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기, 시간을 담아내는 마법

불, 구리 그리고 시간의 춤

2025.05.06 | 조회 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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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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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술 이야기 열 세 번째 뉴스레터 입니다.

한 잔의 위스키, 진, 럼, 소주... 다양한 술에 담긴 이야기를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맛의 깊이, 향의 복잡성, 질감의 차이.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증류기'가 있어요.

증류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생명의 물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작품이죠.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도구였고, 또 다른 이에게는 연금술의 상징이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과학과 예술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걸작이 되었어요.

 

"왜 400년 된 스카치 위스키 증류소들은 낡은 구리 증류기를 새것으로 교체할 때 찌그러진 부분까지 똑같이 만들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그 찌그러진 부분 하나, 목의 각도 몇 도 차이가 술의 영혼을 바꾸기 때문이에요. 놀랍지 않나요?

이제 우리는 증류기의 깊고 풍요로운 세계로 함께 여행을 떠나볼 거예요. 역사의 미로를 거슬러 올라가 증류의 기원을 탐색하고, 세계 각국의 독특한 증류기들을 만나보며,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증류의 마법을 이해해볼 거예요. 한 잔의 술에 담긴 수천 년의 지혜, 그 여정을 시작해볼까요?

 

🔥 최초의 불꽃

 

증류의 첫 불꽃은 언제, 어디서 피어올랐을까요?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기원을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추정해요. 향수와 약재를 추출하기 위해 사용된 초기 증류 장치의 흔적이 발견되었거든요. 진흙으로 만든 단순한 형태였지만, 인류 문명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기술의 씨앗이었죠.

"알 앰비크(Al-Ambiq)"라는 아랍어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알렘빅(Alembic)
알렘빅(Alembic)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알렘빅(Alembic)' 증류기의 어원이에요. 8-9세기 이슬람 황금기 시대에 자비르 이븐 하이얀 같은 연금술사들이 증류 기술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어요. 그들이 사용한 구리 장치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증류기의 직접적인 조상이에요.

 

⛪ 수도원의 비밀

 

중세 유럽에서 증류 기술은 수도원의 벽 안에서 조용히 발전했어요. 수도사들은 약용 증류주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죠. 아쿠아 비타에(Aqua Vitae), '생명의 물'이라 불린 이 증류주는 질병 치료를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어요.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손으로 그린 14세기 필사본에는 정교한 증류기 디자인이 남아있어요. 흥미롭게도 그들이 그린 증류기의 기본 원리는 오늘날까지도 거의 변하지 않았죠.

15세기 스코틀랜드의 수도사들은 발효된 보리 맥아즙을 증류하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이것이 바로 현대 스카치 위스키의 시작이었죠! 그들이 사용한 초기 증류기는 단순한 냄비와 구리관을 연결한 형태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정교해졌어요.

 

🏭 산업혁명과 증류기의 변화

 

Aeneas Coffey still (출처 - alamy)
Aeneas Coffey still (출처 - alamy)

 

산업혁명은 증류기 발전에 또 다른 전환점을 가져왔어요. 1830년 에니스 코피(Aeneas Coffey)가 특허를 취득한 '연속 증류기'는 증류 기술의 판도를 바꿨어요. 오늘날 보드카와 진 같은 중성 증류주 생산의 근간이 된 이 기술은 이전의 단식 증류기와 달리, 연속적으로 작동하여 더 효율적이고 일관된 증류를 가능하게 했죠.

미국 금주법 시대(1920-1933)는 역설적으로 증류기 디자인의 창의성을 발전시킨 시기였어요. 밀주업자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술을 만들어야 했기에, 접이식이나 분해가 용이한 혁신적인 디자인의 증류기를 개발했어요. 켄터키 산속에 숨겨진 작은 증류소에서 사용된 이 비밀스러운 증류기들 중 일부는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 문화 교류의 증거

 

증류기의 역사는 단순한 기술의 진화를 넘어서요. 인류 문명의 발전과 문화 교류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어요.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을 오가며 증류 기술은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변형되고 발전했죠.

아랍의 지식이 유럽으로, 유럽의 기술이 신대륙으로, 그리고 아시아의 전통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증류기는 각 문화의 독특한 색채를 담아내게 되었어요. 증류기의 역사를 알게 되면, 그저 마시는 술이 아닌 한 잔에 담긴 수천 년의 지혜와 문화를 음미하게 되죠. 

 

🥃 포트 스틸 vs 칼럼 스틸

 

증류기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요? 놀랍게도, 증류기의 형태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에요. 증류기의 모양, 크기, 각도, 심지어 미세한 굴곡 하나까지 모두 최종 증류주의 맛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죠. 악기가 소리의 특성을 결정하듯, 증류기는 술의 캐릭터를 형성해요.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두 거인의 대결이에요 - 포트 스틸(Pot Still)과 칼럼 스틸(Column Still). 이 두 방식은 증류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어요.

 

Copper Alembic Pot Stills
Copper Alembic Pot Stills

 

포트 스틸은 동화 속에 등장할 법한 둥근 배 모양의 증류기예요. 구리로 만들어진 이 아름다운 용기는 단식 증류(Batch Distillation)에 사용되죠. 단번에 한 배치의 술을 만드는 방식이에요. 위스키, 코냑, 럼 같은 풍미 강한 증류주들의 영혼은 바로 이 포트 스틸에서 태어나요.

