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내가 배려한 만큼 요구한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다

2022.06.27 | 조회 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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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름 배려를 좀 한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었다. 공동체에 처음 발을 들여 낯설어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서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편이고, 또 만약에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러서 자리를 뜨게 되면, 이야기 하던 사람이 민망해할까봐 내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마저 들어준다던가, 특정한 상황에서 저 사람이 불편해 할 것이 예상되다 보니 미리 조치를 취하는 것 등의 배려를 곧잘 하고 지냈다. 그런 것이 눈에 잘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작은 배려로 인해 상대방이 작지만 편익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만족하며 지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안에 있는 배려의 우물이 말라갈 때 즈음 문득 든 생각은 '나는 왜 내가 베푼 만큼의 배려를 받지 못하고 지내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상대방에게 배려를 잘 베풀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자신이 현재 어떠한 배려를 받고 있는 지에 대한 부분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베푼 만큼의 배려를 나는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독자분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육군을 다녀오고 만기 전역을 했음에도 사회에 나와서 군대 이야기 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군대라는 카테고리만 같을 뿐이지 각자 하는 이야기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100명이 군대를 경험했다면 100개의 군대 이야기가 생기는 것인데, 이야기의 공통점을 찾는 대화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러다 아는 친구와의 만남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겪은 군대 이야기를 30분 가량 듣게 되었다. 사실 제대로 못 알아 듣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최대한 집중하면서 들어주었는데, 이야기가 끝난 뒤에 나도 내가 겪은 군대 이야기를 해보려는 찰나, 이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휴대폰을 바라 보면서 대충 리액션을 하는 것이다. 정말 힘이 빠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는데, 나는 내 나름 최대한의 배려를 그 친구에게 베풀었지만 직후에 돌아온 반응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고 내가 베풀었던 배려가 실망으로 되돌아왔던 터라 더 힘들었다. 

이럴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배려의 정의를 찾아보았는데,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 배려의 정의였다. 정의를 읽고는 '그래 난 배려를 잘 하고 살았어. 저 친구는 배려를 정말 못하네' 라는 비난 섞인 생각을 해보았다. 정의를 다르게 말해보면, 배려를 잘 한다는 것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잘 쓴다' 라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보는데 문득 든 생각은, 배려의 정의에는 상대방을 향한 마음만 표기되어 있지,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 배려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상대방에게 마음을 쓰는 것' 그것이 끝이다. 내가 배려를 베풀었기 때문에 상대방 또한 나에게 같은 수준의 편익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배려의 정의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여태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베푼 뒤에 그만큼의 보상심리를 기대했던 것은, 엄밀히 말하면 배려가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여태까지 내가 이타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탈진하고 실망하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이타적이지 않은 마음가짐을 가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후로 배려에 대한 전제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 이전에는 내가 하니까 너도 해야 하는 것이 배려라는 생각을 가졌었다면, 지금은 외로운 것이 배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배려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렇다고 남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알아채는 것에 있어 우월의식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고, 남에게 내가 하는 만큼의 배려를 똑같이 요구할 수도 없는 것이 배려라면, 그것은 외로운 것이라는 정의가 내려졌다. 슬프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배려한 만큼 요구한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편익을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래인 것이다. 배려란 누군가가 요구하여 이루어졌을 때 기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계기였다. 이렇게 보면 내 안에 있는 배려의 우물이 말라버린 것은 아주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런 계기가 없었다면 나는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얻어내기 위해 선한 척 행동하는 위선자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해 배려를 베풀고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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