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SaaS PM이 독립출판을 하는 삶

가장 큰 성공의 순간, 번아웃을 맞았습니다. 일과 나 자신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PM의 첫 번째 기록입니다.

2025.09.16 | 조회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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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로그

10년차 B2B SaaS PM으로서 겪은 생생한 경험과 관점을 보내드립니다.

번아웃은 창업 초기부터 몸담은 회사가, 그토록 바라던 투자 유치를 50억 넘게 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 찾아왔습니다.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과 쉴 틈 없는 업무 속에서, 어느새 개인으로서의 ‘나’는 사라지고 ‘PM’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늘 회사는 바빴고 야근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다른 취미를 가질 시간적 여유는 부족했습니다. 그런 제가 언제든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기록’. 집에 가면 일을 절대적으로 배제시키고, 개인적인 생각을 써내려갔습니다. 내가 읽고 본 것들, 내게 영감을 준 것들, 오늘 붙잡은 사소한 행복한 순간 같은 것들을요. 책상 앞에서 짧은 글을 쓰며 기록하는 일은 사소해 보였지만, 제게는 숨통을 틔워주는 창문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생존 본능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를 찾기 위한 글쓰기에 몰두할수록, 어느새 번아웃이 회복되어가며 제 일을 더 잘해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첫째, 관찰하는 힘과 기록하는 힘이 세졌습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 제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 일상의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둬야 했습니다.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며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막연한 느낌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죠. 이 습관은 PM으로서의 저에게 새로운 무기가 되었습니다. 고객 미팅에서 나오는 미묘한 표정이나 뉘앙스의 변화, 데이터 속에서 주목받지 못한 작은 숫자, 팀원들의 대화에 숨은 진짜 속마음을 더 예리하게 관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졌습니다. 

 

둘째, 이야기를 엮는 힘이 길러졌습니다.

단편적인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한 편의 글로 엮어내는 과정은, 흩어진 요구사항들을 모아 하나의 제품 로드맵으로 만드는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있었습니다. 단 한 가지 중요한 주제와 맥락을 일치하는 것만 남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매력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것.

투자 유치를 위한 Financial Projection 이나 IR 자료 제작을 할 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우리의 비전과 숫자를 투자자가 매력을 느낄만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엮어내는 것이 핵심이었죠. 글의 서론, 본론, 결론을 구상하는 훈련은, 복잡한 비즈니스 문제를 명쾌한 스토리로 재구성하여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셋째, 본질만 남기고 덜어내는 힘을 깨우쳤습니다. 

좋은 글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미사여구와 불필요한 문장은 덜어내고, 가장 중요한 핵심 메세지만을 남기는 훈련의 연속이죠. 이것은 PM으로서의 제가 ’핵심이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묻는 훈련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십 개의 기능 요청 속에서 우리 제품의 본질, 즉, 우리 제품이 해결하고자 하는 고객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선택해야 했으니까요. 

 

기록을 하는 작은 글쓰기 습관이, 제 업무를 조금씩 바꿔 놓았습니다. 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그리고 일을 더 사랑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깨달았습니다. ‘나’와 ‘PM’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내 안의 균형이 바로 일의 균형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래서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PM으로서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서,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 나 자신과 깊이 대화하고, 나의 생각과 경험을 존중하고, 그것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저는 비로소 다른 이의 목소리도 더 깊이 들을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나‘를 숨기고 있나요?

그리고 그 ‘나’를 어떻게 다시 불러내고 있나요? 

 

이 뉴스레터는 제 스스로 지난 일에서 깨달은 것 혹은 답을 모른 채 고민하기도 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B2B SaaS PM으로 치열하게 일하며 느꼈던 것들, AI 시대에 발맞춰 ‘핵개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분투기, 그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는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눠보려 합니다. 

 

다음 챕터를 함께 지켜봐주세요 :) 

 


추신: 요즘 저의 생각을 만드는 재료들 

요즘 제 머릿속을 가장 많이 채우고 있는 것들을 소개합니다.

 

  • 책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 AI 시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할지가 제가 요즘 가장 크게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책에선 ‘핵개인’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어떻게 사회가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 개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송길영 작가님은 ‘상상하지 말라’라는 첫 책을 냈을 때부터 무척 좋아했던 저자인데 책이 매번 나올 때마다 좋습니다. 아묻따 추천입니다.
  •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 요즘, 제 다음 모습은 어떨지 보다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퍼블리 박소령 CEO의 퍼블리 매각 과정과 그 전후에 대해서, 본인이 겪은 치열한 고민, 결정, 회고를 다룹니다. 누군가가 실패를 건너는 일을 이토록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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