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 GPT와 마케터의 꿈
한 해가 채 끝나기 전이지만 미리 2023의 기술적 메가 트렌드를 꼽는다면 단연 생성형 AI가 꼽힐 것입니다. Chat GPT를 필두로 한 생성형 AI의 바람은 마케팅 업계에도 예외없이 불어왔죠.
하지만 실은 Chat GPT라는 도구가 없을 때도 마케터들은 늘 이런 기술적 상상력을 가슴 속에 품어왔습니다. 5년 전 쯤 제가 만나뵀던 여러 마케터분들은 이미 당시에도 어떻게 카피/크리에이티브를 대량으로 생산해낼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죠. 마케팅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들을 자동으로 고려하여 여러 요소를 조합하는 다이내믹 크리에이티브가 당시 화두 중 하나였습니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크리에이티브에 가장 적절한 채널까지도 자동으로 선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배달앱을 예시로 들어보자면, 날씨에 따라 지역별로 가장 인기 있었던 메뉴/식당 & 배달 상황이 상대적으로 원활한 지역 타겟팅을 조합하여 광고를 노출하는 식인 것이지요. 이를 포함하여 마케터들이 꿈꿔왔던 자동화에는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Chat GPT 이후에 이러한 상상은 현업에서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을까요?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올해 초 자신이 운영하는 통신사 ‘민트모바일’의 광고를 Chat GPT로 만들어 공개했다는 소식이나 (링크) 한국판 생성형 AI의 대표격인 뤼튼이 (링크) 핵심 타겟군 중 하나로 마케터를 노리는 것을 보면 이러한 바램들이 꽤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도 같습니다.
스타트업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현대백화점에서는 카라피이팅 시스템 '루이스'를 지난 1분기경 정식 도입했으며 특히나 도입 후 통상 2주가 걸리던 (!) 광고 문안 작성 업무 시간이 평균 3~4시간 이내로 줄었다고 합니다. (링크)
이러한 기술의 결과물은 새로운 시도라는 점만으로도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만 생성형 AI의 도취가 조금은 가라앉은 지금, 다시금 냉정하게 실무자의 관점에서 이 시도들을 평가해보고 싶습니다. 실제 상용화 관점에서는 분명 (어쩌면 예상보다도) 꽤 오랜 시일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과연 AI를 통한 마케팅은 언제쯤 ROI를 만들 수 있을까요?
자동화가 이토록 수고스럽다니
다시 마케터가 꿈꿔왔던 자동화 리스트로 돌아가서요. 생성형 AI를 통해 가장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항목은 1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마케팅에 필요한 결과물을 즉각 생산해내기 위해 고려해야할 변수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사람-마케터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해내던 이 복잡계적 창의성을 대체하려면 기술에게도 동일한 맥락 정보/지식이 필요합니다. 즉 AI가 ‘좋은 카피’를 쓰기 위해서는 “좋은”의 기본적인 기준을 정하는 것부터 상황에 따라 복합적인 판단 준거를 적절히 잘 활용했는가 (e.g. A 상품군에서는 프로모션 정보를 활용한 카피가 표면적으로 가장 효율이 우수했으나 현재 B 상품군에서는 신규 런칭이니만큼 브랜딩 성격이 강한 카피가 더 “좋은” 카피라던지) 등의 약속을 사전에 모두 규칙으로 정해두어야하는 것이지요.
앞서 언급한 현대백화점의 '루이스'는 최근 3년간 현대백화점에서 사용한 광고 문구 중 고객 반응이 좋았던 데이터 1만여 건을 집중적으로 학습했다고 합니다. 이 마케팅 데이터는 마케팅이 진행되는 한 끝없이 쌓이며 변화하겠죠. 즉 AI는 당연하게도 실시간의, 또 양질의 데이터를 지속 학습해야하며 인간과 AI 모두에게 동일하게 명료한 규칙이 존재할 때만 현업에서 활용 가능할 것입니다.
마케팅을 위한 AI 구축의 역설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기술에의 접근성은 높아졌다고 한들 그것을 각 기업의 마케팅 현황에 맞도록 적용하려면 꽤 높은 수준의 (개발 관점, 데이터 관점, 마케팅 전략/기법 관점 모두에서) 기술 이해도와 여건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죠. 거칠게 단순화해보면 우리 기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AI를 실무 레벨에서 적용하려면 아래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마케터와 사람-마케터를 잘 이해해보기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마케팅 결과물들을 통해 투입 비용을 상회하는 마케팅 ROAS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자동화의 관점에서는 기술과 사람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한 뒤 각각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직접적인 결과물을 생성하는 것과 사람이 결과물을 생성하는 데 들이는 품을 줄이는 것 중 당분간 이 기술이 더 빛을 발할 영역은 후자일 것입니다. 또 각 기업의 고유한 데이터를 통해서만 완성되는 제품과 오히려 더 많은 데이터로 표준화할 때 결과물의 퀄리티가 높아지는 제품 가운데에서도 후자의 제품이 더 빠르게 고도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직접적인 결과물 생성이 가능하도록, 단계 간의 교각을 놓는 작업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얼마 전에 저는 고객사를 위한 디지털 마케팅 캠페인의 제안서를 쓰다 문득 장표의 구성과 텍스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줄테니 PPT의 형식적 구성은 생성형 AI가 도맡아주었으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는 프레젠테이션 생성 자동화와 관련한 여러 제품이 이미 출시되어 있더군요. 프롬프트 기반으로 작동하는 두어개 정도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았습니다만 아쉽게도 결과는 활용도가 너무 낮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기대치와 결과물 사이의 간극만을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대신에 템플릿을 통해 동일한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생성형 AI와는 거리가 있는) 전혀 다른 제품은 아주 잘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위에서 언급한, 결과물을 곧장 생성해주는 대신 결과물을 생성하는 데 들이는 품을 줄이는 제품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공식이 없는 일, 이게 정답이 맞는지 늘 헷갈리는 창조적인 일은 사람-마케터에게도 가장 고된 일입니다. 그렇다보니 이 고된 일을 얼른 기술-마케터가 대체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는 종래에 일하던 방식 자체를 규칙화해내는 작업, 그러니까 사람-마케터가 하는 일들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할 수 있는 기획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을 거듭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기술의 혜택을 더 빨리 현업에 적용하려면, 또 그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로 더 뛰어난 다음 번 기술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이 실무의 격전지 위에 발을 딱 붙인 채로 열심히 사람-마케터만의 상상력을 가동해야하는 것이지요.
이 글을 작성한 새벽네시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