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사실, 나 피아노를 좋아했어

사실, 나 피아노를 좋아했어

4월 한달 간 여가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 인생의 지난 날을 돌이켜봤다. 나는 쉴 때 보통 뭘 하며 쉬었지? 어떤 활동을 했을 때 온전히 쉬는 느낌이 들었지? 그리고 문득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방 2개는 더 있었던 15년 전의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꽤 큰 피아노가. 아주 어렸을 적 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나는 곧잘 피아노를 쳤던 것으로 기억난다. 엄친딸, 엄친아처럼 만 7세 피아노 신동! 이런건 아니었지만, 매일 방과 후에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 조금씩 연주하며 쌓은 실력으로 작은 콩쿨 대회에 나가서 연주를 하곤 했다. 피아노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내 방에 중고 피아노를 사주셨다. 사실은 어린 날의 내가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랐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미 오랜 세월을 보낸 듯한 중고 삼익 피아노는 우리가 다음 집으로 이사하기 전 까지 내 방에서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렇게 열성적으로 피아노를 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냥 가끔 피아노가 치고 싶을 때,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악보를 펴서 초입을 따라 치다가 건반을 하나라도 잘못치면 형편없는 내 실력에 실망하고 악보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같은 구간을 무한정 연습했다. 나도 이어폰 속에 나오는 멋진 피아니스트들 처럼 수려한 연주를 하고 싶은데,, 항상 이상과 현실은 다르구나를 느끼며 짧은 구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속도로, 그 느낌으로 칠 수있게 질릴 때 까지 연습하는게 내 일과였다.

이상하게도 피아노를 연주할 때면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되는 그 순간이 좋았다. 내가 악보를 따라가지 못하고 실수하면 더 잘치고 싶은 마음에 더 집중해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어떤 날은 어려운 악보도 아주 쉽게 연주할 때가 있는데, 그럴때는 이 좋은 흐름을 끊기 싫어서 집중하다보면 그 순간에는 오직 나와 피아노 선율만이 함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거나, 무언가 압박을 받고 있을 때 피아노를 치면 내 안의 불안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대학을 가고 우리집이 작은 평수로 이사를 가면서 피아노는 자연스럽게 우리집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방음 문제도 문제인지라 그 이후로 쉽사리 집에 들일 수 없는건 당연한 수순이였달까. 그러다보니 피아노를 연주하며 느꼈던 자유로움, 해방감을 잠시 잊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에피레터를 쓰다 기억이 난 것이다. 사실, 나 피아노를 좋아했구나! 진짜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고 쉼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은,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 시간이었구나. 이제는 피아노를 치고 싶을 때 유료 연습실을 시간제로 빌려야 하지만, 기억난 김에 가끔이라도 피아노를 연주하며 해방감을 느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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