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하고 따뜻한 미드 감성 웹소설, 메리 앤 메리

1화 <열쇠>

2022.08.26 | 조회 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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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닝북스

선선하고도 따뜻한 세계의 이야기들

 

 
 

  분홍색 노을이 펼쳐진 하늘이 한 눈에 담기는 언덕, 그리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주택가. 언덕의 중간 쯤 위치한 집에서 여자가 분주하게 외출을 준비하며 구두를 신고 있다.

  현관 앞 거울 앞에 선 여자는 양 손에 가방을 번갈아 들어보더니, 작은 핸드백을 팔에 걸어본다. 그 때, Tv 에서는 지역 뉴스 속보 소리가 들린다.

‘오렌지힐 숲과 맞닿은 빌포드에서 한 남성이 주민을 살해하고 도주했습니다. 지역 전역에 경찰이 배치 되어 순찰할 계획입니다. 남성의 신원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아’ …

  여자가 tv로 고개를 돌리려는 때에, 휴대폰 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허, 목소리가 꽤 좋잖아?”

  여자가 문을 닫고 집을 나선다.

 

‘또각또각또각...’ 

 

 얕은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소리가 언덕에 울려퍼진다. 여자는 늦은 와중에도 주변 숲에서 퍼져나오는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다. 이 왁자지껄한 오렌지빛 언덕이 금요일 저녁 치고는 꽤나 조용하다고 생각하면서. 애쉬타운의 오렌지힐은 이름 그대로, 저녁이면 언덕과 창문이 모두 노을색에 물드는 곳이다. 언덕을 내려가서 한 블록 정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선 여자는 데이트 상대가 어디 앉아 있는지 살핀다. 8개월만의 데이트였다.

“메리 앤더슨?”

  한 남자가 메리 뒤에서 들어오며 묻는다.

“스테판? 반가워요!” 고동색을 띄는 큰 눈에 시원시원한 입매를 가진 메리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저 안쪽 자리는 어때요? 이 쪽은 너무 사람이 많아서 말소리가 잘 안들릴 것 같아서요. 첫 만남인데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 데에 진뺄 수는 없잖아요?” 메리가 말했다.

“하하, 네 좋아요. 그러죠.”   

  메리는 오랜만의 데이트인 탓에 조금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한껏 들떠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메리에게 가을은 날씨 만으로 모든 평범한 일들을 행복하게 해낼  있는 때였다. 또 가을은 평상 시에 의지로 하기 힘든 것들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그런 마법같은 힘이 있었다. 메리는 조금 긴장한 채 물을 마시는 스테판을 바라보며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그가 들어온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다.

 

 
 

“분위기가 좋네요” 가게를 둘러보던 스테판이 말했다.

“제 단골 식당이에요. 따뜻한 수프랑 라자냐 한 입이면 모든 슬픔이 녹아내리죠."

그 때 가게 주인 마를린이 다가온다.

“오, 마를린! 여기 스테이크로 부탁해.”

“'완전 특별한 날 버전'스테이크 접수 완료!” 마를린이 스테판과 메리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기대에 찬듯 웃는다.

“오면서 보니 두 동네가 숲을 가운데 두고 붙어있는 것 같더군요. 올 가을 단풍이 물들면 정말 아름답겠어요.” 스테판이 말했다.

“맞아요! 가을을 좋아하는 저에게 딱이에요. 나른한 오후에 창문 밖으로 알록달록한 숲이 자잘하게 흔들리는 걸 보면 천국이 따로 없죠. 여기서 평생 살지도 몰라요.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도, 그곳에 도서관은 있을 거에요. 이곳도 마을이 없어지기 전까진 도서관이 없어지지 않겠죠. 대도시 근처니 혹시 모를 인구감소로 인해 없어질 확률도 적고요. 또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쯤은 있는 게 위엄 있기도 하죠.” 

“와, 그거 참 안심되는 이야기에요. 사람을 안심시키는 데에 재주가 있으시네요!” 메리가 말했다.

