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JAZZ] Bill Evans - 재즈는 '방법'이라 말하다

2025.02.10 | 조회 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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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JAZZ

재즈를 통해 만나는 음악과 인생의 즉흥연주

Bill Evans - Alone -1968 - FULL ALBUM
빌에반스가 혼자서 피아노를 연주한 앨범.

감사 인사

안녕하세요 GM JAZZ의 Dj.Girin 입니다. 저는 재즈와 피아노를 향한 순수한 애정으로 SNS를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전통적 SNS부터 유튜브, 트위치, Kick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 심지어 메타버스를 표방했던 이프렌즈까지. 여러 플랫폼을 전전하며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쓰레드에서 처음으로 변화를 느꼈습니다. 재즈에 대한 이야기에 조회수와 좋아요가 쌓이는 걸 보며 가슴이 뛰더군요. 전문가라고 하기엔 부족한 지식, 얕은 조예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사이에 먼저 뉴스레터 구독을 신청해주신 첫 8분께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GM JAZZ는 쓰레드에서 조각조각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재구성해 격주 월요일 아침, 구독자분들의 메일함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재즈를 향한 순수한 애정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갈 뉴스레터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시간 재즈 연습 보다, 3분 재즈인 인터뷰가 필요 할 때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나는 문득 연습을 멈추고 빌 에반스의 인터뷰 영상을 틀었다. 때로는 끝없는 스케일 연습보다, 위대한 음악가의 한 마디가 더 큰 깨달음을 준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현재의 단계를 완벽히 이해하라"는 빌 에반스의 말은 마치 등대처럼 내 음악적 여정을 비춰주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일깨워주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침묵을 연주하라"는 말도 잊을 수 없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밤늦게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다 문득,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음악은 소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여백으로도 만들어진다. 이런 깨달음은 교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존 콜트레인이 "나는 매일 연습하지만, 늘 처음인 것처럼 연주한다"고 했던 말도 내 음악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수십 년의 경험을 가진 거장도 매일을 처음처럼 대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제 나는 연습실에서 보내는 시간과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때로는 3분짜리 인터뷰가 3시간의 연습보다 더 큰 깨달음을 준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쇼팽과 모차르트도 재즈 뮤지션

빌 에반스는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쇼팽과 모차르트도 재즈 뮤지션이었다고. 물론 그가 말한 것은 장르로서의 재즈가 아니었다. 그에게 재즈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미리 정해진 기준 없이, 순간의 감정과 음악적 직관으로 연주하는 것.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모든 훌륭한 작곡가들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작곡 대부분은 즉흥 연주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에반스는 이것이 점점 사라져가는 예술이 되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래리 번커는 이를 문학에 비유했다. 훌륭한 작가가 반드시 뛰어난 즉흥 연설가는 아닌 것처럼, 작곡가가 즉흥 연주를 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책상에 앉아 문장을 다듬듯, 작곡가는 시간을 들여 음악을 만든다. 반면 재즈 뮤지션들은 즉흥 연설가와 같다. 그들은 오랜 시간 습득한 광범위한 음악적 어휘를 사용해 순간의 표현을 만들어낸다. 5시간 동안 고민해서 5분짜리 음악을 쓴다면 그것은 작곡이지만, 순간의 영감으로 연주한다면 그것이 바로 재즈라고 에반스는 말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무질서한 자유를 의미하지 않았다. 척 이스라엘스는 프레임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나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그들은 종종 재즈가 아무런 틀 없이 연주된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완전한 즉흥이란 불가능하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이론적 프레임워크 안에서의 자유였다. 마치 와이어 프레임 위에 세 명의 조각가가 함께 점토를 쌓아가듯, 기본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에반스와 그의 동료들이 추구한 재즈의 본질이었다.

빌 에반스는 재즈를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어떤 스타일인지가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즈라는 것이다. 그에게 재즈는 미리 정해진 틀 없이, 순간의 감정과 음악적 직관으로 연주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즉흥이나 무질서와는 다르다. 그가 말한 "이론적 프레임워크 안에서의 자유"라는 개념은, 마치 와이어 프레임 위에 세 명의 조각가가 동시에 점토를 쌓아가는 것과 같다. 기본 구조는 있되, 그 안에서 무한한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척 이스라엘스는 "완전히 추상적인 음악보다, 우리가 선택한 규율 안에서 연주할 때 더 큰 만족감과 감정적 몰입을 느낀다"고 말했다. 드러머 래리 번커는 이를 건축에 비유했다. 건물의 용도와 재료,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어진 건물이 무의미하듯, 음악적 프레임워크 없는 자유는 공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진정한 자유란 규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규칙을 깊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에반스는 "우리는 음악에 대한 헌신으로 연주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음악 자체를 위한 연주. 2000년의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온 문화적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가장 순수한 표현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그들이 추구한 재즈의 본질이었다. "리허설을 자주 하냐"는 질문에 "한 번도 안 했다"고 답한 것처럼, 이들의 음악은 철저한 이론적 기반 위에 자연스러운 호흡과 즉흥성이 더해진 결과물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재즈

