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모두 아는 그 회사, 리쿠르트
안녕하세요, KU 입니다. 지난번에 일본에서는 영업이 답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는데요, 일본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얘기할떄, 항상 어디 출신 직원을 뽑으면 좋을까라는 상담을 하면 꼭 오르는 기업이 몇개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리쿠르트(https://recruit-holdings.com/ja/)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사실 리쿠르트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도 않고, BtoC기업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분들이 그렇게 와닸는 기업은 아닌데요(실제로 한국어 위키나 나무위키에도 거의 정보가 없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으면 리쿠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안보는 날도 없고, 또 TV에서도 광고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이 회사가 정작 뭘 하는 회사인지 몰라도, 회사 이름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리크루트의 TV 광고 출고량 순위 (일본, 2024년 기준)는 이하와 같습니다.
- 2024년 12월: 관동 지역 광고주별 TV CM 출고 시간 순위 3위.
- 2024년 1월~3월: 도쿄 지역 지상파 키국 TV CM 방송 횟수 순위 1위.
- 2023년 연간: 도쿄 지역 지상파 키국 TV CM 방송 횟수 순위 2위.
일본에서의 지상파 방송국의 영향력이 아직 큰것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이고, 2023년 3월 회계연도 기준 리쿠르트의 광고비는 약 3조원 수준이라, 그 인지도를 상상하실 수 있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삼성의 국내 광고선전비가 이와 비슷한 수준이며, 국내 법인 전체의 14%라 합니다)
그런 리쿠르트, 한국에 의외의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습니다.
리쿠르트와 MBTI
제가 한국분들과 일하면서 놀랐던것은, "당신의 MBTI는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시고, 또한 많은분들이 본인의 MBTI를 알고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MBTI는 혈액형 분류에 가까운 일종의 미신이라고 생각하며, 정확한 과학적인 연구에 근거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는 생각합니다만, MBTI 테스트를 할때 "어, 이 시험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는 느낌이 들었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SPI 라고 불리는 일본의 신졸 공채 준비할 때의 시험이랑 비슷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후, 스타트업에서 채용 관련 업무를 하면서 많이 알게된 리쿠르트 출신들의 인사관련 선배들이 "심리학적경영: 개인을 살리는 조직"(한국 미번역)이라는 리쿠르트의 인사담당 임원이 쓴 책을 추천해 주어 읽었을때, MBTI와 리쿠르트의 관계를 알게되었고, 위 의문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알게된것 같았습니다.
위 책에 따르면, 초기에 MBTI가 발표 되었을 때 당시 심리학적인 접근법을 회사 면접과 인재 등용에 활용하려고 했던 리쿠르트의 인사임원인 오사와씨가 이를 발견, 일본에서의 활용을 제안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4년에 시작된 SPI에도 미국 MBTI협회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TI형" 시험이라는 형식으로 도입되어, 2000년 중반에 SPI가 리뉴얼 및 라이센스 종료가 될때까지 일본 전국의 기업의 입사시험에서 사용 되었습니다. 또한 리쿠르트 기업 내에서도 직원들의 MBTI에 대해 상호간에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한국 회사들의 상황과도 흡사하죠.
오사와씨의 저술에 따르면, MBTI의 창시자인 캐서린과 이자밸 모녀는 오사와와 만났을때, MBTI의 보급의 계기가 된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2023년 기준 SPI를 입사시험에 활용한 일본의 기업은 약 15,500개사이며, 예전에는 더 많은 회사가 사용했으리라 예측 됨으로 그 규모를 가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게모르게 한국에도 영향을 준 리쿠르트는 어떤 회사일까요?
