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주니퍼 베리의 마법

당신이 몰랐던 보태니컬의 교향악

2025.04.29 | 조회 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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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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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술 이야기 열 두 번째 뉴스레터 입니다.

오늘은 수십 가지 식물의 영혼이 춤을 추고 있는 '진'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진의 탄생

 

진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중세 수도원의 약초 정원에서 시작해요. 11세기, 이탈리아 살레르노의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증류 기술을 활용해 '아쿠아 비타에(생명의 물)'를 만들었고, 이것이 진의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초기 증류주는 주니퍼 베리(향나무 열매)를 포함한 각종 약초를 발효시킨 와인을 증류해 만들었어요.

수도원 의학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의학 체계였어요. 9세기 카시노 산의 성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시작된 '살레르노 의학 학파'는 아랍과 그리스 의학 지식을 통합했고, 허브와 증류주의 치료 효과를 체계적으로 연구했죠. 이들이 작성한 '살레르노 건강지침서(Regimen Sanitatis Salernitanum)'에는 주니퍼 베리로 만든 약용 증류주가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를 돕고, 독소를 제거한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주니퍼 베리
주니퍼 베리

 

고대부터 주니퍼 베리는 치료 효과로 높이 평가받았어요. 히포크라테스는 주니퍼 베리가 소화를 돕고 가슴 통증을 완화한다고 기록했고, 로마의 갈레노스는 전염병 예방에 주니퍼 연기를 사용했죠. 16세기 영국의 '치유자의 책(The Grete Herball)'에는 주니퍼 베리가 "폐질환, 기침, 위장병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해요. 당시 이 음료는 오로지 약용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해요.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던 시절, 주니퍼 베리가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거든요.

 

알렘빅(Alembic)
알렘빅(Alembic)

 

수도사들은 주니퍼 베리의 강한 향이 '나쁜 공기'를 정화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연구실은 마치 오늘날의 실험실과도 같았어요. 구리 증류기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한 방울의 액체가 귀중한 약으로 여겼으니까요. 초기의 증류 장치인 '알렘빅(Alembic)'은 8세기경 아랍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 개발한 것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유럽으로 전해졌어요. 이 기술이 약용 증류주 발전의 핵심이 되었죠.

이 '약'은 종교 의식에도 사용했고, 왕족과 귀족들의 건강 비결로도 전해졌어요. 그러나 그 맛은 오늘날의 진과는 거리가 멀었죠. 매우 강한 알코올에 날것의 허브 향이 강하게 배어 있어, 마시기보다는 바르거나 소량만 복용했다고 해요. 중세의 어두운 수도원에서 빛나던 이 액체가 후에 세계적인 증류주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죠?

 

🌊 네덜란드의 '제네버'에서 영국의 '진'까지

 

진의 진정한 시작은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났어요. '제네버(Genever)'라고 불린 이 음료는 몰트 와인(malt wine)에 주니퍼 베리와 여러 허브를 넣고 증류했는데, 오늘날의 진보다는 위스키에 가까운 맛이었죠. 황금빛을 띠며 몰트의 풍미가 강했던 제네버는 '네덜란드의 용기(Dutch Courage)'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30년 전쟁 당시 영국 병사들이 전투 전 용기를 내기 위해 마셨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어요.

 

빈티지 제네버
빈티지 제네버

 

제네버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었어요. 남부 네덜란드(현재의 벨기에)에서는 '우드 제네버(Oude Genever)'라 불리는 전통적인 스타일이 인기였는데, 이는 몰트 와인 베이스에 주니퍼 베리와 함께 코리앤더, 안젤리카 뿌리 등을 사용했어요. 북부 네덜란드에서는 '용(Jong) 제네버'라 불리는 가볍고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했죠. 스힐담,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같은 도시들은 각자의 제네버 스타일로 경쟁했고,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에 이 도시들의 제네버는 유럽 전역에 수출되는 인기 상품이었어요.

제네버가 영국으로 건너온 것은 역사적 우연이었어요. 1688년 네덜란드의 윌리엄 오렌지 공이 영국 왕으로 즉위하면서(윌리엄 3세) 네덜란드의 음료 문화를 영국에 소개했죠. 이 시기는 '영광스러운 혁명(Glorious Revolution)'으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두 나라 사이의 교류가 활발했어요. 윌리엄 3세는 제네버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고, 영국 증류업자들에게 세금 혜택을 주었죠. 게다가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의 갈등으로 브랜디 수입을 금지했기 때문에, 대체 증류주가 필요한 상황이었고요.

이때부터 영국식 진의 역사가 시작해요. 영국 증류업자들은 제네버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했어요. 몰트 베이스 대신 순수한 곡물 중성 주정을 베이스로 사용하고, 주니퍼 베리의 비중을 높였죠. 이는 맛의 선호도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유도 있었어요. 곡물 잉여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 정책과 맞물린 거죠. 결과적으로 영국 증류업자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맑고 깔끔한 진을 만들었어요. '진(Gin)'이라는 이름도 '제네버(Genever)'를 영국식으로 줄여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의 이 증류주 교류는 마치 양국의 문화적 대화와도 같았어요. 한 나라의 전통이 다른 나라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한 흥미로운 순간이었죠. 버나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1714)는 "네덜란드인들의 건강한 주정이 영국에서는 저급한 대중의 술이 되었다"고 기록하며 이 문화적 변용을 비평했어요.

 

🍸 런던의 진 레인과 사회적 파장

 

18세기 초 영국은 전례 없는 '진 광풍(Gin Craze)'에 휩싸였어요. 1690년 윌리엄 3세가 곡물 증류를 장려하고 수입 증류주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작한 현상이었죠. 그 결과 런던 곳곳에 진 판매점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1730년대에는 런던 전역에 7,000개가 넘는 '진 샵'이 있었다고 해요. 상상이 되나요? 거의 모든 골목마다 진을 파는 가게가 있었던 셈이에요.

진 빈민가(Gin Alley)라 불리던 런던의 세인트 자일스(St. Giles) 지역은 특히 상황이 심각했어요. 역사학자 제시카 워너(Jessica Warner)는 이 지역을 "술과 죄악의 늪"이라고 묘사했죠. 값싼 진을 파는 진 샵들은 보통 'Dram Shop'라고 불렸는데, 이는 작은 도자기 잔으로 진을 판매했기 때문이에요. 한 기록에 따르면, 1750년경 런던 시민들이 매년 1천만 갤런의 진을 소비했다고 해요. 당시 런던 인구가 약 70만 명이었으니, 성인 1인당 연간 14갤런(약 53리터)을 마신거에요.

당시 제조한 진은 품질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종종 테레빈유, 황산, 심지어 황화수은 같은 위험한 물질로 '향미를 강화'했다고 해요. 오늘날 칵테일에 레몬이나 라임을 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첨가물'이었죠. 특히 저렴한 진을 만들기 위해 '터펜틴 오일(turpentine oil)'을 첨가해 주니퍼 베리 향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유해 물질이 함유된 진을 '올드 톰(Old Tom)'이라 불렀고, 후에 이 이름은 달콤한 스타일의 진을 지칭하게 되었죠. 이렇게 위험한 진이 영국 서민들 사이에서 물보다 싸게 팔리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어요.

 

GIN LANE(진 레인)
GIN LANE(진 레인)

 

이 시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윌리엄 호가스의 유명한 판화 '진 레인'(1751)이에요. 이 그림에는 진에 취해 아이를 떨어뜨리는 여성, 폐허가 된 건물들, 혼란스러운 거리를 묘사했죠. 당시 런던의 일부 지역은 말 그대로 '진의 바다'였던 셈이에요. 헨리 필딩, 다니엘 디포, 조나단 스위프트 같은 당대 문학가들도 진으로 인한 사회 문제를 작품에서 다루었어요.

이에 정부는 일련의 'Gin Acts'을 제정했어요. 특히 1736년에는 진 판매에 높은 세금(갤런당 20실링)을 부과했고, 진 판매 허가증도 연간 50파운드라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책정했죠. 그러나 이런 강경 정책은 오히려 불법 증류와 밀매를 부추겼어요. 민중들은 "진을 더 마시자, 세금은 덜 내자(Drink more gin, pay less tax)"라는 구호를 외치며 저항했고, '진 폭동(Gin Riots)'도 일어났죠.

결국 1751년에는 더 현실적인 접근법을 택했어요. 허가증 비용을 낮추고, 대신 진 판매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어요. 이 법안은 '맥주와 증류주에 관한 법(Beer and Spirits Act)'이라고도 불렸는데, 맥주 소비를 장려함으로써 강한 증류주 소비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어요. 1751년부터 1757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친 Gin Acts를 시행했고, 마침내 무분별한 진 소비를 줄이게 되었죠. 이 시기는 알코올이 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규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았어요.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고품질 진은 이런 어두운 역사를 거쳐 발전한 결과물이에요.

