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인사이트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더욱 풍성한 좋은 일들이 있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작년 12월부터 고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본에서 지켜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리더라는 포지션은 '책임감'과 '책임지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최근의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추어 실패를 전통적인 시각인 ‘완벽하게 책임져야 할 불명예’가 아니라 ‘성장하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조직이 와해될 수 있고, 리더가 적절한 판단을 내리면 빈사의 조직이 기사회생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실이지요.
그래서,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인 핫코다산 설중행군 조난사건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리더가 내린 판단이 어떻게 수많은 부하들의 운명까지 가르고 말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여기로부터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시죠.
1. 八甲田山(핫코다산) 설중행군 조난사건의 개요
핫코다산 설중행군 조난사건(八甲田山雪中行軍遭難事件)은 1902년(메이지 35년) 1월 23일에서 26일 사이에 혹한지 훈련을 목적으로 아오모리현 핫코다산 일대에서 진행된 일본 육군의 겨울 행군 중 일어난 조난사건입니다.
- 당시의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을 치른 후, 1905년에 벌어지는 러일전쟁을 앞두고 군비를 확장하며 혹한지 전투 능력을 중요 과제로 여겼습니다.(러시아는 설국이니까요)
-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러시아 현지에서의 교전을 대비하고 일본 국내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겨울 훈련을 실시했는데,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폭설 지대로 꼽히는 핫코다산이 훈련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훈련에 참여한 주요 부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육군 보병 제5연대(아오모리 주둔): 약 210명
- 육군 보병 제31연대(히로사키 주둔): 약 50명
두 연대 지휘관 사이에는 누가 더 험난한 코스를 완주하고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경쟁심리도 존재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1월 23~24일 사이에 예상 밖의 맹렬한 폭설과 혹한이 덮쳤고, 1월 25일경에는 기록적으로 기온이 영하 41도까지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폭설과 혹한으로 인한 행군의 결과 제5연대는 전멸에 가까운 인명피해를 입었습니다만, 제31연대는 피해를 최소화해 무사히 생환하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게 됩니다.
2. 행군 계획과 두 부대의 차이점
핫코다산은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갑자기 변하기 쉬운 지역으로 현재에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폭설 지대로 꼽힐 만큼 자연환경이 거친 곳입니다. 1902년이란 시대상을 고려하면 더욱이 지역별로 세분화된 기상 데이터와 정교한 지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관련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대원을 이끌던 장교들 대다수가 산악·한랭지에서의 경험 및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즉, 대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미처 몰랐던 겁니다.
운명의 갈림길
육군 보병 제5연대(Top-down 리더십의 전형)
- 계획: “가장 혹독한 루트를 관통해 폭설 속에서도 행군을 완수하겠다.”
- 팀의 목적: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한 병사들의 체력 증진 및 사기의 고취
- 팀의 문제점: 기상 예측이 부실하고, 현지 전문가 의견을 거의 청취하지 않거나 무시
- 진행 상황: 1월 23일 이른 아침 아오모리 시내에서 출발. 초반은 순조로웠으나, 폭풍설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길을 잇따라 잘못 들게 됨. 현지의 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고, 방한 장비가 취약해 체감 온도는 영하 5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급격한 동상 및 피로 누적으로 부대의 대열이 붕괴. 팀원들은 극심한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짐.
- 리더십의 특징:
- 제5연대의 리더가 “한 번 세운 플랜을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부대원들에게 철수나 휴식을 용납하지 않음.
- 팀원들의 건의나 경고가 상층부에 전달되지 않는 일방적인 Top-down 구조.
육군 보병 제31연대(Bottom-up 리더십의 사례)
- 계획: “안전한 코스를 우선적으로 택하고, 필요 시 즉각 변경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철수도 고려하겠다.”
- 진행 상황: 행군을 시작한 첫날인 1월 23일부터 폭설이 시작되는 걸 감지하고, 행군 루트를 유연하게 조정함. 인근 마을의 온천에서 병사들의 피로를 풀면서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대기.
- 리더십의 특징: 리더가 팀의 상황 변화에 맞춰 계획의 변경 여부를 빠르게 결정함. 팀원들이 “위험하다” “날씨가 곧 악화된다” 등 지역 주민의 조언을 반영하여 의견을 건의하면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결과적으로, 제31연대는 최종 목적지에는 다소 늦게 도착했으나, 대규모 피해 없이 임무를 완료하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3. 운명을 가른 리더십의 차이
제5연대와 제31연대의 명암을 갈랐던 주요 요인은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사전 정보의 수집능력과 리스크 매니지먼트
- 제5연대: “경쟁자인 제31연대보다 어려운 루트를 완주해야 한다”는 Goal이 앞서다 보니 정작 폭설과 지형적 특징 등의 리스크를 과소평가함.
- 제31연대: 현지 사정에 정통한 가이드, 기상 정보 등을 최대한 반영해 계획을 세웠으며, 현지의 상황에 따라서 계획을 변경할 준비를 함.
2. 유연한 의사결정
- 제5연대: 한 번 정한 계획은 군인답게 바꾸지 않고 강행(Top-down).
- 제31연대: 상황에 따라 등반 루트의 변경, 휴식 등 다각적인 조치를 시행(Bottom-up).
3. 부하와의 소통구조
- 제5연대: 상하관계가 경직되어 있다보니 팀원의 의견이 쉽게 묵살됨.
- 제31연대: 리더가 팀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니 커뮤니케이션이 효율적으로 이뤄짐.
4. 리더가 가진 책임감의 방향성
- 제5연대: “계획의 달성”이라는 대전제가 “팀원의 생존”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됨.
- 제31연대: “임무의 성공”과 “팀원의 생존”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함.
4. 비극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 교훈
1. 리스크 관리
- 자연환경으로 대표되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대비해야 함.
- 상황이 악화되면 "플랜의 변경 및 중단" 이라는 선택지도 늘 리더의 마음속에 둘 것.
2. 상황 파악과 그에 따른 유연함
- 조직의 리더는 끊임없이 현재 상황과 그에 따른 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재점검해야 함.
- 한 번 세운 계획의 달성에 집착하면, 빠르게 변하는 외부 리스크에 대처하기 어려움.
3. 조직 내 소통
- 실무진(현장)이 보내는 위기신호가 최종 결정권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
-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는 위기 시에 빛을 발한다는 것.
4. ‘목표’과 ‘안전’의 균형
- 기업이든 군대든 조직이라면, 목표 달성과 인적 자원의 보호는 모두 중요한 가치.
-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눌려서 구성원의 안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됨.
5. 현대 사회에서.
핫코다산 설중행군 사건은 일본 육군이 대규모 겨울 훈련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대참사입니다만, 같은 시기에 같은 산악 지역을 행군하면서도 거의 피해 없이 귀환한 부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리더십의 차이가 조직과 팀의 운명이 가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 준비와 위기 관리 능력 그리고 유연한 판단력 및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체제를 갖춘다면 치명적인 피해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집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한 번 정한 계획을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나 결과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조직에게 있어서 가장 큰 리스크일 수 있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