스코틀랜드의 한 위스키 증류소 마스터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증류소의 포트 스틸은 1880년대부터 사용해온 것과 똑같은 모양이에요. 한 번 교체할 때도 찌그러진 부분, 긁힌 자국까지 그대로 복제했죠."

 

이런 집착은 단순한 전통 고수가 아니에요. 이 미세한 불규칙성이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에요.

 

Column Still (출처 - sinoprettech.com)
Column Still (출처 - sinoprettech.com)

 

반면, 칼럼 스틸은 산업혁명의 산물로, 높이 솟은 기둥 형태를 가진 연속 증류 장치예요. 효율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증류기는 보드카, 진, 라이트 럼 같은 깔끔하고 중성적인 증류주를 생산해요. 칼럼의 높이가 높을수록, 그리고 칼럼 내부의 '트레이'라는 판이 많을수록 증류액은 더 순수한 상태가 돼요.

 

🏴󠁧󠁢󠁳󠁣󠁴󠁿 영혼을 만드는 위스키 증류기

 

출처 - Glenmorangie Still House
출처 - Glenmorangie Still House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역의 양파 모양 포트 스틸은 단순한 디자인이 아닌 과학적 원리를 담고 있어요. 넓은 바닥은 열 전달을 최대화하고, 좁은 목 부분은 더 무거운 성분들이 끓어올라 다시 냄비로 떨어지게 해요. 이렇게 형성된 '환류(reflux)'는 스카치 위스키 특유의 복잡한 풍미를 창조하는 핵심 요소예요.

목의 각도는 증류주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예요. 스코틀랜드의 한 증류소 마스터는 "우리 증류기의 목은 17도 정확히 기울어져 있어요. 2도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위스키가 됩니다"라고 설명해요. 현악기의 줄 장력을 미세하게 조정하면 소리가 달라지듯, 증류기 목의 각도는 최종 주류의 '음색'을 결정짓는 요소예요.

 

🍷 코냑과 샤랑트 증류기

 

Charentais Still (출처 - destination-cognac.com)
Charentais Still (출처 - destination-cognac.com)

 

코냑의 우아함은 '샤랑트 증류기(Charentais Still)'라 불리는 특별한 디자인에서 비롯돼요. 양파 모양 몸체에 특이하게 꺾인 '스완넥(swan's neck)' 형태의 목을 가진 이 증류기는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만 볼 수 있어요. 이 굽이진 목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증류 과정이 코냑 특유의 우아하고 섬세한 향미를 탄생시켜요.

 

🌵 테킬라의 독특한 증류 과정

 

타호나 (출처 - cortevetusto.com)
타호나 (출처 - cortevetusto.com)

 

테킬라의 열정적인 맛은 여러 요소의 복합적인 결과예요. 전통 방식에서는 '타호나(Tahona)'라 불리는 화산암 맷돌로 으깬 용설란을 '오르노스(Hornos)'라는 벽돌 오븐에서 구운 후 증류해요. 이때 사용되는 'Alambiques' 증류기는 일반적으로 구리로 만들어진 포트 스틸이에요. 물론 현대 테킬라 생산에서는 효율적인 롤러밀과 오토클레이브, 때로는 칼럼 스틸도 사용하지만, 프리미엄 테킬라는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아요.

 

🍶 소주와 백주의 증류

 

소주고리 (출처 : gonjiduk.tistory.com)
소주고리 (출처 : gonjiduk.tistory.com)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요. 한국의 전통 소주 증류기인 '소주고리'는 서양의 증류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에요. 아래쪽에 발효액을 담은 옹기가 있고, 그 위에 '소주관'이라 부르는 대나무나 구리관을 거쳐, 차가운 물이 담긴 '소주둥이'에서 증기가 응축돼요. 이런 설계가 전통 소주 특유의 깔끔하면서도 은은한 맛을 창조해요. 현대 산업용 소주는 대부분 연속식 증류기로 만들어지며, 일부 크래프트 증류소에서만 전통 방식을 재현하고 있어요.

중국의 백주 증류에는 '췌(Qu)' 발효와 함께 독특한 증류 과정이 사용돼요. 일부 지역에서는 진흙 항아리나 토기로 만든 증류 장치를 사용하는데, 이는 발효물이 담긴 토기 위에 차가운 물을 채운 그릇을 올려놓고 아래에서 열을 가하는 방식이에요. 이를 '갑양법(Jia Yang Fa)'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증기가 위쪽 그릇 바닥에 응축되어 특별한 향미를 만들어내요.

 

🧪 구리, 스테인리스, 유리의 비밀

 

증류기의 재질 선택은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어요. 가장 전통적인 재질인 구리는 뛰어난 열전도성을 지닐 뿐 아니라, 증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황화합물과 반응해 이를 제거하는 화학적 기능도 수행해요. 이 과정이 없다면, 최종 증류주는 불쾌한 황 냄새가 남을 수 있어요. 최고급 레스토랑 셰프가 재료를 엄선하듯, 증류기 제작자들도 최상급 구리를 선별해 사용해요.