 

🚢 지구를 돌아온 진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영국은 '대영제국의 술'로서 진을 전 세계로 퍼뜨렸어요. 영국 해군은 특히 진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했죠. 당시 해군 선원들은 괴혈병 예방을 위해 매일 라임 주스를 섭취해야 했는데, 쓴맛을 가리기 위해 진을 섞어 마셨어요. 이것이 바로 유명한 '진 앤 라임'의 시작이었어요. 영국 선원들을 'Limey'라고 부르는 별명도 여기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진은 해군 배급품의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1731년부터 영국 해군은 공식적으로 매일 선원들에게 '네이비 그로그(Navy Grog)'라는 음료를 제공했는데, 이는 럼이나 진을 물로 희석한 음료였죠. 선원들은 배급받은 술을 'splicing the mainbrace'라고 불렀어요. 흥미로운 점은 진이 때로는 화폐 역할도 했다는 거예요. 일부 식민지에서는 현지 통화 대신 진 한 병이 교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죠. 남아프리카에서는 이를 '진 화폐(gin-currency)'라고 불렀어요.

해군의 의료 장교였던 토마스 트로터는 1797년에 이렇게 기록했어요. "선원들의 건강 유지에 진과 라임 주스의 혼합물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꽤 과학적인 접근이었죠? 물론 그들은 비타민 C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경험적으로 그 효과를 발견한 거예요. 제임스 린드(James Lind)의 선구적인 1747년 연구는 감귤류가 괴혈병을 예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는 해군의 진-라임 정책의 과학적 근거가 되었어요.

 

퀴닌(Quinine)
퀴닌(Quinine)

 

영국이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영국인들은 진을 인도, 아프리카, 극동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 전파했어요. 특히 인도에서는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복용하던 퀴닌의 쓴맛을 중화하기 위해 진을 섞어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진 앤 토닉'의 기원이에요. 식민지 관리들은 매일 저녁 'sundowner'라 불리는 이 음료를 마시며 더위와 질병을 이겨냈다고 해요.

식민지에서는 현지 재료로 독특한 진 변형을 만들어내기도 했어요. 인도에서는 현지 향신료인 카다몸, 계피, 아니스가 들어간 '붐베이 사파이어(Bombay Sapphire)'의 원형이 되는 레시피가 개발되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판단(pandan) 잎과 레몬그라스를 활용한 진 칵테일이 인기를 끌었죠. 아프리카에서는 현지 과일인 바오밥과 마룰라를 활용한 실험적 진이 만들어졌어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현지 재료들이 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동남아시아의 향신료, 인도의 허브, 아프리카의 과일 등을 실험적으로 진에 첨가했죠. 이것이 오늘날 다양한 보태니컬을 활용한 현대 진의 모태가 되었어요. 제국주의의 어두운 역사 속에서도, 문화적 교류는 새로운 맛의 발견으로 이어졌던 셈이에요.

 

📈 잊혀졌다 부활한 진

 

20세기 들어 진은 긴 침체기를 겪게 됐어요.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은 물론이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보드카, 위스키 같은 다른 증류주의 인기 상승으로 사람들이 진을 점차 '구식' 술로 여기기 시작했죠.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젊은 세대에게 진은 '할머니가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고 해요. 상상이 되나요? 지금과 다르게 진이 한때는 구식 취급을 받았던 거예요.

20세기 중반 마케팅의 변화도 주목할 만해요. 1950-60년대 진 광고는 성 역할과 소셜 스테이터스를 강조했어요. Gordon's는 "영국인의 진(The Englishman's Gin)"이라는 슬로건으로 남성성과 사회적 지위를 강조했고, Beefeater는 런던 타워의 경비원 이미지를 사용해 전통과 권위를 내세웠죠. 이런 마케팅은 진을 '고급 술'로 포지셔닝하려는 시도였지만, 젊은 세대와는 잘 맞지 않았어요.

 

Bombay Sapphire
Bombay Sapphire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진의 부활이 서서히 시작했어요. 1987년 Bombay Sapphire를 출시함으로써 프리미엄 진 시장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죠. 그 유명한 푸른색 병과 10가지 보태니컬을 강조한 마케팅으로 진을 다시 '세련된' 술로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했어요. 특히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가 디자인한 푸른색 사파이어 병은 진 병 디자인의 혁명이었고, 이후 많은 프리미엄 진들이 독특한 병 디자인을 경쟁적으로 선보이게 됐어요.

 

Sipsmith Gin
Sipsmith Gin

 

진정한 르네상스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본격화했어요. 2009년, 영국의 Sipsmith이 런던에서 200년 만에 처음으로 소규모 증류소 면허를 받게 되면서 크래프트 진 혁명의 문을 열었어요. 창립자 Sam Galsworthy와 Fairfax Hall은 다년간의 법적 투쟁 끝에 영국의 낡은 증류법을 바꾸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소규모 증류소의 붐을 일으켰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천 개의 소규모 증류소가 문을 열었고,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죠.

 

Spanish Gin and Tonic
Spanish Gin and Tonic

 

진 르네상스의 또 다른 주역은 스페인이었어요. 2000년대 초반 스페인에서 시작된 '진토닉 혁명'은 이 클래식 칵테일을 재발견했어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바텐더들은 큰 와인잔에 화려한 가니쉬를 곁들인 '스페니시 진토닉'을 개발했고, 이 스타일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죠. 영국의 Martin Miller와 스코틀랜드의 Hendrick's도 프리미엄 진 시장의 부활에 큰 역할을 했어요.

오늘날 진은 단순한 '주니퍼 베리 풍미의 증류주'를 넘어 지역성과 창의성의 표현 수단이 되었어요. 영국에서만 2010년 6개에 불과했던 증류소가 2023년에는 800개가 넘게 늘어났으니, 이 성장세가 얼마나 놀라운지 상상이 되시나요? 잊혀졌던 전통 레시피가 부활하고,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는 등, 진은 지금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흥미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어요.

 

🎬 문화적 아이콘으로서의 진

 

James Bond - Shaken, Not Stirred
James Bond - Shaken, Not Stirred

 

진은 단순한 술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어요. 가장 유명한 진 애호가는 아마도 제임스 본드가 아닐까요? 이안 플레밍의 소설과 영화에서 본드는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를 주문하지만, 원작 소설에서 본드는 실제로 진 마티니를 더 자주 마셨다는 사실. 당시 영화를 제작할 때 보드카 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의해 변경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Bessie Smith - Gin House Blues
Bessie Smith - Gin House Blues

 

음악에서도 진은 자주 등장해요. 미국 블루스 가수 Bessie Smith의 'Gin House Blues'(1928)는 진이 가난한 사람들의 위안이 되는 동시에 삶을 파괴하는 양면성을 노래했어요. Snoop Dogg의 'Gin and Juice'(1994)는 진이 힙합 문화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곡이죠. Lady Gaga)의 'John Wayne'에서도 "Blue Velvet and gin on ice, Cowboy John Wayne on my stereo dial"이라는 가사로 진을 언급해요.

전후 미국 문학에서 진은 현대성과 도시적 세련미의 상징이었어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진 리키(Gin Rickey)를 마시며, 재즈 시대의 흥청망청한 삶을 보여주죠.

 

"금주법 시대에 사람들은 더 술을 마셨어요. 캐퍼레이트의 방들은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웨이터들은 진이 담긴 트레이를 날랐어요." 

 

이 문장에서 진은 금지된 것에 대한 열망과 사회적 반항의 상징이기도 했어요.

North by Northwest Hitchcock poster
North by Northwest Hitchcock poster

 

영화 속에서도 진은 중요한 소품이자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치로 자주 등장해요.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케리 그란트가 마시는 깁슨(Gibson) 칵테일,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마시는 진은 각 캐릭터의 세련된 취향과 내면의 복잡성을 상징하죠.

빌리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에서는 알코올 중독자가 진에 대한 강박적인 욕망을 보여주며, 이는 진의 어두운 측면을 반영해요. 「매드맨」이나 「다운튼 애비」같은 시대물 드라마에서도 진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중요한 소품으로 기능해요.

 

Kazuo Ishiguro - The Remains of the Day
Kazuo Ishiguro - The Remains of the Day

 

현대 작가들도 진을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 활용해요. 이안 맥큐언(Ian McEwan)의 「토요일」에서 주인공 헨리 페로운은 완벽한 진 앤 토닉 만들기에 집착하는데, 이는 그의 통제욕과 정확성을 보여주는 은유예요. 카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남아있는 나날」에서 집사 스티븐스는 주인의 고급 진을 서빙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며, 이는 영국 계급 제도와 형식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반영하죠.

진은 또한 사회적 계급과 변화의 지표이기도 했어요. 18세기 영국에서는 'Mother's Ruin'이라 불리며 서민들의 탈출구이자 사회적 문제였던 진이, 20세기 중반에는 중산층의 세련된 칵테일 파티 음료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장인정신의 표현이자 미식가들의 취향으로 진화했으니까요. 이런 변화는 시대에 따른 사회적 가치와 우선순위의 변화를 보여주는 창이 되었어요.

이처럼 진은 단순한 알코올 음료를 넘어, 시대와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기록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어요. 병 속의 투명한 액체가 어떻게 이렇게 풍부한 문화적 의미를 담을 수 있게 되었는지, 그 여정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해온 흥미로운 이야기예요.

 

💧 에탄올, 주니퍼 베리, 그리고 물의 삼위일체

 

Aeneas Coffey Still
Aeneas Coffey Still

 

모든 진의 핵심에는 세 가지 기본 요소가 있어요. 깨끗한 중성 에탄올, 향기로운 주니퍼 베리, 그리고 순수한 물. 이 삼위일체가 모든 진의 기초를 이루죠. 중성 에탄올은 진의 깨끗한 캔버스와 같아요. 보통 곡물(밀, 보리, 호밀, 옥수수)을 발효하고 증류해서 얻는데, 좋은 진은 최소 세 번 이상 증류한 고품질의 중성 주정을 사용해요. 이 때문에 연속식 증류기를 발명한 애닐 카팻(Aeneas Coffey)이 1830년대에 개발한 '카팻 스틸'이 진 제조에 혁명을 일으켰죠.

