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오래된 추억을 잊지 않는 법

오래된 추억을 잊지 않는 법

저는 아무리 오래된 물건이라도 잘 버리지는 않는 편이에요. 하지만 물건을 버리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물건들을 주기적으로 관리하거나 들여다보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굳이 손에 넣은 것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아직 갖지 못한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습관이 되어서요.

어쩌면 무한으로 새로운 피드를 볼 수 있는 SNS에 너무 익숙해진 모양이에요.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자극을 찾다 보면 익숙해진 건 진부하게만 느껴지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물건들과 함께 추억까지 쌓고 있진 않았다는 생각이요.

추억이란 그저 물건을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두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그 물건에 의식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야만 만들어지더라고요.

이런 생각은 서랍장 한쪽에 모아둔 지 오래된 향수를 보다 보니 더욱 확실해졌어요. 제가 힘들 때 든든한 의지가 되어 주었던 언니에게 받은 향수가 있었는데, 워낙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향수이다 보니 함부로 쓰지 못하고 서랍장에 보관해 두었어요.

소중하다는 이유로 사용하기를 꺼렸던 향수는 점점 머릿속에서 잊혀갔고, 그렇게 그 향수는 몇 년 동안 서랍 속에 보관해 두기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결국 투명했던 향수가 누런색으로 변질되었더라고요. 제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에메랄드 병에 담긴 맑은 액체였는데, 어느새 변질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척 속상했어요.

만약 그 언니와 함께했던 시간이 그리워질 때마다 그 향수를 사용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힘들 때 저를 위로해 주었던 언니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채웠을 수도 있었을 테고, 언니와 연락을 좀 더 자주 주고받으면서 인연을 오랫동안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그동안 소중하게 보관했던 오래된 물건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기 시작했어요. 소중한 친구에게 받은 선물은 아무리 쓰기 아깝더라도 일부러 사용하기 시작하고, 구겨지거나 상하지 않게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만 해두었던 것들도 눈에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뒀어요.

결국 추억이란 소중하게 보관만 해두다가 가끔 생각날 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쌓이는 게 아니라, 눈과 손이 잘 닿는 곳에 두고 함께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늘려가야만 쌓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자주 사용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 낡고 닳아서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추억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오랫동안 마음에 안착할테니까요.

물건에 깃든 추억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관계여도, 새로운 추억을 쌓아갈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들어가야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참에 오랫동안 이어지고 싶은 인연과 봄 날씨를 핑계 삼아 연락을 한번 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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