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주 - 하고 싶은 일과 작은 행복

디폴트가 우울한 표정이어도 괜찮아

2023.11.27 | 조회 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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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enstar

지인은 지인의 속도대로!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이번 주면 벌써 11월이 끝나고 12월이 시작되네요. 구독자님에게 11월은 어떤 한 달이었나요? 저는 때때로 월말 결산을 하곤 하는데(귀찮아서 매달 하진 않아요) 일기장 혹은 사진 앨범을 들여다보며 한 달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곱씹어 보는 게 좋더라고요. 이번 달에는 어떤 책을 읽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새로운 일은 뭘 시작했는지 노트에 적어보기도 해요. 다음번에 월말 결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지난 주는 미국의 'Thanksgiving day'(추수감사절) 휴일이 있어서 아빠가 있는 캘리포니아에 다녀왔어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6일동안 긴 휴가를 다녀온 셈인데, 잠시 학교에서 떨어져 있으니까 새삼 교환생활이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실감이 나더라고요. 여러 가지 힘든 일들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물론 나중에는 대부분 미화될 기억이지만, 힘들었던 순간의 감정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펜을 들 수 있을 땐 꾸준히 기록을 했어요. 이 경험들을 토대로 나중에 다른 누군가 혹은 미래의 나를 또 이해할 수 있게 되겠죠? 

3주 뒤면 한국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한국에 가서 하고 싶은 것 리스트'를 적고 싶어졌어요. 일기장을 펼치고 좋아하는 초록색 펜으로 리스트를 적기 시작했어요. 요즘엔 어떤 것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얘는 판단 막 해가며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봤어요. 대여섯가지 정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리스트는 줄줄이 지렁이 젤리처럼 늘어났고... 이쯤 되면 인정할 수 밖에 없었어요. 나는 하고 싶은 게 많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좀 전의 쉽게 판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까먹은 채로요. 

그래서 오늘은 '하고 싶은 일', '나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언제나처럼 좋아하는 풍경 속에서 읽어주시길! (TMI: 저는 오렌지향 핸드크림을 바르고 옆에 귀여운 인형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게 욕심이 많은 거라고?

다른 사람이 운전해주는 차에 타고 가는 건 정말 편해요. 멀미가 나지 않게 창밖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지기도 쉽죠. 오늘은 유타 공항에서 로건까지 차를 타고 오며 최근에 새롭게 도전한 일들과 더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했어요. 키워드만 나열해보면, '강연', '여행', '콘텐츠', '대학원', '책 제작' 등이 있었어요. 각각의 키워드에서 나무 가지가 뻗어나가듯 생각이 확장되어서 머릿속에 나무 한 그루가 자란 것 같았어요. 무거운 나무를 이고 있으며 언젠가 엄마가 한 말을 떠올렸어요.

"너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것도 욕심이다. 여러 개를 쥐고 있으면 그 중에 몇 개를 놓아야 하는데 다 데리고 가려고 하니까 힘들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어."

'하고 싶은 게 많으면 좋은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는 엄마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어요.

 

이게 욕심인가?

-> 그렇게 볼 수 있을 듯. 

정말 내 힘으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이고 지고 살고 있는 건가?

-> 힘에 부치긴 하지. 

하고 싶은 게 많은 마음 때문에 내가 힘든가? 

-> 그 마음 자체는 나쁜 게 아닌데, 때로는 우선순위를 세우지 못해서 힘들기도 하지. 

 

또 다른 중요한 사실도 떠올랐어요. 하고 싶은 일이 많을 때는 살 만한 때라는 거. 하루하루 눈 뜨는 게 지옥같은 날에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은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하고 싶은 게 없으니 침대에서 나와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고, 그러니 밥을 먹어야 할 이유도, 씻어야 할 이유도, 사람들을 만날 이유도 없는 것이었고, 그러면 도대체 왜 살아있어야 하나 싶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겨우내 꽝꽝 얼어 있던 땅을 비집고 톡 튀어나오는 새싹의 이미지가 떠올라요. 저의 경우는 그게 톡!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토토토토토토톡 타타타타탁 티티티티틱 이렇게 불꽃 터지듯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게 다르지만요. 어쨌든 소중한 마음인 건 같아요.

이렇게 소중한 마음이 너무 많이 자라나서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하는 딜레마' 문제에 부닥치게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근데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이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들은 시간차가 있을 뿐이지 대부분 다 해내더라고요.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진 못해도 어제 한 마리 오늘 한 마리는 잡을 수 있는 거였어요. 그러니 뭘 먼저 할지, 한정된 에너지를 어디에 투입할지 밸런스 조절을 잘 하는 게 관건일 것 같아요. 그러려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뭔지 알아야겠죠. 