곡물 베이스의 선택도 진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전통적인 런던 드라이 진은 보통 옥수수와 밀의 혼합물을 사용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호밀 베이스는 더 스파이시하고 깊은 맛을, 보리는 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사과나 포도 등의 과일 베이스는 더 부드럽고 향긋한 특성을 진에 더해주죠. 스페인의 'Cider Gin'은 사과 증류주를 베이스로 사용해 특별한 과일향을 만들어내요. 심지어 일부 증류소에서는 감자나 사탕무 같은 비전통적인 원료로 베이스 스피릿을 만들기도 해요.

 

Juniperus communis
Juniperus communis

 

주니퍼 베리가 없는 진은 상상할 수 없어요. 이 작고 푸른빛이 도는 열매는 사실 열매가 아니라 솔방울의 일종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진에 쓰이는 주니퍼 베리는 주로 이탈리아와 발칸 반도에서 자라는 Juniperus communis에서 얻어요. 이 열매는 2-3년에 걸쳐 성숙하며, 손으로 직접 수확해요. 건조한 주니퍼 베리를 으깨면 솔향과 함께 시트러스, 소나무, 후추 같은 복합적인 향이 나는데, 이것이 진만의 독특한 향미 프로필을 만들어내는 기초예요.

최근 기후 변화와 병충해로 인해 이탈리아와 발칸 지역의 주니퍼 베리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증류업자들은 대체 공급원을 찾고 있어요. 미국 오리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불가리아 같은 새로운 지역에서 재배된 주니퍼 베리가 주목받고 있죠. 흥미롭게도 지역에 따라 주니퍼 베리의 향미 프로필이 달라져요. 이탈리아산은 상쾌한 솔향과 시트러스 노트가 특징이고, 발칸산은 더 스파이시하고 우디한 향이 강하며, 북아메리카산은 더 달콤하고 과일향이 강하다고 해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마지막으로, 물은 진의 숨은 영웅이에요. 증류 과정에서도, 최종 제품을 희석할 때도, 물의 품질은 진의 품질을 좌우하죠.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스프링이나 웨일스의 산악 지대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특별한 진을 만들어내는 비결이기도 해요. 물 분자가 휘발성 향 화합물과 상호작용하며 어떤 향은 강화하고 어떤 향은 제어하는 복잡한 화학적 균형을 만들어낸다고 해요.

세계 각지의 증류소들은 자신들만의 특별한 수원(水源)을 자랑하곤 해요. 영국 플리머스 진은 다트무어 국립공원의 지하 청정수를, 노르웨이의 오슬로 진은 스칸디나비아 빙하수를, 일본의 키노비 진은 교토의 후시미 우물을 사용해요. 증류소는 물의 미네랄 함량을 분석해 진과의 최적 조합을 찾아내죠. 예를 들어, 칼슘과 마그네슘이 풍부한 '하드워터'는 주니퍼와 스파이스 향을 강화하고, 미네랄이 적은 '소프트워터'는 섬세한 플로럴과 시트러스 노트를 더 잘 살려준다고 해요.

이 세 가지 요소의 조화가 좋은 진의 바탕이 되죠.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는, 이들이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하며 하나의 통합된 경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에요. 마치 음악에서 화음을 이루는 세 개의 음표처럼 말이죠.

 

🌿 향신료, 허브, 꽃, 뿌리가 만들어내는 보태니컬의 세계

 

진의 진정한 마법은 보태니컬에 있어요. 주니퍼 베리를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식물성 재료를 더해 복잡하고 다층적인 맛과 향을 만들어내죠. 전통적인 진은 보통 4~12가지 보태니컬을 사용하지만, 현대의 크래프트 진은 때로 20가지가 넘는 재료를 사용하기도 해요.

 

Gin Botanicals
Gin Botanicals

 

가장 흔히 사용하는 보태니컬로는 Coriander seed(코리앤더 씨), Angelica root(안젤리카 뿌리), Orris root(오리스 뿌리), Cassia bark(카시아 껍질), Citrus peel(시트러스 껍질, 특히 레몬과 오렌지), Cardamom(카다몸), 정향, 계피 등이 있어요. 코리앤더 씨는 주니퍼 베리 다음으로 중요한 재료로, 시트러스와 향신료가 혼합된 독특한 향을 더해줘요. 특히 모로코산 코리앤더는 영국 진의 필수 요소가 되었죠.

보태니컬 세계에는 정말 희귀하고 특이한 재료들도 있어요. 아프리카 'Grains of Paradise(천국의 씨앗)'는 카다몸과 비슷하지만 더 복잡한 맛을 내는 향신료예요. 동남아시아의 Cubeb Berry(쿠베브 베리)는 후추과의 식물로, 송진 같은 향과 살짝 쓴맛을 더해주죠. Tasmanian Pepperberry(타스만 페퍼 베리)는 호주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향신료로, 진한 베리향과 함께 입술에 미묘한 마비감을 주는 특이한 효과가 있어요. 심지어 일부 진 메이커들은 'Gold leaf(금박)'이나 'Meteorite dust(운석가루)’'같은 비식물성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죠.

보태니컬 소싱은 증류소들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어요. 기후 변화와 멸종 위기종 보호로 인해, 일부 보태니컬은 구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급등하고 있죠. 이에 대응해 많은 증류소들이 지속가능한 소싱 방식을 도입하고 있어요. 영국의 '워너스(Warner's)' 진은 자체 농장에서 보태니컬의 70%를 재배하고, 미국의 '세인트 조지(St. George)'는 멸종 위기인 '캘리포니아 베이 로럴' 대신 지속가능하게 수확한 다양한 로컬 향초를 사용해요. 스코틀랜드의 '보태니스트(The Botanist)'는 아일레이 섬에서 자라는 22가지 야생 허브를 전문 식물학자의 지도하에 조심스럽게 수확한다고 해요.

보태니컬의 조합은 마치 향수 제조와도 비슷한 면이 있어요. 향미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눠볼 수 있는데, '베이스 노트'는 안젤리카나 오리스 같이 무거운 향미를 담당하고, '미들 노트'는 코리앤더나 카시아처럼 주된 캐릭터를 형성하며, '탑 노트'는 시트러스 껍질이나 쿠베브 베리같이 첫인상을 좌우하는 휘발성 향을 담당해요.

각 증류소는 자신만의 고유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고, 대부분 극비에 부쳐져요. 예를 들어, 탱커레이 진의 정확한 보태니컬 비율은 오직 세 명만이 알고 있다고 하니, 마치 코카콜라의 비밀 레시피처럼 철저히 보호받고 있는 셈이죠. 이런 비밀스러움이 진의 신비로운 매력을 더하는 요소이기도 해요.

 

🔥 증류의 마법

 

Copper Alembic Pot Stills
Copper Alembic Pot Stills

 

진을 만드는 핵심 과정은 증류인데, 여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어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포트 스틸(pot still)' 증류로, 구리로 만든 양파 모양의 증류기에 중성 알코올과 보태니컬을 함께 넣고 가열해요. 열이 가해지면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보태니컬의 향미 성분을 흡수하고, 이 증기가 응축기를 통과하며 다시 액체 상태로 변하면서 진이 되는 원리죠.

증류기의 디자인과 형태는 놀랍게도 진의 맛에 큰 영향을 미쳐요. 목이 긴 증류기는 더 가볍고 깨끗한 스피릿을 만들어내고, 목이 짧고 통통한 증류기는 더 무겁고 오일리한 맛을 내죠. 스코틀랜드의 브루클라디 증류소는 이 원리를 활용해 포말 모양의 '넥(neck)'을 가진 특별한 디자인의 증류기를 사용해 깊은 풍미의 보태니스트 진을 만들어내요. 다른 증류소들은 증류 과정에서 소위 'dashi bag'이라 불리는 스파이스 주머니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 다시 국물을 우려내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구리가 중요한 이유는 증류 과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황 화합물을 제거해 더 깨끗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죠. 전통 증류소의 구리 포트 스틸은 때로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경우도 있어요. 오래된 증류기일수록 내부에 미세한 흠집과 미생물 군집이 형성되어 독특한 향미 프로필을 만든다고도 해요. 마치 오래된 바이올린이 특별한 음색을 내는 것과 비슷하죠.

증류의 기술적 비밀 중 하나는 'cut'의 결정이에요. 증류 과정에서 처음 나오는 액체(head)와 마지막에 나오는 액체(tail)는 종종 제거하고, 중간 부분(heart)만 수집하는데, 이 지점을 정확히 결정하는 것이 마스터의 핵심 기술이죠. 초기에 나오는 'head'는 메탄올과 같은 독성 화합물을 포함하고 있어 제거하고, 나중에 나오는 'tail'은 쓴맛과 불쾌한 향이 있어 피해야 해요. 그러나 'tail'의 일부분은 진에 풍부한 질감을 더해주기도 하므로, 정확히 어디서 컷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과학과 예술의 균형을 필요로 해요.