리쿠르트에 대해
이하 표는 2024년 12월 30일 기준 일본 기업 시가총액 TOP10을 추출한 표입니다. 보시는바와 같인 리쿠르트는 시가 총액이 전체 4위인 18.39조엔이며, 일본 서비스업 기업중에서는 압도적인 1위입니다. (2025년 2월 현재 기준, 2위는 디즈니랜드를 운영하는 오리엔탈랜드가 7조엔으로 2배정도 차이남)
순위 | 기업명 | 시가총액 (조 엔) |
---|---|---|
1 | 토요타 자동차 | 49.69 |
2 | 미쓰비시 UFJ 금융그룹 | 22.28 |
3 | 소니 그룹 | 20.72 |
4 | 리크루트 홀딩스 | 18.39 |
5 | 히타치 제작소 | 18.25 |
6 | 퍼스트 리테일링 (유니클로) | 17.13 |
7 | 키엔스 | 15.72 |
8 | 미쓰이 스미토모 금융그룹 | 14.77 |
9 | 일본전신전화 (NTT) | 14.31 |
10 | 소프트뱅크 그룹 | 13.50 |
리쿠르트의 매출 구조는 2024년 3월 회계년도 기준으로 토탈 약 30조원 규모이고, 약 10조원 규모의 매출인 HR Technolgy는 대부분이 일본 국외 서비스인 Indeed 와 Glassdoor에서 나옵니다. Matching & Solution은 약 9조 정도이고, 구인 구직서비스와 각종 미디어(Hotpaper, Airlegi등)에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Staffing서비스는 노동자 파견 서비스인데요, 일본 국내 뿐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회사를 인수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으로서의 리쿠르트
이렇듯 대기업의 양상을 보이는 리쿠르트인데요, 사실 2차대전 이후, 일본에 최초로 생긴 학생창업의 IT 스타트업이기도 합니다.
IT 스타트업으로서의 리쿠르트에 얘기하기전에 그 역사에 대해 간단히 보죠. 리쿠르트는 도쿄대학에 재학중이었던 에조에 히로마사가 1960년에 설립한, 대학신문, 그것도 도쿄대학의 신문에 구인광고를 내는것을 시초로한 인재관련 회사(정확히는 광고회사)였습니다. 얘나 지금이나 일본은 사람을 뽑는게 힘든 시장이라, 특히 도쿄대 출신같은 우수한 인재를 채용 가능한 플랫폼을 만든것이 리쿠르트의 강점이었고, 또한 이를 빠른 시간내에 익스큐션하는 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좋은 비지니스 모델에는 경쟁이 생기기 마련인데요,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유명 잡지가 같은 모델로 신규사업을 시작하는등, 해당 시장에서는 끊임없는 경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대기업의 신규진입에도 리쿠르트가 지지않고 서비스를 지켜온것에는 저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 강력한 영업팀
- 영업팀을 워킹하게 하는 인센티브 설계 및 인재 등용 시스템
입니다.
에조에씨는 본인이 엘리트 집안 출신이 아닌, 가난한 흑수저 교사집안이었기 때문에 본인과 같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직원이나 고졸, 여성등, 당시 멸시 받았던 흔히 말하는 Under Dog들을 많이 채용하였고, 영업 인센티브를 강하게 줌으로서 그들이 영업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습니다. 지금도 리쿠르트는 한국인을 포함한 유학생/외국인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리쿠르트는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이 가져가는 전략인, 본인들이 잘하는 사업을 오거닉하게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사업을 성장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새로운 시대의 기술을 수용하며 급성장하는 전략을 썼죠. 바로 IT사업인데요, 1968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IBM의 컴퓨터(IBM1130)를 구입한 기업이 리쿠르트였습니다.
당시에는 당연히 인터넷은 없었으나 에조에는 이 컴퓨터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인재 관련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였고, 기업의 구인표와 직장을 찾는 인재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 매칭 비지니스와 그를 위한 (지금보면 너무 심플할수도 있는) 자체 알고리즘을 구축했습니다. 어찌보면 지금의 GenAI를 누구보다 선도적으로 도입한 스타트업과도 비슷하죠.
이러한 기술을 도입함으로서 리쿠르트는 당시에는 IT 설비투자의 개념조차 없었던 경쟁사들을 압도할수 있었고, IT 기업으로서의 현재의 리쿠르트의 기반, 즉 데이터 드리븐 경영을 하는 DNA 자체를 키웠습니다.
