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 사랑하는 방법도 배워야 해

초짜 상담사의 집단상담 후기 (2)

2023.02.12 | 조회 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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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별 에세이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 걸까

 

이번 연재는 정말 엉망진창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9시에 글을 보내야 하는데, 9시가 조금 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있네요. 요즘은 유난히 지각도 펑크도 잦지요? 돈 한 푼 떨어지지 않는 무료 연재라지만 제가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었나, 괜한 자책도 한 번 하게 됩니다. 

 

조금 낯부끄러운 마음으로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 보건데, 사실 자책이란 그리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책은 '이런 잘못을 저지르다니 내가 나쁜 놈이야'라는 생각이지요. 그게 생산적이지 않은 건 내가 나쁜 놈이 됨으로써 나는 불안한 마음을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책은 나의 잘못에 대한 합리화이기도 합니다. 나는 나쁜 놈이니까 이런 잘못을 저질렀고, 이런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나는 나쁜 놈인 거지요. 여기엔 어떤 변화나 성찰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려운 건 내가 나쁜 놈은 아님에도 잘못을 저질렀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 했지만, 그 결과가 이런 지각 연재였다고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건 부끄러움을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쪽지시험을 보고 와서 엄마한테 20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내밀면서 "엄마, 그래도 최선은 다 했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차라리 엄마가 나를 혼낼까봐 벌벌 떨면서 시험지를 감추는 편이 쉬울 겁니다. 아님 '나는 수학은 아닌가 봐'라고 생각하며 얌전히 수포자가 되는 길도 있지요.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리고 그 최선의 결과가 엉망이라는 걸 인정하면 또다른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여서 최선을 다 했는데도 이 결과가 나온 걸까? 많은 대답이 뒤따를 수 있겠지요. 요새 밤샘 공부를 했더니 오히려 피곤해서 공부에 집중이 더 안 됐나봐, 라던가, 수학 학원 선생님이 너무 나랑 안 맞아, 다른 학원에 가봐야겠어! 라던가. 아니면 깊은 고민 끝에 뜻밖의 진실을 마주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엄마가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시험을 망치면 나한테 관심을 보일까? 같은 거지요.

 

그건 자책보다, 내가 나쁜 놈이라고 단정짓고 끝내버리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입니다. 반성과 자아성찰이지요. 나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고, 그 최선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그 최선을 어떻게 더 건강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을까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뒤따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한 고민은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지요.

 

변명이 길었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뒤집어쓰고(아직 두꺼운 철판은 제가 감당이 안 되니 조금 얇은 걸로), 이런 지각 연재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괜찮은 이야기꾼이자 성실한 글쓴이라는 믿음을 유지하며 자아성찰을 하자면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꾸 지각해서 죄송해요. 어후, 근데 연애 진짜 힘드네요! 요즘 여자친구 걱정하느라 진짜 웬종일 기진맥진해요. 진짜 요즘 글 쓸 힘도 없어요. 다음 연재는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비축분도 만들어놓고 하도록 노력해볼게요. 그니까 여러분, 자꾸 지각하는 거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여기까지 쓰고 나니 오늘도 군대 썰 풀기는 틀려먹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뻔뻔하게 집단상담 얘기로 연재분을 갈음하겠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이자 마지막 집단 상담을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상담센터 인근의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이 글을 쓰고 있지요. 저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참 많았던 하루였습니다. 지하 수백 미터를 파고들어가 자기 머리통만한 다이아몬드를 캐내어 지상으로 올라온 광부가 이런 느낌일 것 같습니다. 너무 좋지만, 그래서 너무 피곤하네요...

 

쓸 이야기는 정말 많지만 이제 정말 체력도 집중력도 바닥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능한 짧게 적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수학 쪽지시험에서 20점을 받아온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요? 상담심리학의 대답은 주 양육자, 부모님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은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단단한 확신을 부모님이 제공해주어야 하지요. 이처럼 사랑받음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필요성을 절감하기까지 참 많은 고생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죽이고야 말리라는 확신이 들어야겠지요. 천애고아가 낯선 외국에 홀로 떨어진다면 그런 기분일 것 같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배우지 않는다면, 이 혹독한 세상에서 나는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절박감이 그 고아를 움직이게 하겠지요.

 

아마 저도 그런 부류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집단상담 중 죽기 전에 떠올릴 행복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족들과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릴 때, 저는 제가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한 소중한 친구를 떠올리고 있더라고요. 그 기억은 저의 어둠의 가장 깊은 부분입니다.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한, 조만간에는 이 이야기도 길게 나눌 때가 오겠지요.

 

홀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린 것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습니다. 고통과 행복이 양립했던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에게 제가 소중한 사람이었고, 마지막 가는 길의 외로움을 제가 덜어줄 수 있었다는 행복감이었습니다. 상담사로서 제 삶의 방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거든요. 행복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슬프고 고된 자리일지라도,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제가 있다는 데서 나오는 충만감이지요. 그 감각은 감정을 초월한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의미도 있을 겁니다. 제가 가족들로부터 얻었던 행복이 그 시절의 고통과 충만감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부모님이 최선을 다해 저를 사랑하고 뒷바라지를 하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최선에도 불구하고, 어렸던 제가 필요했던 만큼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 또한 가슴 아픈 사실인 모양입니다. 그랬다면 아마 저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가족들과 함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겠지요.

 

재수를 시작하며, 기필코 저를 잡아먹을 것만 같은 우울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하며 저는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널 좀 사랑해 봐, 임마.'라고 말했던 그 학원 선생님으로부터였지요. 어찌 보면 만학도였지만 그래도 저는 스스로가 꽤 성실한 만학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학습 노하우'를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저는 글쓰기와 상담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학습 노하우를 전달하는 일도 참 쉽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을까... 다행히 집단상담 중에서 그에 대한 어렴풋한 답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짐작이 가시나요? 사랑을 잘 할 줄도 모르는(그래서 요즘 연애도 너무 피곤한) 이 모질이 낮별이, 사랑을 잘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 또한 사랑이었습니다. 나를 넘어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지요.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집단상담 도중 자신이 죽는다면 누가 어떤 말로 나를 추모해줄까, 상상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역설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지요.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은 당신의 내담자가 우연히 장례식에 들러 추모사를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지금까지 만난 내담자들이 하나하나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놓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별처럼 반짝이시면서요.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내가 편의점 점주라면, 편의점 손님이 내 장례식에서 나를 추모해주기를 바랄까요? 내가 회사원이라면, 직장 상사가 내 추모사를 읽어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미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공사를 구별 못 하는 멍청이 같은 생각은 혹시 아닐까요?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재작년까지 저를 상담해주셨던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그 선생님은 지금의 저처럼 상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무료로 상담을 하던 수련생 신분이었지요. 선생님과 함께 했던 호흡 하나하나 잊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나치듯 말했던 한 마디였습니다. '제가 K씨를 참 사랑하지만,' 그 뒤의 말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 큰 남자가 다른 남자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는 민망함 때문도 조금은 있지요. 그러나, 그보다 훨씬 큰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감동에 휘말렸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하더군요. 참 뻔한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말이 그랬습니다. 사랑이 뭐라고 제가 가르치려 들었을까요. 사랑, 그저 하면 되는 것을.

 

 

글쓰기 공동체 흰 종이 위의 날개 소속 작가입니다. 심리상담과 문학치료를 공부했습니다.

https://litt.ly/heena_da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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