 

첨부 이미지
Carter Head 증류기
Carter Head 증류기

 

현대적인 방식으로는 'carter head' 증류기가 있어요. 이 방식에서는 보태니컬을 직접 알코올에 담그지 않고, 증기가 통과하는 바스켓에 놓아 더 섬세하고 가벼운 향미를 얻을 수 있어요. 봄베이 사파이어가 이 방식으로 유명하죠.

가장 혁신적인 방식은 '진공 증류'로, 낮은 압력에서 낮은 온도로 증류해 열에 약한 식물성 성분도 손상 없이 추출할 수 있어요. 일반적인 증류는 78.3°C에서 이루어지지만, 진공 증류는 40°C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가능해요. 이런 방식으로 만든 진은 매우 생생하고 신선한 향미를 자랑해요. 예를 들어, 오이나 장미 같은 섬세한 보태니컬도 진에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죠. 영국의 케임브리지 증류소는 이 기술을 활용해 신선한 계절 꽃으로 만든 '시즈널 진(Seasonal Gin)' 시리즈를 만들고 있어요.

대부분의 진은 한 번의 증류로 완성되지만, 일부 프리미엄 진은 여러 번의 별도 증류 과정을 거쳐 각 보태니컬의 최적의 향미를 추출한 후 블렌딩하기도 해요. 이처럼 증류 방식만으로도 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 증류야말로 진 제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세계적인 진 마스터들의 철학

 

세계적인 진 마스터들은 단순한 증류업자가 아니라 과학자이자 예술가, 그리고 철학자이기도 해요. 그들의 철학과 접근 방식이 진의 개성을 결정하죠. 영국의 전설적인 진 마스터 데스몬드 페인(Desmond Payne)은 50년 이상 진을 만들어온 산 증인으로, 그는 "진은 항상 주니퍼 베리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고수해요. 아무리 창의적인 보태니컬을 사용해도 주니퍼 베리의 존재감이 사라지면 그것은 더 이상 진이 아니라는 거죠.

반면, 스페인의 혁신적인 증류가 마누엘 바라호나(Manuel Barahona)는 "진은 그 지역의 테루아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는 안달루시아의 와일드 타임, 로즈마리, 올리브 잎 같은 지역 식물을 활용해 스페인의 햇빛과 땅의 맛을 진에 담아내려고 노력하죠.

여성 메이커들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어요. 영국의 리아 베일리(Lesley Bailie)는 50여 년 동안 남성 중심 산업에서 길을 개척한 선구자예요. 그녀는 Gordon's의 마스터 증류자로서 "진의 본질은 균형"이라고 강조했고, 수많은 여성 증류자들에게 멘토가 되었죠. 미국의 Caley Guerriero는 세인트 조지 스피릿츠의 수석 증류자로, "진은 도전적이면서도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철학 아래 예술적 경계를 넓히고 있어요. 스웨덴의 Marie Alexandersson은 헤르노 진의 마스터 블렌더로, 화학자로서의 지식을 활용해 향미를 디자인하는 과학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죠.

영국의 Sam Galsworthy와 Fairfax Hall은 Sipsmith Gin의 창립자로, "정직함과 투명성"을 강조해요. 그들은 소규모 수작업 생산과 완전한 추적 가능성을 통해 진의 품질을 보장하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우리는 숨길 것이 없어요. 소비자에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두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진 메이커들도 독특한 관점을 가져왔어요. 일본의 Masaki Kawakami는 화가 출신으로, 키노비 진을 통해 "일본의 감성과 영국의 전통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는 일본 정원의 미학 원리인 'wabi-sabi'를 진 제조에 적용했죠. 인도의 Rahil Jacob은 전통 아유르베다 약초 지식을 진에 접목시켜 'Greater Than' 진을 만들었고, 남아프리카의 Lucy Beard는 'Hope on Hopkins' 진을 통해 아프리카 약초학을 서양 증류 기술과 융합했어요.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균형"의 중요성이에요. 아무리 독특하고 창의적인 진이라도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훌륭한 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죠. 진정한 진 마스터는 화학자의 정확성, 요리사의 창의성, 그리고 철학자의 통찰력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해요.

 

📊 비율과 배합의 과학

 

Tanqueray(탱커레이)
Tanqueray(탱커레이)

 

진 제조는 정확한 비율과 배합의 과학이에요. 단순히 좋은 원료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비율이 진의 성격을 결정하기 때문이죠. 탱커레이의 전통적인 런던 드라이 진 레시피는 47%의 주니퍼, 23%의 코리앤더, 15%의 안젤리카, 나머지 15%를 레몬 껍질, 카시아, 오리스 뿌리 등이 차지한다고 해요. 이런 정확한 비율이 탱커레이만의 시그니처 프로필을 만들어내죠.

보태니컬을 준비하는 방식도 중요해요. 어떤 식물은 말려서 사용하고, 어떤 것은 신선하게, 또 어떤 것은 잘게 으깨거나 껍질만 사용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시트러스 껍질은 흰 속껍질을 제거하고 외피만 사용해야 쓴맛을 피할 수 있죠. 심지어 같은 보태니컬이라도 수확 시기나 원산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져요. 마다가스카산 코리앤더와 모로코산 코리앤더는 완전히 다른 향미 프로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Caorunn
Caorunn

 

온도와 기압은 진 제조의 숨겨진 변수예요. 증류 과정은 대기 압력과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영국의 많은 전통 증류소들은 특정 계절에만 진을 만들었다고 해요. 여름에 증류한 진은 더 꽃향기가 풍부하고, 겨울에 만든 진은 더 힘 있고 스파이시한 특성을 보인다고 하죠. 이런 전통을 살려 일부 크래프트 증류소들은 계절별 한정판 진을 출시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의 Caorunn 진은 여름에만 자라는 야생 로완 베리를 활용한 '여름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어요.

영국 에든버러 대학의 향미 연구소는 600개 이상의 보태니컬에서 5,000개가 넘는 향미 화합물을 분석했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진 레시피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과학적 접근법을 통해 왜 특정 보태니컬이 함께 어울리는지, 어떤 조합이 우리 미각에 즐거움을 주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보태니컬을 침지하는 시간도 과학적으로 중요해요. 일부 보태니컬은 짧은 시간 동안만 알코올에 담가야 하고, 어떤 것들은 24시간 이상 담가두어야 최적의 향미를 뽑아낼 수 있어요. 시트러스 껍질은 보통 4-8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뿌리나 씨앗 같은 단단한 재료는 더 오래 담가두어야 하죠.

물도 진 제조의 중요한 요소예요. 최종 제품의 알코올 도수를 조절하기 위해 물을 더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물의 미네랄 함량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하드 워터(미네랄이 많은 물)는 더 깊고 풍부한 맛을, 소프트 워터는 더 부드럽고 깨끗한 맛을 만들어내죠. 이런 이유로 일부 증류소는 자신들만의 수원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해요.

 

Hernö 
Hernö 

 

과학자와 제조자의 협업도 흥미로운 발전을 가져오고 있어요. 스웨덴의 Hernö 진은 화학자들과 협력해 보태니컬 추출의 최적 조건을 연구했고, 이를 통해 낮은 온도에서도 효율적으로 향미를 추출하는 'Cold Distillation' 기술을 개발했어요. 영국의 Silent Pool 진은 'Flavour Mapping' 기술을 개발해, 어떤 보태니컬이 서로 시너지를 내는지 예측할 수 있게 되었죠

이렇듯 진 제조는 정밀한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 있어요. 가장 좋은 진 제조자들은 화학적 원리를 이해하면서도 직관과 경험을 믿는 사람들이죠.

 

⏳ 진의 숙성과 휴식

 

일반적으로 진은 위스키나 브랜디처럼 오크통에서 숙성시키지 않는 술로 알려져 있지만, 병에 담긴 후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증류 직후의 진은 종종 '날것'처럼 느껴지고, 알코올의 강렬함이 보태니컬의 섬세한 향미를 가리기도 해요. 그래서 많은 증류소에서는 병입 전에 진을 최소 1-2주 동안 '휴식'시키는 과정을 거치죠.

이 휴식 기간 동안 분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내요. 마치 고기 요리를 한 후 바로 먹지 않고 '레스팅'시키는 것과 비슷한 원리죠. 영국의 전통 증류소 중에는 진을 특별한 테라코타 항아리에 3개월까지 보관한 후에 병에 담는 곳도 있어요. 이 과정에서 미세한 산화가 일어나 더 부드럽고 균형 잡힌 맛이 된다고 해요.

 

Harris Gin - Ceramic Bottle
Harris Gin - Ceramic Bottle

 

용기의 종류도 진의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전통적인 유리병은 불활성이라 진의 맛을 그대로 보존하지만, 다른 소재의 용기는 다양한 효과를 줄 수 있죠. 예를 들어, 세라믹 용기는 미세한 공기 교환을 허용해 진의 날카로운 면을 부드럽게 만들어요. 스코틀랜드의 Harris Gin은 특별히 디자인된 세라믹 병을 일부 한정판에 사용하고 있어요. 또한 금속 병은 빛을 완전히 차단해 광산화를 방지하지만, 장기간 보관 시 금속 성분이 미량 용출될 수 있다고 해요.