실제로 Indeed나 Glassdoor와 같은 해외 스타트업을 인수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기업은 일본에서는 리쿠르트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라쿠텐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라쿠텐도 많은 스타트업을 인수하였으나 뚜렸한 성과를 보였다고는 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첨언으로 로고색 때문에 리쿠르트는 파란R, 라쿠텐은 빨간R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DNA를 활용하여 인재 시장외에도 부동산(SUUMO), 자동차(카센서), 웨딩(젝시)등의 정보 비대칭이 심한 시장에서 미디어 사업을 몇개씩이나 키워온 것은 리쿠르트의 저변에 깔린 데이터 드리븐 경영전략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으로서의 리쿠르트: 한국의 스타트업이 마주하는 방법
이런 리쿠르트를 우리 한국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까요? 그냥 일본의 덩치큰 레거시 IT기업으로 무시하기보다는 협업 상대, 또는 적극적으로 벤치마크할 좋은 마켓 리서치 상대로 생각하는게 어떨까 합니다.
실제로 리쿠르트의 글로벌 확장 전략에서는 해외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성공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앞서 언급한 Indeed입니다. Indeed는 미국의 구직 검색 엔진으로, 구직업계의 구글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리크루트는 2012년에 이 유망한 스타트업을 인수했는데요, 인수 당시, Indeed의 월간 이용자는 수천만 명 규모였으나, 리크루트의 적극적인 투자와 글로벌 확장을 통해 현재는 월간 2억 5천만 명 이상의 유니크 방문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급의 구직 사이트로 성장했습니다.
리크루트는 Indeed 인수 이후에도 해당 기업의 독립성과 속도감을 존중하며, 제품 개발 및 해외 시장 확장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Indeed는 리크루트의 HR 사업 영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현재는 리크루트 전체 수익을 견인하는 주요 사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더불어 현재 리쿠르트의 대표는 해당 M&A 및 PMI를 견인하였던 이데코바 히사유카시이며, 46의 젋은 나이로 리쿠르트의 대표가 될정도로 Indeed의 인수와 성장은 회사의 중요 전략으로 평가 받습니다.
또한, 2018년 인수한 Glassdoor 역시 해외 스타트업 협업의 성공 사례입니다. Glassdoor는 현직 및 전직 직원들이 기업 리뷰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리크루트는 이를 Indeed와 결합하여 구직 검색부터 지원, 입사 후 정보 공유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고용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더불어, 리크루트는 중국의 대표적인 구직 사이트인 51job에도 투자했으며, 약 40%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리크루트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시장에서도 알게모르게 진출해 있는데요, 2006년에는 한국의 아인스파트너라는 HR컨설팅 회사와 자본제휴를 했습니다.
유럽 출신 스타트업과의 협업 사례로는 독일의 Quandoo 인수가 있습니다. Quandoo는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으로, 인수 후 리크루트의 ‘핫페퍼 구르메(Hot Pepper Gourmet)’ 및 여행 사업과 연계하여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으로의 서비스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인수 전에 일부 지분을 투자하며 관계를 구축한 뒤, 본격적인 사업 확장 시점에서 남은 지분을 인수하는 단계적 협업 전략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리크루트가 해외 스타트업이 보유한 혁신적인 서비스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이를 자사의 강점과 결합하여 사업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자본 투자에 그치지 않고, 제품 개발과 시장 확장 측면에서 깊이 협력함으로써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신규 시장 진입 및 신서비스 창출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리크루트의 해외 협업 전략은 일본 기업이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모델 케이스로 평가될 만합니다.
이러한 예를 보면 한국의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하나의 모델 케이스가 될수 있다고는 생각됩니다.
반대로, 경쟁으로서 리쿠르트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해당 시장에 진입하는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란체스터의 법칙이겠죠)
마치면서
이렇게 리쿠르트에는 사람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매칭 시켜야 한다는 인재 등용에 관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사와 조직에 대한 철학이 있는 리쿠르트였기에, 여타 다른 일본 스타트업들(유니클로나 소프트뱅크)와는 달리, 창업자인 에조에씨가 별세후에도 더더욱 성장하게 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한국에 에조에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책들이 출판되지 않아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일본어를 하실 수 있는분들은 「起業の天才 江副浩正 8兆円企業リクルートをつくった男」나 「かもめが飛んだ日」(에조에의 자서전)등을 한번 읽어 보시는것을 추천드립니다)
이상으로 리쿠르트에 대한 글을 마치겠고, 다음에는 좀더 젋은 일본 빅테크의 소개를 해보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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