“하하, 메리 씨의 말에 귀 기울였을 뿐이에요.”

“아 맞다, 우주를 공부 하신다고 했죠. 요즘 우주는 어떤가요? 오염된 지구를 뒤로 하고 온 인류가 이주할 새로운 행성은 발견 됐나요?”

“이제 막 연구원이 됐는 걸요. 어제는 컴퓨터 선을 잘못 뽑아서 모두가 우주지도에 한껏 집중해 있을 때 화면을 까맣게 만들었죠. 왠일인지 1초 뒤에 다시 켜졌을 땐 더 선명해졌지만요.”

괜찮아요. 3년차 사서인 저보다 점잖은 실수인걸요. 저는 일주일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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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먹는 사이 해가 거의 다 지고 어두워졌다. 대화가 잠시 뜸 해졌을 때였다. 메리의 휴대폰 벨이 울린다.

“이지? 이 시간에 무슨일이야?

…뭐라고? 세상에, 당장 갈게. 조금만 기다려!”

“무슨 일이에요?”

“죄송하지만 도서관에 가봐야겠어요. 지금 2층에서 여자 비명소리가 났대요.”

“세상에, 같이 가요.” 메리와 스테판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 메리? 뉴스봤어? 왠 살인마가 우리 동네에 … 메리!!”

  마를린이 뛰어나가는 메리를 보고 소리친다.

  메리는 스테판과 함께 곧장 도서관으로 향해 1층 유리문 앞에서 가방을 뒤졌다.

“맙소사, 도대체 열쇠가 어디있는 거야?”

“열쇠가 없어요?” 스테판이 물었다.

“분명 아까 문을 잠그고는.. 오, 이런.. 다른 가방에 들어있어요.. 하나님 맙소사, 퇴근할 때랑 다른 가방을 들고 나왔거든요”

“그럼 동료에게 다시 전화해보는 게 어때요?” 스테판이 잠긴 문을 살짝 밀어보며 말했다.

“혹시 누군가 이지 근처에 있다면 위험해질 거에요. 일단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겠어요.… 하 이런 바보같으니.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 어쩐지 오늘 따라 마을이 너무 조용한 게 왠지 이상하… ”

“혹시 저 사람이 이지인가요?”

  도서관 1층 안에서 유리문 쪽으로 안경을 낀 긴 곱슬머리의 여성이 다가온다.

“이지? 어디 있었어? 괜찮은거야?”

  문을 열고 나온 이지는 왠 일인지 편안한 얼굴이다.

“세상에 메리, 너 정말 빠르다. 훤칠한 남자까지 데리고 말이야.”

“그래. 곧장 달려 왔으니까.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거야?”

“응. 아무일 아니었으니까 그만 물어. 헤일린 아줌마가 몸무게를 너무 빨리잰 것 뿐이야. 아무리 극한의 다이어트 였어도 2주는 했어야 했다구. 아줌마는 어제 '도전, 다이어트’를 보고 레몬 다이어트를 시작한 거니까, 몸무게를 잰 건 다이어트 시작 18시간 쯤 된거지. 믿겨져? 정확히 0.1키로가 늘어난 숫자를 보고 내지른 비명소리가 도서관까지 들린거고, 1층을 막 나서고 있던 나는 그게 2층이라고 착각한거지. 밤 10시에 맥앤치즈를 먹어도 레몬의 산성 성분이 다 녹여줄 것 같았다나.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하자. 우리에게는 이 완벽할 뻔한 금요일을 마저 즐길 권리가 있다구.”

“맞아.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야. 헤일린 아주머니는 요리 대회가 아니라 성악 대회에 나가셔야겠어”

“아, 요즘 왠지 2층 보관용 서고 열쇠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아줌마가 날 제대로 놀래킨 김에 열쇠 4개 더 만들었어. 내가 한달 동안 밤 9시까지 남아서 만든 우주 게임기가 영 걱정되서 말이야. 오늘은 내가 네 개 다 가져가고, 두 개는 월요일에 너 줄게.”