일부 현대 증류소에서는 경제성과 내구성을 고려해 스테인리스 스틸 증류기를 도입했어요. 다만 대부분은 내부에 구리 부품을 포함시켜 구리의 화학적 이점을 유지하려 노력해요. 일본의 몇몇 소주 증류소는 첨단 스테인리스 설비를 갖추면서도, 전통적인 풍미를 보존하기 위한 특별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어요.

유리 증류기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주로 소규모 실험이나 진과 같이 보태니컬 향이 중요한 증류주 생산에 활용되죠. 유리의 투명함은 증류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어요. 화학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이 투명한 증류기들은 현대 크래프트 증류소의 쇼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이콘이 되었어요.

 

📏 작은 차이가 만드는 큰 변화

 

증류기의 크기는 표면적 대 부피 비율에 영향을 미쳐 맛의 프로필을 변화시켜요. 작은 증류기에서는 액체와 구리 사이의 접촉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어 구리와의 반응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요. 이는 일반적으로 더 무거운 스타일의 증류주를 만들어내요. 반면, 큰 증류기는 상대적으로 더 가벼운 스타일의 증류주를 생산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다른 요소들과도 복합적으로 작용해요. 스코틀랜드의 일부 증류소들이 동일한 모양의 증류기를 다양한 크기로 보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증류기 디자인의 세계는 과학과 예술, 전통과 혁신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영역이에요. 다음에 위스키, 진, 테킬라, 소주를 마실 때는 잠시 그 술을 탄생시킨 증류기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그렇게 되면 평범한 한 잔이 아니라, 수백 년 인류의 지혜와 장인 정신이 담긴 예술 작품을 음미하는 경험이 될 거예요.

 

🧠 증류, 신비한 변신의 과학

 

증류는 마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과학이에요. 그 핵심은 액체마다 다른 '끓는점'에 있어요. 물은 100°C에서 끓지만, 에탄올은 78.4°C에서 끓기 시작해요. 이 단순한 차이가 증류의 마법을 가능하게 하죠.

발효된 액체를 가열하면, 알코올이 먼저 증기로 변해 올라가요. 이 증기는 차가운 표면과 만나 다시 액체로 응축되고, 이렇게 모인 액체는 원래보다 알코올 농도가 높아져요. 쉽게 말해, 증류는 액체 성분들을 '분리'하는 과정이에요. 마치 교실에서 키 순서대로 줄을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 헤드, 하트, 테일

 

증류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컷팅(cutting)'이라는 과정이에요. 증류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액체를 '헤드(head)'라고 불러요. 이 부분은 메탄올과 같은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대부분 버려요. 그 다음 나오는 '하트(heart)'는 가장 순수하고 풍미가 좋은 부분이죠. 마지막으로 나오는 '테일(tail)'은 더 무거운 알코올과 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증류는 90%가 과학이고, 10%는 예술이에요."

 

한 스카치 위스키 마스터 증류가의 말이 떠오르네요. 헤드와 하트, 하트와 테일을 어디서 나눌지 결정하는 것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감각과 경험에 달려있어요. 이 '컷'의 차이가 최종 증류주의 캐릭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죠.

 

🔄 복잡함을 만드는 과정

 

reflux (출처 - thetechnicalguide.in)
reflux (출처 - thetechnicalguide.in)

 

증류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류(reflux)'는 마치 무용수의 우아한 움직임과도 같아요. 증기가 올라가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 과정이 증류주의 풍미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류가 많이 일어날수록 증류액은 더 가볍고 깨끗해져요. 반대로 환류가 적으면 더 무겁고 향이 풍부한 증류액이 나오죠.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역의 위스키는 높은 증류기와 많은 환류로 인해 가볍고 과일향이 나는 반면, 아일라 지역의 위스키는 짧은 증류기와 적은 환류로 인해 더 무겁고 스모키한 특징을 가져요.

 

🔥 가열 방식의 영향

 

열이 어떻게 가해지는지도 중요한 변수예요. 직접 불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캐러멜화'라는 현상을 일으켜 더 풍부한 맛을 만들어내요. 반면 스팀 코일을 사용하는 현대적 방식은 더 일관된 열 전달을 제공해 안정적인 품질을 보장하죠.

 

"우리는 여전히 직화 방식을 고수해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죠."

 

스코틀랜드의 한 전통 증류소 투어에서 들은 말이에요. 증류의 세계에서는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이 오히려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비결이 되기도 해요.

 

👃 심장을 뛰게 하는 향기의 화학

 

증류 과정에서는 수백 가지의 화학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요. 에스테르, 알데히드, 지방산 등의 화합물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복잡한 향미 프로필을 형성하죠. 마치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가 하나의 심포니를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아요.

특히 구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요. 구리는 증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황화합물과 반응해 이를 제거해요. 이 '촉매 작용'이 없다면, 최종 증류주는 썩은 달걀 같은 불쾌한 향이 날 수도 있어요. 구리와 증기 사이의 이런 '춤'이 깨끗하고 풍부한 맛을 위한 필수 요소예요.

 

🧵 단식 vs 연속식 증류

 

증류 방식은 크게 단식 증류(Batch Distillation)와 연속식 증류(Continuous Distillation)로 나눌 수 있어요. 포트 스틸을 사용하는 단식 증류는 한 번에 한 배치씩 처리하는 방식이에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각 배치마다 증류가의 세심한 관리가 가능해 복잡한 풍미를 가진 증류주를 만들 수 있어요.

