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과 계획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J형의 눈에, P형끼리의 만남은 '무계획x무계획'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학자의 카오스 이론처럼 우린 무질서 속에서 고요한 질서를 찾아간다. 여행 계획을 짜고 일정을 챙기는 건 아내가, 돈을 관리하거나 시간 약속에 더 민감한 건 내쪽이다. 때때로 우린 서로에게 P형을 숨기고, 소문자 j로서 기능한다. 우리 부부는 최소한의 기능으로서의 j만을 추구한다.
많은 계획과 분명한 목적은 우릴 피로하게 만든다. 잦은 포기는 잦은 실수로 인식되고, 우리의 자존감이 때때로 낮아지기도 한다. 대신에 P형 인생 30여년 동안 깨친 노하우랄까, 허들이 낮은 성공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가지려한다. 그리고 금방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달성하고 마무리해버린다. 포기 대신, 단기 프로젝트라 명명하며 정신 승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 프로젝트는 경험과 데이터의 축적으로 나름의 결론을 지을 수 있어, 포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의미'에서 P형 부부의 인생이 주는 나름의 의미를 찾았다. 작가는 바쁜 인생을 척척 단계적으로 밟아가는 인간군상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는 않다고 말한다.
나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들, 모든 계절들을 아주 천천히 경건하고 주의 깊게 느껴가면서 살기로 결심했었다. (중략)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처럼 바쁘게 살아온 대가로 그동안 고이 아껴서 잘 감아왔던 자유로운 시간의 실뭉치들을 언젠가는 조금씩 풀어가며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많은 과제들 때문에 시달리는 일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시간을. 하지만 우리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 과연 그렇던가?
-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쌍소
그래, J형을 닮아가고자, 노력했던 여정들이 되려 P형 인간군상들을 비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생을 MBTI의 16가지로 한정하고, 나를 특정 범주 안에 가두는 건 인간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행동일거야. 있는 그대로의 나, 있는 그대로의 아내,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누군가들이 모여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된다. 회사에서 모이고, 사회를 형성한다.
'난 어떠한 유형이라, 부족해. 반대쪽의 유형이 좋아보여'라고 인정하지 말자. 다만, 나에 대해 개선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그 부분만 떼어내서 정면으로 바라보자. MBTI와 연결지어 생각하지 말자. MBTI의 유형을 적으라던 모 금융기관의 채용공고처럼, 우리의 가능성을 테두리 지어버리는 세상을 우리 주변에서 몰아내보자. 우린 있는 그대로 소중한 나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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