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15) -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이라면 (2)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이라면 (2)

2022.08.21 | 조회 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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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별 에세이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이라면 (2)

 

남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비뚤어진 나르시시즘이기도 했고, 일종의 완벽주의기도 했다. 나는 희나에서 유능하고 인격적인 매니저로서 나의 모습을 좋아했다고 이야기했다. 현실에서 내가 대학 생활에서 겉돌수록 그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집착은 커져 갔다. 나르시스트라는 말에서 우리는 보통 자신의 유능함과 우월함에 취해 다른 사람을 깔보는 오만한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친절하고 인격적인 나르시스트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카렌 호나이의 말을 빌리자면, 신경증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나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나의 경우는 그 이미지가 유능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내게는 그런 모습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성실하게만 평생을 살아왔던 것만은 아니다. 현실의 나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어릴 땐 피씨방을 가기 위해 옷장에 있는 부모님 돈을 슬쩍 하기도 했고, 초등학생 때는 옆자리 짝과 말다툼 끝에 필통의 커터칼을 집어던진 적도 있다. 여자의 몸을 알고 나서는 섹스를 미친듯이 탐닉하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나 스스로의 유능하고 도덕적인 모습만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그 외의 나의 욕구와 감정을 혐오하고 거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비도덕적인 나의 모습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융통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혐오하고 미워하는 근거가 되었다. 나르시스트였던 내가 사랑한 것은 나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나의 유능함과 나의 도덕성 뿐이었기에. 내가 예수거나 부처였다면 그래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가끔은 잘난 것처럼 보이지만, 평소엔 못나게 살아가는.

 

그렇게 자신에 대해 융통성이 없는 것은 완벽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크게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을 완벽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건강한 완벽주의도 있다.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무관용의 칼날을 참고 인내하는 힘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좀 깐깐하다는 것이 크게 단점이 되진 않는다. 그렇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무의미한 자학의 늪에 빠져들 뿐이다. 그렇게 잘못을 저지른 나 자신을 학대하고 나면,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K와의 연애를 시작할 즈음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나를 용납하지 못해 가혹하게 스스로를 매질했었다. 자학의 늪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빠져나왔을 때는 코 앞에 다가온 군입대에 벌벌 떨었다. 누군가 기댈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어른이었으니까. 맥주집에서는 호기롭게 민증을 꺼내들 수 있고, 희나엔 나를 우러러 보는 어린 동생들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라면 자기 문제쯤은 혼자 해결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

 

 

K와의 만남이 5년씩이나 이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외모부터가 그랬다. 나는 나보다 마른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깡마른 멸치였다. K는 반대로, K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꽤나 통통한 편이었다. 남자가 뚱뚱하고 여자가 깡마른 경우야 흔히 있겠지만 우리는 그 반대인 커플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이상형과는 정반대이기까지 했었다. K의 이상형은 한 마디로 마동석 같은 큰 체구의 남자였지만, 그 K가 정작 좋아하게 된 나는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체격의 소유자였다. 나는 외모를 크게 따지는 편은 아니었지만 인형처럼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인상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마 서로 내색은 안 하려 애썼던 것 같지만 정말로 서로의 외모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입대를 할 즈음에는 우스갯소리로 전역할 때까지 서로 몸무게를 바꿔서 보자고 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 우스갯소리가 K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었기를.

 

가정환경도 너무도 달랐다. 우리 집은 그럭저럭 강남 3구의 조용한 동네에서 자가 한 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그러나 나와 형이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한 동네를 벗어나지도 못했던 중산층이었다. K의 부모님은 자수성가한 사업가였지만 IMF에 큰 부침을 겪고 그 후로 경제적 안정을 회복하지 못하셨다. 그러나 K의 부모님은 꽤 큰 무리를 감수하시면서까지 어린 시절부터 K를 유학을 보냈다. 나와 K가 만난 것은 대학을 한국에서 다니기 위해 막 한국으로 귀국한 K가 입시를 준비하던 때였다. 덕분에 K는 어려운 단어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먼저 떠오르는 정도여서, 한국어로 치렀던 입시 논술에는 정말 질색을 했었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났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했다. 나는 우리가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 보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외로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충분히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유학길에 올랐던 K가 겪은 외로움도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던 어린 아이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내 또래에게 IMF는, 어머니의 자궁을 열고 생경한 세상을 처음 경험한 아이가 느꼈을 공포와 비슷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것을 뚜렷한 사건으로 기억하기엔 우리는 너무도 어렸다. 그저 그 단어를 이따금 입에 올릴 때마다, 무언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을 느낄 뿐이다.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 한 뼘 크기 벽돌이었다면 K의 그것은 바윗돌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IMF 이후 K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주 먼 출장길에 올랐고, K와 함께 유학을 가서 철부지 K를 손수 키우다시피 했던 오빠는 귀국 후 서둘러 취직한 모양이었다. 요식업을 하시는 어머니도 일 년 중에 거의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하셨다. 설령 가족들이 한 집에서 생활을 했더라도 가족 넷이 머리를 맞대고 저녁밥 한 술을 뜨는 날은 굉장히 드물었을 것이다. 결국 외국에서의 코흘리개 시절을 보내고 고국으로 돌아온 K를 맞아 준 것은 서울 변두리의 휑한 전셋집 한 칸 뿐이었으리라.

 

독립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K는 그럼에도 씩씩했다. 외롭고 애정이 고프니 자신에게 애정을 줄 사람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 나섰다. 그 K가 발견한 곳이 흰 종이 위의 날개라는 글쓰기 카페였다. 나는 그 때 표현의 자유라는 모토에 광적으로 빠져 있었다. 그건 당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은 절대 허용하는 법을 몰랐던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나온 보상심리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마음에 들든 안 들든 화나면 화가 난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좆같으면 좆같다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나는 절실히 필요했다. 그게 내가 말하는 표현의 자유였고, 그럴 수 있는 공간이 희나였다.

 

우리는 조그만 채팅방에 둘러앉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지껄였다. 그리고 누가 무슨 헛소리를 하더라도 그걸 차분하게 들어주고 존중해줬다. 이 곳에서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헛소리는 ‘저 새끼가 헛소리 하네’라며 남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빠져 마음껏 허우적대다 힘들게 문장 몇 줄을 끼적이고 거기에 시, 또는 소설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게시판에 올리곤 했다. 우리는 그 활자를 읽으며 모니터 너머로 누군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 상상하고 토론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우리는 서로의 외로움을 읽었다.

 

 

 

글쓰기 공동체 흰 종이 위의 날개 소속 작가입니다. 심리상담과 문학치료를 공부했습니다.

https://litt.ly/heena_da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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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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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

    0
    over 1 year 전

    남에게 상처입혔다는 이유로 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낮별님의 오늘 글이 제게 너무 큰 위로가 되네요.

    ㄴ 답글 (1)
  • kdasom97

    0
    over 1 year 전

    재밌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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