병에 담긴 후에도 진은 계속 변화해요. 개봉하지 않은 병에서는 매우 천천히 변화가 일어나지만, 오래된 빈티지 진을 마셔본 사람들은 10년 이상 된 진이 '익은(rounded)' 맛을 내며, 보태니컬의 향이 더 조화롭게 통합된다고 말해요. 물론 이는 아주 미묘한 변화라 전문가들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지만요.

빈티지 진 수집이 새로운 취미로 떠오르고 있어요. 특히 1950-60년대 고든스, 부스, 탱커레이 같은 클래식 브랜드의 빈티지 병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죠. 최근 소더비 경매에서 1920년대 생산된 고든스 진 한 병이 22,000파운드(약 3,7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어요. 빈티지 진의 가치는 단순히 술 자체가 아니라, 그 시대의 증류 기술과 보태니컬 조합, 그리고 병 디자인의 역사적 가치에 있다고 해요.

개봉한 병의 진은 더 빠르게 변화해요. 공기와 접촉하면서 산화가 일어나고, 가장 가벼운 향미 성분부터 점차 증발하죠. 보통 시트러스같은 '탑 노트'가 먼저 사라지고, 주니퍼와 향신료의 '미들 노트'가 더 뚜렷해져요. 그래서 진 애호가들은 개봉한 병을 6개월 이내에 마시는 것을 추천하죠.

 

Caorunn - Cask Aged Gin
Caorunn - Cask Aged Gin

 

일부 실험적인 증류소에서는 의도적으로 진을 숙성시키기도 해요. 'cask aged gin'은 위스키처럼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진으로, 전통적인 진의 보태니컬 향에 오크의 바닐라, 카라멜, 스파이스 풍미가 더해져요. 이런 진은 일반 진보다 더 무겁고 복잡한 맛으로, 칵테일보다는 스트레이트나 온더락으로 즐기기 좋아요.

결국 진은 살아있는 제품이에요. 병에 담긴 순간부터 마지막 한 방울을 따라내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해요. 그래서 진 애호가들은 같은 브랜드라도 다른 시기에 생산된 병을 비교해보는 테이스팅을 즐기기도 해요. 시간이 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경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 되는 거죠.

진은 병 속에 담긴 작은 세계, 그리고 시간의 캡슐과도 같아요. 그 안에는 과학과 예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제조자의 영혼까지 담겨 있죠. 이것이 바로 진을 단순한 술이 아닌, 끊임없이 발견하고 탐구할 수 있는 매혹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요?

 

🇬🇧 런던 드라이 진, 클래식과 그 변주들

 

런던 드라이 진은 18세기 영국에서 탄생해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스타일이에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런던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꼭 런던에서만 생산하는 것은 아니에요. '드라이'라는 이름은 당시 유행하던 달콤한 '올드 톰 진'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죠.

 

Gordon's Gin
Gordon's Gin

 

런던 드라이 진의 가장 큰 특징은 주니퍼의 뚜렷한 존재감이에요. 첫 향에서 솔향이 확실히 느껴지고, 시트러스와 향신료의 균형 잡힌 조화가 뒤따르죠. 법적으로는 증류 과정에서 향이나 색소를 첨가하지 않고, 알코올 도수가 최소 37.5%여야 해요. 탱커레이, 비피터, 고든, 같은 클래식 브랜드들이 이 스타일의 대표주자예요.

영국 지역별로도 런던 드라이 진의 특성은 미묘하게 달라져요. 런던 근교에서 생산된 'Thames Distillers'의 진은 특유의 드라이하고 미네랄리한 맛으로 유명하고, 북부 요크셔 지방의 ‘Mason's Gin'은 지역 특산물인 요크셔 티와 함께 더 허브적인 특성을 보여줘요. 서부 콘월 지역의 'Tarquin's' 진은 대서양의 바다 공기를 맞고 자란 보태니컬로 만들어 특유의 신선하고 짭조름한 풍미가 있죠.

역사적인 런던 드라이 진 레시피의 복원도 흥미로운 트렌드예요. 'Beresford's' 증류소는 1720년대 초기 진 레시피를 재현해 당시의 맛을 현대에 되살렸고, 'City of London' 진은 1800년대 빅토리아 시대 런던 진의 특성을 연구해 재현했어요. 이런 역사적 복원 프로젝트들은 진의 역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줘요.

보태니컬 조합은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주니퍼, 코리앤더, 안젤리카, 오리스, 시트러스 껍질 등을 사용해요. 맛은 드라이하면서도 깔끔하고, 칵테일의 베이스로 사용하기 좋아 마티니, 네그로니, 진 앤 토닉 같은 클래식 칵테일의 기본이 되었죠.

 

Monky 47
Monky 47

 

최근에는 전통적인 런던 드라이의 틀 안에서도 각자의 개성을 살린 변주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헨드릭스 진은 전통적인 보태니컬에 오이와 장미잎을 더해 특별한 풍미를 더했고, 몽키 47은 무려 47가지 보태니컬을 사용해 복잡한 풍미를 만들어냈어요.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주니퍼 중심의 풍미를 유지하며 런던 드라이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답니다.

런던 드라이 진은 마치 재즈의 스탠다드 넘버 같아요. 기본 구조는 같지만, 연주자에 따라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그런 느낌이죠. 어떤 진 여행이든 이 클래식한 스타일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 올드 톰과 플리머스, 잊혀졌다 부활한 달콤한 진의 매력

 

런던 드라이 진이 등장하기 전, 18-19세기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진 스타일은 '올드 톰' 진이었어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런던의 한 진 샵 주인이 검은 고양이('톰') 모양의 간판을 걸어두고, 고양이 발 아래 동전을 넣으면 입에서 진이 나오는 분배기를 설치했다는 설이에요. 재미있는 마케팅 방식이었죠?

올드 톰은 런던 드라이보다 달콤하고 풍부한 맛이 특징이에요. 곡물 베이스에 약간의 설탕이나 감초를 첨가해 부드러운 단맛을 더했죠. 마치 드라이 진과 제네버의 중간 지점 같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즐겨 마시던 진이 바로 이 올드 톰이었어요.

19세기 칵테일 문화에서 올드 톰 진은 핵심적인 역할을 했어요. 최초의 칵테일 책 중 하나인 제리 토마스의 '바텐더 가이드(1862)'에는 올드 톰을 사용한 많은 레시피가 등장해요. 특히 'Martinez'는 오늘날 마티니의 선조로, 원래는 올드 톰 진과 베르무트, 마라스키노 리큐어, 오렌지 비터스로 만들었어요. 'Tom Collins'도 원래는 올드 톰으로 만든 칵테일이었죠. 당시 소설에는 "톰(올드 톰 진)으로 만든 달콤한 칵테일을 마시며 사교계의 대화를 즐겼다"는 묘사가 자주 등장해요.

20세기 중반에는 거의 사라졌던 올드 톰이 최근 칵테일 르네상스와 함께 부활했어요. 헤이먼스, 젠슨, 랜섬 올드 톰 같은 브랜드들이 전통 레시피를 재현하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죠. 특히 마티네즈, 톰 콜린스 같은 19세기 칵테일의 원래 레시피에 사용되었던 진이 올드 톰이었기 때문에, 클래식 칵테일의 진정한 맛을 경험하고 싶은 바텐더들이 이 스타일을 다시 찾고 있어요.

 

Plymouth Gin
Plymouth Gin

 

한편, 플리머스 진은 영국 남서부 플리머스 항구에서 처음 만들어진 스타일로, 부드럽고 흙내음이 나는 것이, 뾰족하고 시트러스한 런던 드라이와는 차이가 있어요. 더 많은 뿌리 식물(안젤리카, 오리스)을 사용하고, 알코올 도수가 약간 낮은 경향이 있죠. 영국 해군과 깊은 연관이 있어 'Navy Strength' 진의 기원이 되기도 했어요.

 

Plymouth - Navy Strength Gin
Plymouth - Navy Strength Gin

 

'Navy Strength’ 진은 알코올 도수가 57.1%(100 프루프)로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에요. 이 도수의 유래는 흥미로워요. 영국 해군은 함선에 화약과 함께 대량의 진을 싣고 다녔는데, 만약 진이 화약에 쏟아졌을 때도 화약이 타오를 정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57.1% 이상의 알코올은 화약을 적셔도 불이 붙는다고 해요. 이런 진은 오늘날에도 '플리머스 네이비 스트렝스', '헤이맨스 로열 독', '포 필라스 네이비 스트렝스' 등의 브랜드로 생산되고 있어요.

이렇게 잊혔다가 다시 발굴된 진 스타일들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듯한 즐거움을 줘요. 과거의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진들은, 진의 역사가 결코 직선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랍니다.

 

🇺🇸 뉴 웨스턴 진, 미국과 유럽의 현대적 해석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뉴 웨스턴 진'은 전통 진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어요. 이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은 주니퍼 베리의 비중을 낮추고 다른 보태니컬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에요. 물론 법적으로 진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주니퍼 베리가 포함되어야 하지만, 그 존재감이 훨씬 미묘해졌죠.

미국의 크래프트 증류 운동은 넓은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로컬 비즈니스와 장인 정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음식과 음료에서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to-table)' 운동이 주목받기 시작했죠. 이런 배경 속에서 소규모 증류소들이 각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또한 미국은 술 규제가 엄격해 소규모 증류소 설립이 오랫동안 제한되었다가, 2000년대 들어 규제가 완화되면서 크래프트 증류 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죠.