“고마워 이지. 주말 잘보내. 가을 추천도서 목록 생각해놓는 거 잊지 말고!”

“이번 추천도서는 우주과학으로 도배하겠어. 그치만 일단 오늘은 피자먹으면서 우주 다큐멘터리 볼거야. 오, 배달부가 벌써 전화왔다. 나 간다! …아, 메리는 언덕 꼭대기를 제일 좋아해요! 거기가 살아서 처음으로 프롬킹이랑 데이트했던 장소거든요!" 이지가 달려가다가 뒤를 돌아 보며 소리친다.

"이지!"

"하하" 스테판이 웃는다.

  인사를 마치고 뒤돌아선 메리의 얼굴 앞에 경찰 두 명이 서있다.

“신고하셨죠?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던데요.”

“헤일린 아주머니의 소리였어요. 아시죠? 언덕에 있는 집 중 도서관 뒤쪽과 제일 가깝잖아요.”

“일단 오늘은 상황이 좋지 않으니 건물을 순찰하고 가죠.”

“감사해요.”

  메리와 스테판이 다시 길을 나선다.

“이지라는 분이 우주 과학을 좋아하는 가 보죠?”

“네. 저번엔 뭐였더라, 아. 심해괴물에 심취해서 하마터면 어린이도서관 벽에 괴물 사진이 붙을 뻔 했어요. 이번엔 우주과학 이구요.”

“다음에 만나면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네요."

 
 

  메리와 스테판은 언덕이 시작되는 길목에 이르렀다. 대화는 없었지만, 둘은 여기서 이만 헤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가, 이내 슬며시 서로의 손을 잡는다. 숲과 가까워진 만큼, 기분좋은 숲공기가 처음 맞닿는 두 손의 주변을 부드럽게 감쌌다. 메리가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언덕을 걷던 두 사람은 별이 가득한 맑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본다. 

“여기선 왠지 별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네요.” 스테판이 말했다.

“네. 언덕이니까요”

  메리의 단순한 대답에 스테판이 조금 어이없어하며 작게 웃음 짓는다.

“제말은, 이 언덕은 애쉬타운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고, 옆 쪽으로는 숲이 시작돼서 찬 공기가 뿜어져 나오고, 그럼 하늘도 더 맑아질테고.. 그래서 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거 아닐까요?”

“하하. 그런가요?”

“제 말은 그러니까, 달빛에 당신 얼굴이 더 빛난다구요.

…제길, 이 말은 하지 말걸.”

  스테판이 미소를 짓는다.

  메리의 집까지 50 발자국 정도가 남았다.

“오, 저쪽 반대편 집에서 아빠가 엄마 몰래 시리얼을 꺼내는 모습이 보이네요.”

“오, 정말요?”

“농담이에요. 어쨋든 저 반대편 낮은 언덕에 저희 부모님이 사세요. 귀여운 털뭉치 브라우니랑 같이요.”

“브라우니, 귀여운 이름이네요. 저희 집에도 귀여운 고양이가 한마리 있어요. 이름은 벨벳이에요. 1살 여자 아인데, 집가는 길 쓰레기장에서 새끼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듣고 데려왔죠.”

“...브라우니벨벳케이크! 너무 귀엽지 않나요?”

 
 

  이제, 20 발자국이 남았다. 아까 부터 메리는 스테판 보다 조금 앞에 서서 그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끌고 가듯 하고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한 메리는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보인다.

“이번엔 있어요.”

메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입을 맞추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메리의 뺨을 쓸고 지나간다.

메리와 스테판이 집에 들어간 지 5분 정도 지났을 때, 뒤쪽 숲은 나무의 위쪽 기둥이 흔들릴 정도로 꽤나 거센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바람이 잦아들고 다시 조용해졌을 때였다.

메리 집 뒤 편 나무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들어섰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열쇠를 손에 쥔 채로.

 

 

- 1화 '열쇠'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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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악몽>이 

다음주 금요일 밤, 메일로 도착할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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