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이 누워 있어도, 여행을 다녀와도 별로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 있죠? 오히려 쉬어도 계속 피곤하다는 생각에 자책만 늘어나기도 해요. 그래서 오늘은 이 묘한 ‘쉼의 아이러니’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려고 해요. 철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작은 실천 방안도 함께 찾아볼게요.
피로는 단순히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일까요?
우리는 종종 피로나 스트레스를 단순히 에너지가 떨어진 상태로만 이해해요. 그래서 체력을 보충하려고 ‘푹 잠을 자면 낫겠지’라고 생각하고 주말 내내 잠에 빠져 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만 보내기도 해요. 그런데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면 금세 피로가 되살아나는 이유는 뭘까요? 어쩌면 피로가 단순한 육체적 휴식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라던 휴식을 찾지 못해 생기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로 본 쉼의 의미
철학자 스피노자는 모든 존재가 스스로를 유지하고자 하는 힘, 즉 ‘코나투스(Conatus)’를 가진다고 말해요. 이는 단순히 생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살아가려는 적극적인 힘을 가리켜요. 쉼이라는 행위도 코나투스에 기반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일 수 있는거죠. 우리는 종종 ‘남들 다 쉬니까 나도 쉬어야지’ 하고 수동적으로 휴식을 선택해요. 하지만 그건 진짜 내가 원해서 쉬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게 분명하지 않으면, 쉬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걱정과 불안이 마구 돌아다니게 되죠.
결국 진정한 쉼은 ‘내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 가장 생기가 도는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어떻게 충전하는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해요.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더 잘 살아가려는 힘이 이미 있거든요. 그 힘을 긍정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휴식은 때론, 멈춤이 아니라 다시 채움이에요
쉬어야 할 때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멈춤보다 더 중요한 건 ‘다시 채워지기’예요. 휴식은 단지 우리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는 게 아니라, 내 기운과 의욕을 새롭게 채우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일을 멈춰도 머릿속이 엉킨 채 그대로라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 아니에요. 발걸음을 잠시 멈췄을 뿐, 내면의 소음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쉬는가가 더 핵심이에요.
쉼의 질문을 만들어봐요
지금 뭐가 제일 피곤하지? 가끔은 ‘쉬어야지’라는 생각만 앞서고 정작 내가 왜 피곤한지, 어디가 힘든지 돌아보지 못할 때가 있어요. 내 몸의 피로인지, 마음의 피로인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인지 구체적으로 자각해보면 좋겠어요.
내 에너지를 채우는 건 뭘까? 누군가에겐 완벽한 혼자만의 시간이 최고의 휴식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사람들과의 만남이 에너지를 채우는 순간일 수 있어요. 내게 맞는 ‘에너지 충전 방안’을 한두 가지라도 떠올려보세요.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휴식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즐거움을 찾는 과정’일 때 더 효과가 커져요. 쉬는 동안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거나,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뤄뒀던 소소한 취미생활을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에너지가 정말 어디에서 충전되는지, 진정한 멈춤과 다시 채움은 어떤 건지를 조금씩 스스로 깨닫게 되실 거예요. 세 가지 질문을 주말이나 쉬는 날, 혹은 잠깐의 커피 브레이크 시간에 떠올려보시면 좋겠어요.
나에게 딱 맞는 쉼의 방식을 찾아가기
피로는 단순히 휴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결과만은 아니에요. 때로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해서, 혹은 결국 다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진정한 쉼을 누리지 못할 때도 있어요.
이제부터는 일을 덜어내는 것뿐 아니라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해보면 어떨까요?
스피노자가 말한 살아가려는 힘은 이미 우리 안에 있어요. 그 힘이 소진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때로는 약간의 용기와 의지를 보태 새롭게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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