Aviation Gin
Aviation Gin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앵커 디스틸링에서 만든 'Junipero' 진과 오리건의 ‘Aviation’ 진은 이런 혁신의 선구자였어요. 특히 ‘Aviation’ 진은 라벤더, 사사프라스, 카다몸을 강조해 꽃향기가 풍부한 독특한 프로필을 만들어냈죠. 이런 진들은 주니퍼 향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소비자층을 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기여했어요.

 

Dorothy Parker Gin
Dorothy Parker Gin

 

뉴 웨스턴 진이 칵테일 문화에 미친 영향도 상당해요. 전통적인 런던 드라이 진이 강한 주니퍼 베리 향 때문에 특정 칵테일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면, 뉴 웨스턴 진은 더 다양한 칵테일 창작을 가능하게 했어요. 예를 들어, 라벤더와 꽃향이 풍부한 ‘Aviation’ 진은 'Blue Moon'과 완벽하게 어울리고, 뉴욕의 ‘Dorothy Parker' 진은 히비스커스와 엘더베리를 강조해 과일 기반 칵테일에 이상적이죠. 산 프란시스코의 유명 바 'Trick Dog'이나 뉴욕의 'Dead Rabbit'같은 혁신적인 칵테일 바들은 이런 뉴 웨스턴 진을 활용해 창의적인 레시피를 개발했어요.

 

G'Vine Floraison French Gin
G'Vine Floraison French Gin

 

유럽에서도 이러한 혁신의 물결이 일어났어요. 스페인은 특히 'gintonic'라 불리는 진 앤 토닉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허브와 과일향이 강조된 독특한 진들을 많이 선보였죠. G'Vine과 같은 프랑스 진은 포도 꽃과 포도 원액을 베이스로 사용해 와인 같은 부드러움을 더했고요.

독일의 몽키 47은 블랙 포레스트 지역의 식물학적 특성을 진에 담아냈어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47가지 보태니컬을 사용하는데, 그중 상당수가 지역 특산 식물이라 흥미롭죠. 주니퍼 베리는 물론이고, 링곤베리, 블랙 포레스트의 소나무 싹, 지역 허브 등을 사용해 독일 숲의 향기를 한 병에 담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뉴 웨스턴 진들은 마치 현대 미술처럼 기존의 규칙에 도전하며 진이라는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 결과 진의 정의는 더욱 넓어지고, 소비자들에게는 더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죠. 전통주의자들은 가끔 "이게 정말 진인가?"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실험정신이 진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분명해요.

 

🌱 테루아의 표현, 지역 특산물로 만든 특색있는 진

 

와인 세계에서 중요한 개념인 '테루아(Terroir)'가 이제 진의 세계에도 깊이 들어왔어요. 테루아란 특정 지역의 토양, 기후, 지형 등 환경적 요소가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하는데, 이제 많은 증류소들이 자신의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그 지역만의 진을 만들고 있어요.

 

Himbrimi
Himbrimi

 

아이슬란드의 'Himbrimi'은 북극권의 식물들을 활용한 진으로, 주니퍼 베리는 물론이고 북극 타임, 안젤리카, 들딸기, 고산지대 이끼 등을 사용해요. 특히 이들은 물을 중요하게 여겨 만년설이 녹은 빙하수를 사용하는데, 이 물의 미네랄 성분이 진의 청량감을 더한다고 해요. 마치 아이슬란드의 험준한 화산 지형과 깨끗한 자연을 한 모금에 담은 듯한 경험을 선사해요.

 

Four Pillars
Four Pillars

 

호주에서는 현지 토착 식물인 레몬 머틀, 핑거 라임, 리버 민트 등을 활용한 진이 인기예요. 'Four Pillars'는 호주의 야생 레몬 타임과 생강을 활용해 상쾌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진을 만들어냈죠. 이들은 지역 생산자와의 연계를 강조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원료를 수급해요.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들도 진 생산에 뛰어들고 있어요. 우간다의 'Uganda Warrior'는 바닐라, 코코아, 아프리카 향신료를 사용해 진의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있고, 케냐의 'Procavan'은 아프리카 종묘원에서 재배한 주니퍼 베리와 현지 허브를 조합했어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는 아틀라스 산맥의 허브와 향신료를 활용한 'Montuca' 진이 지중해식 향미를 표현하고 있죠.

 

Jacaranda
Jacaranda

 

중남미 지역에서도 흥미로운 테루아 진이 등장하고 있어요. 멕시코의 'Jacaranda'는 아가베, 노팔 선인장, 멕시코 라임을 사용한 독특한 진을 만들었고, 브라질의 'Amazonia'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열매와 뿌리를 활용해 이국적인 프로필을 만들어냈어요. 칠레의 'Trapapiandes'는 안데스 산맥의 고산 식물들로 특별한 미네랄리티를 갖춘 진을 생산하고 있죠.

북유럽 국가들도 테루아를 강조하는 진을 많이 생산하고 있어요. 노르웨이의 ‘Bareksten'은 노르웨이 피오르드와 산림에서 채취한 허브와 베리를 사용해 깊고 어두운 숲의 느낌을 담아냈고, 스웨덴의 ‘Hernö'는 링곤베리, 메도우스위트, 블랙 커런트 잎 같은 현지 식물로 스칸디나비아의 청량함을 표현했죠.

이런 테루아 중심의 진들은 마치 지역 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해요. 한 모금 마시면 그 지역의 풍경, 냄새, 분위기까지 떠오르는 듯한 감각적 여행이 시작되죠. 진이 단순한 알코올 음료를 넘어 문화적, 지리적 정체성의 표현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나요?

 

🗺️ 지역과 풍토에 따른 진의 지도

 

세계 진 생산의 지리적 분포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여요. 진 생산은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클러스터(cluster)' 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원료 접근성, 물의 특성, 역사적 배경, 기술적 노하우의 공유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아요.

영국의 진 생산은 크게 세 개의 클러스터로 나눌 수 있어요. 런던과 남동부 지역은 고전적인 런던 드라이 진의 중심지로, 탱커레이, 비피터 등이 이 지역에서 생산돼요. 전통적인 증류 기술과 도시적 세련미가 특징이죠. 스코틀랜드 클러스터는 위스키 생산 노하우를 진에 접목시켜 헨드릭스, 보태니스트, 케른크로스 같은 복합적인 풍미의 진을 만들고 있어요. 서부와 콘월 지역 클러스터는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플리머스, 타키, 세일러스 같은 미네랄리하고 청량한 진이 주로 생산되죠.

물의 미네랄 구성은 진의 특성에 큰 영향을 미쳐요. 센 강 유역의 석회질 물로 만든 프랑스 G'Vine 진은 부드럽고 미네랄한 질감을 가지고 있고, 스웨덴 북부의 순수한 빙하수로 만든 Hernö 진은 놀라운 청량감이 특징이죠. 일본 교토의 후시미 우물물은 미네랄과 규소 함량이 적절해 키노비 진의 섬세한 풍미를 완성시켜줘요.

지리적 표시(Geographical Indication, GI)는 특정 지역 제품의 진정성과 품질을 보증하는 국제적 인증 제도예요. 현재 진 중에서는 ‘Plymouth Gin'이 유일하게 EU의 지리적 표시를 받았어요. 이는 플리머스 진이 반드시 영국 플리머스 항구 지역에서 생산돼야 하고, 특정 제조 방법을 따라야 함을 의미하죠. 현재 여러 지역에서 자신들의 진에 대한 지리적 표시를 신청하고 있어요. 스페인의 'Mahorca Gin', 네덜란드의 'Schiedam Geneve)' 등이 그 예죠.

진의 지리학은 단순한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역사, 지질학, 기후 등 복합적인 요소가 어우러진 결과예요. 그래서 한 병의 진에는 그 지역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이런 지역적 차별성이 진의 다양성과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죠.

진 애호가들에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진을 탐험하는 것은, 마치 세계 여행을 떠나는 것과도 같은 경험이에요. 한 잔의 진 속에 담긴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특성을 음미하는 것은, 그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것만큼 풍부한 경험을 선사하니까요.

 

📝 크래프트 진, 소규모 증류소의 대담한 도전

 

크래프트 진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규모가 작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요. 크래프트 진의 핵심은 '장인 정신'에 있어요. 수작업, 소규모 배치, 창의적인 레시피, 그리고 무엇보다 진에 대한 열정이 크래프트 진을 정의하는 요소들이죠.

대형 브랜드들이 일관된 맛을 위해 산업적 방식으로 대량 생산하는 반면, 크래프트 진 제조자들은 각 배치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요. 이들은 종종 "코맨더(compounder)"라기보다 "증류자(distiller)"에 가까워요. 코맨더는 이미 증류된 중성 알코올에 향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진을 만드는 반면, 크래프트 증류자들은 직접 원료부터 증류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하거든요.

크래프트 진의 철학은 '투명성'에 있어요. 소비자에게 원료의 출처, 제조 방식, 심지어 실패와 실험 과정까지 공유하는 경우가 많죠. 이는 산업화 시대의 익명성에 반기를 들고, 제품과 제조자 사이의 인간적 연결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어요.

