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나는 왕십리의 비밀

오늘 지명수배에서는 두 곳의 지명을 다룹니다.

1️⃣ 왕십리
2️⃣ 답십리

지금은 장승배기에 살지만, 근 2년 동안 답십리 인근의 장한평에 살았어요. 조금만 가면 지하철 호선이 4개나 지나는 왕십리였다보니 경유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가는 길에 있는 답십리와 이름이 비슷하기에 두 곳 이름의 유래를 찾아봤던 기억이 얼핏 남아 있습니다. 궁금해서 재차 찾아봤더니, 조선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더라고요? 구독자님께도 설명드리고 싶어졌어요. 오늘은 두 십리(?)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1️⃣ 왕십리: 무학대사가 난데없이 욕 먹은 동네

왕십리往十理는 무려 600년이 넘은 지명입니다. 그 유래를 살펴보려면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풍수에 능했던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고 도성을 지을 곳을 물색해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가 왕십리 인근을 지나다가 소 한마리로 밭을 쟁기질하는 노인을 만나게 됐는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더랍니다.

그 말이 꼭 자기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던 무학대사는 노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어요. 그 노인은 서북쪽을 가리키며 "여기서부터 십리를 더 가면 좋은 곳이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곳이 지금의 경복궁이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조선시대의 10리는 5.7km 정도라는 주장도 있는데, 왕십리에서 경복궁까지 직선거리는 5.5km입니다) 그때부터 밭이 있던 그 곳을 왕십리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 같은 유래 때문에 왕십리에 무학중학교, 무학여고가 있죠. 그 노인이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대사'였다는 버전(?)도 있는데 그 때문에 나온 지명 중 하나가 '왕십리도선동'이기도 합니다.

2️⃣ 답십리: 도성을 정하다 밟은 곳

왕십리와 이름이 비슷한 답십리, 그 유래도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답십리 또한 무학대사가 도성을 정하려고 다니다가 밟은踏 곳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이 지역 논畓의 넓이가 10리가 넘었다고 해서 답십리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긴 있습니다. 무학대사 이야기는 위에서 한참을 설명했다보니 붙일 이야기가 없네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 

🚨 재밌는 전승이 있는 왕십리와 답십리지만, 사실 이 이야기들은 후대에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왕십리 인근이 고려시대 때부터 이미 '왕심리'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고, 도성으로부터 10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답십리, 왕십리라는 동명이 생겨 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지요. 

지명 이야기를 여러 번 듣다 보면 위와 같은 구조를 쉽게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지명의 유래에는 정설定說과 야설野說이 혼재해 있는데요. 슬프게도 재밌는 유래는 들판野에 사사로이 떠돌던 야설인 경우가 많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정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면 MSG를 좀 쳐야 재미도 있고 기억에 남기도 하니 야설이 오래 전해지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저야 이걸로 석박사 할 것도 아니니 정설은 정설대로, 야설은 또 야설대로 재미있게 다뤄보겠습니다.

🛤 오늘의 지명 복습 

왕십리: "도성까지는 십리를 가야 한다"는 뜻을 담은 지명.
답십리: 무학대사가 도성을 정하려고 다니다가 밟은 곳이라는 뜻.
사실은 둘 다 '도성으로부터 10리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일지도…?

흥미로운 지명 이야기를 수요일에 배송해드리는
오늘의 지명수배🛤️는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는! 2주에 한 번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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