빌 에반스의 1961년 빌리지 뱅가드의 녹음은 재즈 피아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프레이징의 깊이, 리듬 구조의 혁신성, 트리오 멤버들과의 상호작용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과서가 되었다. 정해진 악보 없이도 완벽한 앙상블을 이뤄내는 방식은 혁명적이었다. 리허설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 "충분히 오래 함께 연주하면 그냥 알게 된다"는 답변은 재즈의 본질을 관통한다.

초기의 내성적이고 서정적인 스타일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강렬한 표현으로 진화했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재발명했던 것처럼,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인상주의적 색채가 강했던 초기와 달리, 후기로 갈수록 더욱 거칠고 강렬한 에너지가 더해졌다. 파리의 한 공연에서는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 다른 키로 연주하기도 했다. 스웨덴에서 있었던 'Round About Midnight' 공연은 빌 에반스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다.

누구도 지시하거나 계획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자연스럽게 곡의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음악 밖에서 '두 번째 코러스는 포르테로 8마디를 연주하고, 이렇게 프레이즈하고, 트리플렛으로 가자' 같은 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거짓이 된다"는 말처럼, 진정한 재즈는 순간의 진실에서 피어난다는 철학을 보여줬다. 음악적 아이디어의 교환은 말이 아닌 연주로 이뤄졌고, 이것이 바로 빌 에반스가 추구한 재즈의 본질이었다.

BILL EVANS Trio: 'Round Midnight Live in Sweden, 1970

빌 에반스는 피아노 트리오를 완벽한 음악적 조합이라고 불렀다. 타악기의 리듬감, 베이스의 저음, 그리고 리드와 화성을 모두 담당하는 피아노. 이 세 악기는 음악의 모든 기본 요소를 충족하면서도 불필요한 요소는 하나도 없다. 마치 세 사람의 대화처럼, 각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에반스는 "음악적 결과물에 책임지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 결과물은 더 순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호른 연주자가 함께할 때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그룹의 역학이 '리드와 리듬섹션'이라는 전형적인 구도로 바뀌게 된다. 이는 단순히 악기 하나가 추가되는 것 이상의 변화다. 에반스의 트리오가 추구한 것은 세 명의 연주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자유로운 음악적 대화였다. 베이시스트 척 이스라엘스는 "호른 연주자도 우리처럼 유연해져야 하고, 베이스가 에센셜 라인을 익히듯 세컨드 라인을 익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리허설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느냐"는 질문에 드러머 래리 번커는 "충분히 오래 함께 연주하다 보면 그냥 알게 된다"고 답했다. 스톡홀름에서의 'Round About Midnight' 연주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강렬한 솔로가 곡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바꾸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확고한 음악적 사실에 기반한 자유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연주자가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음악 자체를 가장 먼저 존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같은 레파토리를 연주 한 이유

빌 에반스 트리오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리허설 없이" 순수하게 연주를 통해서만 발전했다는 점이다. 게스트 아티스트와의 드문 협연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리허설도 하지 않았다. 뉴욕 빌리지 뱅가드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실험실이었고, 매일 밤 정해진 시간 동안의 연주가 그들을 성장시켰다. 척 이스라엘스는 "우리의 모든 발전은 클럽에서 이루어졌고, 대부분은 빌리지 뱅가드에서였다"고 회상했다. 16세 때처럼 즐거움을 위해 잼 세션을 하는 것이 아닌, 진지한 음악적 발전을 위한 시간이었다.

매일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것은 쉽게 정체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빌 에반스는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좋은 곡이라면 백만 번을 연주해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지루함과 싸우는 과정에서 오히려 음악적 정점이 찾아오기도 했다. "책임감 있는 음악가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도전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 결과로 발전이 일어난다"는 빌 에반스의 말은 그의 음악적 태도를 정확히 보여준다.

시작할 때 사용했던 기본적인 형태, 특히 대중가요의 형식을 계속 고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한정된 형식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빌 에반스가 추구한 음악적 성숙이었다. "다른 음악적 프로젝트와 관심사가 있기에 일 년의 반만 공연하고 싶다"는 말처럼, 연주는 그들에게 단순한 반복이 아닌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음악적 규율은 단순한 고집이 아닌, 성숙한 예술가의 자세였다.


