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관련된 영화라고 하면, 아무래도 <날씨의 아이>를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개인적으로도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사회적으로도 코로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막막했던 2020년의 절반쯤을 나는 이 영화 때문에 버텨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해 내내, 어찌나 여력이 없었던지 봤던 영화도 몇 편 없었는데, 그 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오랫동안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 바로 <날씨의 아이>였다.
나는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비내리는 구름을 좇아 바다를 건넌 소년의 마음, 그런 소년 앞에 기적같이 나타난 날씨의 아이를 향한 사랑과 동경, 어른들의 냉혹한 세계 안에서 아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간절함, 다른 사람보다도 아픈 딸이 가장 중요한 아빠의 이기심, 그럼에도 한 소년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어느 어른의 심정, 같은 것들이 어느 하나 놓칠 것이 없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다시 곱씹을수록, 매번 다른 마음들에 깊이 빠져들었다.
수많은 장면들을 좋아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건 소년 호다카와 '날씨의 아이' 히나가 서로 통성명을 하는 장면이었다. 소년은 불량배들로부터 소녀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소녀의 손을 낚아채 달렸으나, 알고 보니 소녀는 자발적으로 술집에서 일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발성은 당연히 진짜 자발성은 아닐 것이다. 부모도 없이 소녀가 살아남기 위해 강요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순간은 소년과 소녀라는 아이들이 기성 어른들이 만든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달아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도망친 곳에서, 소녀는 자신이 가진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매일같이 비만 내리는 도시를 잠시나마 기도로 맑게 하는 능력을 말이다.
소녀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자, 흐린 하늘이 열리며 쏟아지는 한 줄기 햇살, 그 순간 흐르는 음악, 어른들의 도시에서 온통 상처 입은 두 아이가 서로 만나 설레며 감격하고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한 그 느낌이 너무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삶에는 꼭 비현실적으로 매일 쏟아지는 폭우가 아니더라도, 우중충한 시절, 마음의 빛이 없는 것만 같은 시절도 있기 마련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나 현실이 온통 낯설고 불친절하게만 느껴지고, 매번 나를 상처입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럴 때, 기적처럼 삶에서 어느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있다. 친구든, 스승이든, 연인이든 말이다. 비오는 날이 기적처럼 개이는 순간, 또 냉혹한 도시에서 기적처럼 만나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무척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소년이 소녀를 구하기 위해 달리는 장면도 몇 번을 다시 봤는지 모른다. 그 순간 흐르는 노래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는 가사만으로도, 아니 노래 제목만으로도 무척 마음을 울린다.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직도 남아 있을까? 이런 시대, 이런 시절에, 모든 게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고, 효율성과 자기 이익이 뒤덮고 있는 시대에, 사랑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은 정말 우리 삶을 구해내는 무엇일까? 사랑은 정말 중요한 걸까? 그런 질문이 눈물겹게 다시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정말 사랑하고 싶어진다. 사랑이 다른 모든 걸 이겼으면 싶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진정한 사랑이란 것을 평생 해내가고 싶다.
그 외에도 참으로 많은 장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도 있을 듯하여,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이 영화의 OST를 수백번은 들었다. 어쩌다보니, 2020년의 하반기는 혼자 지내던 시절이었고, 꽤나 분투하듯이 하루하루를 겨우 견뎌내는 입장이었는데, 그런 차가움과 외로움 속에서 매일 이 영화의 노래들을 들었다. 그러면 언젠가 이 시절도 끝이 나고, 내게도 사랑이 돌아오고, 다시 삶의 따뜻함이라는 것도 기적처럼 찾아올 날이 있을 거라 믿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이 영화의 한 장면과 노래의 어느 구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아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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