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편지
연재 중단이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사실은 제 글을 읽으셨던 선생님 중 한 분이 제 근황을 물어보셔서 이 글을 적을 엄두를 내게 되었습니다. 글쓴이로서 무책임했던 시간이 길었고, 이 시간은 좀 더 길어질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이유를 말씀드리는 편이 독자님들께 덜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지요. 6개월여 전 제가 펜을 잠깐 내려놓게 만들었던 슬럼프는 그럭저럭 나아졌습니다. 그 사이에 취직에 골머리를 좀 앓다가, 허리가 두 번이나 박살이 나기도 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다시 만나며 신파극을 찍기도 했지요. 이제는 닥쳐 온 시험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때가 슬슬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제가 연재를 지속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가 군 시절에 억압되었던 기억과 감정이 너무도 많다는 걸 늦게 알아챘다는 점입니다. 공개된 글로 속속들이 꺼내들면서 글감으로 삼기에는요. 조금 아픈 기억쯤은 충분히 다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제 역량이 좀 모자랐던 모양입니다. 군 시절을 풀어쓰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올릴 때마다, 마치 심연을 품고 있는 커다란 동굴 앞에 선 느낌이 듭니다.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까진 충분한 준비를 하고 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걸 공개된 글로 쓴다는 건 또 다른 문제지요. 저도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심연 속으로 독자들의 손을 끌고 가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동굴 가이드로서도 별로 적당한 행동은 아니겠지요. 적어도 혼자서 안전하고 충분한 탐색을 거친 후에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제 내면과 기억에 대해 글로 풀어내기엔 제가 준비가 미숙했다는 것 외에, 다른 소소한 이유들이 조금 더 있습니다. 먼저 이 연재를 시작한 목적이 좀 흐려졌다는 점입니다. 이 연재는 제 첫 출판을 위한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작가님들과 만남을 통해 이 글의 성격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요컨데 이게 이름없는 작가의 첫 책으로 내면 과연 팔릴 만한 글일까? 하는 고민이지요.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좀 더 가볍고 유익한 내용으로요.
이번 연재는 제게 정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라는 한 인간의 성숙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언젠간 끝매듭을 짓겠다는 의지도 있지요. 다만 그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습니다. 빠른 시일이 된다면 좋겠지만, 섣부른 약속으로 여러분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싶지는 않네요.
기약이 없는 연재 중단에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러나 언젠간 준비를 마치고 여러분의 메일함을 다시 두드리러 돌아오겠노라고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한 손에는 조금은 더 멀끔해진, 저의 어둠의 손을 꼭 잡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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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런 무책임한 글쓴이의 글이라도 더 읽고 싶은 분들이 혹 계실까 짧게 덧붙입니다.
최근 썸랩에서 연재를 제안해주셔서 네이버 포스트에서 ‘낮별의 문학심리상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랑 이야기를 상담심리학적으로 분석해서 풀어 쓰고 있지요. 관심이 있는 분은 하단 링크를 확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https://post.naver.com/search/authorPost.naver?keyword=%EB%82%AE%EB%B3%84&memberNo=3875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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