연속식 증류는 칼럼 스틸을 사용해 끊임없이 원료를 주입하고 증류액을 추출하는 방식이에요. 더 효율적이고 일관된 품질을 얻을 수 있지만, 단식 증류만큼 복잡한 풍미를 만들기는 어려워요. 보드카나 진처럼 깔끔하고 중성적인 풍미를 원할 때 주로 이 방식을 사용하죠.

 

🔬 재증류의 비밀

 

일부 증류주는 한 번의 증류로 완성되지 않아요. 스카치 위스키는 전통적으로 두 번, 아이리시 위스키는 세 번의 증류 과정을 거쳐요. 매 증류 단계마다 알코올 농도는 높아지고, 불순물은 줄어들어 더 순수한 증류액이 만들어져요.

재증류는 단순히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것이 아니에요. 각 증류 단계마다 다른 화합물들이 분리되고 결합하면서 독특한 풍미 프로필이 형성돼요. 이는 마치 음악가가 같은 멜로디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조금씩 변주를 가하는 것과도 비슷해요.

 

❄️ 냉각의 예술

 

warm tub (출처 - whiskyadvocate.com)
warm tub (출처 - whiskyadvocate.com)

 

증류에서 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냉각'이에요. 증기가 액체로 돌아가는 '응축'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따라 최종 증류주의 특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전통적인 Worm Tub 는 구리 코일을 차가운 물이 담긴 통에 담그는 방식이에요. 이 방식은 천천히 냉각되어 증류액과 구리의 접촉 시간이 길어져 더 무거운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어내요. 반면, 현대적인 쉘 앤 튜브(Shell and Tube) 콘덴서는 빠르게 냉각해 더 가볍고 과일향이 강한 증류주가 만들어지죠.

 

🌡️ 알코올 도수의 비밀

 

많은 사람들이 증류주의 도수를 궁금해해요. 증류 직후의 '뉴 메이크(New Make)'는 보통 60-80% ABV(알코올 도수)로 매우 높아요. 이 상태로는 대부분 마시기 어려워 물을 더해 적절한 도수로 낮추거나, 숙성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수가 낮아지길 기다려요.

재미있는 사실은,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모든 향미 성분이 더 잘 용해된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너무 높으면 알코올 자체의 강한 향이 다른 풍미를 압도해요. 최적의 도수는 증류주의 종류와 원하는 맛 프로필에 따라 달라지죠. 위스키는 보통 40-46% ABV, 진은 37.5-47% ABV로 병입되는 경우가 많아요.

 

🌱 증류의 시작점

 

증류 과정이 아무리 정교해도, 좋은 원료 없이는 훌륭한 증류주를 만들 수 없어요.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라는 오래된 증류가들의 격언이 있어요.

발효 단계에서 어떤 효모를 사용하는지, 발효 온도와 시간은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따라 최종 증류주의 풍미가 크게 달라져요. 일부 럼 증류소에서는 야생 효모를 사용해 더 복잡한 풍미를 얻기도 하고, 테킬라 생산자들은 용설란의 당 함량이 최대가 되는 시점을 정확히 파악해 수확해요.

 

🧪 화학과 감각의 균형

 

최신 기술이 발전했지만, 증류는 여전히 과학과 예술 사이의 경계에 있어요. 가스 크로마토그래피와 같은 첨단 장비로 증류액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마스터 증류가의 감각과 경험에 의존해요.

 

"우리는 기계가 아닌, 코와 입으로 결정해요."

 

일본의 한 소주 마스터의 말이 기억나요. 좋은 증류주를 만드는 것은 데이터 시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지혜와 감각을 믿는 과정이에요.

증류의 과학을 이해하면, 매 한 잔의 술에 담긴 놀라운 복잡성과 정교함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어요. 다음에 좋아하는 증류주를 마실 때는, 그 한 잔을 만들기 위해 벌어진 수많은 화학 반응과 세심한 결정들을 생각해보세요. 액체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아름다운 조화를 음미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 세대를 이어온 구리 장인들의 왕국

 

Pre-heating copper prior to hammering (Forsyth)
Pre-heating copper prior to hammering (Forsyth)

 

증류기 제작의 세계에서 스코틀랜드의 '코퍼스미스(coppersmith)' 가문들은 특별한 존재예요. 그중에서도 포사이스(Forsyths) 가문은 1890년부터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위스키 증류기 제작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요. 현재 가업을 잇고 있는 리처드 포사이스는 "우리는 증류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스키의 영혼을 담는 그릇을 빚어내는 거예요"라고 강조하곤 해요.

포사이스 외에도 몇몇 장인 가문들이 스코틀랜드 위스키 산업의 숨은 영웅들로 활약하고 있어요. 이들의 손에서 탄생한 증류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가문의 명예와 장인 정신이 담긴 예술 작품이죠. 전통 기술과 비밀 노하우는 가풍처럼 대대로 이어지고 있어요.

 

🔨 구리와 사람의 대화

 

"기계가 절단하고 용접할 수는 있어도, 구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어요."