빌 에반스 트리오 멤버간의 평가

베이시스트 척 이스라엘스는 동료 음악가들의 자질을 독특한 시각으로 평가했다. 드러머 래리 번커에 대해서는 음악적 기술에 대한 완벽한 이해, 동료들의 음악적 감정에 대한 민감성, 주어진 프레임워크 안에서의 창의성을 높이 샀다. 빌 에반스에 대해서는 더 깊은 평가를 내놓았다. 모차르트, 바흐,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음악적 균형과 함께, 독특한 리듬 감각이야말로 빌 에반스만의 역사적 공헌이라고 평했다.

특히 어떤 음들의 조합도 다른 음악에서 찾을 수 있지만, 빌 에반스가 연주하는 리듬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함을 지녔다고 강조했다.

래리 번커(드러머)는 동료 음악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가였지만, 빌 에반스 트리오에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척 이스라엘스의 베이스 연주에서는 스캇 라파로 이후 드물게 보는 유동성을 발견했다. 울림 있고 높이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 선율적 감각, 그리고 특유의 '유대적인' 솔로 스타일을 언급하며, 시간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다가도 정확한 박자로 돌아오는 능력을 극찬했다. 빌 에반스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한 평가를 내놓았다.

"당신이 재즈에서 듣고 싶은 모든 것"이 그의 연주에 있으며, 어떤 단점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 재즈 뮤지션으로서 대부분의 연주자들에게서 결점을 찾아내게 되는데, 빌 에반스의 연주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빌 에반스는 동료들의 찬사에 겸손하게 응답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한 채, 순수하게 음악적인 관점에서 동료들을 평가했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새로운 시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동료들의 준비된 자세였다고 회상했다. 래리 번커에 대해서는 많은 드러머들과 달리 완벽한 음악가이며, 훈련된 음악적 귀와 함께 탁월한 취향과 분별력을 지닌 마스터 드러머라고 평가했다. 척 이스라엘스에 대해서는 퍼시 히스와 같이 베이시스트로서 독특한 기본 개념을 가진 연주자라고 평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여기 있는 것은 내가 원했기 때문"이라며, 서로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재즈 연주자에게 클럽과 콘서트홀의 차이란?

두 개의 서로 다른 무대는 빌 에반스 트리오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지녔다. 리허설 없이 순수하게 연주를 통해서만 발전하는 트리오에게 클럽의 연주 시간은 필수적이었다. 콘서트홀의 완벽한 음향 조건이 이상적이긴 했지만, 현실의 무대는 달랐다. 기준 이하의 피아노, 비좁은 무대, 음향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프로페셔널의 자세였다. 오클라호마 털사의 한 클럽처럼 음향 연구까지 진행하며 무대를 만든 특별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어진 조건에 적응해야 했다.

연간 공연 일정 관리도 독특했다. 1년 중 6개월만 공연하기를 원했고, 나머지 시간은 각자의 음악적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2개월간의 유럽 콘서트 투어, 미국에서의 2개월 콘서트와 2개월의 클럽 공연이 이상적인 균형이었다. 척 이스라엘스는 "우리의 모든 발전은 클럽에서 이루어졌고, 대부분은 뉴욕 빌리지 뱅가드에서였다"고 회상했다. 매일 밤 정해진 시간 동안 연주해야 하는 클럽의 특성이 음악적 성장을 이끌었다.

래리 번커는 두 차이를 '관객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콘서트홀에서는 45-50분 짧은 공연으로 끝나지만, 클럽에서는 관객과 더 친밀한 교감이 가능했다. "우리는 먼저 서로를 위해 연주하지만, 음악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는 그의 말처럼,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클럽에서의 연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빌 에반스는 여기에 덧붙였다. 콘서트에서는 감정적 에너지를 한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 정점의 연주가 나올 확률이 높지만, 클럽에서는 연주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고. 그리고 그 순간은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갈 수록 빨라지는 빌 에반스의 템포

빌 에반스는 1979년 4월, 워싱턴 D.C.의 블루스 앨리에서 연주하던 날, 형 해리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Re: Person I Knew' 연주 중 눈물을 흘리던 순간, 음악은 더 이상 단순한 연주가 아니었다. 베이시스트 마크 존슨은 "끔찍한 시간이었다. 빌의 종말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했다. 깊이 사랑했던 형의 상실은 내면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었고, 이후 연주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육체적 한계 앞에서도 영혼의 힘을 믿었다. 프랑스의 한 호텔 방에서는 누군가 창문으로 자신을 감시한다는 망상에 시달리면서도, 드러머 조 라바버라에게 "약물의 해악에 대해 강의해주고 싶지만, 늦었으니 나를 보고 교훈을 얻으라"는 말을 남겼다. 중독과 싸우면서도 음악만큼은 한 순간도 놓지 않으려 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만큼은 완벽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스위치를 켜는 것"이라고 표현했던 이 순간의 변화는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미셸 르그랑과의 마지막 대화는 그의 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확장된 작품을 준비하면서 "내 손을 봐, 너무 어려운 걸 쓰지 말아줘"라고 부탁했다. 부어오른 손을 보며 "수백만 개의 음표가 아니라 올바른 음표를 연주하는 게 중요해"라는 르그랑의 위로에도, "아니, 내게 문제가 있어. 악보는 쉬워야 해"라고 답했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예술가의 마지막 고백.

