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여행지에서 익숙함을 찾으면 알게되는 것

여행지에서 익숙함을 찾으면 알게되는 것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날 때 알아주면 좋은 꿀팁 목록을 온라인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모든 항목이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중에 ‘일정 중간에 한정식을 먹는 코스를 넣을 것’이라는 문장이 한 줄 적혀있던 건 또렷하게 기억난다.

만약 이 문장을 어린 시절의 내가 읽었더라면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올랐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을 굳이 해외에서도 먹어야 할 이유를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위 문장에 ‘해외에서도 한정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상세히 적혀있지 않더라도 그 이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어느덧 주변 친구들과의 대화 소재가 운동이나 영양제, 병원 검진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나도 예전만큼 기름진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신체로 거듭났다는 걸 자주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해외여행에서도 한식을 먹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가 단지 그것 때문일까? 긴장되고, 두렵고, 떨리는 일과 마주한 경험이 늘어날수록 해외에서 먹는 한식에는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두려움과 긴장을 해소해 주는 맛있는 처방전이라는 의미.

20대 초반에 난생처음으로 해외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인종, 언어, 문화 모두 달랐던 곳에서 하루 종일 외국어를 쓰느라 지친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우연히 라이브 공연을 들을 수 있는 식당에 방문했다가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같이 낯설기만 하고, 모든 것이 나를 변두리로 밀어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안겨주는 곳에서도 사실은 얼마든지 내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니. 이를 알게 된 이후로는 낯설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익숙하고 친근한 요소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다.

그 이후로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는 잠들기 전에 이미 줄거리를 다 알고 있는 영화를 보았고,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장거리 여행을 떠났을 때는 발매된지 최소 5년은 넘어 가사를 다 외운 옛 노래를 들었다. 낯선 곳을 향해 떠나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긴장감은 이처럼 진부할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익숙한 것들을 통해 단번에 해소되곤 했다.

덕분에 여행지에서 익숙함을 찾으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한 끼의 식사, 노래 한 곡, 영화 한 편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는 큰 위안과 편안함이 담겨있어 낯선 곳을 돌아다니느라 긴장된 심신을 얼마든지 누그러뜨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울 푸드, 인생 영화, 인생곡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걸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 그대로 우리의 삶과 영혼을 위로해 주니까. 심지어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두려움과 긴장감, 외로움까지도 말이다.

낯선 경험으로 시야를 넓히는 것도 좋지만,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우리를 달래주는 익숙한 것을 찾아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늘 두려워하면서도 낯선 여행에 계속 도전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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