 

hammering
hammering

 

스코틀랜드의 한 장인이 자신의 망치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설명했어요. 진정한 장인들은 여전히 손으로 구리판을 두드려 형태를 만들어내요. 이 '해머링(hammering)' 과정은 구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어요.

한 장인이 증류기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수백 시간이 걸려요. 1mm 두께의 구리판을 정확한 모양으로 자르고, 화로에서 달궈 구부리고, 끊임없이 두드려 정확한 곡선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마치 조각가가 돌에서 예술 작품을 끄집어내는 것과도 같아요. 특히 포트 스틸의 목 부분을 만드는 과정은 가장 높은 기술을 요구하죠.

 

🇵🇹 포르투갈의 숨은 보물

 

포르투갈의 '알람비크(Alambique)' 증류기는 포트 와인 생산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공예예요. 포르투갈 북부 지방의 작은 마을들에는 여전히 손으로 증류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있어요.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포르투갈식 브랜디인 '아구아르덴테(Aguardente)'와 허브 리큐르를 만드는 증류기를 제작해요.

 

"우리 가족은 1842년부터 이 일을 해왔어요. 이제는 저와 제 아들뿐이지만, 우리의 알람비크는 여전히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죠."

 

포르투갈 북부의 한 마을에서 만난 장인 호세가 자부심을 내비쳤어요. 그의 작업실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사용된 도구들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였어요.

 

🍶 동양의 정교함: 일본 구리 장인들

 

일본의 전통 사케와 소주 증류기 제작자들은 '도키(銅器)' 장인이라고 불러요. 이들은 구리 세공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함을 자랑해요. 특히 혼슈 지역의 구리 장인들은 독특한 망치질 기법으로 구리의 분자 구조까지 고려한 작업을 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교토 근교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5대째 증류기 제작 장인 다나카 씨는 "우리는 구리를 다룰 때 '카미(神, 신)'가 함께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작은 의식을 치러요"라고 털어놓았어요. 일본 장인들의 철학에는 기술을 넘어선 영적인 측면도 담겨 있죠.

 

📐 완벽함을 향한 집착

 

증류기 제작에는 놀라운 수준의 정밀함이 요구돼요. 특히 증류기의 여러 부분을 연결하는 접합부는 1/10mm 이하의 정확도로 제작돼야 해요.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증기가 새어나가 효율성이 떨어지고, 심각한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스코틀랜드의 한 장인은 "증류기 접합부를 만들 때는 숨을 멈추고 작업해요. 심장 박동이 손의 떨림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귀띔했어요. 이런 장인들은 레이저 절단이나 로봇 용접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의 눈과 손의 감각을 더 신뢰해요.

 

🌟 눈에 보이지 않는 디테일

 

진정한 장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정성을 다해요. "증류기 내부의 아무도 보지 않는 곳까지 완벽하게 만들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장인 정신이 아니에요"라는 말은 이 업계의 오랜 격언이에요.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의 장인들은 증류기 내부의 연결 부위를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데 특별한 공을 들여요. 이는 단순히 미적인 이유가 아니라, 매끄럽지 않은 표면에서 박테리아가 번식할 수 있고, 이것이 증류액의 풍미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보이지 않는 곳에 쏟는 정성이 최종 제품의 품질을 결정짓는 거죠.

 

🧩 각 증류소만의 증류기

 

전 세계의 장인들은 각 증류소의 독특한 요구에 맞는 맞춤형 증류기를 제작해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디자인의 증류기라도 각각 미세하게 다른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에요. 마치 지문처럼 똑같은 증류기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는 증류소 마스터와 깊은 대화를 나눈 후에야 증류기 제작을 시작해요. 어떤 풍미를 원하는지, 어떤 특성을 강조하고 싶은지 정확히 이해해야 하니까요."

 

포사이스 가문의 현재 수장인 리처드가 열정적으로 이야기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각 증류소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증류기가 탄생하는 거예요.

 

👨‍👧 사라져가는 기술을 지키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전통적인 증류기 제작 기술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이 기술을 보유한 장인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죠. 하지만 희망적인 소식은, 최근 몇 년간 젊은 세대들이 이 전통 공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처음에는 아버지의 강요로 이 일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제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스코틀랜드의 젊은 장인 로버트가 진심을 담아 고백했어요. 그는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후, 조부와 아버지의 작업실로 돌아와 가업을 이었어요.

 

"현대 기술과 전통 기술을 결합하면, 이 공예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 거예요."

 

증류기 장인들의 세계는 단순한 제조업이 아닌 예술, 과학, 전통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영역이에요. 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증류기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수세기에 걸친 인류의 지혜와 열정이 담긴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음에 증류소를 방문하게 된다면, 화려한 병 너머로 빛나는 액체만이 아니라, 그 술을 탄생시킨 아름다운 구리 증류기와 그것을 만든 장인의 손길에도 주목해보세요.

 

🏴󠁧󠁢󠁳󠁣󠁴󠁿 바다를 품은 아일라의 증류소들

 

"아일라 위스키는 바다와 이탄(peat) 뿐만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혼을 담아 만들어요."