작고 소중하지 않은 행복

흔히 '작고 소중한 행복'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의 생활 속에서 작고 소중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 내가 우울한 건 너무 큰 행복, 높은 목표들, 엄청난 하고 싶은 일들을 꿈꾸기 때문일거야. 지금부터는 작지만 행복한 것들을 찾아볼테야.' 그런데 왜인지 작은 것들은 소중하게 느껴지지가 않았어요. 그건 너무 시시하고 지루해 보여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언제부터 작다는 말이 하찮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던 걸까요? 저는 더 큰 행복을 원했어요. 유능한 사람이 되어 인정도 받고 싶었고,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언제나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제 꿈은 저 멀리 있는데 현실의 제가 사는 세상은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이런 저런 얽힌 생각을 하며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새소리가 들렸어요. 짹짹짹!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몇백 마리나 되는 작은 까만색 새들이 대형을 맞추어 날아가고 있었어요. 아, 겨울이 되니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구나. 전선 위에 앉아 있다가 앞선 새들이 출발하자 뒤따라 나서는 수많은 새들. 오선지 위의 구불구불한 음표처럼 일렁이며 날아가던 새들. 모두 떠나가자 아쉬움이 몰려왔어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혹시나 남은 새들이 있을까봐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어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죽어 있던 눈빛은 생생하게 살아났고 다시금 이 세상엔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걸 느꼈고 재미 없던 내 인생은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어 있었어요. 누구한테 가서 말하기도 그렇고, 온전히 마음 속에 담아가야 했던 장면이지만 그 짧은 순간은 '작은 행복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어요. 

오늘 지루함에 창밖을 보다가 발견한 작은 행복. 슈퍼문일까요?
오늘 지루함에 창밖을 보다가 발견한 작은 행복. 슈퍼문일까요?

아직도 작은 행복보다 커다란 꿈을 바라보고, 작은 행복을 찾는 날은 드물지만 때때로 제가 발견하지 않아도 먼저 와서 알려주는 행복이 있다는 사실이 좋아요. 저에게는 자연이 그래요. 따뜻한 오후의 햇살, 차갑지 않게 불어오는 바람, 온 세포를 깨우는 겨울 냄새,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걷는 것. 어쩌면 '작은'이라는 프레임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어요. '작은' 행복은 사소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왜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행복보단 큰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 사실 행복은 이름 붙이기 나름인데도요. 

디폴트가 우울한 표정이어도 괜찮아

지금은 큰 목표와 작은 행복 사이를 헤매고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어느 하나를 딱 선택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 큰 목표를 이룬 뒤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찬찬히 알아차려보고 싶어요. 그럼 그게 작은 행복감이 주는 느낌이랑 뭐가 다른지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하고 싶은 일과 작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 봤지만, 저의 디폴트 표정은 살짝 우울하고 냉소적인 표정이에요. 살얼음이 낀 채 시든 시금치 같달까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혼자 있을 때, 특히 저랑 관계없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저는 세상에 회의적인 사람이 된답니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지만요. 모두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그것도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우연히 저와 똑닮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동지애가 느껴져요.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아주 잠깐 눈이 반짝거렸다가 곧 황급히 눈을 돌려버리는 모습이 약간은 사랑스럽게 느껴져요. 상대방의 깊은 어둠에 잠시 발을 담가본 느낌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왜 이렇게 기운이 없냐'는 이야기를 듣고 말겠지만, 기운을 굳이 내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 때로는 쌓인 눈 아래서 젖어가는 잔디처럼 그냥 그렇게 있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동안 저의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벌써 약속했던 4주가 지났네요! 

첫 번째로 쓴 편지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을까요? 더디지만 조금은 나아가고 있길 바래요. 완벽한 누군가가 되기보다는 더 나은 버전의 제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 볼게요. 

구독자님이 한 주를 조금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길 바라며 편지를 썼어요.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로건에서 보내는 편지는 끝이지만, 구독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메일함에 편지가 도착해 있을지 몰라요. 또다시 편지를 보내게 되면 인스타그램 @jeenstar210에서 알려드릴게요. 

감사했습니다! 편지를 읽어줄 누군가를 떠올리며 생각을 나누는 건 설레는 기다림이더라고요. 이 모든 이야기가 잊혀질 때쯤에 언제나 옆에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나타나 볼게요. 그때까지 마음도 몸도 건강히 계시길 바래요 : ) 안녕~~!

 

-2023. 11. 26

로건에서,

지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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