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신년맞이 잘 하고 계신가요?

정신없이 연말을 보내다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해가 바뀌어 새해가 밝았네요!🌅 2024년이라니,,, 어릴 때 영화 속 미래 도시에서 봤던 년도였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요🥲

구독자님은 연말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나요? 

저는 집에서 쉬면서 드라마 <소년시대>를 정주행 했는데요. 최근에 화제성도 높았고, 주변에서 추천도 많이 받아서 보게 되었어요. 배우들 연기도 좋고 연출도 좋아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임시완, 이선빈 주연의 <소년시대>는 1989년 충청남도, 안 맞고 사는 게 일생 일대의 목표인 온양 찌질이 '병태'가 하루아침에 부여 짱으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대한 드라마입니다. 병태(임시완 역)는 부여에 이사오면서 전설적인 짱 '아산 백호'로 오해를 받게 되고, 한동안은 이 오해 덕에 불량 학생들에게 맞지 않고 생활하게 됩니다. 점차 대담해지던 병태 앞에 진짜 '아산 백호' 경태가 나타나면서 병태의 실체가 밝혀지게 되고, 병태는 매일 맞으며 지옥같은 학교 생활을 하게 되죠. 이때, 불량 학생들에게 피 터지게 맞는 것보다 병태를 힘들게 했던 것은 다른 약한 친구들에게 폭력을 써서 수금을 해 백호에게 갖다 받치는 것이었죠. 

드라마 속 학생들은 잔인한 권력의 피라미드에 따라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동급생 혹은 상급생에게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학교 생활을 보냅니다. 자신보다 힘이 쎈 학생이 물건을 빼앗고 때려도 저항할 의지도 없이 상황을 받아드리죠. 당연히 어른들의 보호는 기대하지 않고요.

EP.8 |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드라마에서는 악행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학생들의 일상을 자세하게 그렸는데요. 이를 보다보니 '악의 평범성'이 떠올라서 오늘의 글감으로 가지고 왔어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독일계 미국인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1963년에 집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1961년 4월 11일 아돌프 아이히만의 공개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을 작성한 것이 출판된 책인데요. 아렌트는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이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었으며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960년 아이히만이 체포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60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이 포악한 성정을 가진 악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직접 공개재판을 지켜본 아렌트는 피고석에 앉아 있는 아이히만에게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죠.

아이히만은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고, 어떤 이념에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죠.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칸트까지 인용하며 명령을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비록 그 명령이 수백반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일지라도 말이죠.😓

자신이 저지른 일과 자신의 책임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히만을 보며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습니다. 일상성에 묻혀 '누구나 다 이러는데', '나 하나만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명령받은 대로 하기만 하면 돼' 등의 핑계로 스스로 사고하기를 그만둔다면,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도 언제든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 <소년시대>에서 배경으로 하는 1980년대 부여 학생들의 문화에서는 육체적 힘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 구조가 당연시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학교 짱의 명령으로 힘이 약한 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돈을 빼앗는 행위가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행해졌습니다. 개개인으로 보면 그저 해맑고 철없는, 평범한 십대 남학생인데 말이죠. 이때 병태는 폭력이 당연한 구조 속에서도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구조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힘을 키워 직접 악의 무리를 제압합니다. 반면에 악의 무리, 즉 불량 학생들 무리 중 양철홍이라는 캐릭터는 악의 평범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철홍은 마지막에 주인공인 병태에게 일종의 심판(?)을 받을 때 '자신은 그저 백호의 명령을 따른 것 뿐이기에 억울하다'며 울부짖죠.

이처럼 아무 생각없이 그저 명령에 따라 악을 자행했던 철홍 캐릭터를 보며 한국의 가까운 역사 중에서 5.18 민주화 운동이 떠오르더라구요. 당시 군인들은 명령에 따라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었죠. 그리고 제 자신도 평범한 악에 길들여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어요. 제가 몸을 담고 있는 무리 혹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아무 생각없이,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기계적으로 악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어요.🥲

오늘은 어쩌다보니 조금 무거운 주제에 대해 글을 썼는데요. 그래도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세지를 철학에 대입해서 이해하며 드라마를 정주행하니까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럼, 구독자님에게 오늘의 글감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글감 저장소였습니다:-)

조만간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