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사치품이지만 금은 자산이에요. 주변 애들 다 그렇게 생각해요."
플렉스에서 헤지로, 패러다임의 대전환
2024년 금 가격이 온스당 평균 1,950달러를 기록하며, 투자기관들은 2025년 말까지 금값이 온스당 3,00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2025년 8월 29일 기준 금 가격이 3,448.50달러로 상승하여 전년 동기 대비 37.77%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금 투자 열풍의 중심에 MZ세대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Z세대의 명품 소비 비율이 2018년 38.2%에서 2020년 44.9%로 증가하며 '플렉스 세대'로 불렸던 이들이 이제는 금고에 금괴를 쌓고 있다.
이는 단순한 투자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다. MZ세대가 겪고 있는 구조적 위기에 대한 본능적 대응이자, 기존 소비주의에서 생존주의로의 철학적 전환을 의미한다.
사상 초유의 '가난해지는 세대'
사상최초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세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월급만으로는 살 집을 마련할 수 없게 되면서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관심이 많다는 분석이 MZ세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유년기에는 IMF 외환위기를, 성장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제적 불안정성을 체득했다.
부모세대가 "성실히 일하면 언젠가는 집을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는 끝났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을 넘어선 지금, 연봉 4,000만원의 20대가 집을 사려면 25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현실에서 명품 소비는 사치를 넘어 '무책임한 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경고했듯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상회하는 시대에서 노동소득만으로는 부의 축적이 불가능하다. MZ세대는 이 이론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첫 번째 세대다.
명품은 소멸하지만 금은 영원하다
명품 가방의 평균 수명은 10년 내외다. 사용하면 할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트렌드가 바뀌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반면 금은 5,000년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가치가 0이 된 적이 없는 유일한 자산이다.
"예전에는 인스타에 올릴 가방을 샀다면, 이제는 미래에 팔 수 있는 금을 사요." 25세 직장인 박모씨의 말이다. MZ세대의 소비 기준이 '지금 당장의 만족'에서 '미래의 안전망'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2024년 11월 기준 귀금속 결정사가 1,974개소로 5년 전인 2019년 1,610개소보다 22.6% 증가했다. 젊은 층의 금 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플레이션 시대의 방어적 자산
현재 한국의 실질 금리는 사실상 마이너스다. 기준금리 3.5%에 물가상승률 3%를 고려하면 실질 수익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반면 인플레이션 지속, 통화 완화 기대,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금 상승의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월렌 버핏이 "인플레이션은 부자에게는 세금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몰수"라고 했듯이,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계층은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는다. MZ세대가 금을 사는 이유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화폐 가치 하락에 대한 보험'인 셈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아날로그 회귀
역설적이게도 가장 디지털에 친숙한 MZ세대가 가장 아날로그적인 자산인 금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암호화폐 투자로 큰 손실을 겪은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비트코인이 하루에 20% 폭락할 수 있지만, 금은 5,000년간 단 한 번도 가치가 0이 된 적이 없다.
"코인으로 3,000만원 날렸어요. 이제는 확실한 것만 해요." 27세 스타트업 직원의 솔직한 고백이다. MZ세대는 변동성 높은 투자에서 안정성 있는 실물자산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소유에서 안전으로
MZ세대는 사회의 공정과 정의에 상당한 가치를 두고 있으며, '미닝아웃'을 통해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소비행위로 표출한다. 이들에게 금 투자는 단순한 재테크가 아니라 불공정한 경제 시스템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다.
과거 부모세대가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다"는 믿음으로 살았다면, MZ세대는 "시스템이 불공정하니 스스로 헤지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다. 금 투자는 이런 인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명품 브랜드의 위기, 귀금속 업계의 기회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Z세대의 명품 소비 패턴이 기존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브랜드 스토리보다는 실용성과 투자가치를 우선시한다.
반면 국내 귀금속 업계는 호황을 맞고 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개인투자자의 금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했다. 특히 20-30대의 비중이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생존주의 시대의 투자철학
MZ세대의 금 투자는 '생존주의(Survivalism)'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들은 기존 사회계약이 붕괴되고 있다고 보며, 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금은 최후의 안전자산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가 "자산 가격은 결국 사람들의 심리와 믿음을 반영한다"고 했듯이, MZ세대의 금 투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존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다.
새로운 부의 정의
"명품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만, 금은 지켜내기 위한 것이에요." 29세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말이 MZ세대의 새로운 가치관을 압축한다. 이들에게 진짜 '럭셔리'는 브랜드 로고가 아니라 경제적 자유와 안전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한 '문화자본'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명품이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실물자산 보유가 진정한 부의 지표가 되고 있다.
결론: 투자가 된 소비, 소비가 된 투자
MZ세대의 금 투자 트렌드는 소비와 투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를 보여준다. 이들은 더 이상 소비와 투자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지출이 투자 관점에서 검토되고, 모든 투자가 생존 전략의 일부로 고려된다.
전문가들이 2025년 말 금 가격을 온스당 3,634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MZ세대의 금 투자는 단순한 투기가 아닌 시대적 요구에 대한 합리적 대응으로 평가된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찰나의 만족이 아닌 지속가능한 미래다. 명품 대신 금을 선택하는 MZ세대의 모습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생존 전략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투자는 소비가 아니라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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