또한 크래프트 진은 지역 경제와의 연결을 중시해요. 많은 소규모 증류소들이 지역 농부들과 협력하고, 인근에서 재배한 보태니컬을 사용하며,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죠. "이웃에게서 재료를 사고, 이웃에게 제품을 판다"라는 철학이 크래프트 진 운동의 핵심 중 하나예요.

하지만 크래프트 진의 정의는 계속 진화하고 있어요. 초기에는 대기업에 대항하는 '작은 규모'가 강조되었다면, 이제는 '창의성'과 '품질'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죠. 심지어 일부 성공적인 크래프트 브랜드들은 대형 주류 기업에 인수되기도 하는데, 이것이 '크래프트'의 정체성을 훼손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활발해요. 결국 크래프트 진의 본질은 규모보다는 정신에 있다고 볼 수 있겠죠?

 

👨‍🔬 크래프트 진을 이끈 혁신가들

 

현대 크래프트 진 혁명의 시작점은 2009년 영국 런던에서 두 명의 젊은이가 설립한 'Sipsmith' 증류소로 볼 수 있어요. Sam Galsworthy와 Fairfax Hall은 200년 만에 처음으로 런던 시내에 소규모 포트 스틸 증류소 면허를 획득했죠. 당시 영국 법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로, 1820년대 이후 소규모 증류를 사실상 금지해왔거든요.

이들의 법적 투쟁과 성공은 영국 전역에 크래프트 증류의 문을 열어줬어요. 시프록 이전에는 영국에 5개의 진 증류소만 있었지만, 2023년에는 800개가 넘는 증류소가 운영 중이라니 놀랍죠? 그들의 "진을 예전처럼 만들자(Make gin the way it used to be made)"라는 슬로건은 전 세계 장인 증류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Junipero Gin
Junipero Gin

 

미국에서는 2005년 설립된 'Anchor Distilling'의 Fritz Maytag가 크래프트 진의 선구자로 꼽혀요. 그는 미국 최초의 크래프트 진인 'Junipero'를 만들었는데, 이는 영국 스타일의 진을 미국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었죠. 깔끔하고 강렬한 주니퍼 맛으로 미국인들에게 진의 매력을 다시 알렸어요.

 

The Botanist
The Botanist

 

스코틀랜드의 Bruichladdich 증류소는 위스키로 유명했지만, Simon Coughlin과 Mark Reynier가 인수한 후 'The Botanist’ 진을 출시하며 크래프트 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어요. 그들은 Islay 섬에서 자라는 22가지 야생 식물을 사용해, 그 지역의 테루아를 완벽하게 담아냈죠.

호주에서는 Stuart Greensill과 Cameron Mackenzie가 2013년 'Four Pillars'를 설립해 남반구 크래프트 진의 기준을 세웠어요. 그들은 호주 특유의 과일과 향신료를 활용해 전통적인 진의 경계를 넓혔죠. 특히 오렌지를 사용한 진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고요.

 

Ki No Bi Gin
Ki No Bi Gin

 

일본에서는 교토 증류소(Kyoto Distillery)의 Alex Davies와 Marcin Miller가 2016년 'Ki No Bi' 진을 출시하며 일본 크래프트 진의 길을 열었어요. 그들은 일본 전통 식재료와 서양 증류 기술을 융합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진을 만들어냈죠.

이들 선구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지역의 특성을 진에 담아내려 했으며, 무엇보다 품질에 타협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그들은 단순히 술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운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 전통적 경계를 넘어선 대담한 보태니컬 실험

 

크래프트 진 혁명의 심장에는 끊임없는 실험 정신이 있어요. 소규모 증류소들은 대기업보다 리스크를 감수할 여유가 있고, 이것이 진 세계에 전례 없는 혁신을 가져왔죠. 전통적인 진이 10가지 내외의 보태니컬을 사용했다면, 현대 크래프트 진은 그 경계를 과감히 넘어섰어요.

가장 흥미로운 실험 중 하나는 비전통적인 재료의 사용이에요. 영국의 'Silent Pool'은 꿀과 라벤더를, 호주의 'West Winds'는 바다 소금과 호주산 부시 토마토를, 캐나다의 'Ungava'는 북극 지방의 식물들을 활용했죠. 심지어 'Cambridge Distillery’는 개미를 포함한 진을 만들기도 했어요. 맛은 어땠을까요? 예상보다 훨씬 상큼하고 시트러스한 맛이었다고 해요.

증류 기술의 혁신도 활발해요. 'Hepple Gin’은 진공 증류와 초임계 추출법을 결합해, 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신선한 주니퍼 베리의 향을 담아냈어요. ‘Oxford Artisan Distillery'는 고대 곡물 품종으로 베이스 스피릿을 만들어 특별한 질감과 풍미를 실현했고요.

 

Bathtub Gin
Bathtub Gin

 

특별한 숙성 방식도 크래프트 진의 혁신 영역이에요. 'Bathtub Gin'은 냉침(cold compounding) 방식으로 진을 만드는데, 이는 열을 가하지 않고 보태니컬을 알코올에 장기간 담가두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하면 열에 약한 식물의 향과 색소가 그대로 진에 담기죠. 'Pooka Bay Gin'은 달빛 아래에서 24시간 동안 진을 숙성시켜, 달의 에너지가 진에 스며들게 한다고 해요.

원료의 지속가능성과 윤리적 사용도 중요한 혁신 분야예요. 'Copper King'은 지역 농가의 잉여 과일을 사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Discontinuous'는 빵집의 남은 빵으로 베이스 알코올을 만들어요. 'Atlantic Spirit'은 해안가에서 자란 해초를 직접 채취해 사용하면서,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죠.

이런 실험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에요. 실패도 많고, 때로는 너무 특이해서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바로 이런 시행착오와 모험 정신이 크래프트 진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어요. 크래프트 진 혁명은 단순히 새로운 맛의 발견이 아니라, 우리가 식음료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 로컬 재료와 문화적 정체성의 결합

 

크래프트 진 혁명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지역성'의 강조예요. 점점 더 많은 크래프트 증류소들이 자신이 위치한 지역의 정체성을 진에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죠. 이는 단순히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지역 문화와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과 기념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스코틀랜드의 'Isle of Harris Gin'은 외딴 헤브리디스 제도의 해안에서 채취한 sugar kelp(다시마의 일종)를 주요 보태니컬로 사용해요. 이 해초는 미네랄이 풍부하고 달콤하면서도 바다의 짠맛을 지녀, 진에 지중해풍의 복합적인 맛을 더해주죠. 그들의 병 디자인도 헤브리디스 해안의 조수 흔적에서 영감을 받아, 물결 무늬의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요.

 

Bar Hill Gin
Bar Hill Gin

 

미국 버몬트주의 'Bar Hill Gin'은 지역 양봉가들의 꿀을 사용해요. 매 시즌 사용하는 꿀이 다르기 때문에, 각 배치마다 미묘하게 다른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죠. 심지어 그들은 자체 양봉장도 운영하며, 병에 붙인 노란색 왁스 씰은 자신들의 벌들이 만든 밀랍으로 제작한다고 해요.

이탈리아의 'Malfy Gin'은 아말피 해안의 레몬을 사용해, 이탈리아 지중해 라이프스타일을 병에 담았어요. 특히 '콘 리모네(con limone)' 버전은 이탈리아 해안의 햇살, 바다 내음, 레몬 과수원의 향기를 한 병에 응축한 듯한 느낌을 주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Inverroche'는 케이프 지역의 페인보스(fynbos) 식물을 사용해요. 이 식물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식물군 중 하나로, 1만 년 이상 이 지역에서만 자라왔죠. 그들은 이렇게 독특한 식물을 활용해 '클래식', '버디언트', '엠버' 세 가지 진을 만들었는데, 각각 페인보스의 다른 측면을 표현했어요.

이렇게 지역성을 강조하는 크래프트 진들은 단순한 술이 아닌, 그 지역의 이야기, 역사, 생태계, 문화를 담아낸 'liquid territory'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치 한 지역의 여행 가이드를 마시는 것처럼, 그곳의 풍경과 삶을 느낄 수 있게 해주죠.

 

🕰️ 잊혀진 칵테일의 부활

 

금주법 이전의 미국은 진 칵테일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어요. 1862년 제리 토마스가 최초의 바텐더 가이드 「How to Mix Drinks」를 출판한 이후, 진은 창의적인 믹솔로지의 중심에 있었죠. 이 시기에는 지금은 잊혀진 수많은 진 칵테일이 탄생했어요. '핑크 레이디', '에비에이션', '라스트 워드', '코퍼헤드'처럼 이름도 독특한 칵테일들이 당시 상류 사회의 사교 모임을 화려하게 수놓았죠.

그러나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과 이후 보드카의 부상으로 많은 진 칵테일들이 잊혀지게 되었어요. 다행히도 21세기 들어 '칵테일 고고학자'라 불리는 열정적인 바텐더들이 오래된 바텐더 책과 호텔 메뉴를 파헤치며 잊혀진 레시피들을 발굴하기 시작했어요. 뉴욕의 전설적인 바텐더 섁 맥기리(Sasha Petraske)와 '엠플로이즈 온리(Employees Only)'의 듀샨 자릭(Dushan Zaric)은 20세기 초 칵테일의 정교함을 현대에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죠.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진 크림퍼'라는 거의 사라진 칵테일이에요. 1920년대 영국 고급 호텔 바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 칵테일은 진, 복숭아 브랜디, 메이플 시럽, 레몬, 달걀 흰자로 만들어요. 영국의 칵테일 역사가 제드 포스터(Jed Foster)가 세이보이 호텔의 오래된 메뉴에서 발견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잊혀졌던 레시피죠. 오늘날 런던의 '나이팅게일'이나 뉴욕의 '데드 래빗'같은 바에서는 이런 발굴된 레시피를 현대적 재료로 재해석한 버전을 제공하고 있어요.

