 봐요. 답장을 보내 놓고 화면을 끈다. 택시 창문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새벽 6시 20분.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 나는 요가를 하러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향하고 있었다. 전날 먹은 샹그리아병 수를 머리로 세어본다. 하마터면 출발 못할뻔했으니까. 족히 4병은 넘었을 거야. 괜히 아침 요가 예약했어. 잠이나 더 잘 걸. 그런 불평들을 머릿속에늘어놓다 보니어느새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요가 선생님 안젤리나가 말한 조각상 사진을 눈에 담고, 주위를 둘러본다. 저기 어디쯤 있겠군. 발걸음 옮기며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어둔다. 그렇게 걷는 5분. 택시 안에서 밀려온 불평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해가 천천히 뜨고 있던 바르셀로네타의 바닷가에는 그 산책로를 따라 시멘트 바닥을 연습장 삼아 각자의 수련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떤 사람들은 모여서 요가하고, 어떤 이는 홀로 앉아 명상, 달리기, 자전거 타기를 한다. 땅 넘어 바다에는 일출과 함께 패들보드를 타고 있었다. 아침이라 그런 걸까? 바르셀로네타라서 그럴까? 유난히 온 세상이 깨어있는 듯했다.

 

"So, This is my studio and your studio too."

 

안젤리나 (요가 선생님)은 바다가 보이는 시멘트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자, 여기 이 바닥이 나의 스튜디오야. 넓지? 바다까지 보여. 라고. 맞는 말이다. 어디든 매트를 깔면 그곳이 우리의 오직 하나뿐인 스튜디오가 된다. 중요한 것은 행하는 장소가 아니라 행함에 있고 마음에 있으니까. 요가 시퀀스를 끝내고 마무리 명상을 하다 평소와 달리 스르르 눈이 떠졌다. 아침 해가 눈꺼풀에 닿았는데, 그 온도가 마치 두 손을 마주 대몇 번 삭삭 비벼 눈을 살포시 덮었을 때처럼 따스해서, 그래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얼굴부터 목을 타고 흘러 양반다리를 한 내 다리까지 온몸에 가득 담기던 일출, 따스함과 뜨거움의 중간 점, 파도 소리, 그리고 아침 해를 나만큼이나 한껏 머금은 윤슬.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는 장소가, 나의 수련원이었다. 딱딱한 시멘트 부둣가에 매트를 깔면 어때? 이 자연이 모두 나를 환영해. 돈으론 살 수 없는 이 경이로움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게 더 큰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바르셀로네타의 요가 스튜디오 _ photo by Y
바르셀로네타의 요가 스튜디오 _ photo by Y

 

"사진 찍어줄까요? 멀리서부터 바라봤는데, 지금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아뇨. 괜찮아요! 그냥 명상한 것뿐인데요." 

 

  수업을 마친 후, 옆에 앉아 홀로 1시간 30분이 넘게 명상을 하던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둑한 새벽에서 해가 떠오를 때까지 스트레칭하고 호흡 명상을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자꾸 눈이 갔다. 나였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을 것 같아, 오지랖을 좀 부렸다. 친절한 미소로 '특별한 일은 아니라. 사진은 괜찮다.. 챙겨온 백팩에 가져온 담요 한장을  넣고, 자전거 열쇠를 꺼내 든다. 자전거 자물쇠를 풀며 '오늘 해가 뜨거운 걸 보니 날씨가 좋을 것 같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인사한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유유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SNS의 정반대 같은 사람. 그 여운이 깊어 글을 쓰는 지금(무려 2개월 후)도 떠나는 어느 명상가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남들이 모르는 자신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온전히 나 혼자 즐기는 태도. 참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

바르셀로나의 어느 명상가 _ photo by Y
바르셀로나의 어느 명상가 _ photo by Y

 '지금 내가 이 맛있는 걸 먹고 있어.'.'지금 내가 이렇게 멋있는 걸 하고 있어' 등등 나도 모르게 자랑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던 요즘이다.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마음의 근육은 또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을지. 그 여운을 곱씹어 본다.

 

여름과 가을 사이, 바르셀로나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 이 도시의 여행자로 온 것이 벌써 여섯번쯤은 돼서 더 그렇다. 그냥 매일 오늘 아침처럼 보내볼까? 해변에 앉아 요가하고, 나 아닌 다른 운동가를 구경해 보자. 그러다 윤슬이 눈에 닿으면 한참 동안 눈부심을 눈에 담자. 어스름한 새벽이 가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얼굴에 닿는 해를 그대로 받아들이자. 뜨거운 햇살에 내 얼굴에 주근깨가 생길 수도, 혹은 발갛게 탈 수도 있다. 그런들 어떠한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도시의 자연을 그대로 만끽하자. 햇살이 가득한 그라시아 거리를 걷다 더우면 그늘로 들어가, 선선한 바람을 다시 느끼면 된다. 그렇게 지중해 날씨의 매력에 기분 좋게 한껏 취해보자. 이곳에 머무는 동안 무언가를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오래 앉아 바라보고, 더 깊게 느끼고, 더 세세하게 기록할 것. 이게 나의 호시절임이 분명하니. 이 시절의 향과 맛을 분명히 음미할 것. 당장에 떠오른 하고 싶은 일들을 반드시 해볼 것. 그게 나의 삶이니까 ! 23년 9월 22일 아침 9시 49분. Barceloneta honest greens에서 예은.
23년 09월 22일 아침 9시 49분 바르셀로네타 어느 카페에서 쓴 글
23년 09월 22일 아침 9시 49분 바르셀로네타 어느 카페에서 쓴 글

 

 

 

Qustion.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혼자 꾸준히 해온 무언가가 있나요?

(취미, 운동, 공부 등등...)

Answer . 혼자 생각해보기, 글로 써보기, 예은에게 보내주기 기타 등등.

 

 

 

그럼, 바르셀로나 두번째 이야기에서 만나요. 

 

 

 

23년 11월 20일 월요일.

예은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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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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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현

    1
    6 months 전

    언니가 느낀 순간들 속으로 순간이동 한 듯 섬세하고 다정한 글. 너무 고마워 🤍 독감 얼른 말끔히 낫길 기도해 !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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