 

아일라 섬의 증류소들
아일라 섬의 증류소들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에 발을 딛자마자 들었던 현지 주민의 말이에요. 대서양의 거친 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치는 이 작은 섬에는 라프로익(Laphroaig), 라가불린(Lagavulin), 아드벡(Ardbeg) 같은 전설적인 증류소들이 자리하고 있어요.

아일라 증류소의 매력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모두가 '아일라다움'을 공유한다는 점이에요. 라프로익 증류소는 방문객들에게 웰링턴 장화를 빌려주고 직접 이탄 습지를 탐험할 기회를 제공해요. 발 아래 스펀지처럼 물렁한 이탄을 밟으며, 그 독특한 향이 어떻게 위스키에 전이되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죠.

라가불린 증류소의 오래된 몰팅 플로어(malting floor)는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한 경험을 선사해요. 여기서는 수백 년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리를 발아시키는 과정을 볼 수 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증류소의 오래된 흰 벽을 때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같은 장면이죠.

 

🥃 버번의 심장, 켄터키 증류소 트레일

 

Kentucky Bourbon Trail
Kentucky Bourbon Trail

 

레드 와인에 보르도가 있다면, 위스키에는 켄터키가 있어요. 미국 켄터키주의 '버번 트레일(Bourbon Trail)'은 세계 최고의 버번 위스키 증류소들을 연결한 루트예요.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짐 빔(Jim Beam), 우드포드 리저브(Woodford Reserve) 같은 전설적인 이름들이 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죠.

 

Maker's Mark Distillery
Maker's Mark Distillery

 

메이커스 마크 증류소에 들어서면 마치 동화 속 마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빨간 셔터가 달린 검은 건물들, 잘 가꾸어진 정원, 그리고 인상적인 빨간 왁스 시그니처로 병을 마감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직접 볼 수 있어요. 이곳의 투어 가이드는 "우리는 효율성보다 전통을 중시해요. 그래서 여전히 손으로 병마다 왁스를 입히죠"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요.

버팔로 트레이스(Buffalo Trace) 증류소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 중 하나로, 심지어 금주법 시대에도 '의약용'이라는 명목으로 운영되었던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이곳의 숙성창고에 들어서면 '엔젤스 셰어(angel's share)'라 불리는 증발된 위스키 향이 공기 중에 가득해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 우아함의 대명사, 프랑스 코냑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코냑 지방은 시간이 멈춘 듯한 고풍스러운 매력이 넘쳐요. 헤네시(Hennessy), 마르텔(Martell), 레미 마르탱(Rémy Martin) 같은 세계적인 코냑 브랜드들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죠.

 

"코냑을 만드는 것은 와인을 두 번 태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병에 담는 과정이에요."

 

코냑 지방의 한 증류소 주인이 조용히 설명해줬어요. 이곳의 증류소들은 스코틀랜드나 켄터키의 화려한 관광지화된 시설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요. 마치 오래된 샤토(château)나 저택을 방문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죠. 레미 마르탱 증류소에서는 '아로마 휠(aroma wheel)' 체험을 통해 코냑의 다양한 향을 구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Paradis in Hennessy
Paradis in Hennessy

 

특히 인상적인 것은 '파라디(Paradis)'라고 불리는 특별한 숙성고예요. 이곳에는 100년 이상 된 오드 코냑(eau-de-vie)들이 보관되어 있어요.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경이로운 느낌과 함께, 공기 중에 퍼진 수십 년 된 코냑의 향기가 방문객을 맞이해요.

 

🏝️ 열대의 보물, 카리브해 럼 증류소

 

카리브해의 증류소들은 그 자체로 열대의 낙원 같은 분위기를 자랑해요. 자메이카의 애플턴(Appleton), 바베이도스의 마운트 게이(Mount Gay), 마르티니크의 클레망(Clément) 같은 증류소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한 자메이카 럼 메이커는 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럼은 병 속에 담긴 휴가예요"라고 말했어요. 애플턴 증류소는 자메이카의 울창한 열대 계곡에 위치해있어요. 이곳에서는 전통적인 '도더(dunder)' 발효 방식을 볼 수 있는데, 이전 배치의 발효 잔여물을 새 배치에 추가하는 독특한 방법이에요. 이 전통이 자메이카 럼 특유의 풍부한 에스테르 향을 만들어내는 비결이죠.

마르티니크의 럼 증류소들은 마치 타임캡슐 같아요. 클레망 증류소는 옛 사탕수수 농장을 개조한 곳으로,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이곳에서는 '롱 쥐스(Rhum Agricole)'라 불리는, 사탕수수 원액으로 직접 만드는 특별한 럼의 제조 과정을 볼 수 있어요.

 

🍶 섬세함의 극치, 일본 규슈의 소주 왕국

 

일본 남부 규슈섬은 전통 증류식 소주의 본고장으로,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증류소들이 모여 있어요. 이곳을 걷다보면 소주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발견하게 돼요.

 

"소주는 단순함의 예술이에요. 불필요한 것을 모두 제거하고 남은 본질만 담아내죠."

 

가고시마현 증류소
가고시마현 증류소

 

일본 규슈 지역의 한 소주 장인이 차분히 설명했어요. 가고시마현의 소주 증류소들은 고구마를 원료로 한 '이모(芋, 고구마) 소주'로 유명해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증류소인 무라오카(村尾)를 방문하면, 정갈한 일본식 정원을 지나 전통적인 코지(koji) 발효실을 볼 수 있어요. 발효실에 들어서는 순간 달콤하고 신비로운 향이 코를 자극하는데, 이것이 바로 소주 특유의 깊은 맛을 만들어내는 비결이에요.