 

Forgotten Cocktails
Forgotten Cocktails

 

칵테일 부활의 중심에는 칵테일 역사가들이 있어요. 데이비드 원드리치(David Wondrich)는 19세기 바텐더 제리 토마스의 레시피를 현대적으로 번역하고 해석한 책을 출간했고, 테드 하이(Ted Haigh)는 '잊혀진 칵테일(Forgotten Cocktails)'이라는 책을 통해 100개 이상의 사라진 칵테일을 부활시켰죠. 이런 노력 덕분에 '코퍼 킹'이나 '비온느 칵테일'같은 100년 전 레시피가 오늘날 다시 바 메뉴에 등장하게 되었어요.

 

🌍 진 칵테일의 세계 일주

 

진 칵테일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현지 문화와 재료에 적응해왔어요. 그 결과 같은 진이라도 국가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했죠. 스페인에서는 '진토닉'이 아닌 '지노토닉(Gintonic)'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순한 명칭 차이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을 의미해요.

스페인 사람들은 거대한 볼형 와인잔에 진을 따르고, 특별한 토닉과 함께 신선한 허브, 과일, 향신료를 풍성하게 넣어 마치 작품처럼 만들어요. 바르셀로나의 '바비아나(Xix Bar)'는 50가지 이상의 지노토닉 변주를 선보이는 곳으로, 매년 '지노토닉 페스티벌'까지 개최해요.

일본에서는 '하드 쉐이큰' 진 칵테일이 특징이에요. 도쿄 긴자 지역의 바텐더들은 '긴자 쉐이크'라 불리는 특별한 기술로 칵테일을 준비해요. 얼음 결정이 작게 부서질 때까지 강하고 정확하게 쉐이킹하는 이 방식은 '긴자 마티니'를 탄생시켰죠. 

미세한 얼음 파편이 떠있는 이 마티니는 일본의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예요. 도쿄의 '바 벤피니(Bar Benfiddich)'의 히로유키 임포타(Hiroyuki Importa)는 일본 전통 약재와 진을 결합한 칵테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어요.

 

Chilcano de Gin
Chilcano de Gin

 

남미에서는 진과 열대 과일의 조합이 독특한 칵테일 문화를 만들어냈어요. 브라질의 '카이피리냐'에서 영감을 받은 '진리냐(Ginirnha)'는 진, 카샤사 대신 진을 사용하고 라임, 설탕, 으깬 열대 과일이 특징이에요. 페루의 '칠카노 데 진(Chilcano de Gin)'은 진, 라임 주스, 안고스투라 비터스, 페루 특산 잉가 콜라(Inca Kola)를 혼합한 독특한 칵테일이죠. 리마의 유명 바텐더 아론 디아즈(Aron Diaz)는 "진은 남미의 강렬한 풍미와 색상을 표현하기에 완벽한 캔버스"라고 말했어요.

동남아시아에서는 현지 향신료와 허브가 진 칵테일에 녹아들었어요. 싱가포르의 '랑 바(Jigger & Pony)'는 판단(pandan) 잎, 갈랑갈(galangal), 레몬그라스를 활용한 '판단 진 스매시(Pandan Gin Smash)'로 유명해요. 태국 방콕의 '베스트키스(Vesper)'에서는 태국 북부 산악 지대에서 재배한 차 잎을 활용한 진 칵테일 '차이니즈 타이거(Chinese Tiger)'를 선보이죠. 필리핀에서는 카라만시(calamansi) 작은 감귤류와 진을 조합한 '칼라만시 진 슬링'이 인기랍니다.

 

🧠 진 칵테일에 얽힌 매혹적인 이야기들

 

진 칵테일의 매력은 맛뿐만 아니라 그 이름과 유래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있어요. 가장 유명한 사례가 '네그로니'예요. 

 

Negroni
Negroni

 

1919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카페 카소니(Caffè Casoni)에서 카밀로 네그로니 백작이 바텐더 포스키니에게 '아메리카노(캄파리, 베르무트, 소다)'를 주문하면서 "소다 대신 진을 넣어달라"고 요청했고, 이렇게 탄생한 칵테일이 그의 이름을 따서 '네그로니'가 되었죠. 

재미있는 사실은 카밀로 백작이 미국에서 카우보이로 활동했던 이색적인 경력을 가졌다는 점이에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일화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피렌체 시립 기록보관소에는 실제로 카밀로 네그로니의 사진과 함께 그가 카페 카소니의 단골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Vesper Martini
Vesper Martini

 

'베스퍼 마티니'는 문학과 영화의 세계에서 태어난 칵테일이에요. 1953년 이안 플레밍의 첫 제임스 본드 소설 「카지노 로얄」에서 본드는 "3부분의 고든 진, 1부분의 보드카, 1/2 부분의 킨(Kina) 릴레(Lillet)"로 만든 칵테일을 주문하고, 이를 사망한 여성 스파이 베스퍼 린드의 이름을 따서 '베스퍼'라고 명명했죠. 

흥미로운 점은 플레밍이 이 칵테일을 완전히 창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즐겨 마시던 칵테일을 소설에 반영했다는 사실이에요. 오늘날 킨 릴레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현대의 베스퍼 마티니는 대체로 코치 블랑을 사용한답니다.

'톰 콜린스'의 이름은 19세기 런던의 유명한 농담에서 유래했어요. 1874년 런던에서는 '톰 콜린스 농담'이라는 것이 유행했는데, 누군가에게 "자네를 험담하는 톰 콜린스라는 사람이 옆 술집에 있다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화가 나서 술집으로 달려가 톰 콜린스를 찾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죠. 이 농담이 너무 유명해져서 바텐더들이 '톰 콜린스'라는 이름의 진 베이스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당신이 술집에 가서 "톰 콜린스를 찾는다"고 하면, 최소한 상쾌한 칵테일은 얻을 수 있게 된 거예요.

 

Singapore Sling
Singapore Sling

 

'싱가포르 슬링'은 동서양 문화가 만나는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칵테일이 되었어요. 1915년 래플스 호텔의 롱 바(Long Bar)에서 응아 통 붐(Ngiam Tong Boon)이라는 바텐더가 영국 식민지 여성들을 위해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죠. 당시 여성들은 사회적 관습상 공개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 금기시되었지만, 붉은색 과일 음료처럼 보이는 이 칵테일은 여성들도 품위를 잃지 않고 즐길 수 있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원래 레시피가 분실되어 1970년대에 래플스 호텔이 재구성한 레시피를 사용한다는 것이에요. 오늘날 래플스 호텔은 매년 백만 잔 이상의 싱가포르 슬링을 판매하고 있어요.

 

👑 궁전에서 즐긴 특별한 레시피

 

Burwood Gin
Burwood Gin

 

진은 영국 왕실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어요.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플리머스 진과 버우드 오렌지 진이 영국 왕실 인증(Royal Warrant)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이에요. 이 인증은 왕실 구성원이 최소 5년 이상 해당 제품을 사용했고 그 품질을 인정한다는 의미죠. 

엘리자베스 여왕 어머니(퀸 마더)는 열렬한 진 애호가로 알려져 있었어요. 그녀가 특별히 좋아했던 칵테일은 'Gin and Dubonnet'로, 진과 두보네(와인 기반 아페리티프)를 1:2 비율로 섞고 레몬 웨지를 곁들인 칵테일이었죠. 그녀의 딸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이 칵테일을 점심 식사 전에 즐겨 마셨다고 해요.

영국 찰스 왕은 자신의 컨트리하우스 하이그로브에서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한 허브를 사용해 만든 'Highgrove Organic Garden Botanical Gin’을 즐긴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 칵테일은 유기농 진, 폴 하스 마트 앤 엘더플라워 코디얼, 라벤더 에센스, 신선한 로즈마리가 들어가요. 실제로 하이그로브 에스테이트에서는 왕의 레시피로 만든 진을 한정판으로 판매하기도 하죠.

왕실 행사와 의전에서 진 칵테일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어요. 영국 여왕의 정원 파티에서는 전통적으로 'Gin Cup'이라 불리는 칵테일을 제공했는데, 이는 진, 마라스키노 리큐어, 보일드 레몬에이드, 오이, 민트, 오렌지, 딸기가 들어간 상쾌한 음료예요.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축하 연회에서는 특별히 제작된 'Coronation Gin Fizz'를 제공했다고 해요. 이 칵테일은 당시 특별히 증류된 왕실 한정판 진을 사용해 만들어졌죠.

 

🔮 여정의 끝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진의 매혹적인 세계를 함께 여행해봤어요. 역사적 기원부터 다채로운 스타일, 제조 과학과 예술, 크래프트 진의 혁명, 그리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진 칵테일 문화까지 살펴봤어요.

진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증류주이면서도, 현대에 와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영역이 된 진의 매력은 계속 우리를 놀라게 할 거예요. 이 흥미진진한 여정을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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