1980년 9월, Keystone Korner에서의 마지막 공연은 빌 에반스의 음악 인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피아노 고음부 바로 뒤에 앉아있던 관객들은 손끝에서 피어나는 음악의 섬세함에 집중한 나머지, 쇠약해진 육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전 레코딩들보다 빨라진 템포, 연주에 감도는 불안정한 긴장감. 단순한 쇠약함의 징후가 아닌, 마지막까지 음악적 한계에 도전하는 예술가의 투혼이 담겨있었다.

거의 모든 공연에서 연주했던 "Theme From M.A.S.H."는 이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자살은 고통없다(Suicide is Painless)"라는 원제를 소개하면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이라고 덧붙인 말에 청중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마지막 고백이었을지도 모를 어두운 유머. 형 해리의 자살 이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자기 파괴의 길을 걸었다. 주변의 병원 치료 권유도 거절했고, 마약 사용은 치명적인 수준으로 늘어만 갔다.

Fat Tuesday's에서의 마지막 공연,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마치 스위치를 켜듯 완벽한 집중력이 살아났다. 리치 베이라크는 "가장 창의적이고, 빛나며, 자유롭고, 스윙감 넘치고, 섬세한 연주"라고 회상했다. 51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순수한 음악적 영혼을 청중과 나누려 했다. 마운트 시나이 병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차 안에서도 교통체증을 피하는 경로를 알려주었다. 음악가로서의 책임감은 마지막 숨결까지 이어졌다.

1961년 빌리지 뱅가드의 녹음에서 들리는 깊이 있는 프레이징과 여유로운 리듬은 후기로 갈수록 더욱 빠르고 긴장감 있는 연주로 변해갔다. 1979년 형 해리의 자살 이후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졌다. 드러머 조 라바버라는 "빌의 템포가 때때로 심하게 달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지적에 격분하며 "그냥 그대로 따라와"라고 말했던 순간들. 마약 사용의 증가로 인한 육체적 변화였을까, 아니면 내면의 깊은 고통을 달래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었을까.

70년대 재즈 씬은 퓨전 재즈가 주류였다. 허비 행콕, 칙 코리아, 웨더 리포트 같은 밴드들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동안, 전통적 재즈의 관객은 줄어들었다. 공연장에 20명도 채 되지 않는 관객만이 찾아왔다는 일화는 당시의 현실을 보여준다. 빨라진 템포는 어쩌면 시대에 대한 저항이었는지도 모른다. 융합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즈의 본질을 지키려 했던 마지막 몸부림.

마지막 공연장에서 빌 에반스는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가 공연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마치 스위치를 켜듯 완벽한 집중력이 살아났다. 빨라진 템포 속에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생의 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음악의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예술가의 고집이 담겨있었다. 리치 베이라크의 말처럼 "가장 창의적이고, 자유롭고, 섬세한 연주"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Bill Evans - Live at Balboa Jazz Club (1979 Album)

재즈 피아니스트에게 빌 에반스란

1950년대 후반, Kind of Blue 앨범 참여를 기점으로 시작된 빌 에반스의 활동은 재즈 피아노의 역사를 새로 썼다. 1985년 디지 길레스피, 데이브 브루벡, 매리안 맥파트랜드 등 재즈 거장들의 설문 결과는 이를 증명한다.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 '가장 영향력 있는 피아니스트',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세 부문 모두에서 아트 테이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단순한 기교를 넘어선 음악적 혁신, 그것이 동료 음악가들의 평가였다.

현대 재즈 피아니스트들에게 빌 에반스의 그림자는 너무 크다. 브래드 멜다우같은 거장조차 "빌 에반스의 추종자"라는 평가를 거부할 만큼, 독자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재즈 교과서에 등장하는 '빌 에반스의 영향을 받은 피아니스트'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허비 행콕, 칙 코리아, 키스 자렛 등 라이벌로 여겨진 피아니스트들조차 그의 음악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빌 에반스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영향력을 뛰어넘는 재즈 피아니스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젊은 음악가들이 공연장에 찾아와 조언을 구할 때면 언제나 친절하게 응대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러한 태도는 변함없었다. 재즈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은 불가피하게 그의 유산을 마주하게 된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음악가가 예술의 역사에 남긴 거대한 발자국. 스스로를 돌보는 데는 무심 했지만, 음악에 대한 헌신 만큼은 한순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Brad Mehldau: The Greatest Jazz Pianist of Our Generation
13:17 "that's Bill Evans that's you know all this great thing of you know really voice leading but that might be one thing but then if I'm in a tune 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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