미야자키현의 히나타(日向) 증류소는 전통과 현대 기술의 조화를 보여주는 곳이에요. 이곳에서는 수백 년 된 방식으로 쌀 코지를 만들면서도, 최신 온도 조절 시스템을 갖춘 현대적 증류기를 사용해요. 시음실에서는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다양한 소주를 맛볼 수 있는데, 각각의 풍미 차이가 놀라울 정도예요.

 

🌵 용설란의 영혼: 멕시코 할리스코의 테킬라 여정

 

Tequila Jalisco
Tequila Jalisco

 

멕시코 할리스코주 테킬라 마을은 푸르른 용설란 밭으로 둘러싸인 마술 같은 장소예요.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공기 중에서도 발효된 용설란의 달콤한 향기가 느껴져요.

테킬라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대형 생산 시설보다 소규모 장인 증류소에서 찾을 수 있어요.

 

"테킬라는 술이 아니라 열정이에요."

 

한 작은 증류소 주인의 눈빛에서 그 진심이 느껴졌어요. 포르탈레자(Fortaleza) 같은 전통 증류소에서는 '타호나(tahona)'라 불리는 화산암 맷돌로 용설란 심장부를 으깨는 오래된 방식을 계속 고수하고 있어요.

증류소 투어 중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바로 용설란 밭 방문이에요. '히마도르(jimador)'라 불리는 용설란 수확 전문가들이 '코아(coa)'라는 특별한 도구로 용설란 잎을 자르는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정확성과 우아함을 보여줘요. 그들은 "좋은 테킬라는 밭에서 시작돼요"라고 말하며, 품질 좋은 용설란 선별의 중요성을 강조해요.

 

🌊 스코틀랜드 해안가 증류소들

 

아일라를 벗어나, 스코틀랜드 본토와 다른 섬들의 해안가 증류소들도 놓칠 수 없는 보물이에요. 스카이섬의 탈리스커(Talisker), 오크니섬의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북부 해안의 올드 풀트니(Old Pulteney) 같은 증류소들은 모두 바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요.

바다의 기운이 증류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직접 방문해봐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탈리스커 증류소는 거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가까이 위치해 있어요. 이곳에서는 폭풍우가 치는 날 창문을 통해 바닷물이 증류소 벽을 때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해요. 증류소 관계자는 "우리 위스키에서 느껴지는 소금기와 바다 향은 이곳의 기후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에요"라고 설명해요.

하이랜드 파크 증류소는 바이킹의 역사가 깊은 오크니섬에 위치해 있어요. 이곳에서는 자체 생산하는 이탄(peat)을 사용하는데, 오크니의 이탄은 나무가 아닌 해초와 히더(heather) 식물로 구성되어 있어 독특한 향을 만들어내요. 증류소 주변의 바이킹 유적지를 탐방하는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거예요.

세계의 증류소들은 단순한 주류 생산 시설을 넘어, 오랜 문화와 전통, 자연환경의 특성이 녹아든 살아있는 문화유산이에요. 이곳들을 방문하는 것은 한 병의 술에 담긴 이야기와 영혼을 직접 마주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의 다음 여행에서는 평범한 관광지를 벗어나, 이런 증류소들을 찾아 색다른 문화 체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 구리의 마법

 

증류기 재질 중 구리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어요. 증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황화합물은 최종 증류주에 불쾌한 향과 맛을 줄 수 있는데, 구리는 이런 화합물과 자연스럽게 반응해 제거해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한번은 구리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 증류기로 실험해봤어요. 결과물은... 음, 마치 썩은 계란을 마시는 것 같았죠."

 

스코틀랜드의 한 증류소 마스터가 웃으며 털어놓았어요. 특히 이황화메틸(dimethyl sulfide)과 메르캅탄(mercaptans) 같은 황화합물은 구리와 만나면 불용성 염을 형성해 제거되는데, 이 과정이 없다면 최종 증류주는 매우 불쾌한 맛을 가질 수 있어요.

구리의 촉매 작용은 단순히 불쾌한 요소를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아요. 이 과정에서 에스테르(ester) 형성을 촉진하고, 알데히드(aldehyde)를 줄이는 등 풍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화학 반응도 일어나요. 마치 요리사가 정확한 양념을 더하듯, 구리는 증류주의 균형 잡힌 맛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 각도가 만들어 내는 향

 

"증류기의 목은 마치 바이올린의 넥과 같아요.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죠."

 

아일랜드의 한 증류소 마스터의 말이에요. 증류기 목의 각도와 길이는 최종 증류주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예요.

더 가파른 각도의 목은 더 적은 환류를 허용해, 무거운 성분들이 더 많이 증류액에 포함되게 해요. 이로 인해 바디감이 더 풍부하고 과일향이 진한 증류주가 만들어져요. 반면, 완만한 각도의 목은 더 많은 환류를 일으켜 가벼우면서도 세련된 맛의 증류주를 생산해요.

