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도쿄에서 개최된 K-AI Alliance 글로벌 밋업에 참여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일본 기업들의 뜨거운 관심은 그동안 진입하기 어려웠던 일본 시장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K-AI Alliance, 한국 AI 생태계의 글로벌 도약
K-AI Alliance는 SK텔레콤이 주도하는 연합체로, Moloco, Liner를 비롯한 한국을 대표하는 AI 스타트업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도쿄 밋업은 K-AI Alliance가 일본에서 진행한 첫 공식 행사였습니다. 일본 주요 기업과 벤처캐피탈을 대상으로 한국 AI 기업들의 투자 유치와 사업 협력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행사에서는 AI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12개 스타트업이 7분씩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AIX 분야의 셀렉트스타, 스튜디오랩, 마키나락스, 올거나이즈부터 AI 인프라의 엘리스그룹, 래블업, AI 로보틱스의 리얼월드, AI 서비스의 스캐터랩, 라이너, XL8, 이모코그, 사운더블헬스까지 무대에 올라 한국 AI 생태계의 다양성과 깊이를 선보였습니다.

일본에서도 NTT, 미쓰비시상사, 미즈호 은행 등 주요 대기업과 프리퍼드 네트웍스 같은 AI 스타트업, 그리고 NTT 도코모 벤처스, PKSHA 등 벤처캐피탈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AI로 급속히 열리는 일본 시장
전통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았던 일본 시장이 AI라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급속히 개방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B2B 소프트웨어 시장은 전통적으로 한국보다 높은 시장 규모로 매력적인 시장이었지만, 좀처럼 성공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AI가 이 시장을 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가 있습니다.
일본의 현실 (2024년 기준)
일본 통계청 공식 발표에 따르면,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구 감소의 가속화
- 총인구 1억 2,380만 2천 명으로 전년 대비 55만 명 감소, 14년 연속 감소
-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7,372만 8천 명으로 전체의 59.6%에 불과
- 15세 미만은 11.2%(사상 최저), 65세 이상은 29.3%(사상 최고)

미래 전망도 좋지 않습니다.
- 단카이주니어 세대(1971-74년생)가 2036-39년에 65세 도달 → 2040년 전후 고령화·인력부족이 정점으로 심화
- 후생노동성 백서: 2040년에는 20~64세 인구가 전체의 절반 수준까지 감소 전망
- 2035년 "850만 명 인력부족" 전망 (미즈호) → AI 활용이 성장 가속의 열쇠

역설적 기회의 창
한편, 일본 기업의 실적은 사상 최대입니다. 주가는 버블시대를 넘어섰고, 순이익과 현금 유보량도 역대 최대이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직면하게 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얼마전 올거나이즈 이창수 대표님도 유튜브에서 언급했듯이, 일본 기업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좋은 프로덕트에 지갑을 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성공 사례가 증명하는 가능성
올거나이즈: 일본 대기업을 고객으로 확보
실제로 올거나이즈의 사례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생성형 AI, LLM 기반 프로덕트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이 회사는 일본의 가장 보수적인 금융회사들조차 적극 도입하게 만들었습니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금융그룹을 비롯해 노무라증권 등이 도입했습니다.

미국, 한국, 일본에서 시작했지만 일본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본사를 미국에서 일본으로 이전했고, 현재 일본에서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쿄메트로에 고객과 임직원을 위한 생성형 AI 서비스를 공급하며, 일본 철도 기업 중 최초로 고객용 챗봇과 사내 업무에 AI 서비스를 동시에 적용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타임트리: 일본 사회에 스며든 성공
이날 올거나이즈 이창수 대표님과 함께 타임트리의 박차진 대표님과 패널 디스커션에 참여했는데요. 카카오재팬 대표를 지낸 박차진 대표님이 2014년 일본에 설립한 타임트리는 전 세계 가입자 수 6,000만 명을 돌파한 캘린더 공유 플랫폼입니다. 일본 OTT 서비스 TVer의 공식 캘린더로 도입되었고, 니이가타시가 공식 캘린더로 채택하는 등 일본 사회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성공의 핵심: "팬을 만들자"
김범수 대표님의 매끄러운 진행으로 이루어진 패널 세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토론은 일본 시장 진출의 첫 단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팬을 만들자"였습니다.
일본에는 오시카츠 (推し活)라는 사회적 현상이 있을 정도로, 팬심이 강력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한류나 K-Pop, K-Drama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본 고유의 문화적 팬심은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한 대기업 담당자가 진정한 팬이 되면, 그 영향력은 전 계열사로 확산되어 놀라운 시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올거나이즈 성공 주역에는 대기업의 강력한 팬이 계셨고, 저도 이전에 일본에서 스타트업을 할 때, 첫 고객분들이 팬이 되어 비즈니스 기반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의 진정한 지지자를 확보하는 것이 전체 조직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팬을 만드는 방법: 열정
그렇다면 어떻게 팬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이창수 대표님의 핵심 통찰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답은 바로 "열정"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이 '열정'이 희귀한 자원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현재 일본 경제를 이끄는 시니어 리더들은 '잃어버린 30년'과 함께 사라진 열정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 시장 개척에 나선 젊은 창업가의 뜨거운 열정이 그들 마음 깊숙한 향수를 자극하며, 예상치 못한 든든한 동반자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
SK텔레콤 유영상 대표님은 이날 행사에서 "일본은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으로, 우리나라 AI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라며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한국 AI 기업들의 일본 진출, 나아가 K-AI 생태계의 확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일본 시장이 한국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 시장 진출의 열쇠는 구체적인 전략도 중요하지만, 진심어린 열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AI 기업들이 일본이라는 무대에서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가기를 기대하며, 그 여정에 열정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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