 

Highland Park Still
Highland Park Still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많은 증류소들이 풍부한 과일향의 위스키로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증류기의 목 각도에 있어요. 반면, 하이랜드 지역의 일부 증류소들은 더 가늘고 긴 목의 증류기를 사용해 더 가벼운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어내죠.

 

🌀 응축기, 액체로 돌아오다

 

증류 과정에서 증기가 다시 액체로 변하는 방식 또한 맛에 큰 영향을 미쳐요. 전통적인 'worm tub'와 현대적인 'shell and tube' 콘덴서는 완전히 다른 풍미 프로필을 만들어내죠.

웜 튜브는 구리 코일을 차가운 물이 담긴 통에 담그는 방식으로, 냉각이 비교적 천천히 일어나요. 이 과정에서 증기와 구리 사이의 접촉 시간이 길어져, 더 많은 황화합물이 제거되고 '육감적인' 특성을 가진 증류주가 탄생해요. 스코틀랜드의 몇몇 증류소들은 이런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며 특유의 묵직한 풍미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반면, 쉘 앤 튜브 콘덴서는 훨씬 효율적으로 열을 교환해 빠르게 증기를 냉각시켜요. 이 방식은 더 깨끗하고 가벼운 특성의 증류주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가 1980년대에 웜 튜브에서 쉘 앤 튜브로 바꿨을 때, 위스키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더 과일향이 강해졌고, 무게감은 줄어들었죠."

 

🌡️ 불과 증기의 차이

 

증류기를 가열하는 방식도 최종 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예요. 전통적인 직화 방식과 현대적인 스팀 코일 방식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증류주를 만들어내요.

직화 방식에서는 증류기 바닥에 직접 열이 가해져 국부적으로 높은 온도가 발생해요. 이로 인해 발효액 내의 일부 성분이 '캐러멜화'되고, 이것이 더 풍부하고 복잡한 풍미를 만들어내요. 마치 구운 음식이 특별한 풍미를 가지게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죠.

스팀 코일은 더 균일하고 제어 가능한 가열을 제공해요. 이 방식은 더 일관된 품질의 증류주를 만들어내지만, 때로는 직화 방식에서 나오는 독특한 캐릭터가 부족할 수 있어요. 현대의 많은 증류소들이 효율성과 안전성 때문에 스팀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일부 전통 증류소들은 여전히 직화의 특별한 맛을 위해 오래된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 증류의 숨겨진 세계

증류 과정에서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현상들이 맛에 큰 영향을 미쳐요. 그중 하나가 '마이크로 경계층(micro boundary layer)'이라 불리는, 증류기 내벽과 증기 사이에 형성되는 얇은 액체 막이에요.

 

"이 경계층은 불과 수 마이크로미터 두께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 최종 맛의 핵심을 결정해요."

 

화학자 출신 증류 마스터의 설명이에요. 이 얇은 층에서는 알코올과 물, 다양한 향미 성분들이 구리 표면과 상호작용하며 복잡한 화학 반응을 일으켜요.

흥미로운 점은, 오래된 증류기가 특별한 맛을 만들어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경계층과 관련이 있다는 거예요. 수십 년간 사용된 증류기 내부에는 미세한 흠집과 패턴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경계층의 특성을 변화시켜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내요. 이것이 바로 많은 증류소들이 증류기를 교체할 때도 모든 흠집과 찌그러짐을 그대로 복제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 미생물,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증류소 환경에 존재하는 고유한 미생물도 증류주의 풍미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각 증류소마다 독특한 효모와 박테리아 군집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발효 과정에서 독특한 풍미 성분을 만들어내죠.

특히 전통적인 방식의 증류소에서는 벽, 천장, 심지어 공기 중에도 수세대에 걸쳐 형성된 고유한 미생물이 존재해요.

 

"우리 증류소는 1880년대부터 같은 장소에서 운영되어 왔어요. 이 공간의 미생물은 우리 위스키만의 특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심지어 일부 전통 증류소들은 새 건물로 이전할 때 오래된 증류소의 목재나 석재 일부를 가져가기도 해요. 이는 단순한 감성적 이유가 아니라, 그 재료에 서식하는 미생물 군집을 새 공간으로 옮기기 위한 과학적 선택이기도 하죠.

 

🥃 증류의 세계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우리는 증류기의 광대한 세계를 함께 여행했어요. 단순한 도구처럼 보이는 증류기 속에 담긴 역사, 과학, 예술, 문화의 다채로운 측면들을 살펴봤죠. 증류기는 수천 년 인류의 지혜와 창의성이 녹아든 살아있는 유산이에요.

이제 여러분이 좋아하는 증류주를 마실 때는, 그 속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떠올려보세요. 맛과 향을 만들어낸 증류기의 모양, 장인의 손길, 수많은 화학 반응, 그리고 오랜 시간 숙성되며 쌓아온 복잡한 풍미의 레이어들을 음미해보세요. 수천 년 이어져 온 인류의 지혜와 예술을 경험하는 특별한 순간이 되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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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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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시

    0
    8 days 전

    와 정말 글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있었을지 상상이 안돼네요ㅠㅠ 덕분에 양질의 좋은 정보를 얻어갑니다!! 계속 연재해주세요 벌써 사라질까 애타요 응원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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